미친 개 02
김종인X도경수
w. 모울
1편
http://instiz.net/writing/36213
김종인을 만난 건 5년전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 당시 재혼을 했었고, 엄마 손에 끌려 온 곳은 김종인네 집이었다. 그 당시 13살 초등학생의 끝자락이었던 나는 갓 중학교를 입학했던 김종인을 꽤나 잘 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내 기억속의 김종인도 먼저 손을 내밀며 사근사근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분명히 잘 지내왔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입학을 했을 무렵, 김종인이 변했다. 먼저 변했다는 것을 부인할수는 없을것이다. 나는 그것을 단지 김종인의 사춘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해왔다. 현재까지도, 김종인과 나의 사이는 썩 좋지않다.
이것 봐. 나는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 벨 소리에 화들짝 놀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제법 눈이 부신 걸 보면 아무래도 아침이 훤하게 밝은 게 틀림없다. 또 먼저나갔다. 하여간, 학교에 지각할 동생을 단 1%라도 걱정할 줄 모르는 놈이다. 비척비척, 끌려오는 이불을 발로 몇번 헤치고 손을 뻗어 전화기를 사수했다. 국제전화다.
“…여보세요?”
-경수?
“응, 무슨일이야. 엄마.”
-무슨일은. 그냥 어떻게 지내나 해서. 근데 너 늦은 거 아냐? 전화 못 받을 줄 알았더니.
“…늦잠잤어.”
-하여튼, 못 일어나서 걱정이다. 종인이는?
“몰라! 먼저 갔겠지! 깨우지도 않고, 나쁜놈이!”
-너가 늦은 게 잘못이야.
분명 엄마는 나보다 김종인을 훠얼씬 더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나의 투정어린 칭얼거림에 단호하게 도경수가 잘못했네, 라니. 엄마 미워. 힝힝. 우는 척을 해보이자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만발했다. 괜히 따라 웃다가 얼른 학교가라는 엄마의 말에 응. 하며 전화를 끊었다. 시계를 보니… 빨리 가야겠다….
“야, 너 명찰 어디다가 두고왔어! 엉?!”
“아, 여기 있다니깐 그러네!! 좀 기다려보라고요!”
“너 이새끼, 없으면 나한테 먼지나게 맞을 줄 알아!!!”
“아!!! 좀 때리지 말라고오ㅡ!!”
한바탕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닐 수 없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교문앞을 막고 서 있었다. 여자 남자 할것없이 형형색색의 출석부를 손에 지니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그것임에 틀림없다. 공포의 학주. 이미 몇몇의 제법 불량스러운 폼새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복장에는 으레 넥타이나 명찰이 없거나, 바지줄이기, 치마줄이기, 화장 등등. 다양한 차림새를 하고있었다. 아마 김종인의 복장도 이와 다르진 않았겠지. 나는 김종인이 학교를 일찍 가는 이유를 안다. 아마도 10할 중의 4할 정도는 학주를 피하기 위해ㅡ 일 것이다. 너무 빠른 시간에는 아무도 교문을 지키고 서 있지 않을테니까.
“빨리 들어가!! 조금 있으면 종 친다! 지각하면 운동장 5바퀴야!!”
선배들의 불호령에 후다닥 교문을 뛰다시피 지나가는 무리들을 바라보다 내 복장을 점검했다. 다행히 빼놓고 온 건 아무것도 없다. 선배중 한명이 내 복장을 힐끔대다 가도 좋다는 표시로, 손을 휘저었다. 가방을 다시 고쳐매고 길을 지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았다. 그때문에 잠시 가던길을 멈췄다. 그대로 가버리면 한손으로 지탱하며 아슬아슬하게 엎드려뻗쳐를 한 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주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호, 하며 다시 원자세로 엎드려뻗쳐를 하던 상대방이 이번엔 얼굴을 치켜든다.
“처음보는 것 같은데, 1학년이야?”
그는 한눈에봐도 사나워 보이는 눈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를 보며 씨익 웃는 듯한 표정이 무표정과는 확연히 달라서 마치 두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저만치서 또다른 불량학생을 붙잡고 고나리질 하는 학주를 보며 잘 됐다는 듯이 나에게 소곤거렸다. 야, 1학년.
“이학년 육반 교실 알아?”
알수밖에. 분명 어제 보았던 반이 이학년 육반이었다. 내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 만면에 기쁜 기색을 띄운다.
“잘됐네. 너 이학년 육반 가서, 몰래 내 명찰 좀 들고와라.”
“…….”
“이학년 육반가서, 오세훈 자리가 어디예요, 물으면 애들이 알아서 잘ㅡ 찾아줄테니깐.”
“…….”
“그럼 부탁한다! 귀염둥이 일학년.”
온몸에 소름이 돋을뻔했다. 귀염둥이라니. 정색하며 그제서야 한 발짝 운동장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고개를 뒤로 돌리니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윙크를… 했다. 뭐야, 미친놈아냐? 그리고 나 일학년 아니거든, 씨벌놈아. 라고 따져주려다 말았다. 그는 분명 내가 얌전히 자기 말대로 명찰을 고이 갖다 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나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아무래도 변백현이 말하는 빈자리의 주인을, 알 것도 같았다.
“아, 씨발!!!”
별안간 터져나오는 고함소리에 반 전체에 정적이 울려펴졌다. 주위 시선을 흘끔ㅡ 대니 마치 어제의 내가 왔던 것 처럼 고요해진 분위기에 나만 혼자 태평했다. 쾅ㅡ 하며 문이 부서져라 열리고 쾅쾅대는 발소리가 반 전체를 침묵에 휩싸이게 했다. 조용히 문을 닫는 안경잡이 여자애를 보고 있을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에게로 졌다.
“…허?”
그의 표정을 보니 놀라는 기색이 반, 어이없다는 기색이 반이다. 곧 그 또ㅡ라이 기질을 보이던 놈이 내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미친듯이 웃어제꼈다. 그 덕분에 반 분위기는 더 싸해졌다. 몇몇이 경악을 하며 곧 일어날 피터지는 분위기에 쫄은 듯 그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태연하게 내 옆자리에 앉더니, 날 보며 그저 웃고 또 웃기만 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 시선이 재수없어 뭘 처웃어? 하는 표정을 보이니 겨우내 웃음이 가라앉았다.멀리서 변백현이 옆의 눈치를 보더니 손을 흔든다. 아, 저애. 나도 따라 손을 흔들어주고, 얌전히 첫교시에 쓸 교과서를 올려놓았다. 물론 필기구는 없다. 교과서를 올려논 것은 그저 수업에 대한 예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ㅡ 주여.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어!”
“저… 선생님?”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저 선생이 대체 아침부터 무슨 뜬금포지. 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물어볼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변백현의 말에 나는 제일 먼저 선생님들의 성격이 어떠한지 물었다. 수업시간에 졸면서도 까이지 않는 건 요령이다. 말 그대로, 어느 시간에 자야 안전한지, 어느 선생님이 온순하고, 어느 선생님이 개인지 알아야 딱딱 그 시간대에 맞쳐 고개를 엎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변백현이 말한 저 한자선생님은 유별났다. 왜냐하면, 저 선생님은 대체 무슨 종교집단인지 모를 주여를 외치는, 한마디로 개싸이코 이기 때문이다.
“…세훈아, 너가 수업시간에 졸지를 않다니, 이건 기적임이 틀림없어. 우리 마음속에 늘 존재하는 신이 너에게 자비를 베푼거야!!”
나는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오세훈의 두 손을 꼭 쥐어모으며 외치는 한자의 꼴이 영 우스웠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풉, 하며 웃음을 내뱉자 곧 반 전체가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내며 웃어제꼈다. 내 옆의 놈은 잠시 그런 한자를 쳐다보더니 같이 씩 웃고는“한자!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아진거야?”라는 능청스러운 말로 한번 더 좌중을 소란의 한바탕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당연한 듯, 나를 제 줄에 끼워넣으려는 형들의 손짓을 나는 거절했다. 오올~ 도경수, 친구생겼다 이거야? 형들 섭섭한데? 하며 내 볼을 잡아당기는 형들에게 웃으며 가려다 말고, 식판을 들으려던 김종인의 다리를 한대 퍽ㅡ 찼다. 아! 하며 나에게 인상을 쓰는 놈에게 메롱, 하자 “너, 이따가 집에서 봐.”하며 차마 쥐어박지를 못하는 김종인에 서둘러 2학년 줄로 뛰어갔다. 쌤통이다. 그러게 누가 먼저 가래?
소심하게 복수를 하고 난 후의 점심은 꿀맛같았다. 우는 변백현이었고, 앞에는 싸이코다. 싸이코 친구로 보이는 애는 내 좌에 앉았다. 변백현은 이 분위기가 적응이 안되는지 깨작깨작, 그저 급식판만 뚫어져라 먹고 있었고 나는 오세훈이 은근슬쩍 들고가려는 비엔나소세지를 사수하기 위해 유치하게도 젓가락으로 사투를 벌였다. 결국, 내게서 비엔나를 뺏지 못한 오세훈이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존나 아프잖아! 하며 발로 오세훈의 다리를 퍽 걷어찼다. 아래를 확인하던 오세훈 몰래 비엔나를 뺏어먹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오세훈의 친구가 그런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자, 자신의 식판을 확인하던 오세훈이 어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먹고싶었쪄?”하는 콧웃음소리에 기겁하며 손을 탁ㅡ 치다가, 얼떨결에 대각선에 위치해있는 김종인의 얼굴을 보았다. 놈이 향하는 시선엔 오세훈이 있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인상을 쓰는 놈의 표정이 어쩐지 화가 난 듯 보이는것은 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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