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루한, 루한."민석은 저멀리서 루한이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것을 두눈으로 확인한 순간부터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조금 목소리가 들릴만한 거리가 되자 루한은 무슨 일인지 살짝 조급해진 마음으로 걸음을 빨리했다."무슨 일이야?"민석은 앞에 서서 숨을 고르는 루한의 두 팔을 콱 잡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어 가만히 기다려주자 민석은 뜻밖에 귀여운 고백을 털어놓았다."나 아까 나오기 전에 이닦는데 갑자기 루한 생각이 나는거야 너무 설레서 나 오분이나 빨리왔어."얼른 예뻐해주길 기다리는 표정도 아니고 웃기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어제 식단이 이랬어-라는 식의 표정으로 민석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어이없는 포인트에서 함박웃음이 절로 나온 루한은 길거리에서, 할인행사가 한참이라는 북적이는 슈퍼 앞에서 민석을 안고 방방 뛰었다. 도저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 귀여움을 어디다 푼단 말야."민석아, 오늘 왜이리 귀여워. 우리 오늘 어디가지말고 집에 가자.""싫어. 오늘 놀러가려고 신경써서 입었어.""내가 봐줄께. 내가 너 패션쇼도 열어줄께, 가자."루한의 제안이 썩 맘에 들었는지 민석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럼 오늘 나만 보고 있어야 돼. 약속.""약속 약속. 빨리 가자."루한은 느린 걸음의 민석을 포대라도 끌듯이 힘을 주어 끌고 곧장 집에 돌아갔다. 문 앞까지 와서야 민석은 의문이 생긴듯 루한을 불렀다."루한 근데 집은 왜가? 내가 귀여운거랑 무슨 상관이야.""뽀뽀하고 싶소."히죽히죽 웃는 얼굴이 싫지 않아서 민석은 기분이 둥실 떠올랐다. 내가 뭐랬어, 이 닦다가도 막 생각났다니까. 루한도 민석도 그제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날씨 맑은데 집이야. 민석이 작게 투덜거렸다. 물론 기분좋은 투정과 섞여 있었다. 루한이 청결청결을 조잘거리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쓰고 있는 비누는 민석이 작년에 만든 천연비누였는데 쓰기 아까워서 묵혀두다 얼마전 개시한 비누였다. 루한이 흥얼거리며 손을 씻는 도중 민석은 양말을 신고 까치발을 한채 세면대 앞에 섰다."양말 젖었다.""이따 내꺼 신고가."민석이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루한의 손 틈새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야아, 손 빼. 이따 씻어."작은 핀잔에 기분이 상한 민석은 손바가지에 물을 담아 루한의 얼굴에 휙 뿌려버렸다. 저번에도 몇번 했던 장난이었다. 루한은 어푸푸거리며 눈을 세게 감았다."푸하, 꼴 좋다. 절로 가. 물 떨어져."민석이 신나서 깔깔거렸다. 수건에 얼굴을 닦고나서 루한은 민석을 노려보며 화장실 문턱을 밟았다."루한 어디가. 오늘 나만 보고 있어야지. 다시 들어와."민석이 비누를 문질거렸다. 루한은 다시 샐쭉 웃으며 민석의 옆에 섰다. 쏴아-하는 수도꼭지 소리에 맞춰 민석은 손을 비볐다."꺼줘."마치 오래전부터 들던 시중처럼 루한은 한번에 물을 탁 잠궜다. 민석은 손을 탁탁 털고 루한이 얼굴을 닦았던 수건에 손을 닦았다."가자 루한.""민석, 민석."등을 돌린 민석에게 루한이 다급히 외쳤다. 민석이 뒤를 돌자 루한은 무언가 놓칠새라 얼른 말을 시작했다."아까 그말 다시 해줘. 이 닦다가 그거."기대를 한가득 안고있는 표정이었다. 루한의 표정이 몽글몽글한 구름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한 민석은 잊어버릴새라 똑같히 말을 시작했다."루한, 루한."민석은 '루한'하는 박자에 맞춰 콩콩 뛰어다가 품에 폭삭 안기면서."루한은 이 닦다가도 생각나고, 밥 먹다가도 생각나고, 길을 걸을때도 생각나고, 아이스크림 먹을때도 생각나고, 물을 마실때도 생각나."하고 말했다. 루한은 이미 충분히 만족한듯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그게 아니라고 한번더 민석을 재촉했다."응, 어, 루한. 루한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설레. 보고싶어. 애 같지? 진짜야."루한은 그제야 응응, 좋아를 중얼거리며 민석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똑딱거리는 시계가 싫다던 민석의 말에 꽤 오래전 전자 시계로 바꿨었는데 어쩐지 지금 똑딱 소리보다 더 커다랗고 규칙적인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디 북소리 나."루한은 그냥 이름만 불러도 좋아."응응, 나도 이름만 불러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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