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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앙근 전체글 (정상)ll조회 505l
+) 초록글 감사합니다 ㅜㅜㅜㅜㅜ 찌통 석순과 함께해요 여러분 석민이는 결국 순영이를 쫓아내게 될까요?!?! 열심히 쓰겠습니다요 헤헤 

 

 

"순영아." 


 

눈동자가 초록빛으로 빛났다. 

모처럼만에 들어보는 기계의 목소리가 말했다. 


 

"이름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빛이 꺼지자 의식을 되찾은듯 아이가 물었다. 


 

"그게 제 이름인가요?" 

"아,"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내 아내의 이름으로 무엇을 한건가. 생각해보니 아이는 한번도 내 순영이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치밀어오르는 아내의 이름을 어금니 너머로 삭히는 데에 도가 텄고 가끔 울고불고 하던 것도 모두 아이의 눈을 피해서였다. 아이는 아내의 이름은 고사하고 내 이름조차도 얼마 들어보지 못했을 터였다. 엄마가 기본 설정값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까지도 몰랐을 수도 있다. 눈을 내리깐 아이가 손끝을 고물거리더니 조용히 말한다. 


 

"고맙습니다." 

"..." 

"예쁩니다. 마음에 들어요." 


 

목에서 주먹이 치받는 느낌이었다. 얼굴로 열이 뻗어, 입을 다물려다 한 마디 쏘아붙이고 자리를 일어섰다. 


 

"네가 마음에 들고 자시고 할 이름이 아닌데." 


 

내일 아침에는 무조건 저것을 폐기해야겠다. 순영이에게 이리도 미안할 수가 없었다. 주먹을 한번 쥐었다 문을 쾅 닫았다. 


 

. 


 

돋보기 안경을 고쳐쓴 연구원이 아이의 손을 유심히 살피다 고개를 반짝 들었다. 


 

“집에서 수리하셨다구요?” 

“아, 네. 비누로. 머리 감겼는데.” 


 

분홍색 머리를 벅벅 긁던 연구원이 볼펜을 깨문다. 아이는 도륵도륵 눈치만 살핀다. 


 

“좀 더 알아봐야 할거 같은데, 원래 원칙적으로 사설 수리는 후속 조치, 뭐, 수리든 반납이든 안 받아드리거든요.” 

“아니 그냥 응급 조치만 한건데,” 

“잠시만 계세요. 제가 문의해볼게요.” 

“무슨..” 

“저희도 월급쟁이라, 저희 권한으로 막 뭘 해드리고, 그럴 수가 없어요.” 


 

어깨를 으쓱하던 연구원이 키보드를 바쁘게 두드린다. 


 

“죄송합니다. 본사 응답은 빨리 올거에요. 10분 내외로 도착하니까 최대한 조치 빨리 취해드릴게요. 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뇨.. 그냥 기다릴게요.” 

“네. 회로 클리닝이나 한번 해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연구원이 아이의 손을 잡고 유리문 뒤로 사라진다. 찬찬히 센터 이곳저곳을 뜯어본다. 가지런히 꽂힌 안내 책자를 꺼내 뒤져보다 심심해서 명함을 한 장 뽑는다. 이지훈. 혹시 또 연락할지 몰라 일단 지갑에 챙겨둔다. 쓰잘데없는 생각으로 정신을 팔다가 결국 문 너머 아이가 사라진 곳으로 시선이 닿는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함께 산 정이란게 만만치 않다. 가지런한 앞마당, 야밤의 스튜, 비맞은 백합, 드문드문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내 아내의 이름을 가진 너와 어떻게 한 지붕을 이고 살랴. 마음을 다시 독하게 고쳐먹는다. 


 

문 너머가 소란스러워진다. 연구원이 하나 내려왔나보다. 아이의 얄팍한 등허리가 돌아가는 고개를 따라 굴곡을 바꾼다. 


 

“왜, 뭔데.” 

“집에서 급하게 조치하셨다는데 반납.” 

“에이, 무리다. 반납은 진짜, 좀.” 

“아니 근데 또 그게 당장 쓰셔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 반납은.. 본사 문의 넣어봤어?” 

“아, 응. 왔으려나.” 


 

연구원 두명이 컴퓨터 화면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이가 문득 뒤를 돌아 나와 눈이 마주친다. 사위가 고요해진다. 저 맑은 무표정. 세상을 가라앉히는 저 시선이 나는 싫다. 눈길을 피하려고 시선을 돌리는사이, 아까와 다른 연구원이 긴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허적허적 걸어나온다.  


 

“SY72315-14 모델 문의주신 분이시죠?” 

“아,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사설 수리는 원칙적으로 저희가 반납을 따로 확인해드리지 않습니다. 사소한 고장이라 수리 정도는 저희가 봐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라도 사용하시겠어요?” 


 

입술을 깨문다. 홈봇은 국가 차원에서 기록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회사에 반납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자기가 떠안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면 수리보다 더 큰 비용을 들여 사설 업체에 반납하던가. 말이 좋아 사설 업체지, 사실상 고물상과 다를 것 하나 없다. 젠장.. 머리가 복잡해진다. 고민하는 사이 문 안쪽에서 연구원을 부른다. 


 

“야, 정한아-“ 


 

“엑, 잠시만요.” 


 

눈썹을 한번 들썩하더니 머리를 고쳐묶고 다시 유리문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아이의 가느다란 왼팔을 연구원 둘이 머리를 고꾸라박을듯 들여다본다. 

아이의 뒷모습을 처음 본다. 사람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듯 상의를 훨훨 벗고 반 나신이 된 아이가 추위를 타는지 몸을 흠칫 떤다. 가슴이 아프다. 너는 사람일까? 


 

“저 그냥,” 

“? 네-“ 

“수리 안 받을게요. 괜찮아요.” 

“저, 고객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가자.” 


 

이름도 부르지 않았지만 가자는 말 한마디에 아이가 스툴에서 폴짝 내려와 옷을 집어든다. 벗을때처럼 훌렁훌렁 머리를 집어넣고 팔을 빼더니 연구원들에게 인사를 꾸벅 한다. 그 모습에 할 말을 달싹이던 연구원들이 입술을 다문다. 유리문을 열고 나와 나를 올려다본다. 


 

“가요.” 


 

연구원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리는 결국, 센터를 나선다. 


 

. 


 

오는 길 내내 아이가 왼팔뚝을 문지른다. 눈치만 보다가 10번 하고도 3번째쯤을 넘기고서야 용기를 내어 물었다. 


 

“뭐야. 왜 그렇게 팔을 가만 놔두질 못해.” 

“뭘 고친다고 한걸까요, 아까 그 사람들은.” 

“너 비 맞은 그거 때문이잖아.” 


 

조마조마하다. 반납이니 뭐니, 들었을까. 아이는 다시 말없이 팔뚝만 문댄다. 


 

“아파?” 

“아뇨. 그냥 느낌이 이상해요.” 

“오늘은 집 가서 쉬어. 일하지 마.” 

“밥은 먹어야죠.” 


 

아이가 가볍게 마트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나는 못 들었을거라고 눈 감고 싶어진다. 몰래 한숨 쉬던걸 알았을까. 널 앞으로 계속 챙겨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부터 나던 나를 보았을까. 아니기를. 아이를 따라 마트로 들어간다. 가벼운 척이라도 해본다. 너는 로봇일까? 

적양파며 홀토마토같은 것들을 골라담던 아이가 대뜸 묻는다. 


 

“그런데, 성이 ‘순' 이고 이름이 '영아' 에요?” 


 

어제 어쩌다 붙어버린 자기 이름. 주어를 뺀다고 말을 못 알아들을 리는 없다. 


 

“아니. 이름이 ‘순영’. 성은 따로 있어.” 

“뭐에요?” 

“너 알아서 뭐하게.”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내 순영이. 아직까지도 아내는 ‘내’ 순영이다. 누구도 함부로 알려 들수 없는 성역. 아이가 그의 존재를 궁금해하는게 마땅찮다. 


 

“그냥 뭐.. 성도 있으면 좋잖아요.” 

“... 로봇 주제에.” 


 

순간 욱하는 성격이 그대로 튀어나온다. 아차. 아이에게는 인풋을 받아들여 이해하고 학습해 발전된 아웃풋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주제에’ 라는 어미의 뜻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앞서 끌던 카트를 멈추고 뒤돌아본다. 사람을 꿰뚫는 눈빛을 한 아이가 심장을 토막낸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결국 이렇게 새는구나. 


 

“로봇 ‘주제에’,” 

“..” 

“아니에요.” 

“... 아.” 

“사람은 아니라지만,” 

“..." 

“로봇 ‘주제에’ 도 아니에요.” 


 

덜그렁, 마카로니와 치즈 봉지를 집어넣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과자 코너를 기웃거리던 아이가 진열장 사이로 쏙 숨어든다. 나는 조금 멍해진다. 화낸건가. 빠르게 카트를 굴려 따라간다. 


 

“‘권'.” 

“네?” 

“‘권’ 씨였어. 네 이름 주인.” 

“아.” 


 

짧은 탄성을 내지른 아이가 나쵸를 집어든다. 나는 말간 뒷통수만 쳐다본다. 어느새 진열장 끝에 간 아이가 폭삭 쭈그려앉아 올리브유를 살피며 다시 묻는다. 


 

“그럼 저도 바꿔도 돼요?” 

“뭘.” 

“제 이름.” 

“?” 

“권순영.” 


 

아이가 올려다보는 홍채 두개에, 턱에 어퍼컷을 맞는다. 폭풍이 쓸고 지나간다. 몰아치고, 왕왕 울린다. 까맣던 잔상이 걷히고 나면 거기 폭풍의 눈에, 인내심 있게 대답을 기다리는 너. 순영이. 

말을 잇지 못해서 카트만 굴린다. 돌돌돌돌돌.. 나는 먹지도 않을 피클만 3통을 집어넣는다. 아이는 기름을 다 골랐는지 타박타박 뛰어와 카트를 다시 채운다. 


 

“편하신대로 부르세요.” 

“...” 

“따라갈게요.” 

“... 그래.” 


 

멍하니 계산을 하고, 마트를 나온다. 아이가 내게 물어본 것은 고작해야 이름 석 자 바꿔도 되냐는 것이 다였다. 하기사, 이름을 붙여주는데 성도 없으면 인식이 안되거나 뭐 그런 거겠지.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다짐해도 어딘가 냉장고가 열린 듯 쎄해지는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몰래 북받혀 오르고, 아이는 속도 없이 장바구니를 바스락거리고 걷는다. 


 

흐린 하늘을 이고지고 집에 돌아와 부엌에 장 본 것들을 늘어놓는다. 열린 창문으로 빗방울이 들어온다. 아이는 어디 있나 싶어 부르려는데, 맨발로 걷는 소리가 식탁 앞에서 멈춘다. 달그락. 사기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 뭔가 싶어 뒤를 돌자 새빨갛게 흐드러진 것들이 촛점이 된다. 


 

“어제 우리 꽃 산 거에요.” 

“.. 아.” 

“예쁘죠.” 


 

파란 화병에 피처럼 빨간 히비스커스를 가득 꽂아놓았다. 말 그대로, 만개했다. 공간 하나 안 남기고 악착같이 봉오리를 틔워 마치 꽃으로 된 구같은 형상. 노란 수술이 어쩜 저렇게 웃을 수 있나 싶게 당돌하다. 생각해보니 아내가 죽은 이후로 산 첫 꽃이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게 뭘까 싶어 아이를 보는데 아이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표정이.. 다르다. 예의 그 말간 무표정이 아니라 어색하긴 해도 조금 다른 느낌. 미간을 좁히고 저게 무슨 표정인지 알아내려 하는 사이에 아이가 뒤를 돌아버린다. 너는 사람일까? 


 

“창문 닫고 올게요.” 


 

베란다 창문을 닫는 소리에 섞여 말소리가 울린다. 하늘이 빠르게 어두컴컴해지고 있다. 나는 냉장고 정리를 끝내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려다 창밖에 망연하게 정신이 팔린 아이의 옆모습을 본다. 뭘 말하고 싶은건지 살짝 뒤집힌 윗입술과 코 끝.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에 시선이 사진을 찍는다. 유달리 결이 좋던 앞머리가 소복히 쌓인 눈썹결. 귀끝의 발그레한 혈기. 너는 로봇일까? 

생각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방에 들어와 순영이 사진이 담긴 액자를 엎어두고 창문을 닫는다. 그 사이 아이가 요리를 시작한다. 나는 잠시 침대에 누워 가슴에 손을 올려두고 머리속을 정리한다. 

요즘 들어 순영이가 활개를 치고 다닌다. 머릿속이건, 현실에서건. 날씨가 이상하더니, 머리도 그를 따라가나보다. 


 

얼마나 있었을까, 아이가 방문을 달칵 연다. 


 

“아저씨, 저녁 드세요.” 


 

아이가 치즈를 듬뿍 얹어 급하게 만들어낸 맥앤 치즈를 먹고나자 해가 완전히 졌다. 노란 부엌불을 켜고 앉아 커피를 마신다. 밖엔 슬슬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오는 밤비다. 

몇 잔이고 몇 잔이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블랙커피를 아껴먹는 중, 마주보고 앉은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말한다. 


 

“아저씨 방에 백합 놔드려도 될까요?” 

“? 어제 산거?” 

“네.” 

“갑자기 무슨..? 내 방에 두려고 산거야?” 

“네. 예쁘잖아요.” 

“뭐, 나야 꽃이랑은 거리가 머니까.. 너만 관리 잘 해줄거면 딱히 상관 없다.” 


 

아이가 바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막상 꽃을 놔두어도 좋다고 말하고 나자 엉망이던 책상이 떠올라 대강이나마 수습하러 간다. 불을 켜기 귀찮아 어둠 속을 움직여 방을 정돈한다. 맞은편 자기 방에서 열심히 꽃을 고르고 줄기를 자르고 다듬고 하던 아이가 화병을 씻는다. 도도도도 들리는 발소리에 시체같던 집안에 온기가 돈다. 이상한 기분이다. 낯설지는 않다지만 오랜만이라 어색하다. 입을 막고 소리죽여 간질거림을 참는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웃어도 좋을지, 순영아, 괜찮을까? 


 

아이가 어느새 꽃을 담아들고 방문간에 선다. 


 

“어디 둘까요?” 

“잠시만. 정리 좀 하고." 


 

여기 둬보고 저기 재보고 하던 아이가 까치발을 디디다 내 엉덩이에 허리를 들이받는다. 발이 꼬이고 무릎에 힘이 빠지더니 까막까막하는 꽃줄기같은 허리가 휘청하고 넘어가다가 글쎄 꽃병이, 


 

와장창- 


 

깨져버린다. 물이며 꽃이며 파편이 흩어져 놀랐는지 아이가 흠칫 떨다가 가만히 있는다. 때마침 밖에선 번개가 친다. 덩달아 놀란 내가 빠르게 진정하고 사태파악에 나선다. 바닥에 채 다 치우지 못한 책이 젖지 않게 책상 위로 모두 다 올려두고나서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 순영아?” 


 

이름을 불러주니 다시 엔진 소리가 들린다. 놀란 동공이 급하게 거리를 조절하고 초점을 다시 맞추는 사이, 파편이 스친건지 복숭아뼈에 꽃물같은 피가 맺힌 것을 발견한다. 피라니. 홈봇에게. 아이도 문제의 오른발 복숭아뼈를 발견한듯 하다. 움찔거리던 다리가 다시 멈춘다. 


 

“어휴. 침대에 앉아있어라.” 


 

아이가 느리게 고개를 돌린다. 시스템을 재가동하는 중이라 행동이 굼뜨다. 붉은 빛 두번을 확인하고서 방을 나선다. 구급상자를 어디 뒀더라.. 이 집에 나 하나 산지가 몇 년인데 구급상자 쓸 일이 뭐 있다고 내가 그걸 밖에 꺼내두었겠는가. 가물가물한 기억을 헤집다 먼지 매캐한 창고를 뒤져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연고를 찾아낸다. 물론 자가 회복하는건 알지만, 발라주면 더 빠를지도 모르니까. 방에 돌아오면 다시 침대 위에 무릎을 감싸안고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 순영이가 있다. 


 

침대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오른발을 쥐어 내 품에 내려놓는다. 오래된 연고를 흔들고 두어번 짜내 불순물이 섞였을 점액들을 먼저 털어낸다. 어둠 속에서 보는 아이의 발은 물고기마냥 희고 유연하다. 빗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가끔 우릉우릉하는 천둥소리도 들린다. 


 

“아프진 않니?” 


 

면봉으로 까진 복숭아뼈에 조심조심 연고를 펴바른다. 아이는 여전히 침착하다. 


 

“네. 통각은 없어요.” 

“..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다행히 파편이 박히거나 심하게 까지진 않았다. 아이는 무릎에 고개를 묻은채 상처 부위를 계속해서 바라보다 툭툭 인사를 던진다. 


 

“고맙습니다.” 

“...” 


 

무슨 말로 이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다 쓴 면봉을 부러트려 연고를 짜낸 휴지에 감싸 말았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아이는 자꾸 상처만 쳐다보며 말을 한다. 


 

“감사해요.” 

“저 다친거 챙겨봐주셔서.” 


 

“그러니까,” 


 

에서 귀가 멈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라니. 생뚱맞지 않은가. 아이의 손이 뺨에 와닿는다. 찹찹하다. 너무 차가우면 낯설다더니 너는 왜 하필 지금 가장 낯선 온도를.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게 한다. 이 어둠속에, 네 상처를 돌보던 내 눈을 마주쳐 너는 세상 가장 애처로운 고백을 한다. 입술이 열린다. 바닥에 흩어진 백합들과 꽃병 파편들 위로, 


 

“저 버리지 마세요.” 


 

기다렸다는 듯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다. 찰나로 스쳐가는 빛줄기 사이에서 본 아이의 눈빛은 여전한 그, 빌어먹을 맑은 무표정이었다. 


 

- 


 

“...” 

“...” 

“... 너도 봤지.” 

“... 왜 못 봤겠냐.” 

“감정중추 과잉이지, 그거.” 

“아닐 리가.” 

“그렇게 기형으로 막.. 그게 그 회로가 그렇게 막.. 심장에까지 그게 흘러 내려와서,” 

“아 씨, 검수 제대로 했는데.” 

“씨바, 미치겠네..” 

“그래도 그대로 쓰겠다고 다시 데려가신거잖아.” 

“우리 다시 받아와야 되는거 아냐?” 

“문제 있으면 다시 데려오시겠지. 그것도 아닌데 문제 키울거야?” 

“문제를 키우는게 아니라, 이러다 우리가 오히려 좆될 수도 있어.” 

“하, 수석 연구원씩이나 해먹는데 고작 AS, 수리, 뭐 이런거 봐줄 거 같았으면 여기 오는게 아니었는데.” 

“야 정한아, 그래도,” 

“아 몰라, 이런 문제 질색이라고. 이사님께 연락해봐.” 

“아 씨, 무서운데.” 

“네 고객이잖아. 하 씨, 연구할 시간도 없는데.” 

“씨바, 난 모르겠다.” 

“다 됐고, 오늘 술이나 먹자. 내가 살게.” 

“윤정한 웬일이래.” 

“방금 좀 싸가지 없던 거 같아서. 눈치 보는 중이야.” 

“양심은 있네. 너 근데 메일 왔다.” 

“? 나 메일 올 데 없는데. 뭐지.” 


 

[윤 정한 연구원, 〈제 20차 응용과학기술연구원 신무기 개발 기술 지원 공개 PT> 참가했던 국방부 기술파트 대표 홍지수 소령이라고 합니다] 


 

“어?” 


 

“왜. 뭔데.” 

“응과원 연락 왔어.” 

“에? 너 떨어졌다면서.” 

“응. 그때 분명 분위기 안 좋았거든? 근데 지금 응과원이 아니라 국방부에서 연락 왔는데?” 

“시바. 너 좆된거 아니냐.” 

“뭐야, 진짜.” 

“아, 몰라. 나까지 간 졸아들게 하지 말고 너 혼자 저리 가서 읽어.” 

“헐.” 

“아, 뭐야. 벌써 읽고 있어.” 

“헐. 이지훈.” 

“아 왜. 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 

“헐, 야.” 

“아 씨바, 진짜 뭐야!” 


 

[윤 정한 연구원, 저는 홍지수 소령이라고 합니다. 20차 PT에 참가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내주신 논문 잘 읽어보았습니다. 귀사의 기술에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고 생각이 들어 직접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미팅은 최대한 비밀리에 진행될 것이며 가능한 시간대에 대한 안내를 포함한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 


 

“헐.” 

“헐.” 


 

“씨바 지금, 홈봇 하나 따위가 중요한게,” 

“나 어떡해.” 

“뭘 어떡해! 나가야지. 윤정한 인생 폈다, 진짜.” 

“야 나 무서워..” 

“무서울거 뭐 있어! 오늘 술은 내가 산다. 축배를 들자.” 

“아 미친, 그러지 말고 날 좀 도와달라니까?” 

“시끄러! 반차 쓰자!” 

“아니, 그러지 말고, 야,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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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다앙근
흑흑 저 나갈까요랑 저 버리지 마세요는 느낌이 다르죠 본격 절박해지기 시작한 쑤뇨 the 찌통과 모르는 새 쑤뇨에게 다정해지기 시작한 스윽미이 조화 쓰면서 광광 우럭다구요.. 석순 너무 좋은거 같아요 진짜 ㅜㅜㅜㅜㅜㅜㅜ
7년 전
독자2
생선입니당!! 순영이가 로봇 주제에 아니라고 말 하는 부분부터 버리지 말라고 하는 거 진짜 너무 찌통입니다 ㅠㅠ 순영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맞는 것 같지만 그게 석순이들에겐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7년 전
다앙근
아 저 찌통 얼마나 쓰고 싶었는데요 진짜 ㅜㅜㅜㅜㅜㅜㅜㅜㅜ 힌트를 드리자면 쑤뇨에게 생긴 문제가 쑤뇨를 다른 홈봇들과 다르게 만들어줄 예정입니다 낄낄낄 저번화에 비를 맞히길 잘했네☆★☆★☆★☆★☆★☆★☆★☆★☆★☆★☆★☆★☆★☆★☆★☆★☆★☆★☆★☆★☆★☆★
7년 전
독자3
작가님ㅠㅠㅠ 금방 오셔서 너무 행복해요ㅠㅠㅜ 이번엔 제가 현생에 치이느라 늦었네요..☆
늦었지만 초록글 축하드려요!! 오늘도 잘 읽고가여♥♥

7년 전
다앙근
제가 왜!!!!! 이 댓글을!!!!!! 이제야!!!!!! 봤을까요!!!!!!! 제가 더 지각해버렸군요.. 후후.. (깊은 한숨) 늦게나마 감사합니다 ㅜㅜ 열심히 쓰겠습니다!!
7년 전
독자4
작가님 너무 귀여우신거 알아요? 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
7년 전
다앙근
(심쿵) (못들은척) 눈누난나..
7년 전
독자5
헐 수녕이 무슨 문제 생긴 건가요 ㅠㅠㅠㅜㅜ
7년 전
다앙근
지각한 작가.. 3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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