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으로 전학생이 왔다. 전학생, 자기소개 할까?"
"...우지호. 잘 부탁한다."
우지호?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아아, 내가 아는 우지호, 맞구나. 머리 색이 차분해진 것 빼고는 중학교 때랑 똑같다. 매섭게 올라간 눈, 큰 키, 무표정한 얼굴. 웃으면 참 예쁜데 남들 앞에서 잘 웃지 않았다. 이렇게 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는데... 다시 보고싶다, 네 웃는 얼굴.
빈 자리를 찾아가 앉는 너를 뚫어지게 봤다. 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날 보고 놀란 듯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 너지만 곧 무심하게 정면을 봤다. 아는 척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되는 거야?
***
"안재효, 밥 먹으러 안 가? 오늘 과일 귤 나온다 안하냐."
"어, 나는 오늘 속이 좀 안좋아서... 너희들끼리 먹어."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난 자리를 지켰다. 사실 속이 안좋다는 거 거짓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든 말든 일어나지 않는 우지호를 계속 보고싶었다. 붙임성 좋은 애들이 '같이 밥 먹을래?' 하고 지호를 툭툭 건드렸지만 녀석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진짜, 우지호답네.
어느새 교실엔 나와 우지호만이 남아있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정적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어쩌다 전학오게 됐는지, 나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또...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우지호."
"......"
"지호야."
"입 다물어."
너의 옆에 다가가서 네 이름을 부르자 살벌한 대답만 돌아왔다. 너는 날 봐주지도 않는구나.
"나 안보고싶었어? 오랜만이잖아."
"다물라고 했다."
"나는 너 보고싶었어."
우지호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날 쏘아보며 잔뜩 화난 표정을 짓는 너. 날 용서하지 못했다는건, 날 잊지 않았다는거지?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난 네가 화를 내서 기쁘다.
"아는 척 하지마. 너 보면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거짓말. 너 나 사랑했잖아."
지금은 아니야? 내 말에 너는 핀트가 나간 것처럼 내게 주먹을 날렸다. 우당탕- 난 책상에 부딪혀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얼마나 세게 때리면 골이 울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넌 내 위에 올라 타 내 옷깃을 움켜쥐었다. 더 때리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팔을 올리는 너의 행동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몇 초 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쩍 눈을 뜨니 주먹을 덜덜 떠는 네가 보였다.
"너... 너 왜 그랬어..."
"...곧 애들 올거야. 학교 끝나고 얘기하자, 옥상에서."
***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다. 날씨는 맑은데 바람이 차게 불었다. 건물 꼭대기 층이라 그런가... 머리칼이 흩날려 귀가 간지러웠다.
그 날도 바람이 많이 불었다. 패싸움이 있었던 그 날, 난 미쳐있었다. 본드에 취해 한 놈을 죽을 때까지 때렸다. 정말 죽을 때까지. 옆에서 뜯어말리고 소리를 지르는 게 들릴 때 쯤엔 이미 늦어있었다. 무서웠다.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말 죽은거야? 내가 죽였어? 내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싶었다.
'여보세요. 네, 경찰서죠...'
'지, 지호야... 난...'
'...자수... 하려고요...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네 통화 내용에 난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난 괜찮다고, 널 사랑하니까 아무렇지 않다고 다독여주는 네 손길. 너는 어른이었다. 이렇게 고백해서 미안하다고, 다음에 더 멋있게 말해주겠다고 하는 너는, 소중한 것을 지킬 줄 아는 어른이었다.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내가 살던 그 세계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나를 감싸 준 친구들과 너를 뒤로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끼익-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하늘을 보고 있던 고개를 내려 너를 봤다. 네 표정...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다.
"안재효. 그 때 일 더 말하고 싶지않아. 서로 없는 것처럼 지내."
"...지호야."
"그게 안돼면 내가 가. 평생 볼 일 없게."
다시 뒤돌아 이 곳을 벗어나려고 하는 너에게 달려가, 네 옷 소매를 붙잡았다. 내 쪽을 돌아보지 않는 네가 답답했다.
"지금 미안하다고 해도 소용없지? 사실 별로 미안하지도 않아."
넌 내 말에 화가 난 듯 이를 악물고 나를 돌아보며 내 손을 뿌리쳤다. 얼굴 보니까 좋다, 지호야.
"끔찍한 년. 네가 이런 새끼인 줄 알았으면 난..."
넌 뒷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날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근데 네가 나 때문에 화나는 건 싫어. 나도 너 좋아했거든. 지금도 마찬가지고."
"뭐?"
"네 분 풀릴 때까지 때려."
내가 지금 힘부로 입을 놀리고 있다는 거 안다. 아까부터 네 화를 돋우는 말만 내뱉었다. 보고싶었다고, 좋아한다고 한 것. 너는 이 말을 쉽게 믿을 수 없겠지. 하지만 난 진심이고 그것 외에 다른 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네가 날 봐 준다면, 용서한다면, 하다 못해 속이 시원해지기라도 한다면 실컷 맞아도 상관없었다.
"...때리면, 진짜 내 분이 풀릴 거라고 생각해?"
"응. 너 지금 나 패고싶잖아. 하고싶은대로 다 해... 내가 그랬던 것 처럼."
하고싶은대로. 내 말에 너는 내 멱살을 잡고 문 옆의 벽으로 밀쳤다. 등이 세게 부딪혀서 아팠다. 바로 내 얼굴을 가격할 줄 알고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렸다. 너는 때리는 대신 내 턱을 붙잡아 앞을보게 했고 조금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하고싶은거?"
네 숨이 바로 닿을만큼 가까웠다. 그리고 곧 부드럽게 입을 맞춰왔다.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열더니 조심스럽게 노크하듯 혀가 들어왔다. 내 얼굴을 더듬거리는 손이 내가 부서질까 두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네가 날 때리고 괴롭혀도 당연한데, 왜 이렇게 달콤하게 키스 해. 내가 밉지 않아? 여전히 날 사랑해?
너는 입술을 움직여가며 내 혀를 감쌌다. 입천장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치열을 훑기도 하다가 입술을 떼더니 내 눈가로 가져갔다. 눈꺼풀을 쪽쪽거리는 바람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언제나 이렇게 하고싶었어..."
내 귀를 만지작거리는 너의 손에 야릇한 느낌이 든다. 난 얼굴을 찡그리면서 어깨를 떨었다.
"무슨 일이 있겠지, 돌아올거야, 그렇게 믿었어, 처음엔. 근데 시간이 갈 수록 미움이 커졌어... 왜... 도망갔는지."
"으... 우지호..."
"친구들과 내가 네 편이 되어준 게 너한테는 가벼운 일이었나... 하는 생각도 하고."
"......"
"널 원망하고 동시에 그리워하고. 그러다 잊은 줄 알았는데, 오늘 너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잊은 척 나 자신까지 속였던거야."
허리를 조금 숙여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너 때문에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운 적 없었는데. 마음 독하게 다 잊고, 평범한 학생인 척 영악하게 구느라 울 틈도 없었다. 살인자, 배신자... 날 압박하는 그 타이틀에서 벗어나려면 완벽하게 연기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너 없는 동안 만든 벽을 네가 단번에 무너뜨렸다.
"나 너 용서 안했어."
고개를 들어 날 보며 말하는 네 눈도 울고있었다. 너 우는 거 처음본다... 그동안 많이 울었어? 네가 짓지도 않은 죄를 뉘우치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날 얼마나 생각했어? ...난 그런 널 볼 자신이 없었어. 미안함과 후회가 가득해서 고통스러웠어. 널 사랑했지만 너무 아파서, 그래서 도망갔어... 내가 아픈 게 싫어서. 이렇게 이기적인 나니까 용서하지 않아도 돼.
"내 옆에서 평생 용서빌어. 또 도망가거나 사라지면, 그러면 너 죽일거야."
"응."
"나 이미 너 때문에 한 번 살인자야. 두 번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번엔 없어지지마."
고개를 끄덕이며 네 눈에서 흐른 눈물을 닦았다. 웃는 얼굴, 오늘은 결국 보지 못할 것 같다. 대신 오늘을 뺀 앞으로는 매일 웃자. 매일 웃으면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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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2013 보면서 생각난 소재! 지난 일주일동안 조금씩 쓴 글이에여
근데 도저히.... 더 이상 잘 쓰질 못하겠음....... 조금씩이지만 일주일이나 걸쳐 쓴건데........ 하.....
뎨동해여 암호닉 정리도 끝냈는데 오늘은 짘효라서 언급 생략 허허
근데 학교2013 왜이렇게 재밌나요
거기 일찐보는데 우지코가 저 역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아치 우지호로 단편이나 써야겠네여 뀨뀨 읽어주신 독자님들 사랑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