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켜주세요.
솜사탕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부드럽고 푹신하다. 여기가 어디인가 궁금해 손으로 바닥을 쓸어보니 부드럽지만 따끔거리는 뾰족한 것들이 만져진다.
손을 코에 가져가니 풀 냄새가 난다. 잔디밭에 누워있는 건가.
하늘거리는 바람이 내 볼을 간질이더니 자리를 옮겨 나뭇잎들을 춤추게 만들어 감미로운 소리를 낸다.
눈을 떠보았다. 햇빛이 내 눈을 붙잡고 하얀 구름이 날 맞이한다. 뭉게뭉게 구름 꽃이 펴 눈을 즐겁게 한다.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모든 것이 아름답다.
푸른 숲과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나무들, 그저 아름답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곳이 완벽하다.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듯하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의 상태, 모든 것이 하얀 도화지 같던 순간. 생경하지만 익숙한 느낌에 기분이 야릇하다.
이 순간을 좀 더 간직하게 위해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라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모든 게 깨질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촉촉한 무엇인가가 내 볼을 건드렸다.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던 내 마음속이 말한다.
눈을 뜨지 마.
내 마음과는 다르게 눈이 저절로 떠지고 손을 들어 내 볼을 건들인 그것을 만져보니
물 보단 끈적이지만 손을 타고 흐르는 애매한 촉감에 어리둥절하여 손에 묻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붉다. 붉은 것이 내 손을 더럽히고 있었다.
시선을 움직여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또한 붉게 타들어간다.
고개를 돌려 나무를 보니 메말라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썩어 버려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잔디도 모두 죽었다. 이곳에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아닌 끔찍한 비명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낙원은 끝난 것인가.
추적추적 빨간 액체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 몸을 적신다. 비릿한 냄새와 끈덕진 느낌 때문에 소름이 끼친다.
내 몸 곳곳을 훑어봐도 온통 붉다. 어지럽다. 손끝 발끝에서 피가 새어나가는 기분이다.
저 멀리서 뭔가가 나에게로 뛰어온다. 온 몸에 피칠 갑을 한 남자.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건지 얼굴에 공포감이 서려있다.
익숙한 얼굴이다. 내가 나에게로 뛰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달랐다. 나는 멀쩡하지만 다른 나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
그가 내 앞에 섰다.
행복해? 아까 그 순간을 즐겼어? 이젠 끝났어, 더 이상 낙원은 없어.
숨을 내뱉었다. 악몽을 꿨다. 갑자기 환해진 주변에 인상을 쓰며 손으로 눈으로 가렸다.
표지훈은 나에게 뭘 그렇게 거칠게 자냐고 한소리 하더니 랜턴을 내려두고 뭔가를 바삐 먹었다.
주변들 둘러보니 붉은 피를 내뿜는 시체가 기다란 천이 덮여있었다. 아직 마트 안이었다. 가게의 창문들이 다 암막으로 가려져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아니다, 가리고 있다기엔 밖이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그들의 시간이 찾아온듯했다.
지금이 몇 시냐고 묻자 그의 시선이 내 팔목으로 떨어져 멈추었다. 손목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눈빛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미안해 라는 사과의 말을 하고 말았다.
“너가 갑자기 기절해버려서 발이 묶였어.”
“...”
“병신”
혼잣말인지 나한테 들으라고 한말인지 낮게 욕을 한 뒤 날 다시 쳐다보았다.
“너한테 궁금한 게 있어.”
그동안 뭐했냐고 어떻게 생존해왔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보는데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되나”
내 상황을 말하기가 약간 꺼려졌지만 그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약에 취해 잠을 자고 일어나 마트에 가려고 나가보니 모든 상황이 변해있었다는것.
그리고 사람을 죽인것.
살인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너무 무서워서 집에만 있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바이러스 얘기를 듣고 그때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손바닥만 한 수첩이었는데 그걸 펼쳐 뭔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날짜를 물어보더니 한숨을 쉬곤 그는 나에게 머저리, 병신이라는 욕을 쏟아 부었다. 상황이 어느 땐데 잠 만 자는 호구라고.
기분이 살짝 나빠져서 왜 그러냐고 묻고 수첩을 봤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방 안의 불을 모두 꺼서 시간감각이 없었나보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계속 나에게 한심하다고 말했다.
난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갔으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그가 어떻게 혼자서 여길 온 건지도 궁금했다. 그는 입을 열지 앉았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답함에 뭐라고 말하려던 차 그가 입을 열었다.
“원래 같이 다니던 형이 있었지. 근데 나 때문에 죽었어.”
그는 아무렇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지만 얼굴은 너무 어두웠다.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터.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귀 기울였다.
“사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너무 무서워서 뛰쳐나왔거든.”
그의 얼굴에 죄책감이 묻어나왔다. 내가 여태껏 본 사람들의 얼굴 중 저렇게 절망스러운 표정은 처음 본 것 같다.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괴감에 빠진 어린양.
난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의 어두워지는 마음이 나까지 힘들게 했다.
“그거 알아? 인천에 배가 있대.”
그가 날 쳐다보았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니 어이가 없었나보다.
“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에 라디오를 들었다고 말했잖아. 정부랑 군인이 인천에 배를 준비해주겠대. 생존자들이 있다면 연안부두로 오라고 했어.”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골똘히 자기 상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리 그곳으로 가자.”
나의 당찬 목소리가 그를 깊은 생각 속에서 끄집어냈다.
“허튼 소리하지 마. 정부고 군인이고 뭐고 다 망했어. 우리같이 살아남은 생존자는 얼마 없어. 있다 쳐도 다들 미쳤는지 제정신이 아니지.
아까 봤어? 너 무서워서 벌벌 떨었잖아,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니는거. 세상이 변하고 난 후부터 난 쭉 밖에서 생활해 왔는데 더한 놈들도 많았어.
넌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었으니 아무것도 모르겠지. “
"그럼 인천으로 가지 않으며 어쩔 건데"
"그건 아직 몰라. 하루 살기 바쁜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너무 어리석은 짓 아냐?"
그의 말을 끝으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명 오늘 아침 목소리를 들었어. 반복하는 안내방송이 아니고 직접 말하는 걸. 난 믿어, 그의 목소리에 확신이 있었거든.
생존자들에게 포기하지 말랬어. 돌봐주겠다고 말했다고.”
그는 날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듯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런 거겠지.
‘만약 우리가 가게 된다면 과연 그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 만약 가더라고 그들이 무사히 있을까? ‘
나의 머릿속의 말이 그의 생각과 같았는지 내가 떠올린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은 안전. 그곳까지 무사히 갈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둘 다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우린 우리에 갇힌 초식동물일 뿐이다. 어딜 가든 사방이 막혀 출구는 없고 언젠가는 잡아먹혀 죽을 운명이겠지.
그게 지금인지 내일인지 알 수 없는 게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 목표가 생겼다는 것.
그는 무엇이라도 다짐한 듯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말을 걸어왔다.
"가자. 어차피 죽든 살든 뭔가 해보고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웃겼는지 갑자기 호탕하게 웃어대더니 이내 자기 자리 주변을 청소하곤 잘 준비를 시작했다.
"너도 지금 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계획세우고 출발하자."
그의 빠른 일처리에 웃음이 나왔다. 아까까지는 죽을 둥 살 둥 암울한 표정을 지어대더니 저렇게 한 순간에 바뀌는 게 웃겼다.
지훈은 외투를 벗더니 나에게 먹다 남은 초콜릿을 던지고는 배불리 먹으라며 장난스런 웃음을 보냈다.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포장지를 벗겨내고 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그의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손가락들.
"너 허리띠에 있는 그 손가락은 도대체 뭐야?"
"아 이거? 부적. 너도 하나 가지고 싶냐?" 그는 허리춤에서 손가락 하나를 떼더니 나에게 던졌다.
내가 썩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치우자 큭큭대며 웃더니 말한다.
“그거 진짜 부적이야. 밖에서 지낼 때 만났던 남자가 말해줬어. 그들과 비슷한 냄새가 나면 달라붙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손가락을 매달고 다녀?"
그는 그럼 머리통이라도 들고 다닐 까라며 말하고는 또 웃어댄다. 재미있는가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유머를 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대단하다.
나도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피곤이 몰려온다. 내일 아침은 다른 날보다는 조금은 나을 것 같다.
다가올 내일이 두렵지만 내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깐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잘 자고 있던 날 뭔가가 계속 건드린다. 짜증나서 눈을 뜨니 표지훈이 일어나 날 발로 툭툭 치고 있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옷도 다 갖춰 입고 도끼까지 들고 있었다.
“무슨 일ㅇ…….”
그가 인상을 쓰더니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며 입을 막는다.
놀란 토끼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출입문이 흔들거린다.
안녕하세요...절 잊으신 건 아니져?ㅠ_ㅠ 정지당해서 글을 쓸 수 없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꺼로 쓰는거라 필명도 바꿨어요. 점하나찍기ㅋㅋ 저번화가 제가 생각해놨던 내용이랑 다르게 이상한 방향으로 빠져서 고민해가면서 겨우 글썼는데 다 사라져서 힘들고 의욕없고 슬펐어요ㅠㅠ 어쩔수 없죠. 그래서 급하게 머리 짜내면서 다시 글 써서 올려요... 내용이 허접해도 이해해 주세요...이번거는 정말 막쓴거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