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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오르비스 15






15.




 방학을 코앞에 앞둔 학교는 설레임을 가득 안은채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쳤으며 평화로웠다. 그속에서 경수와 종인은 전혀 그 기분을 만끽할 수 없었다. 찬열이 실려간 병원에 갔다온 뒤, 불편한 마음에 한숨도 자지 못한채로 학교에 나왔다. 둘의 얼굴은 턱 밑까지 내려올듯 짙어진 다크서클과 생기없이 거칠어진 피부, 간밤에 펑펑 울었더니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이등 초췌해진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서로의 얼굴을 볼때마다, 그리고 주인 없이 덩그러니 놓여진 찬열의 빈자리를 볼때마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찬열의 아버지께 듣기로는 찬열의 상태는 왼팔이 부러지고, 머리가 살짝 부딪힌 것과 가벼운 외상정도만 제외하면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혼수상태라는 소리였다. 금방 깨어날거라고는 하는데 정확히 언제 깨어날지는 모른다는 것이 병원측의 소견이였다. 혹시나 찬열이 영영 깨어나지 않을까봐서 두려웠지만 밤이 지날동안 종인과 통화하며 희망을 얻었다. 내일이면 꼭 일어날거야, 꼭…. 그렇게 말해주는 따듯한 종인의 목소리가 너무도 믿음직스러워서 정말로 그럴것만 같았다. 그리고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가 때에 맞지않게 귀에 달콤하게 내려앉아서, 아침 해가 뜰때까지 경수는 두가지 이유로 잠에 들지 못했다.

 

 

 

  조례시간이 끝나갈 즈음 담임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출석부로 교탁을 탕탕 두드렸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의 이목이 교탁으로 향했다. 담임은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 안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 찬열이가 어젯밤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당분간 학교에 못나온댄다. "

 " 네? 정말요? 헐 대박. "

 " 진짜예요? 어떡해…. "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아이들이 순식간에 웅성거리자 담임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혔다. 자, 조용 조용!

 

 

 

 " 생각보다 조금 크게 다쳤다고 하던데, 아직 깨어나지는 않았다는구나. 나중에 다들 한번씩 병문안 가보도록 하고 너네들도 항상 차조심 하란말야. 사람인생 언제 훅갈지 모른다고. "

 

 

 그렇게 말하며 담임이 교실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갑작스런 친구의 사고 소식을 듣게된 아이들은 모두 찬열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반에서 인기도 많고 나름 핵심축을 이루고 있던 찬열이였기에 더 파장이 큰듯 싶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래? 죽는거야? 자기들끼리 찬열에 대해 속닥거리는 소리가 경수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 뒤에 숨겨진 상황들을 모두 알고있는 경수였기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창가에 앉은 종인도 마찬가지로 착잡한 얼굴로 멍하니 칠판만 보고있었다. 경수는 그런 종인을 안쓰럽게 보다 자리에 일어서서 종인에게로 향했다. 경수가 책상 앞으로 다가서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종인은 경수를 올려다보았다. 잔뜩 수척해진 얼굴이 말이 아니였다. 그래서 괜히 마음이 아파졌다.

 

 

 " 너 피부가 그게 뭐야. 잔뜩 까칠해져가지구. "

 " 너야말로 눈이 팅팅 부었다. "

 

 

  서로의 수척해진 얼굴들을 마주보다 어느순간 동시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다시 정적. 

 

 

 

 " 학교 끝나고 병문안 가자. "

 " 그래, 가자. "

 

 

 먼저 입을 연 종인의 말에 경수가 엷은 긍정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꿈만 같던 지난 밤의 일들은 이제 모두 현실로 돌아왔고, 우리는 그 현실을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갔다.

 

 

 *

  

 

  오늘의 급식은 평소보다 나름 맛있는 식단이였지만 입맛이 하나도 없는터라 밥을 깨작깨작거리다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던 종인이 퍽퍽 좀 떠넣으라고 말했지만, 경수가 본 종인의 식판도 밥이 그대로 줄지않고 남아있긴 마찬가지였다. 하긴,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는게 오히려 이상했다. 

 

 덕분에 힘없는 몸을 가지고 경수는 힘겹게 쓰레기를 학교 뒷편 소각장에 버려야 했다. 왜냐하면 일주일동안 당번이기 때문이다. 귀찮기도 하고 도저히 이런 일을 할 기분이 아니여서 한숨을 푹 쉬었지만 어쩔 수 없는건 없는거다. 할 수없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들을 두팔로 단단히 받쳐들고 소각장으로 가는 도중,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경수가 누군가와 가볍게 부딪혔다. 덕분에 위에 간당간당하게 올려져 있던 쓰레기 몇 개가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 아, 씨바. 드럽게 뭐야. "

 " 아, 미안해. "

 

  

 어깨를 부딪힌건 같은 학교 학생인 재원이였다. 서로 다른 반이기는 했지만 2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터라 둘다 안면을 트고 아는 사이였다. 게다가 학교에서 재원은 교내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이름을 들어보았을 정도로 노는 애로 유명했으니 절대 모를리가 없었다.

 

 재원과 바닥에 흩뜨러진 쓰레기들을 번갈아 보고는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은채 쪼그리고 앉은 경수가 쓰레기를 주섬주섬 주워담았다. 경수의 정수리를 삐딱한 자세로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던 재원이 씩 웃으며 말을 걸었다.

 

 

 " 도경수잖아? 오랜만. "

 " 아, 안녕. "

 " 요즘 박찬열 김종인 콤비랑 붙어다니더니 지금은 왜 혼자야? "

 

 

 재원이 한걸음 다가오는데 식후땡이라도 하고왔는지 몸에 밴 짙은 담배냄새가 진동을 했다. 코를 찌르는 담배냄새에 절로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원은 능글맞게 웃으며 경수의 앞에 섰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왠 친한척일까. 경수는 재원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쓰레기를 주우려 손을 뻗었다.

 

 

 " 아, 맞아. 박찬열 교통사고 났다매. "

 " ……! "

 " 지금 학교에 소문 쫙 났어. 하긴 걔는 원래 중학교때부터 유명했으니까. "

 

 

 쓰레기를 손에 쥔 경수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칫했다. 경수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을 때 재원은 기분나쁘게 실실 웃고있었다.

 

 

 " 뭐하다가 사고났대. 혹시 넌 알아? 너랑 친하잖아. "

 " …아니…몰라. "

 " 너도 몰라? 친구라면서 그런것도 모르냐. 아니근데 걔도 존나 불쌍하다. 아직 정신 안돌아왔다며, 평생 식물인간으로 그렇게 사는거 아냐? "

 

 

 식물…인간? 대체 왜 찬열이 그런 소리를 들어야하는거지? 곧 깨어날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그 자리에 쪼그려앉은 채 쓰레기를 손에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 너 방금 그 말 취소해. "
 " 뭐? "

 " 지금 니가 찬열이한테 뱉은 말, 취소하라구. "

 

 

 고갤들어 재원의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매섭게 노려보았다. 치켜뜬 커다란 눈동자가 평소 부드러웠던 경수의 눈빛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서늘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경수의 예민한 반응에 재원이 조금 흠칫했지만 이내 원래 표정을 되찾았다.

 

 

 " 내가 왜? 다 맞는 말이잖아. 박찬열 걔 병신 된거 사실이잖아. "

 " …그만해. "

 " 너 지금 나한테 화내냐? "

 "……. "

 " 참나, 2학년때 존나 왕따처럼 살던 놈이 이제 친구 생겼다고 눈에 뵈는게 없나? 하긴 한명은 지금 병신되서 병실에 누워있고, 김종인은 어딨냐? 존나게 챙겨주는 지 친구 혼자 버리고. "

 

 

 

 평소 화가 나도 꾹꾹 눌러 참는 차분한 성격이였기에 경수는 한번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욕을 듣거나 비난을 받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찬열이나 종인과 같은 저의 목숨같이 소중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 안좋게 오르내리는 것을 직접 두눈으로 보고, 두귀로 똑똑히 들은이상 발끝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뭣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병실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 찬열을 떠올리자 미안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주먹을 쥔 두 손을 세게 쥐었다.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를 집고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경수가 재원을 마주보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힘에 잔뜩 구겨진 쓰레기를  재원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퍽! 경수가 던진 쓰레기는 재원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 넌 진짜… 쓰레기야. "

 " ……. "

 " 아니, 쓰레기 보다도 못한 새끼야. "

 

 

제가 할 수있는 최대한의 발악이자, 분노로 그를 노려보았다. 쓰레기 보다 못한 새끼야. 항상 말없이 참기만 했던 경수로서는 정말 미친척이라도 해야할 정도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무모한 행동이였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무언가에 맞은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던 재원이 제 얼굴을 강타하고 떨어진 쓰레기를 슬쩍 흘겨보고는 표정을 싹 굳혔다.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모욕감에 화가 난 재원이 소리쳤다.

 

 

 " 씨발, 이게 미쳤나! "

 

 

 

 그와 동시에 허공으로 올라간 손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경수의 뺨을 때린 것은 한 순간이였다. 짝-! 손찌검에 경수의 고개가 홱 돌아가고, 작은 몸도 힘없이 뒤로 밀려나 바닥에 넘어졌다.

 

 

" 아…! "

 

 

 제 뺨을 때리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귀에서 웅웅대고,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 아픔이 얼굴 전체를 감쌌다. 힘겹게 고개를 들자 재원의 손이 또다시 높은 허공으로 올라갔다. 또 맞겠구나. 본능적으로 경수는 눈을 꽉 감았다.

 

 

 …뭐지? 그러나 몇 초가 지나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살며시 실눈을 뜨자, 예상치 못한 광경에 경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앞에는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어디선가 나타난 종인이 재원의 팔을 세게 붙잡고 경수를 때리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나비처럼 날렵한 몸짓으로 내지른 종인의 주먹이 재원의 얼굴을 보기좋게 강타했다.

 

 둔탁한 퍽소리와 함께 재원이 아스팔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숨이 멎을 듯이 팽팽한 분위기에 눌려 경수는 바닥에 주저앉은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광경을 보고만있었다.

 

 

 " 니가 감히 누구 얼굴을 때려? "

 " 김종인…?! "

 

 

 나도 아직 못 만져본 얼굴인데. 마지막 말은 들릴듯 말듯 혼잣말처럼 작게 속삭였다. 어느순간 앞으로 다가온 종인이 얼빠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경수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주었다.

 

 

 " 괜찮아? "

 " 으응. "

 

 

 아이를 달래는 듯한 걱정담긴 다정한 말투가 방금전 주먹을 날리던 종인과는 180도 완전히 다른사람 같았다. 그의 손을 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자, 종인이 다시 몸을 돌려 바닥에 쓰러진 재원을 싸늘한 시선으로 보았다. 터진 입술을 슥 닦은 재원이 파,하고 비웃음 같은 실소를 터뜨렸다.

 

 

 " 니네가 쌍으로 아주 돌았구나. "

 " 그건 너겠지. "

 " …참나, 친구전용 보디가드 납셨네. 도경수는 겨우 한대 맞았을 뿐인데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박찬열은 사고났는데 왜 멀쩡해? "

 " ……. "

 " 아- 혹시 그러길 바란거 아냐? "

 " 정재원. "

 " 중학교때도 너때문에 걔 손 병신됀거였잖…"

 

 

 

 

 갑자기 뛰쳐나간 종인이 쓰러져있는 재원의 위에 올라타 교복 와이셔츠 께의 멱살을 잡은건 순식간이였다. 한마리의 맹수처럼 사나운 눈빛은 처음이였다. 다시 한번, 짓껄여봐. 낮게 읊조리는 경고에 재원은 비열한 미소로 대답했다. 

 

 

 " 아니야? 다 사실이잖아. 괜히 부정하지마.  "

 " 입 닥쳐!! "

 

 

 

 참지 못하고 종인이 한번더 주먹을 날렸다. 재원의 고개가 왼쪽으로 팩 돌아갔다. 그게 아니야, 아니라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주먹에 재원은 속수무책 맞고만 있었다. 이성을 잃은 종인이 누군가를 때리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두려워 경수는 벌벌 떨고만 있었다. 까진 얼굴과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채 맞고있는 도중에도 오히려 재원은 웃으며 종인에게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 너랑 같은 중이였던 애들은 다 알정도로 한때 존나 유명했었는데 몰라? 예고 준비하던 애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 나서 손 병신되고 우울증 걸려 서 피아노고 뭐고 다 때려친거…! 그거 다 너 때문이잖아! "

 

 

 

 허공을 가르던 종인의 주먹이 잠시 멈칫했다. 그 틈을 이용해 재원은 종인의 손목을 잡고 몸을 재빠르게 뒤집었다. 순식간에 재원쪽으로 전세가 역전된 형태가 되었다. 이번엔 재원이 종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내가 그냥 맞고만 있을 것 같애? 개새끼야?

 

 퍽, 퍽! 주먹이 부딪히고 살이 마찰되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리고 종인과 재원의 몸이 힘으로 서로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넓은 아스팔트 바닥을 이리저리 굴렀다. 서로 악을 지르고, 주먹을 뻗고, 발길질을 하고. 그야말로 먼지를 풀풀 일으키며 퓨즈가 끊긴 두 소년이 만드는 난장판이였다. 

 

 

 

  " 씨발!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

 "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때 직접 본 애들이 있는데! "

 " 그땐… 그땐!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대체 니가 뭘 알아! 뭘 아냐고!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찬열의 손이 다친게 김종인 때문이라니? 전에 음악실에서 찬열이 말해줘서 교통사고가 난적이 있다는건 알고는 있었지만 종인이 관련되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재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전부 제가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여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재원과 종인의 끝나지 않을 개싸움을 말릴 수 있는 것은 경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수가 달려가 종인의 위에 올라탄 재원을 떼어내려 힘을 주었다. 그때 주먹질을 하려고 뒤로 내뺀 재원의 팔꿈치에 경수가 얼굴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그러나 얼얼한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경수는 다시 달려나가 어느새 몸을 돌려 재원의 위에 올라탄 종인의 등을 끌어안고 죽을 힘을 다해 떼어내려 노력했다. 

 

 

 " 하지마, 종인아. 그만해! "

 " 놔, 씨발! 정재원 이 새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라고! "

 " 아악, 너네 진짜 이럼 안됀다고! "

 

 

 싸움을 말리려는 목적으로 갔지만 이리맞고 저리맞고, 오히려 이 난장판에 말려들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목숨을 다해 이 싸움을 말려야 한다. 이제는 셋이서 치고박고, 구르고, 팔이 까지고, 입술이 터지는 정신없는 와중 경수는 간절하게 선생님이 오시길 빌었다. 선생님 빨리 여기 좀 보세요. 제발!

 

 

 " 너네 지금 학교에서 뭐하는 짓이야! "

 

 

 때마침 지나가던 학주가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것만 같은 구원의 목소리는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올정도였다. 아, 선생님 왜 이제서야 오세요.

 

 교복이 걸레짝처럼 더러워져 너덜너덜해지고, 머리는 산발이고, 누구 것인지 모를 벗겨진 신발 한짝이 나뒹구는 모습이 학주의 시야에 들어왔다. 게다가 다들 볼이 부어오른건 기본이고, 다들 얻어터져 거지꼴을 하고선 멀쩡한 구석이 없으니 절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광경이였다. 

 

 선생님의 제지로 종인과 재원을 겨우 떼놓고나서 경수는 그제서야 한숨을 쉬고는 다리에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언제 터졌는지 모를 시뻘건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 김종인, 정재원, 도경수! 너네 셋다 학생부실로 따라와. "

 

 

 비록 학주에게 교무실로 불려가긴 했지만 차라리 이렇게 된게 더 다행이라고 경수는 생각했다.

 

 

 

 

 

 

 

 그 사건 후에 방학을 바로 코앞에 두고 징계를 먹을 뻔 했지만, 엄청난 설교와 반성문 10장, 방학중 교내봉사 10시간으로 겨우겨우 징계는 피할 수 있었다. 재원이 자신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고, 맞고있는 경수를 보고 불의를 참지 못한 종인이 먼저 재원에게 주먹을 날렸다는 경수의 간절한 진술이 먹혔는지 학주는 재원을 따로 불러 엉덩이를 야구방망이로 몇대나 두들겨 팼다. 학생부실 안에서 들려오는 야구방망이가 살을 때리는 소리와 억억거리는 재원의 고통스런 비명소리에 경수는 속으로 꽤 통쾌해했다. 아, 꼬시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부터 쭉, 쥐어터진 얼굴을 하고 멍하니 무언가 생각하는 것만 같은 종인의 얼굴을 보면 통쾌한 기분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싸움이 일어난 후에도 몇번 찬열의 병실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종인은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얼굴로 눈 감은 찬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재원의 말이 경수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돌고돌아 떠나질 않았다. 3년전 찬열의 사고가 바로 김종인 때문에 일어난거라고?

 


 

  ' 사실 종인이가 예전에 나한테 큰 잘못을 했거든. '

  ' ……. '

  ' 근데 그때 나한테 사과한 이후로 먼저 미안하다 한적이 없어. 그게 누구였던간에. '

 



  학기초에 둘과 별로 친하지 않았을때 찬열이 경수에게 스쳐지나듯 한 말이였다. 경수는 직감적으로 짐작은 하고있었다. 바로 종인이 한 큰 잘못이 바로 아마 이것일거라고. 언젠가 싸움이 일어난 날,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한 경수가 그 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종인은 피가 터진 입술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조만간… 말해줄게. 

 

 그리고 그 이후로 경수는 더이상 그 일에 대해서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종인의 표정이 둥지에서 떨어질까 벌벌 떨고있는 위태로운 아기새처럼 안쓰러워 보였어서.

 

 

*

 

 

딱 방학을 이틀 앞둔 날은 꽤나 더웠고, 종인과 경수는 그날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찬열의 병실을 찾았다. 아무리 바빠도 꼭 찬열의 얼굴을 한번씩 보고가야 마음이 편했다. 언제쯤 깨어날까, 벌써 교통사고가 난지 삼일 째이다. 그날 저녁, 경수는 오늘도 하루일과처럼 마지막으로 집에 가기 전에 병원에 들렀다. 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찬열의 병실 문앞 간의의자에 종인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학교 끝나고 곧장 병원으로 왔는지 교복 차림이였다. 

 

 " 거기서 뭐해? "

 " 너도 왔네. "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까. 경수가 종인의 옆자리에 자연스레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종인이 결심한 듯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 말해줄게. "

 " 뭐를? "

 " 네가 궁금해 하는거. "

 

 

 아…. 경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얘기해주는구나.

 

 

  " 찬열이랑 집에가는 길이였어. 초록불이 켜지자 마자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내가 무슨 객기인지는 몰라도 그냥 앞도 안보고 뒤 돈 상태에서 그냥 뛰었어. "

 


 잊고싶었던, 지우고싶던 악몽같던 그 날의 기억이 종인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반짝이는 초록불, 길게 늘어진 횡단보도, 하교길을 함께하던 몇몇 교복입은 아이들.

 

 

 - 야, 빨리와!

 - 조, 종인아. 저기 차! 차!

 - 뭐? 안들려! 너도 뛰어!

 

 멍청하게도 그날의 종인은 찬열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방방뛰며 손까지 흔들었다. 그때 내가 그 외침을 들었다면 누군가가 다치는 일은 없었겠지.

 

 - 김종인!!!

 

 들려오는 차의 경적소리가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지 오래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자동차에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려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나는 이제 끝났다, 생각하고 모든 걸 놓아버렸을 때 종인은 누군가에 의해 엄청난 힘으로 밀쳐져 저 멀리 날아가 넘어졌다. 쨍그랑, 손에서 놓친 유리 음료수 병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자신과 같은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저대신 차에 치이는 모습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가볍게 차에 밀쳐진 몸은 깨져버린 음료수 병의 유리조각 위로 나동그라졌다. 떨어지며 유리조각이 박힌 손바닥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새어나와 바닥에 흥건하게 뿌려진 음료수의 액체들과 섞여 넓게 번졌다. 주변에선 학생들의 비명소리와 119를 부르라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 119, 119 불러요! 빨리!

- 꺄아악! 손, 손 어떡해!



 아무런 경황이 없던 종인은 얼이 빠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저 대신 쓰러져있는 사람에게로 몸을 비틀거리며 향했다. 대체, 대체 누구야? 누가 나를 구해준거야?


 아스팔트 위에 손을 부여잡고 쓰러져있는 소년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방금 전까지 제게 차가 오고있다며 목이 터져라 외치던 찬열이였다. 


 

 

 

 " 엠뷸런스가 오고 들것에 실려가고 심지어 수술실 들어갈 때까지 한심한 나는 아무것도 못했어. 그냥 울기만 했어. 제발 살려달라고, 살아만 달라고."

 " ……. "

 " 지금와서 생각해보니까 정재원 말 하나도 틀린거 없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횡단보도 건넌다고 혼자 뛰어가지만 않았어도. 아니, 적어도 음료수병만 놓치지 않았더라도 찬열이는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았을거야. "

 " ……. "

 " 지 꿈을 포기하고 나를 구했어. 미친놈이. 그 미친놈이. "

 

 

  종인의 말이 끝나자 경수가 두팔로 종인을 와락 안았다. 그동안 숨겨놓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또렷히 보이는 종인의 상처들을 끌어안는다. 사람들은 왜들 그렇게 많은 상처를 갖고있는가. 또 그렇게 많은 상처들을 보듬어 줄 사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동안 죄책감에 그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종인의 상처들에 가슴이 미어졌다. 경수는 종인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 네 잘못이 아니야. "

 " ……. "

 " 어쩔 수 없는 거였다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



 저도 모르게 경수는 울고 있었다. 그 큰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하나 둘씩 뚝뚝 떨어졌다. 제가 더 마음 아파하는 것 마냥 우는 경수의 얼굴을 보며 종인은 들썩이는 경수의 작은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주었다. 후회와 눈물을 삼킨 쓰디쓴 미소와 함께.



 " 고마워.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

 " ……. "

 " 그리고 미안해. 그냥 지금까지 모두 다. 그리고 앞으로도. "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 싸움의 흔적이 보이는 두 얼굴을 서로 마주 보았다. 눈가에 멍이 들어 퍼렇고, 입술에 피딱지가 얹혀있고, 볼이 아직까지 부어오른 얼굴임에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종인의 얼굴은 정말 잘생겼다고 느꼈다. 갑작스레 빨리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괜히 부끄러워진 경수가 옷소매로 씩씩하게 눈물을 닦아냈다. 난 괜찮아! 봐봐.

 

 그때 병실 안에서 찬열의 경과를 지켜보던 간호사가 급하게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앞에 앉아있던 경수와 종인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뻐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 박찬열 환자, 의식 돌아왔어요! "

 

 

  삼일 째, 마침내 잠자던 숲속의 왕자가 긴 어둠을 이겨내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입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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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기다리고있었어요 작가님..ㅠㅠ 종인이가 마음의 짐이 참많네요ㅜㅠ 다음편도 기다리고있을게요!!!
11년 전
렁넝
저는 괜히 엑소들에게 몹쓸짓을 저지르는 것 같아 마음이 찔리네요.. 애두라 미아내☞☜ 다음편 기다려주세요~
11년 전
독자2
이불익이니에요!! 찬열이와 종인이 사이에 이런일이 있었군요 종인이는 자기나름대로 굉장히 힘들었을거라 생각해요ㅠㅠ마음의 짐이 엄청났을거라생각이드네요ㅠㅜㅠ이제찬열이가 깨어낫는데 어떻게될지 너무궁금해요!!오늘도 잘보구갑니다!ㅎㅎ
11년 전
렁넝
오 안녕하세요 이불익이니님 오랜만이예요ㅜㅜ 이 글을 쓰면서 숨겨졌던 종인이의 상처들과 그로인해 오히려 마음이 기우는 경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0^
11년 전
독자3
도됴에요 정말 오랜만이네요ㅠㅠㅠㅠㅠ종인이가 잘못한일이란게 이런일이었군요ㅠㅠㅠ경수로 인해서 종인이가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음 좋겟어요~찬열이가 깨어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해져요!!다음편도 기다릴게요^^
11년 전
렁넝
안녕하세요 도됴님 그동안 텀이 너무 길었는데도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찬열이가 깨어났으니 이제또 내용전개가 빨라지겠죠? 최대한 빨리 담편 들고나오겠습니다ㅜㅜ
11년 전
독자4
뽀로로에요ㅠㅠ비회원이라 작가님이 쓰시는 글을 모두 쫒아다니며 따라다닐 수 없어서 죄송해요ㅠㅠㅠ신알신도 없어서ㅠㅠ그나저나 작가님 진짜 오랫만이네요ㅠㅠ 그 동안 글 많이 쓰신 것 같은데ㅠㅠ어휴 오르비스밖에 댓글을 못 달아서ㅠㅠ찬열이가 깨어났으니 고백은 다시 하는건가요ㅠㅠ??해야합니다...못갔던 바다도ㅠㅠㅠ다음편 기다릴게요
11년 전
렁넝
뽀로로님도 오랜만이여유ㅠㅠㅠㅠ 저는 그저 써주시는 댓글하나라도 고맙게..♥ 과연 찬열이가 고백을 할지 안할지는 다음편에^_^...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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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렁넝
저도 뀨뀨님이 보고싶어써여ㅠㅠㅠㅠㅠ 손이 근질근질거려서 미칠뻔했네유 다음편도 최대한 빨리 데려오겠습니다ㅜㅠㅠ
11년 전
독자5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작가님은 표현을 너무 아름답게 하세요 오늘도 재밌게 읽고가요!!^^
11년 전
렁넝
와우 최고의 칭찬이예요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지금 저 감동받았ㅅ어요^_T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년 전
독자6
오르비스!!!! 쭉읽다가 이제야 댓글다네요!!! 눈팅해서 죄송해요... 읽다가 숨기는 종인이가 너무 미워서 그랫어요.. 하면 안 믿으실까죠? 으잉ㅠㅠ 종인이랑 찬열이 사이에 무슴일이 있었는지 밝혀졋네요... ㅠㅠ 아 암호닉 받으시는가요? 저 댓굴울 잘... 안 달았디만.... ㅠㅠ 죄송해요ㅠㅜ 작가님꺼 거의다 봣어요!! 암호니ㅣㄱ 받으시면 달백으로 신청할게요!!
11년 전
렁넝
안녕하세요 달백님~ 암호닉은 아무때나 다 받아요! 저는 후리한 여자니까ㅋㅋ 그동안 제글을 다 봐주셨다니 저는 그저 감사할따름ㅠㅠㅠ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주세요^~^
11년 전
독자7
렁넝님의 미완성 오르비스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좌에용!! 얼마나 기다렸는데용 ㅎㅎㅎㅎ기다린 보람이 있네영! 앞으로도 자주 뵈용ㅎㅎㅎㅎ
11년 전
렁넝
안녕하세요 감좌님ㅠㅠㅠ 저도 앞으로도 자주 뵜으면 좋겠어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1년 전
독자8
몽쉘입니다! 언제나 언제 올라올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ㅠㅠ 미완성오르비스는 언제나 읽어도 막 달달해지고 괜히 잔잔해지고 그런 기분이 들어요ㅠㅠㅠ 종인이와 찬열이 사이에는 저런 비밀이 있었네요... 그 상처를 감싸안는 경수의 모습이 단단해보여서 좋습니다ㅜㅜ 그리고 이제 깨어난 왕자님.... 앞으로 찬디는 또 어떻게 풀릴지 궁금해지네요 담편에서 뵈어요 작가님 ㅠ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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