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영민이 어때요? "
" 영민이요? "
내 옆에 딱 붙어앉아있는 한 사람때문에 종현오빠는 내 소주잔에 사이다를 채워주며 물었다. 영민이 어떻냐고. 공손히 두손으로 소주잔을 들고 있다가 힐끔 내 옆을 쳐다보았다. 영민이는 왼손에 상추를 올려놓고 오른손으론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해 쌈을 만들고 있었다. 쌈을 만들다말고 고개를 탁 돌린 영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지 3초쯤 지났으려나, 영민이가 젓가락을 쥔 손을 살짝 돌려 내 이마를 아프지않게 툭─ 쳤다.
" 자꾸 야자하네, 세살씩이나 나이 많은 남자친구한테. "
말만 저렇게 하고 내가 저를 뭐라고 부르든 신경을 안쓰는 터라 영민이에게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보였다. 그 모습에 영민이가 한쪽 입꼬리만 당겨 웃더니 이내 다시 쌈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 영민이를 계속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우리 건너편에 앉은 종현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턱을 괸 채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더 물어왔다. 영민이 어떤 것 같아요?
" 음─... . "
" 고민 하는 시간이 너무 긴 거 아니야? "
" 왜? "
"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말해야지. "
" 뭐라고 해야하는데? "
" 뭐─ 임영민 너무 잘생겼다, 그래서 좋다. 그리고 엄청 잘해준다, 그래서 사랑한다? "
영민이의 말에 나와 종현오빠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안 그런 척하면서 잘생겼다는 말에 엄청 집착한다, 이 남자. 결국 웃으며 어구, 잘생겼다는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어요? 라며 얼굴을 코앞으로 들이밀며 장난을 치자 그런 나를 피해 고개를 뒤로 살짝 빼던 영민이가 짧게 허─ 웃더니 피할 새도 없이 내 입술에 뽀뽀를 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장난치던 것을 멈추고 어벙하게 영민이를 쳐다보니 영민이가 아─ 해볼 것을 요구했고, 갑작스러웠던 그의 행동에 멍해져 고분고분하게 입을 벌리니 여태 열심히 싸던 쌈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 그러게 오빠 놀리는 거 좀 적당히 하세요, 어? "
" 좋~을 때다. 둘이서 아주 깨를 쏟네, 쏟아. "
... 내가 역으로 당했다, 또.
친절한 영민씨
: 이번엔 내 차례같은데.
" 여주씨, "
" ...흐어, 네?! "
"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내가 귀신인가? "
댁이 나라면 안 놀라겠어요? 라고 놀란 마음에 묻고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의 일때문에 임영민 팀장을 서먹해하고 어려워했다. 정작 그 생난리의 희생자였던 임팀장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였고. 덕분에 나만 맨날 임팀장이 말을 걸때마다 놀라고, 회의할때마다 서로 의견 주고 받을때마다 허둥대고. 뭔가 억울해서 슬쩍 임팀장을 노려보려다가 눈이 마주쳐서 괜히 찔리는 바람에 다시 급하게 시선을 내 컴퓨터 배경화면에 고정했다.
그러자 내 컴퓨터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툭툭 튕기며 두드리는 임팀장에 결국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다시 시선을 도로 임팀장한테로 옮겼다.
" 어제 디자인팀이 넘겨준 걸로 홍보자료 완성했는데, 그거 사내 메일로 보냈어요. "
" 아... . "
" 수정사항있으면 여유있게 하고 싶어서. 지금 확인해줄래요? "
" ... 네에, 그럴게요. "
다행이다, 바로 컴퓨터로 시선을 옮길 수 있어서. 나는 로보트마냥 끼익 고개를 돌리고, 끼익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다시 끼익 마우스를 잡아 사내 메일창을 켰다. 사내 메일 맨 위에 [임영민]이라는 석자가 보이는 메일을 클릭해 첨부된 파일을 열었다. 사실 확인하나마나인게 홍보팀이 최종컨펌 전단계에서 내게 보여주는 파일은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오타는 커녕 띄어쓰기까지 완벽했으니 말 다했지.
꼼꼼히 홍보자료를 확인한 뒤 상무님한테 넘겨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훅 풍겨오는 아메리카노향에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 임팀장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옆에 있는 이유 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숨 쉬는 것도 참았다. 아무래도 내가 파일을 볼때 같이 확인하려고 했는지 임팀장이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은채로 내 바로 옆에서 허리를 숙인 채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모양이였다.
" 여주씨, 수정했으면 하는 거 있어요? "
" ...헙. 그, 아뇨. 없어요. 이대로 상무님한테 올려도 될 것 같아요. "
웃으며 수정할 게 있냐고 물어오는데, 웃는 게 참 예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답하는 것도 잊고있다가 계속 웃는 채로 날 쳐다보고 있는 임팀장에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그러자 내게 손 한쪽을 펼쳐보이길래 어리둥절하게 그를 쳐다보자 임팀장이 하이파이브, 라고 입모양으로 말해보이는 거였다. 길쭉하게 뻗은 그의 손에 내 손을 조심스럽게 부딪혀보이자 만족한듯 웃는 임팀장이였다.
" 그거 알아요? 우리 이번주는 야근 없대요. "
" 오마이갓, 진짜요?? "
야근 없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두 손을 꼬옥 모으고 임팀장을 돌아보며 하이톤으로 진짜냐고 외쳤다. 이번 홍보물 제작때문에 근 2주 가까이 되는 시간을 자정에 퇴근을 했으니까 (울컥). 집을 거의 수면방이라고 불러도 좋을정도로 잠만 자고 씻고 나오는 생활을 하다가 적어도 이번주는 그런 생활패턴에서 벗어난다는 게 너무 기뻤다. 해방되는 기분이였다고 해야하나? 진짜냐고 묻는 내 물음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던 임팀장이였다.
" 아, 맞다. "
" ... ? "
" 여주씨 이번 주 토요일에 한가해요? "
" ... 네? "
자기 부서로 가려고 몸을 반쯤 돌렸던 임팀장이 다시 몸을 돌리며 토요일에 한가하냐고 물어왔다. ... 한가하기야 했다. 그날 내 계획은 2주간 자지 못했던 수면을 몰빵해서 잘 계획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러나 저러나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질문이였다. 눈만 껌뻑이며 임팀장을 쳐다보고 있자, 임팀장은 어느새 내 책상에 비스듬이 몸을 기대어 선 채로 말을 이었다.
" 제가 여주씨 한번 도와줬었잖아요, "
" ... ? "
" 이번엔 제가 여주씨한테 도움 받고 싶어서요. "
" 헐! 할게요! 뭐든지 할게요! 저 토요일에 한가해요! "
'그때'의 일때문에 내가 얼마나 미안해했는가. 나는 0.1초의 고민할 시간도 아까운 사람처럼 바로 괜찮다고 반색을 하며 임팀장을 쳐다보았다. 신체도 튼튼하니 노가다도 시켜주면 할 수 있다고 덧붙이려다가 너무 나가는 것 같아 속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멈칫하던 임팀장이 무언가 민망한지 자기 뒷목을 주물렀다.
" 진짜 뭐든지 괜찮아요? "
" 그럼요! "
" 여자친구 역할 좀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
" ... 느에? "
... 여자친구 역할?
" 가뜩이나 일때문에 바쁜데, 부모님이 애인이 아직도 없냐고 선을 보라고 성화시거든요. "
" ... . "
" 그래서 사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대뜸 저녁약속을 잡아버리셔서─... . "
" ... . "
" ... 여주씨가 불편하면 거절해도 괜찮아요, 일때문에 바쁘다고 하면 그만이라. "
잠시 눈을 굴리며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았다. 임팀장은 내 또다른 최악의 순간에 날 구해줬던 사람이였다. 초면에 다짜고짜 자기야, 라고 부르며 쇼를 했는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다 받아줬었고. ... 그, 여자친구 역할 한번 해준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임팀장의 표정이 밝아지는 순간이였다.
***
" 저 과하게 입은 거 아니죠? 이런 자리는 또 오랜만이라... . "
" 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예쁜데? "
" ... 어흐, 가서 뭐라고 해야하죠? 들키면 어떻해요? "
최대한 깔끔하게 입으려고 흰 블라우스에 남색 H라인 스커트를 입었다. 이 옷도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무려 여섯번을 갈아입은 끝에 골라낸 옷이였다. 나를 데리러 손수 우리집까지 와준 임팀장의 차에 올라타며 긴장한 모습을 숨김없이 드뤄냈다. 힐끔 본 임팀장은 흰 와이셔츠와 정장식 짙은 남색바지를 입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서로 색을 깔맞춰 입었다. 그와중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예쁘다고 해주는 바람에 부끄러워져 못 들은 척을 했다.
" 그냥, 제 여자친구라고만 해주면 되요. 안 들키게 제가 부지런히 이야기 할게요. "
" ... 괜찮겠죠? "
" 그럼요. 그리고 저희 가족이 밥먹을땐 밥만 먹어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요. "
왠지 모르게 나를 안심시키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먹는 것 하나는 내가 어디가서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임팀장 말대로 맛있게 먹기만 하자. 잠시후 우리사이엔 자연스럽게 침묵이 가라앉았고, 그 침묵은 임팀장이 자동차내의 라디오를 틀면서 깨졌다. 라디오를 틀기 전 틀어도 괜찮냐고 나지막히 물어오는 물음에 당연히 괜찮다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보였다.
라디오로 깨진 애매한 침묵은 임팀장이 입을 열며 완전히 부숴졌다.
" 그래도 저희 엄마가 궁금한게 많으신 분이라, 말 몇 개는 맞출까요? "
" 아! 그럴까요?? "
" 직장이 같으니까 일하다가 눈맞은 걸로 해요. "
" 네─ "
" 어차피 저도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서 서로 잘 몰라도 그러려니 하실 것 같아요. "
하긴─.
임팀장과 나의 입사시기는 한달 차이로 비슷해서 서로 사내규칙을 아직 다 숙지를 못해서 엉뚱한 실수같은 걸 종종 같이 저지르곤 했었다. 예컨대 한 대의 프린터기를 두 개 이상의 부서가 함께 사용하는 구조라 연달아 사용하지 않기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였다. 잠시 창 밖의 바뀌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있을 때였다.
" 그나저나 호칭은 어떻게 할까요. "
" ... 호칭이요? "
" 애인 사이에 김팀장─ 하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않아요? "
" ...어... 그러게요. 뭐, 뭐라고 부를까요? 제가, 임팀장님을요. "
조용히 호칭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물어오는 임팀장에 고개를 임팀장이 있는 왼쪽으로 돌렸다. 때마침 차가 빨간불에 걸려 멈춰섰고, 임팀장은 핸들을 잡지 않은 왼팔을 창턱에 올린 채 나를 마주바라보고 있었다. 사뭇 진지함이 느껴지는 그 눈빛에 나도 덩달아 진지해지려는데 임팀장이, 그러니까 그 진지한 눈빛과 어울리지 않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 오빠? "
" ... ! "
" 나이 많은 거 자랑하는 건 아니고, 제가 세 살 더 나이가 많아요. "
" ... 아─. "
" 싫으면 뭐, 영민씨도 괜찮고. "
어느새 그 진지한 눈빛엔 능글 맞은 미소와 어울리는 장난끼가 가득 서려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임팀장은, 내가 놀라는 리액션을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괜시리 얄밉게 느껴져 신호가 바뀌어 차를 다시 부드럽게 출발시키는 임팀장을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불렀다.
" 오빠, "
" ... . "
" 영민오빠─ "
" ... . "
" 이렇─ "
" 왜 불러, 여주야. "
나한테 장난 치는 것처럼 나도 역으로 장난치려고 오빠라고 불렀던 건데, 임팀장은 일말의 표정변화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치는 거였다. 그것도 내 이름을 부르며. 낮고 다정한 음색이 내 이름을 부르자, 괜히 온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였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있자, 임팀장이 나를 힐끔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의 시선에 응답해줄 수가 없었다.
너무, 더워서.
" 오늘 하루 그렇게 불러. "
" ... . "
" 듣기 좋네. "
... 정말 덥다못해 속에서 열이 끓어올라 데일것 같았다.
*
주저리 |
안녕하세요, 드래곤수프입니당! 네... 여러분, 전 제 글이 초록글에 올라갈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감사합니다. 망한 것 같다고 키보드 쾅쾅 쳐내리며 지울까말까를 수천번 고민했는데 정신차리고 글이 산으로 가지 않도록 미친듯이 글을 쓰도록 하겠슴니다..♥
참고로 친절한 영민씨 전에 나오는 건 프롤로그 형식으로 이미 연애를 한 후의 이야기들이에요! 본편에 마저 쓸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캐릭터 설정 잡으려고 계속 낑겨 넣고 있습니당... 연애 전과 후의 온도차가 어마어마하네요. 대체 연애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허허. 그래서 현 상황에선 미래/현재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저리 끝을 어떻게 내야하죠? ... 주저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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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암호닉은 (작가의 눈이 굉장히 침침한 바람에...) [ ] 안에 신청해주세요!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전해요♥
아티/돌하르방/40745/임금/챱챱이/영민아/짭짤이/네오/쁘니야/빵민/요를레히/영민뿌우/1MILK콩/경찰차/감자도리/밍스/15/REAL/꾸루/보호/파카야/배챙이/맑음/임알파카/1121/으갸갸갹/흥흥/달빛/스타일/크리스마스/메이/어어/바밤바/포동이/바구진/앒파카영민/체리/영민수니/923/0212/찰떡/809/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