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Chronicle
02
연극부 오디션날이 되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쓸떼없이 증명이라도 하듯 오디션장에는 수 많은 1학년들이 몰렸다. 안형섭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꼬리를 연신 씰룩대며 이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물론 나또한 안형섭 못지 않게 바빴다. 생각보다 몰린 인원수로 넉넉하게 뽑지 못한 오디션 대사지문을 복사를 하고, 1학년들에게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알리면서 말이다.
[이름아 나도 그냥 연극부로 옮길까? - 박지훈]
바쁜 와중에 진동이 울린 핸드폰을 보자, 발신인은 박지훈이였다. 뭔말도 안되는 개소리지 싶어 홀드키를 눌러 다시 화면을 껐다. 동아리가 유명한 학교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손꼽는 동아리중 하나가 연극부라고 했는데, 바로 다른하나는 댄스부였다. 그런 댄스부의 부장은 박지훈이였다. 누가봐도 장난인 문자를 보니 저절로 콧방귀가 쳐졌다. 아무말에는 아무말로 대적한다는 마인드로 다시 한번 반짝이는 화면에, [그러던가] 라고 답장을 재빠르게 보내고 다시 복사를 하러 갔다.
저번에 박지훈과 같이 1학년 교실에 내려갔을때 자신을 혼자두고 먼저 가버렸다며 번호를 주면 용서해주겠다는 박지훈에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무마시키려는 의도로 번호를 흔쾌히 찍어주었다. 사실은 박지훈의 보폭이 매우 커 빠르게 뛰어가던 나를 잡는 건 일도 아니였으며 결국은 둘이 같이 교실에 도착했으니 혼자두고갔다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논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말도 하지않고 순수히 번호를 찍어준 이유는 박지훈이 왜 먼저 뛰어갔는지, 정확히 말하자면 왜 도망갔는지를 물어볼까가 두려워서였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걱정해 나는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지않고 눈 앞의 일만 후딱 치워버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단지 번호를 받아간 의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일뿐이다. 박지훈의 의도는 나를 심심이로 활용하려는 그런 불순한 의도였는지, 번호를 받은 날 이후로 끊김없이 나와 연락을 하고있다. 어찌됐든간 신기한건 박지훈과의 연락은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무척 귀찮고, 거부감이 든다는 것일뿐이였다. 그래서 언제는 이럴줄 알았으면 번호 주지말걸, 후회를 하다가도 나에게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않는 걸보면 잘한 일이야, 잘한 일이야…하며 위안을 삼았다. 어떻게보면 박지훈은 애초에 내가 왜 도망쳤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기는 커녕 관심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나혼자 제 발저려서 이렇게 된거지 뭐.
“너가 애들 한명씩 데리고와서 앞에서 대기시켜.”
“알았어, 몇분부터 시작인데?”
“20분. 나 먼저 가있을게.”
이후로 안형섭은 2학년애들을 싸그리 모아 오디션장으로 준비한 교실로 이동했다. 대기실에는 나를 포함한 3명의 2학년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나머지 둘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던지라 아무말도 하지않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나를 제외한 둘은 서로 같은 반이기도 하고 같은 포지션이라 그런지 친해 서로 담소를 나눴다. 혼자 멍하니 앉아있다가 급 몰려오는 피로감에 살짝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 들려오는 옅은 비명소리들에 잠을 깼다.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보니 박지훈이 서있다. 보나마나 박지훈을 본 1학년 아이들의 거의 본능적인 반응으로 인해 나온 소리겠지.
아니, 잠깐. 순간 사고회로가 멈췄다. 쟤가 왜 여기 있지? 눈을 꿈뻑이며 생각하다 문득, [그러던지] 라고 답장을 보냈던 게 생각이 났다. 설마, 설마…. 눈썹을 찡그리며 박지훈을 쳐다보다 두리번거리던 녀석과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제발, 내 이름.
“이름아!”
부르지 말라고…
박지훈의 부름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서로 담소에만 빠져있던 2학년 친구 둘도 예외없이 말이다. 그 많은 시선에 불현듯 예전의 기억이 스쳐간다.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문앞에 서있는 박지훈의 소매를 잡고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두 눈을 찔끔 감고 감정을 추스렸다. 내가 갑자기 잡은 탓에 박지훈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눈을 똘망하게 뜨고선 왜그러냐며 묻는다.
“왜 왔어, 여기”
“너가 동아리로 바꾸라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였을 줄이야. 박지훈이 가끔씩 하는 행동을 보면 눈치가 없다 못해 그냥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나오는 짓을 하는데 지금이 딱 그때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어이가 없는게 아니라 짜증이 났다. 한껏 단호한 목소리로 그걸 믿냐? 빨리 가. 하고 박지훈을 내쫓듯이 보내곤 교실에 다시 들어가려고하자 어안이 벙벙한 박지훈이 급히 내 손목을 다시 잡는다.
“저기,”
“왜?”
“…아니, 이거 먹으라고. 이거 주려고 온거야.”
너 점심도 못먹었다며. 옅게 웃으며 말한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건넨 손에는 삼각김밥이 있었다. 나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어지러웠던 머리가 정리되면서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낮췄던 시선을 올려 박지훈을 쳐다보자 안가져갈꺼야? 내 손 민망하게. 하며 눈을 맞춘다. 그 말에 수긍해 손을 뻗어 삼각김밥을 가져오자 정말 그게 목적이였는지 그럼 나 갈게, 문자 답장하고. 하더니 그대로 몸방향을 틀어 발걸음을 옮겼다.
말할까 말까, 아니 말해야 되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 고마운 일이였음에 틀림없다. 다만 갑작스럽게 연속적으로 일어난 상황들에 감정이 급속도로 변해 정리가 안되는 것 일뿐이다. 아직은 어지러운 머릿속과는 달리 입은 제 맘을 정한 듯 하다. 저, 하며 작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결국 입을 뗏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평소보다는 왠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박지훈의 걸음이 멈췄다. 그대로 고개만 돌려 작게 입만 올려 웃고는 다시 긴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멀어지는 박지훈과 내 손에 쥐어진 삼각김밥을 번갈아 보다 나 또한 걸음을 옮겨 교실로 돌아갔다.
-
교실에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디션이 시작되었고 평소 조용하던 내 핸드폰은 쉴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전화를 받으며 신입생들을 안내했고 몇 시간이 지나 해가 완벽히 지고 세상이 어두컴컴해지자 드디어 마지막 차례가 왔다. 바쁘지않을 것 같던 일에 급히 신경을 쏟다보니 피로와 더불어 뻐근함이 몰려오는 건 당연했다. 마지막 신입생과 어색하게 삭막한 복도에 서있는데 안형섭의 웃음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온다. 쟤 오늘 오디션에서 처음 웃는 거 같은데, 앞의 친구가 어지간히 웃긴 거라도 하나보다. 아까 옆에 있을땐 긴장 많이 하던데.
오늘 대기를 하며 지켜본 결과, 너무 긴장된다며 호들갑아닌 호들갑을 떠는 유형 그리고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말없이 떨고 있는 유형. 이 2개였다. 슬쩍 고개를 돌려 신입생을 보자, 이 친구는 후자의 유형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후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게 이 신입생은 얼굴에 긴장한 모습이 전혀 담겨있지않다. 아니면 저게 긴장한 표정인건가. 무어라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느낌이다.
화기애애한 오디션장과는 대놓고 대비되는 조용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복도에 단 둘이 서있자 온 근육이 빳빳하게 굳을 만큼 긴장이 되었다. 가뜩이나 어색해서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앞의 친구의 오디션이 볼거리가 많은지 길어지는 모양이다. 문득 주학년이 떠올랐다. 작년에도 이런적이 있었나. 학년이는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의 방향을 부드럽게 바꾸는데 능했다. 어쩌면 늘 옆에서 그런 그의 성격을 지켜보다 부럽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다 그 생각이 커져서 닮고싶다, 더욱 커져서 그를 좋아하는 마음까지도 가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헛튼 생각이 든다. 학년이처럼 누군가와의 어색한 공백을 채울 수 있다면, 나도 학년이와 닮을 수 있을까.
“이름이 뭐예요?”
학년이도 나를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배진영이요.”
~ Love! Chronicle ~
오디션을 끝맞치고 정리를 하니 어느새 하늘이 어둡다 못해 깜깜해졌다. 학교를 완전히 빠져나올때까지 안형섭은 내 옆에서 그렇게도 신이 나는지 이번 신입생들이 다 괜찮다며 내게 웃음을 지어왔다. 마음같아선 더 뽑고 싶었는데 인원수가 정해져있어서 짜증난다며 퉁명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옆에서 재잘재잘 말하는 안형섭에 대응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들어주는 건 차장으로서, 친구로서의 내 몫이였다.
“야, 근데 너 진짜 신입생들 안봐도 되겠어?”
“어차피 이름만 봐도 몰라. 기억도 안나고.”
얼굴이 기억나는 건, 마지막 신입생뿐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복도가 어두웠던지라 인상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이 엄청 작았다는 거. 그거만 기억이 났고, 이름도 당최 무슨 느낌이였는지도 생각나지않는게 흠이지만. 그래도 같은 부원으로서 누굴 뽑았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안형섭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건지 자기가 먼저 자청해서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안물어봤다고 시비를 털고 싶었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였으니까 잠자코 얘기를 들었다. 드디어 우리한테도 후배가 생겼다며 찬찬히 한명씩 이름을 읊었는데, 오늘 오디션을 볼 수가 없다고 미리 오디션을 보고간 애도 뽑았다는 것까지 아주 자세하게 말해줬다. 이름을 벌써 다 외운건지 신나게 얘기하던 안형섭은 미리 오디션을 보고간 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지 이름은 뭐였더라…하며 고민을 한다. 그런 안형섭을 쳐다보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익숙한 배경이다. 야, 너 내려야돼. 라고 안형섭을 생각에서 깨우듯 말하자 거의 반자동적으로 데려다줄까? 묻는다. 필요없다고 단칼에 거절하니 평소에면 내 대답이 뭐든지간에 데려다 주려고하던 녀석이 오늘은 저도 많이 피곤한건지 괜찮겠어? 하며 하품을 쩍한다. 괜찮다고 돌려보내자 탐탁치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옆에서 들리던 익숙한 소리가 사라지더니 버스 안이 고요하다. 안형섭과의 담소를 위해 왼쪽으로 틀렸던 몸이 혼자가 되자 저절로 바깥풍경이 보이는 오른쪽 창가쪽으로 방향을 돌려앉았다. 누군가와 함께 그 거리를 지날때면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서 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없다. 반면에 혼자 있을때는 나도 모르게 창가에 눈이 간다. 여행을 떠나서 어딘가 처음 가는 길을 보는 것도 아니고 항상 다니던 등하굣길을 보는 거지만 지루함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한 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은게 아닐까. 새로운 사람은 낯설고, 그 풍경을 채우는 건 장소 그리고 사람이니까.
멀지 않은 곳에 만나나분식이라 적힌 낡은 간판이 눈에 띈다. 1학년때 주학년과 자주 가던 분식집이다. 우리동네에서 유일하게 짜장떡볶이를 파는 곳이라 내가 몇 번이고 끌고가서 짜장떡볶이를 시켰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오지 못했다. 내가 짜장떡볶이가 질린 것도, 주학년이 바쁜 것도 아니였다. 순전히 내가 주학년에게 다른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걸 인정한 이후로 나는 바쁘다는 둥 여럿 핑계로 알게모르게 그를 피한 탓이였으며,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다 안내방송을 듣고는 책가방을 다시 고쳐매고 내릴 준비를 했다. 교통카드를 찍고 내리자,
이번에는 익숙한 사람이, 익숙한 거리를 채운 풍경이 눈에 담긴다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
죄인 숭히입니다 (T0T)
제가 너무 늦었죠 하 다 제 잘못입니다 엉엉 심지어 늦게 왔는데 너무 재미없게 쓴거 같아서 더 제성하네여 8ㅅ8
암호닉정리와 할 말이 조금 더 있는데 그건 일단 독자님들 빨리 읽으셔야하니 글을 올리고 수정해서 추가하는 걸로 할게요!
그냥 너무 죄송합니뎅 그리고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다 너무 사랑합니다 (^^)!
댓글 하나하나 읽고있고 꼭 답글 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분들 정말 힘이 많이 돼요 스릉흡느드 (하트)
암호닉 안받고있어요!
+) 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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