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들어온 유치원쌤 최승철 X 먼저 있었던 유치원쌤 너봉
#4.
최고의 휴가. 봄방학이 찾아옴.
오랫만에 서울 친구들도 만나러 가고 집도 들렸다 올 겸 짐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 터미널 갔음. 의외로 한산할 줄 알았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길래 터미널에 앉아있기는 커녕 떠밀리다보니 버스 앞까지 도착함. 내 자리가 D4 였더라지... 차근히 자리 찾아 가선 윗 짐칸에 가방 넣고 지갑만 빼든체로 빵이랑 과자같은 간단한 간식 쌓아선 다시 버스로 감. 시간 딱 맞춰서 들어오니 기분 좋네. 혼자 샐쭉 거리며 자리 찾아 왔는데
최승철?
세상에 이런 운명이 어딨냐고. 너덜너덜해진 심정으로 초점 잃고 세상 잃고... 모든 걸 잃었는데 버스는 태연히 출발함. 하필 옆자리가 최승철인게 뭐람? 터미널 도착하면 친구들도 와 있을텐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 막막해서 한숨 푹 쉬니까 최승철이 이어폰 꼽고 있다가 여주 쪽으로 고개 훽 돌려봄.
" 멀미약은 "
아 맞다 멀미약.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사들고 온 봉지 뒤져보지만 과자봉지만 가득할 뿐 멀미약은 형체조차 없어. 마시고 왔어. 괜히 오기생겨선 승철에게 그렇게 말해놓곤 더이상 얘기하기 싫어 저도 이어폰을 꼽아버림. 사실 여주가 멀미에 많이 약해서 30분이라도, 간단한 마을 버스라도 타면 되게 울렁거려 하는데 하필 또 뒷자리라 더 메스꺼워 할 것 같았음. 자면 돼. 잘 수 있잖아 그치? 간신히 스스로 다스리며 눈을 감는데 외진 동네에서 올라가는 거다 보니 비포장 도로가 좀 많았음. 눈을 감으니 더 선연히 느껴져서 생각의 눈 앞엔 검은 봉다리만 아른거려...
간신히 잠 들었지만 꿈속에서는 자꾸 현실처럼 토해서 잔 것 같지도 않음. 휴게실도 들렸었다는데 최승철 이 놈은 내가 너무 곤히 자는 것 같아서 깨우질 못했대.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멱살 잡고 엎어칠 뻔한 거 간신히 참음. 도착까지 30분 정도 남았겠지...? 가서 먹을 먹거리들이랑 친구들이랑 밤새 달리기 위해 좋은 생각만 하며 컨디션을 다스리자며 또 명상에 들어갔지만 여태까지 참은게 너무 많아서 금방 얼굴 창백해져 버리고 손 끝도 푸르스름해져서 벌벌 떨음.
승철이 그거 보고 여주 안전벨트 풀러주는데 제 턱밑으로 불쑥 들어온 머리카락이 간지러워 순간적으로 턱으로 손 올리다가 승철 이마 벌러덩 까버림.
아 이거 옛날에 습관적으로 승철에게 치던 장난인데...
둘 다 일시 정지했다가 승철이 빨리 빠져 나와서 상황은 무마 됨. 그러고 나선 안전벨트를 풀른 덕인지 창문을 열은 덕인지는 몰라도 편히 달려 서울에 도착함. 내리자마자 기지개 쫙 펴 지뿌둥한 몸 켜곤 저 멀리 손 흔들고 있는 친구들에게 달려가는데 승철도 같은 방향으로 여주랑 같은 속도로 걷는거임. 친구들이 쟤 뭐냐 쑥덕거리는 것 같아서 황급히 방향 틀어 뛰쳐감.
야! 언니왔다! 괜히 큰소리 쳐보지만 이미 다 눈치 챈 친구들이 뭐냐며 귀에다 수근댐. 몰라 재수없어 같은 유치원 발령 받아가지고... 대충 설명하곤 터미널 빠져 나가려고 친구 차로 향하는데 승철 왠 앳된 여자애랑 같이 서있는 거 봤다.
나랑 사귈 때도 긴머리 웨이브가 참 좋다고 그렇게 졸라댔었는데. 딱 저가 좋아할 만한 여자더라.
#5.
친구 자취방 도착할 때 까지 괜히 그 장면 여운에 남아서 제 몇년동안 고집했던 단발머리 만지작 거리는데 친구들은 난리가 남.
' 최승철 뭐냐? 몇년만에 나타나선 왠 너 아닌 다른 여자래? 미쳤냐? 진짜 한판 떠야 되는 거 아냐? '
왜 사겼던 건 난데 니들이 그렇게 흥분하는 건데...
간신히 누그러트리곤 이젠 별 관심도 없어! 그 새끼 얘기 그만하고 놀러나 가자! 괜히 떵떵거림. 하지만 눈에 슬픔은 숨길 수 없어... 친구들도 더이상 얘기했다간 오랫만에 얻은 봄휴가 망칠까 그냥 덮어버리곤 바로 서울 투어 감. 다행인지 승철과 부딪히는 일은 없었고 다른 대학 친구들, 후배들도 많이 만나고 그날 밤에는 다 같이 술집에 모여 희희낙락 수다가 한판 펼쳐짐.
" 누나 근데 멀미약은 왜 붙이고 다녀요? "
대학 다니던 중 여주 술친구로 젤 친했던 후배 석민이 술잔 채우다 말고 여주 귀밑에 붙은 멀미약 테이프를 쏙 뗌.
" 멀미약? 나 그런 거 붙인 적 없는데? "
" 없기는 뭘요. 그럼 이건 뭐야 "
석민이 내민 손 끝에 걸린 키미테 보고 여주는 순간적으로 승철이 떠올라버림. 승철 말고는 저한테 멀미약 붙여줄 사람도 없으니까.
근데 이게 뭐야.
그렇게 다른 여자 만날 거면서 지금 저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누가봐도 썸타는 사람 아니냐고. 갑자기 울컥한 여주가 바람 좀 쐬겠다며 나가 벤치에 앉아선 술에 푹 익은 제 얼굴을 바람맞아 찬 손으로 식히고 있었음. 뒤따라 나온 석민이 여주 옆에 앉아 물 사다 줄까요? 하지만 여주 답이 없었고 석민 우나 싶어 여주 힐끔 봤는데 여주 울면 콧물부터 나오는데 눈치없이 콧물부터 주르륵 나와버렸다.
" 최승철 죽여 진짜! "
" 아 또 걔구나 "
석민은 엉엉 소리내 우는 여주 콧물 제 소매 끝으로 죽죽 닦아내고 일으켜 세움.
" 누나 집에 가야겠다, 가요. 택시 잡아줄게 "
" 아니 석민아 이차 뛰자. 누나 서러워서 못살겠다 "
사실 석민. 술친구 뿐만 아니라 여주의 하나뿐인 고민상담 메이트였던 후배다.
#5-2.
술 진창 마시고 깨질것같은 머리 부여잡고 일어나니 어느새 집임.
뭐야 나 분명 이석민이랑 달렸는데 왜 우리집에 있어. 이석민 이놈 이거... 참 착한 후배네 아침이나 사야겠다 생각하며 침대에서 굴러 내려옴.
방에서 기어 나와 살금살금 화장실로 향하는데 거실에 무섭게 앉아계시던 엄마한테 걸려 슬리퍼로 후들겨 맞음.
" 오랫만에 올라온다더니 남자 등을 타고 와? 그게 친구 자가용이니? 어휴 내 딸이지만 참 답없다 이년아! "
" 아 엄마! "
그렇게 두들겨 맞고 엄마가 쟁여놓은 숙취 해소제 한박스 싸들고 얼굴 퉁퉁 부어서는 재빨리 신발 구겨 신고 나감.
'오늘도 업혀 들어오기만 해봐 아주 시골에 쳐박을 거야!!!'
다정하고 따스한 집안을 바랬던 내가 죄요... 도망치듯 나와선 곧바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음.
' 너네 다 혜미네 집이지? 나 글루 갈테니까 기다려. 나 아침 먹고 간다! 아침은 니들끼리 먹어! '
#6.
" 석민아 어제 너무 미안하다... "
해장국집 앞에서 만나 무릎부터 꿇으려는 여주 막은 석민은 밥사주니 괜찮다며 여주 끌고는 해장국집에 들어가 콩나물 해장국 두개요! 하곤 여주 퉁퉁 부은 얼굴 웃기다며 비웃음. 그래 이걸로 너의 피곤함이 조금 풀린다면 난 괜찮다... 맘껏 비웃어줘.
아 이것도 너 거야. 너 아직 안 마셨지.
집에서 들고 나온 숙취 해소제 한상자 쓱 건네는데 뭘 그렇게 많이 챙겨왔냐며 기겁을 하던 석민이 한병만 빼가더니 나머지는 선배들이랑 드시라며 도로 내놈. 이리 착해서 세상 살겠냐며 타박하니
" 저는 잘 사니까 누나부터 살아요. 어떻게 걔랑 거기서 다시 만났대요. 그것도 진짜 천운이다. "
아휴 이 놈의 주둥이 결국 어제 다 불은 모양새였음. 입술 젓가락으로 한번 확 집고선 야 없던 일로 해 하고 손사례 쳤으나 석민 이번 얘기엔 단단히 저도 화났는지 왜 그자식 가만히 두냐고 누나도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요! 라며 버럭댐. 야 내가 잘 살아야 잘 사는 모습을 보이지... 자신감 없이 삐죽대니 보던 석민이 답답한 제 가슴을 퍽퍽 두들김.
" 근데 하나만 묻자 석민아 걔 그거 어장이지? 나 지금 설레면 이상한 거지? "
" 당연한 거 아녜요? "
순간적으로 기대했었다. 그게 진심이였으면 난 다시 돌아갈 맘도 있었다는게 참 바보같지. 타이밍 좋게 밥이 나오고 여주는 먹으라며 석민에게 밥그릇 쓰윽 넘김.
" 잘 먹을게요. "
" 응 그래 잘 먹어라. "
가슴 응어리 진게 답답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여주는 그대로 석민이 다 먹을 때까지 자리만 지키다 나옴
" 누나 밥을 왜 그렇게 못 먹어요. 어제 많이 달려서 그래요? "
" 그런가봐 자꾸 얹힐려 그런다. 나 이제 친구들 만나러 가볼게. 오늘 알바있어? 집에서 푹 쉬고 오늘 너무 무리하지 말어. 가볼게 또 보자 "
" 벌써요? 아쉽다 내일 또 볼래요? 저 알바 없는데 "
" 그래? 낼 시간 내볼게 택시 온다 나 갈게! "
석민 무의식 중에 여주가 탄 차 번호 메모장에 적어놓고는 택시 시야에서 사라지길 기다리다 집에 갔다는 후문.
석민=승철 동갑입니다 어색하죠? 저도 어색해요 촤하핱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랑의공식님 세븐틴틴틴님 승부인님 저희 오래 뵈요♡
암호닉 사랑으로 받습니다~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