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들어온 유치원쌤 최승철 X 먼저 있었던 유치원쌤 너봉
#7.
" 이 배신자야. 이석민이랑 그렇게 나가기 있냐? 너 그렇게 가고나서 권순영한테 시달렸잖아. 얼마나 집에 안보내던지... "
아지트 도착하니 녹초가 된 친구들은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절로 남. 한 친구는 여주 옆구리에 끼고 온 숙취 해소제를 보고 달려들다가 웩 헛구역질 하며 쓰러짐. 야 진짜 안돼 나한텐 하지마 진짜. 기겁하며 좀비들 피해 쇼파 위로 달려 올라감.
" 우리 해장하고 올테니까 오늘 뭐할건지 생각해놔 "
차례대로 씻더니 정신이 좀 들었는지 대충 챙겨입고는 여주 버리고 다 나갔다.
심심해져서 카톡이나 찬찬히 구경하는데 최승철 선생님 몇년 조용했던 카톡 프사가 올라와 있었음. 주변에 혹시 안나간 친구 있나 휙휙 둘러보고는 곧장 프사 눌러보니 둥그런 술잔 몇개가 부딫히는 사진이였음. 허세하고는... 이라며 코웃음은 치지만 그 사이에 어디 여자 있나 자세히 살펴보는 여주. 아무것도 없네 싶어 나가려다 사진 끝에 걸린 반짝이는 손톱 보고 그럼 그렇지 했다. 아주 여자 안 끊겨서 좋겠다 좋겠어? 비아냥 거리며 핸드폰을 저만치 밀어버림. 잘 살고 있던 내 앞에 짠하니 나타나더니 이젠 약을 올려? 오랫만에 만났으면 그때 오해해서 미안하다 한마디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또 울컥해서 혼자 곱씹다간 악! 몰라! 죽어 최승철! 한바탕 악지르며 쇼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8.
쇼핑하러 마트에 옴. 백화점을 가려다가 다들 어제 만취해서 그런지 향수 냄새 맡으면 토나올 것 같다고 해서 저녁에 먹을 고기나 사러. 근데 왜 카트에는 또 술만 차냐구요. 나이들면 철 든다는 거 그거 다 거짓말이다? 술만 늘어요 술만. 그럼에도 오늘만 즐기는 건데 뭐 어떻냐며 서로를 위로함. 이러다 집에 못가겠다며 몇병 빼려고도 해봤지만 그럴수록 더 늘어나버려서 포기해버림. 마지막으로 목적이였던 고기를 사고 캠핑장으로 놀러 감. 불도 피울 줄 모르면서 분위기 있는 숯불에서 먹어봐야 하지 않냐며 갔는데 의외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였음. 뭘 해도 눈치 보이지는 않을 것 같길래
젤 불 잘 피우게 생겼다면서 토치 건네 받았지만 진짜 기본 지식이라곤 쥐뿔도 없어서 불장난만 치다가 옆 텐트 남성분이 도와주셔서 간신히 불을 지핌. 또 그렇게 뜨거운 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술병 트이니 입도 트이고 서로 남친얘기부터 시작해서 더러운 직장 상사 습관, 대학 선후배 얘기 줄줄이 이어짐. 여주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입다물고 먹기만 하는데 혜미가 여주 가르키면서 야 석민이랑 어제 뭐했어. 하고 물음. 뭘하긴 뭘해 술 마셨지 손 휘휘 가로저었지만 여기저기 저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
" 진짜 술만 마셨어? "
" ...미쳤냐??? "
미쳤어 그 음흉한 눈빛들 뭐냐고.
난 너네 오랫만에 다시 본 거니까 뭐 좋은 소식 있을 줄 알았지.
누가보면 서로 관심있는 줄 알겠네. 헛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드셔. 너스레 술잔 부딫히며 큰소리로 건배를 외침. 지지배 입 막는거 치사하다 하지만 저와 석민은 그런 소리 들을 관계 아니니 괜한 오해 받기 싫었음. 아직 여주는 신경쓰지 않겠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는 승철이 남아있으니까. 그 순간 흘러 지나가는 얘기처럼 혜미가 다시 한마디 꺼냄. 남자는 남자로 잊는 거지 뭐.
#9.
자꾸 얘기는 남자 얘기로 흘러갔고 승철이 얘기 서로 암묵적으로 안꺼내는 듯 하면서도 입끝까지 모두 걸치고 있는 터라 툭 치면 나올 기세였음. 엄마 핑계 대가면서 자리 빠져 나와버림. 남 힘들었던 연예사를 안주삼아 얘기하려 하냐. 나는 아직도 힘든데. 술냄새 폴폴 풍기며 근처 호수 한바퀴 돌고 벤치에 앉았더니 호수 중앙에 떠다니는 오리 한쌍이 부리 맞대고 연애중이다. 당장 달려가서 둘 사이 갈라놓고는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버림. 아 개같은 인생. 잊으려고 하면 왜 자꾸 생각 나는건데.
짙게 푸른빛이 올라오는 하늘에는 승철의 얼굴이 반쯤 떠있다.
늘 걔 생각하면 웃는 얼굴이였는데 요즘은 글쎄. 찌뿌둥한 얼굴, 피곤한 얼굴 밖에 생각이 안나서 싫어.
나는 사실 잊고 싶은게 하나도 없는데. 이전에 우리가 너무 생생해서 네 이름을 전처럼 부르기만 한다면 모든게 돌아올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고 묻고 싶은데.
입이 무거워.
#10.
담날 기분 전환할 겸 예쁘게 꾸며입고는 석민이를 만남. 출근길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길게 늘어진 귀걸이랑 화려한 색조화장, 샤랄라 원피스 입으니 이제 좀 세상 즐기며 사는 여성같고 기분이 좋아. 석민은 그런 여주 멀리서부터 보고 놀라서 전봇대에 숨어버림.
" 아니 누나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나 한강가서 배드민턴 치자던 거였는데... "
" 배드민턴 말고 우리 꽃구경 가자. 자전거도 타고, 솜사탕도 먹고. 사진도 좀 찍고. "
후줄근하게 입고 나와선 배드민턴채 들고있던 석민이는 그럼 옷 좀 갈아입고 오겠다며 다시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도로위로 내뻗음.
" 야 기다리다 죽어 그냥 사입어. "
" 요즘 옷 비싸요 카페 들어가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
" 뭘 금방 다녀와 따라와 옷 사줄게. "
예? 옷을 사준다구요?
눈이 방울만큼 커져서는 괜찮다며 뒷걸음질 치는 석민의 손목을 확 낚아챈 여주는 제가 미안해서 그렇다며 연상의 지갑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기며 석민을 데리곤 제일 눈에 띄는 옷가게로 들어감. 예쁘고 상큼한 봄 옷 제쳐두고 저 구석에 쳐박혀선 칙칙한 겨울옷 구경하는 석민이 여주 눈엔 참 마음에 안들었음. 질질 끌고 나와 산뜻한 와이셔츠와 바지 챙겨주고는 탈의실로 밀어 넣었는데 워낙 몸이 좋아서 그런지 잘 어울리네? 몇개 더 입어봤지만 첫 옷이 너무 예뻐서 첫 옷으로 입고 나옴. 나중에 계좌로 보낼게요. 말하는 석민 입 손으로 막고는 밥 사면 용서해주겠다고 하며 한강으로 떠났다.
#11.
와 사람 진짜 많네
날씨가 덥지는 않은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후덥지근 함. 석민이 사진작가 자처해서는 여주 사진 많이 찍어줬지만 정작 석민 사진이 없어 난감하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사진 한장 못 찍었네. 주변에서 나름 싸게 삼각대 구입해서 이제 막 사진을 찍기 시작함. 석민아 좀 웃어. 입꼬리 딱딱하게 굳어서는 졸업사진 찍는 학생마냥 포즈도 정해줘야 취함. 웃겨서 낄낄대니 창피한지 웃지 말라고 제 얼굴을 가리고는 소녀마냥 주저 앉아버림. 몇장만 더 찍고 같이 몇장 찍자. 기운 차린 석민이 일어나서 제 나름 모델스러운 포즈 지어보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치여 제대로 건지지도 못함.
" 사진 진짜 못찍는다 "
" 아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래. 자꾸 삼각대 건들고 "
" 알겠어. 이제 같이 찍어요. "
핸드폰 위로 치켜들다 말고 인파에 치여 저 멀리 사라지려던 여주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긴 석민이 사진을 찍기 시작함. 제 팔을 단단히 잡은 손이 꽤나 뜨거워 신경쓰인다... 몇장 찍고는 빨리 구석으로 빠져 넉넉한 곳으로 피신함.
" 여기서 몇장 찍고 이제 갈까? "
세워둔 삼각대 넘어로 보이는 사람도 몇 없었고 지나치는 사람도 없어서 맘껏 사진 찍고 어깨동무하고 친한척은 다 떨며 사진을 찍음. 근데 신경쓰여.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고. 마지막이라며 다섯장을 연속으로 찍겠다고 하는데 여주 귓등으로 대충 듣고는 어어. 하며 주변 두리번 거림.
근데 좁은 개천 반대편, 저기 잔디밭에 앉아있는 저 사람 있잖아.
최승철이랑 유정서 맞지?
아니 그래서 유치원 얘기 언제 나오냐구요..? (먼산)
유정서는 여자입니다... 여주와 승철이 헤어지게 된 원인이기도 하죠(술자리잡은친구) 담에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구요~~
♡ 사랑의공식님 세븐틴틴틴님 승부인님 뿌랑찬님 틴틴님 물민님 낭낭님 케세라세봉님
재밌게 읽으셨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함께하는 시간 즐겁길 바랄게요 ♡
암호닉 사랑으로 받습니다~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