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 落化濡水
행복한 나날. 그래, 이 행복한 나날이 나는 언제고 계속 될 것이라고 믿었던가. 모든 것엔 끝이 있음을.
"후궁 마마, 올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이른 아침부터 근심어린 작은 승현이의 표정을 보았을 때 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그것이.. 중전마마께서.. 아기씨를 회임 하셨다고 합니다."
"...그...그래. 감축드릴 일이로구나. 중전마마는 어디 계시냐. 내가 이 소식을 듣고 이리 있으면 예가 아니지. 어서 채비를 하라. 마마를 뵈러 갈 터이니."
경사다. 큰 경사. 전하의 뒤를 이을 아이를 회임하다니. 이건 전하에게 뿐만이 아니라 나라가 기뻐 할 일이거늘.. 어찌 이리 맘이 편지 못하단 말인가.
떨리는 손을 숨길 수가 없다. 전하를 연모한 후로 계속해서 괴롭히던 그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다. 난 남자라서. 전하와 같은 성을 가진 남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항상 불안했던 그 무언가가 수면 위로 떠 올라 나를 찌른다. 항상 바라왔던 것이었다. 전하와 닮은 세자, 공주를 안고 전하를 만나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다. 나에겐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중전마마는 좋은 여자였다. 지성과 미모, 하물며 정까지 갖춘 빼 놓을 곳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지용에게도 친절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더 슬펐다. 그런 사람의 아이라면. 너무도 예쁠 것을 알기에.
애꿎은 감정의 화살이 전하에게 돌아갔다. 중전마마께 발걸음 하시는 것을 못 본 것은 아니었다. 아니, 항상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기에. 언젠간 누군가는 전하의 아이를 품을 날이 올 것이기에. 차라리 다행인 걸까. 그 사람이 아이의 엄마라서. 혹여 전하께서 아이 때문에 나를 버리시는 것은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돌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이러는 것을 보시면 전하께서 질리시진 않을까. 투기라니. 질투라니. 전하는 이 나라의 모든 여자의 지아비신데 그를 두고 질투라니. 이 무슨 이기심이란 말인가.
"중전마마 납시오-."
황급히 파리한 안색을 지우고 억지 웃음을 지으며 중전마마를 맞이했다. 내 이 몹쓸 감정이 얼굴에 보여서는 안 될 일이다.
"후궁! 내 전할 말이 있어 이리 왔네. 잠깐 다과를 즐길 시간이 되겠는가."
"물론입니다,마마.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
그녀는 두 볼에 홍조를 띄고 있었다. 신이난 어린 소녀 같은 모습에 내가 더욱 더 죄인이 되는 거 같은 죄책감을 버릴 수가 없다.
"...회임을 하시었다고 들었습니다. 감축드리옵니다,마마. 안 그래도 어서 채비를 마치고 마마를 뵈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어찌 홀몸도 아니신 마마께서 이리 오셨습니까."
"그런 섭한 말씀 말게. 아침부터 웬 소란인지 누가 보면 내가 갓난쟁이 아이인줄 알 걸세. "
그 후로 나눈 대화는 기억이 없다. 시선은 계속 그녀의 배에 머물렀다. 정말 저 작은 몸 안에 전하의 아이가 있는 것일까.
그녀 보다도 튼튼한 내 몸엔 품을 수 없는 그 아이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음식을 입에 넣을 기운 조차도 없어 끼니를 거르니 상궁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며 내 안색을 살핀다.
또 전하께서 상궁들을 나무라셨구나. 어찌 이런 순간마저도 당신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십니까,전하.
서랍장을 열어, 그를 반긴 그 날. 나에게 선물하던 꽃을 꺼내었다. 고이 고이 말려 이렇게 보관해 놓았것만..
전하의 사랑도 이렇게 고이 고이 보관 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 송이를 손에 올려 주먹을 쥐어 보았다.
-바스락.
하나의 먼지처럼 꽃들이 부숴져 내린다. 전하, 전하의 사랑도 중전마마와 전하의 아이와 함께. 이 꽃처럼 부숴져 제 곁은 떠나지는 않겠지요.
전하, 전하..
"주상전하 납시오-."
여러분이 기대하신 것 보다 짧.. 죄송해요.
그리고 댓글..말이에요.
솔직히 가끔 상처라서. 허허.
댓글 먹고 자랍니다. 여러분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