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생각하기 싫은 몇 년 전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나의 그 고생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기쁜 마음으로 대학교를 입학했던게 벌써 3년 전이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행이라고하면 다행이고, 불행이라고하면 불행인 내 나이보다 1년 늦게입학을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에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에 대한 얘기를 짧다면 짧게, 길다면 길게 해 볼 예정이다. 정말, 난 많이 아팠다. 그리고,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도. 많이 힘들었다. 지금 너를 마주친 난, 그 어느때보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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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중학교 졸업식에서 내 딸이 이렇게 다 컸다며 학교가 떠나가라 울던 엄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방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입학했다고 했는데, 사실 두려움도 있었다. 나는 외동이기때문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도 별로 없었고,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의 말을 듣자면, 고등학교는 마치 감옥..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열시까지 자습을 하고, 뭐… 그냥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니까. 공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노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그것이 조금 걱정됐다.
나는 친한 친구들과 전부 다른 학교를 배정받았고, 몇 명은 여고에, 또 몇 명은 남녀공학으로 갔는데, 나는 남녀공학에 배정받았다. 여고에 배정받은 애들은 남녀공학에 배정받은 나를 부러워했다. 음… 부러워할 일인가? 아무튼, 3월 2일 첫 날 학교에 갔을 때, 고등학교는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아이들이 우왕좌왕했다. 반배정을 받고, 담임 선생님도 배정받고, 짝꿍을 정해야하는데 도대체 언제 친해졌나 의문이 들 정도로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자 애들이 둘 둘씩 무리를 지어 있었다. 처음에 마음대로 앉는다고 해도, 정해진 짝꿍이 다 있었다는 말이다.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는데 밖으론 티내지 않았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속으로만 고민하고 있을때, 누군가 옆에서 나를 툭툭 쳤다. 그게 첫만남이자, 첫인사였다.
이름은 박지훈이라고했다. 근처 중학교에서 혼자 왔고, 보아하니 나도 혼자 온 것 같아 아는 척을 했다고 했다. 처음 사귄 친구가 남자라 조금 그러기는 했지만─아무래도 처음에는 동성친구가 편하니까 그렇게 느꼈다─ 말하다보니까 잘 맞는것 같기도 했다. 착해보이기도 했고, 장난이 많은 아이인것 같았다. 나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강아지 좋아하냐고도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럼 나중에 저의 집으로 놀러오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들었을땐, 처음 보는 애한테 이런 말을 원래 스스럼없이 해도 되나? 싶었는데 그게 원래 그 아이의 성격이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반에 그렇게 열정적인 스타일이 아니신 것 같았다. 그래서, 3월 둘째주, 셋째주가 될 때 까지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계속 박지훈과 짝꿍이었단 말이다. 급식도 같이 먹었고, 집도 비슷한 방향이라 하교도 같이해서 같은 버스를 탔다. 남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워낙 다른 애들한테도 잘해주고, 착한 애라 걔가 나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4월 초 중반 쯤 되니까 역시 남녀공학이라 그런지 커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반에서 말이다. 그때도 박지훈한테 감정이 없었냐고? 당연한 소리였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이름은 박우진이라고, 딱히 나와의 접촉이라던가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냥 그 애 성격이 좋았다. 말투도 좋았고, 습관이나 제스처같은 것도 좋았다. 그리고, 박지훈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그냥 평범한 아이였는데, 이름은 김유정이었다. 박지훈도 그냥 그 애 자체가 좋았다고 했다. 아, 4월 초 중반은 나와 박지훈이 많이 친해졌을때였다. 항상 같이 다녔으니까. 성이름하면 박지훈이었고, 박지훈하면 성이름이었으니까.
소문이 퍼졌다. 김유정과 박우진과 사귄다는 소문. 박우진과 김유정과 사귄다는 소문. 그 소문을 듣자마자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박지훈도 마찬가지였다. 반에서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소문으로 들으니 꽤나 충격적이었다. 알고보니,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와 박지훈만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점에서 죄도 없는 반친구들이 괜히 미웠다. 그래서 나와 박지훈은 한동안 우울모드였다. 나와 박지훈에게 따로 먹구름이 낀 것 마냥 축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사건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하필, 그때. 하필 그때, 김유정과 박우진이 사귀어서. 왜 하필..
나와 박지훈에게 먹구름이 끼어있을때, 반애들은 우리를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성적때문에 스트레스 받나. 라고만 생각했을것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박지훈과 같이 급식 줄을 기다리며 급식을 받고, 앉아서 먹고 있는데, 박지훈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그런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자 사레가 들렸다. 밥먹는데 그렇게 진지하면 되냐고… 왜 쳐다보냐고 묻자, 박지훈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를 몇 초 보더니, 말을 꺼냈다. 밥이나 먹자.
" 이름아. "
" 어? "
"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둘이 사귈래? "
" 뭐? "
" 분하기도 하잖아. 그냥 서로한테 의지가 되자고. 좋은 의미에서. "
그때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박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부터, 박지훈과 나는 어이없게 사귀게 되었다. 이걸 갖다가 자의라고 말 할 수도 없었고, 타의라고 말 할 수도 없었다. 말을 꺼낸 것은 박지훈이 맞는데, 그 말을 꺼내게 된 원인은 내가 아니라 김유정이기 때문. 기분 나쁠 법 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도 박우진한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박지훈이 그 말을 하고 나서, 반애들 반응은 반에 커플 하나 더 생겼다고 거의 체념을 한 듯 했다. 몇몇 애들은 애정행세 얼마나 많이 하나 보자. 이런 반응이었고, 몇몇 애들은 그래.. 이왕 사귀는거 잘 사귀어라.. 이런 반응이었다. 박지훈과 나의 연애가 어이없게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할 건 다 했다. 손도 잡아보고─물론 이건 사귀기 전에도 몇 번 했었지만 말이다─ 같이 영화도 보고, 카페 가서 얘기도 실컷하고. 그러다 박지훈이 몇 번 씩 설레는 말하고. 제법 연인다웠다.
그리고 추석쯤 되던 달이었는데, 우리 학교는 겉만 명문인척 하려고, 고3도 아닌 고1인데 추석기간에도 학교를 나와 오후자습까지만 하고 가라고 했다. 1학년 애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처음에는 시위까지 할 것 같이 하더니, 교장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추석 전날, 부모님은 다 친척집에 가시고 집에는 나만 남게된 상황이었다. 자습을 하다가, 박지훈이 물었다. 일진놀이하는 그런 물음이 아니라, 정말 현생에 극이 달아서 하는 말이었다. 술.. 마실래? 나는 또 왜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훈은 힘들때마다 술을 마셨던건지, 어디서 어떻게 뚫어야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그렇다고 양아치는 아니었다 우리 둘다 공부 할건하는 학생이었다─ 술을 사와 상을 차리고, 뚜껑을 열었다. 나는 처음 마셔보는 거라 그런지 몇 모금 안 마셨어도 금방 취했다. 그에 비해 박지훈은 잘 마시다가, 취했던걸로 기억한다.
" 지후나아.. "
" …어? "
" 있잖아, 사실. 나 아직 우진이 좋아해. "
" … 나도 아직 유정이 좋아해. "
" … … "
그래도 난 너도 좋아하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가 있어? 라고 도리어 물었다. 그것도, 울면서. 아주 펑펑 울면서. 도대체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김유정과 박우진이 사귄다는 그 말을 들은 충격이 생각나서 그런지, 아주 펑펑 울었다. 박지훈은 그런 내 말에 약간 화가 나 보였다. 표정을 찡그리고는 뭐? 라고 물었다. 아니, 묻는게 아니었다. 거의 따지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박지훈의 반응에 조금 움츠러든 나는, 약간의 방어기제로 더 울었다.
" 성이름 그만 울어. "
" … … "
" 계속 울면 나 너 어떻게 할지 몰라. "
박지훈의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그때 기억이 헤롱헤롱해서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계속 운 걸로 봐선 못 들었던 것 같다. 박지훈은 그런 나를 보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말했다, 난.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그렇게 일을 치렀다.
그 다음 날 아침, 내가 박지훈보다 빨리 일어났는데,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 전날 밤 일이 다 기억났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일단 여기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고,─박지훈의 집이었다─ 두려움에 떨었다. 집을 나와 우리집으로 향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 달력을 다 찢고 싶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너무 허탈했다.
친척집에 있던 엄마가 돌아오시고 나서, 나는 계속 방에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의욕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그것때문에도 엄마랑 엄청 싸웠다. 학교를 잘만 다니던 애가 갑자기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하니 엄마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밖에서 누군가 날 알아봐 왜 학교 안 나오냐고 물을까봐 얼굴을 꽁꽁 감추고 약국을 다녀왔다. 집에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테스트를 해보니, 두 줄이었다. 그순간, 나는 박지훈이 너무 미웠다.
한창을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치지 않았다.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엄마한테는 또 어떻게 말해야할지 걱정이 앞섰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내가 너무 안 나오니, 처음에는 화나서 소리지르다가 내가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문을 따고 들어와서 기구를 보았다. 그때를 잊지못한다. 엄마와 내가 서로를 안고 대성통곡을 했던, 그때.
학교는 아예 자퇴를 하고, 밖은 절대 나가지 않았다. 핸드폰 번호을 없앨까하다가, 엄마가 밖을 나가면 엄마와 연락은 해야겠기에 핸드폰 번호만 바꾸고 없애지는 않았다.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박지훈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수도 없이 생각났다. 너무 생각나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런 내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엄마가 일이 있는 날에는 혼자 산부인과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럴때마다 너무 서러웠다. 남들은 다, 전부다 같이 올 사람이 있는데 왜 나만 이런 것인지. 남들은 다 성인처럼 보이는데, 왜 나만 이런 것인지.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신이 계신다면 신께 묻고 싶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혼자 배가 불러 아픈 것도, 엄마가 없을 때면 너무 서러운 것도, 내 안에서 아이가 발을 차는 것이 느껴지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열 달을 지내다가, 결국, 새 생명이 나왔다.
아이를 낳고, 현생에 대한 우울에 빠졌다. 여태까지는 아이를 낳기 위해 살았다고 하면, 이제 그 목표─라고 하기엔 뭐하지만─를 이룬 지금은 무얼 해야하나 싶었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을 소비하다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는 것과 공부를 병행해야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럴때마다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마침내, 나는,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그 다음 해에 수능도 합격했다.
──
그렇게 혼자 힘들게 살아왔는데, 혼자 아이보랴, 공부하랴, 너 생각하랴 힘들었는데. 너는 지금 웃는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 하필 내가 온 학교에 너가 있다. 왜일까. 3년동안 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잘 지냈는데, 왜. 대체 왜 너는 내 앞에 있을까. 나는 혹시라도 내 모습이 너에게 보일까 얼른 몸을 숨겼다.
+ 저번 글과는 다르게 이번화는 조금 우울해요!
보시고 이해 안가시는거 있으면 댓글 주세요!
아 그리구 암호닉 받습니당! [암호닉] 이렇게 써주세요!
아.. 그리고.. 중요한거... 제가 고3이에요..... 현생에 치인 고3....
며칠 뒤에 시험보는데 지금 이러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연재가 아마 늦을거예요,, 꽤 많이,, 그래도... 이해해ㅜ주세요...
아무튼 이거 진짜 공들여 쓴 것 입니다!!!!!!! 많은 사랑.. 그리고 많은 댓글 부탁드려요!!!!!!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