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조명에 등을 돌린 태일의 옆모습이 하얗게 비춰졌다, 사라졌다. 남자가 관심을 보인듯 조금씩 다가왔다. 태일의 하얀손이 가느다란 잔의 기둥을 잡아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듯 문질렸다. 바로 등뒤까지 다가온 남자는 태일의 어깨의 손을 올렸다. 태일이 몸을 돌려 남자를 보며 웃었다.
...
어스름한 방을 조금이나마 비춰주는 조명이 꺼졌다. 태일은 옷을 입고 지갑을 챙겨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은 차고 습했다. 담배말리네. 태일이 야상주머니 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으로 밤바람을 막으며 불 붙인 담배를 빨아들였다. 불씨가 빠르게 타오르며 담배의 반쯤 삼키며 다가왔다. 숨을 멈춘 태일이 입을 벌려 연기를 내뿜었다.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뿌연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몇번을 더 반복하고야 필터 언저리 까지 다가온 담배을 땅에 버려 밟았다. 태일이 택시를 잡으려 손을 뻗으려 할때 누군가 태일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태일이 텅빈 보도를 굴렀다. 태일의 눈앞으로 다가온 신발을 보고 태일은 소리없이 뇌까렸다. 씨발.
"개같은 년, 남창같이 굴지 말랬지."
지호의 정신나간 꼬라지를 보며 태일은 입술을 비죽였다. 지는 호로게이새끼 같은게. 지호가 슬금슬금 일어나 도망가려는 태일의 몸을 사정없이 발로차서 골목사이로 밀어 넣었다. 말끔했던 태일의 옷이 금새 흙 투성이로 변했다. 아오, 씨발. 태일이 쿨럭거리면서 지호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뻗어올렸다.
"좆까라, 씨발새끼야."
태일의 터진입꼬리가 호를 그으며 올라갔다. 지호의 손이 태일의 하얀 얼굴로 날아와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반질한 태일의 얼굴이 금세 찢어지고, 얻어맞은 상처로 덮혀갔다. 지호의 손에 얻어 맞으면서도 태일의 입꼬리에 걸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호는 제풀에 지친듯 헉헉 거리면서 벽에 등을 기댄체 숨을 내쉬었다. 지호가 숨을 내쉴때마다 뿌연 입김이 흩어지듯 하늘로 올라갔다. 태일이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거친숨을 내뿜으면 서도 미친듯이 낄낄거렸다. 지호를 비웃는 소리가 고요한 골목을 울렸다. 태일이 휘청거리듯 일어섰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태일이 지호를 올려다보다 비웃었다.
"어차피... 흐.. 거기서 구르나 저기서... 구르나 그 바닥인데..흐으.. 흐.. 더 구른다고 티 나는 것도 흐... 아니고..."
흐으, 흐. 태일이 숨을 몰아쉬며 흙묻은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쓸어보았다. 쓰읍, 터졌네. 태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맞은편에 서있는 지호를 올려다 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수명을 다했는지 태일의 머리맡에서 자꾸만 깜빡였다. 가로등의 불빛을 지호가 가로 막은체 서있었다.
"표지훈인척 흉내내지마."
태일이 슬슬 일어나야 겠다. 하면서 먼지묻은 야상을 툭툭 털었다. 니가 그렇게 행동 해봤자, 넌 표지훈 발끝도 못 쫒아와. 태일이 그렇게 말하곤 골목을 나갔다. 휘청이며 나가는 태일의 뒷모습을 지호는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태일이 말이 다 맞으니까. 자신은 지금 지훈을 흉내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