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니엘.
옛말부터 사람 예감이라는 건 틀린데가 없다.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귀를 막고 있는 내 모습이 히키코모리랑 비교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안 그러고서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예사 그 웃음소리를 막을 수가 없으니까. 뭔 웃음소리가 그렇게 큰 건지, 아니면 웃음장벽이 그렇게 낮은 건지. 별로 웃기지도 않는 말에 하나하나 웃으면서 현빈이 말에 맞장구 쳐주고 있을 꼴이 뻔했다. 마주치기 싫어서 처음엔 귀마개용 헤드셋을 끼고 끊었던 최신음악도 들어보고는 했으나 새로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현실감에 방 안 한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이불만 덮고 있는데, 이것도 못 할 짓이었다. 저 새끼가 어떻게 현빈이를 구워 삶았는진 몰라도 아주 얄밉기 따로 없었다. 아니, 그리고 현빈이가 그렇게 낯을 안 가리는 애였던가? 현빈이를 알아온 5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그 둘은 벌써 친해지고야 말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방 안에 틀어 박힐게 아니라 오지 말라고 으르렁 됐어야 하는 건데 벌써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였다. 친할 거면 둘이서 밖에 나가 놀던가. 왜 남의 집에 들어와서 사람을 괴롭히냐고. 집주인은 난데. 이 생각까지 이르자 방 문고리를 노려 보게 되었다. 나갈까, 말까. 나갈까, 말까.
슥- 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방문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뭐지. 싶어서 천천히 문을 열었더니.
야옹- 야아옹-
고양이 한 마리가 품에 쏙 들어왔다. 그래,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나도 모르게 흰둥이 안던 버릇이 되놔서 소중하게 안고는 등을 쓰담 거렸더니 완전 개냥이, 개냥이다. 말랑거리는 발바닥으로 내 몸이며 볼을 꾹꾹 누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동물이 몽실하고 따뜻한 체온도 오랜만이었다. 이래서 동물은 키우면 안 되는 건데. 예전 버릇 개는 못 주듯이 고스란히 버릇이 남아 고양이랑 박수도 치고 까꿍도 하고.
"지성이형."
"?"
"귀엽데이."
"예전에는 형 더 귀여웠는데, 넌 못 봤지?"
"얼만큼 귀여웠는데?"
"권현빈."
-야오옹...
아,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 귀찮아. 나가. 등 이때껏 문 닫고 버티고 있었는데, 능청능청 웃으며 둘이 눈빛 주고 받는 거에 이미 가오는 무너지고 없었다. 뭐, 굳이 가오 잡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다 이 개냥이 탓인가...
"과제 밀렸다고 하더니, 계속 그렇게 노가리나 까고 있을거야?"
"아, 형. 황금 주말을 이렇게 과제로 보내라고요?"
"그럼 D학점 맞고 또 재수강 하던가."
"내가 도와 줄긴데?"
"?"
"형, 얘랑 이번에 수업 같이 듣는데, 얘가 과 에이스라고요."
젠장, 어쩐지 더 붙어 있는다 했다. 맞냐는 듯 시선을 보내니까 예의 그 멍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투리 때문인가, 자꾸 귀엽게 보인다. 눈이 뼜나.
"외모만 놓고 보면 네가 에이스야, 권현빈."
"역시 우리 형!"
암, 그렇고 말고. 본 지 한 달 밖에 안 된 멍멍이가 현빈보다 귀여울 리가.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부둥켜 안는 현빈이를 뚱하게 바라보는 걸 보니까, 은근 기분이 좋다. 그냥 은둔자 생활 청산하고 놀려 먹고 싶을 정도로.
끼잉-
"야, 야, 떨어져, 떨어져. 고양이 운다. 얘는 쟤 거냐."
"내긴데. 형, 제 이름은 알아요?"
"강-"
"Stop. 형은 아나?"
현빈이가 떨어지고 놀란 고양이 등을 쓰다듬으며 시선 줄 생각 없이 현빈이에게 물으니까 더 뚱해져서는 물어본다. 갈색 파마머리에 꽂혀진 초록색 더블클립에 눈이 간다. 옷은 잘 입었는데, 저런건 머리에 왜 꼽고 있을까. 누가 쟤 이름 하나 모를까봐 서운한 표정 가득하게 바라보다니 좀 더 모른 척 하고 싶다.
"모르나?"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고양이한테 시선을 준 채 모질게 얘기하니까 현빈이 익숙한 듯 고개를 젖다 타이밍 좋게 울려온 카톡소리에 -둘이 알아서 해결해요. 라는 입모양을 보낸 뒤 사라졌다. 뭐야. 이런 분위기. 멋쩍어서 고양이만 쓰담 쓰담 거리니까, 쟤 주인한테 가고 싶은지 버둥 거린다.
"초면 아니다 아이가."
"..."
"형, 지성이형. 안 되요?"
아, 저 눈빛. 뭔가 내가 순진하고 어린 애를 괴롭힌 것만 같은 표정. 이 표정 하나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품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랑 함께 있어서 그런지 애써 잡아둔 방어선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딱 그 생각이 드는데도.
"돼. 얘나 데려가."
"지성이형."
"뭐."
쟤는 내가 뭐 볼게 있다고 친해지려지 모르겠다. 도통 머릿 속을 이해하지 못 하겠는 사람. 내가 줄기차게 세워 둔 영역을 침범하려는 이 고양이 같은 존재. 딱, 강다니엘은 내게 그런 존재다. 이 고양이도 내 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둘러 울면서 버둥되는 고양이를 녀석의 품에 넘겨 주는데, 한 손으로 고양이를 받쳐 들곤 떠나려는 손가락을 움켜 잡는다. 매끈하고 강하고 따뜻한 체온, 당황해 고개를 드는데 고르게 난 갈색 고양이 털과 비슷한 색깔을 띤 머리카락이 살살 흔들린다.
"내일은 이름까지 불러줘요."
이상한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