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게 음란한 말을 하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음담패설을 할 때 음흉한 표정을 짓거나 손으로 움켜쥡는 제스쳐를 취하거나 약간의 욕설을 첨부하는 둥 열을 토해내며 흥분하지만,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다르다.
그 사람은 모션 없이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음담패설을 늘어놓는데,흡사 "나 오늘 마트에서 비스킷 샀어."라고 말하는 듯 하기도 하다.
섹스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서 얘기하기보다는 섹스를 한 후 기록한 일기를 찬찬히 읽어주는 듯 한 형식의 스토리텔링인데 굉장히 세세하게 파고들지만 말투는 점잖은 편이라 야하게 들리지는 않아도 묘하게 음란한 것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매력있는 음담패설 정도?
들으면 좋았나?끝내줬나?등등의 궁금증이 생기기보단 아,섹스를 했구나.하고 무심코 동의를 하게 되는 그런 매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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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왔네.계란후라이 해 줄까?"
"밥 먹었어요."
사람은 그래 그럼,이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이 사람은 딱히 뭐라고 칭할 관계가 아니여서,나는 그냥 사람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사람아,하고 부른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ㅡ딱히 부를 일도 없다.ㅡ혼자 생각할 때 이 사람은 그냥 사람이다.
성인이고 남자인 사람.끝.
나는 올리브색의 까칠까칠한 소파 위에 쓰러지듯 털썩,앉았다.
발이 답답해 한쪽 발을 반대쪽 발 위에 문대며 노란 기린이 그려진 양말을 차례대로 휙 벗었다.
양말을 교복 치마 주머니에 쑤셔넣고 미니 테이블 위에 맨발을 올려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발 하나는 참 깨끗하게 잘 유지한다.안 그랬다면 남의 집에서 함부로 양말을 벗어제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계란후라이 말고 커피 주세요."
"있긴 한데 넌 그냥 우유나 마셔."
커피를 주문하면,늘 우유가 온다.
사람은 냉장고 문을 열고 맨 밑의 큰 흰우유1000ml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가지런히 나열된 생수통 중 하나를 꺼냈다.
저 흰 우유는 마셔도 마셔도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아니면 꾸준히 마트에서 사 오거나 둘 중 하나.
사람은 생수통 뚜껑을 열고 병째로 꿀꺽꿀꺽 마셨다.가족과 함께 사는 나로썬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난 항상 루니래빗이 그려진 플라스틱 컵에 물을 따라 마신다.너무나 아이스러운 방식이다.그래서 저렇게 병째로 물을 마시는 건 왠지 어른의 특권으로 느껴진다.
사람이 입에 묻은 물기를 손등으로 흝곤 흰우유를 유리컵에 따라 거실로 걸어왔다.
나는 허리를 수그려 컵을 받아들었다.사람은 미니 테이블 옆에 털썩 앉고 날 째려봤다.
"너 그거 소파에서 마시지 마.흘린다."
"무슨 결벽증 있나...칠칠맞게 안 흘리니까 참견 마요.그리고 소파 별로 비싸보이지도 않는데."
사람은 한숨을 쉬곤 니가 말한다고 듣냐,중얼거렸다.
나는 유리컵 속으로 입술을 넣어 흰 우유에 입을 대고 보글보글 거품을 불어댔다.
사람이 눈을 찡그리며 으,드러.말했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튀지 않을 선에서 거품을 냈다.
아,음담패설.나는 떠올렸다.
"야한 이야기 해 주세요."
"....마치 전래동화 이야기 해 주세요,하고 말 하는 것 같네."
"실제로도 그렇게 설명해 주니까."
"...이러면...어린 애한테 성에 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어리다고 다 순수한 건 아니니까 그런 죄책감은 버려두고."
우유를 한 모금 들이키고 소파 위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사람을 쳐다보았다.
사람은 몸을 틀어 소파에 몸을 기대고 날 마주보았다.
"어떤 야한 이야기 해 줄까."
"좀 색다른 경험?"
"색다른 거?"
"응."
"남자랑 한 거 얘기해 줄까?"
나는 눈을 찌푸렸다.
"거기까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아,그렇지.그럼...친구의 애인와 섹스한 거?"
"아.비도덕적이다."
"그래서 싫어?"
"좋은데.해 줘."
"그래."
&
야한 이야기가 끝났다.배가 고팠다.
"아까 그 계란 후라이 아직 유효해요?"
"물론.왜?배고파?"
"전 이상한 게,섹스 경험담을 들으면 성욕이 끓어오르기보단 식욕이 끓어올라요."
"특이한 타입이네."
나는 우유가 조금 남은 우유컵을 톡,건드렸다.손톱이 길어서 청량한 소리가 났다.
손톱 좀 깎아.귀찮아요.그럼 말고.
사람의 손톱을 흘깃 보았다.긴 손가락에 대조되게 짧고 가지런했다.
사람은 바지를 털고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토브 위 선반의 후라이팬을 꺼내고 몸을 수그려 올리브오일을 꺼내는 뒷모습.
나는 사람을 보면서 무심코 등이 참 곧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그런데요."
"응?"
프라이팬에서 치지직,하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려왔다.
고소한 계란 냄새가 솔솔 풍겨오자 나는 더욱 배고파져 책상에 놓인 우유를 꿀꺽꿀꺽 들이키고는 빈 잔을 내려놓았다.
불러놓고 대답을 하지 않자 답답한 듯 재촉하는 목소리로 뭔데,하고 사람이 물었다.
"그...남자랑 했을 때요."
"어."
"위였어요,아래였어요?"
"....뭐?"
"깔았냐고요 깔렸냐고요."
"너 이 어린 게 못하는 말이 없..."
사람은 잠시 프라이팬을 들던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뒤돌아보더니 이내 체념한 듯 위였지,라고 답했다.
"위였어요?"
"내가 깔릴 타입은 아니잖아."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