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박우진... 입니다."
"......"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는 사실은 이미 이 만남을 주선한 친구놈에게서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것이지만, 정말로 이렇게나 낯가림이 심할 줄이야. 다니엘, 그러니까 의건은 딱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밤이 아닌 낮에도 돌아다니고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닥치는 대로 잡은 소개팅이었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아. 어색한 기류가 둘 사이를 오고가서, 저도 모르게 목이 탄 의건은 눈 앞에 보이는 투명한 유리 물잔을 쥐어잡고 물을 목구멍으로 삼켜냈다.
제 앞에 앉은 남자가 이미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이 굳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딱 질색이었는데. 휴. 티나지 않게 우진 몰래 한숨을 내쉰 의건은 예의 그 사람 좋은 강아지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강다..."
헉.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은 그가 우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저 멀뚱멀뚱하게 저를 쳐다보는 우진의 얼굴이 다행스럽다고 해야하나. 의건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갈뻔한 호스트명을 목 뒤로 삼켜내고선 다시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저는 강의건이라고 해요."
"아... 강의건 씨..."
"......"
'의건 씨' 도 아니고, 이름 석 자 정확하게 '강의건 씨' 라고 부르는 건 또 뭐냐고. 눈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우물쭈물거리는 우진의 상태를 한 번 흘깃 쳐다 본 의건은 살짝 고개를 숙여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 구두를 내려다 보았다.
이건 수연 누나가 사줬던 거고, 내일은 누가 예약이 잡혀있지? 수미 누나? 예진이? 삐끼, 호스트가 아니라 제법 사람답게 놀기 위해 나왔던 소개팅에서마저 일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면, 이 남자는 대체 얼마나 따분한 사람이라는 건가. 벌써부터 앞으로 펼쳐질 어색하고 지루한 소개팅 시간이 생생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집에서 잠이나 잘 걸. 뭐하러 쓸데없이 소개를 시켜달라고 부탁해서.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선 고개를 들자 눈앞에 마주치는 것은.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죄송해요. 집에 가셔도 돼요."
"...어, 네?"
"친구가 저 너무 걱정된다고 소개팅 보내준거라서... 불편하시면 먼저 일어나셔도 되는데."
젠장. 내가 너무 티나게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은 건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당황함을 감춰낼 수가 없어서 의건은 또 바보처럼 우진에게 '네?' 라는 말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계산은 제가 할 테니까,"
"아니에요."
"네?"
뭐, 딱히 취향이 맞을 것 같진 않지만.
"전 되게 좋은데. 우진 씨."
나름 잘 나가는 호스트 이름에 먹칠 안 하게 같이 좀 놀아줄까.
응?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낯을 가린다는 사람한테는 너무 훅 치고 들어간 건가? 부담스러웠나? 대답이 없으니 또 불안한 건 이쪽이다. 제가 한 말을 끝으로 아무런 이야기도 오고가지 않는 테이블이 소름돋을만큼 민망해서, 의건은 홀로 팔뚝을 쓸어내리다 고개를 살짝 들어 땅바닥에 시선을 박아두다가 이번엔 아예 카페 테이블에 이마를 쿵-, 하고 박아버리는 우진의 꼴을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우진 씨, 지금 뭐하시는..."
"...저, 저도..."
"네?"
"저도 좋아요..."
저도, 강의건 씨 좋아요...
소심하고 나른한, 귀여운 소년 같은 고백. 아아. n년 째 호스트를 해서 이젠 어떤 달콤한 말에도 끄떡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면역력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었나보다. 테이블에 볼을 찰싹 눌러붙인 채로 의건의 눈치를 살짝 보는 우진의 얼굴이 이미 붉게 물들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의건은 자신마저도 귀 끝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미친. 완전 미친. 진짜 미쳤어.
그것은 벌써 몇 년 째 호스트로 화려하게 이름을 날리는 강의건, 그러니까 강다니엘에게 소심하고 낯가리는 이 남자가 어쩐지 사랑스럽게 보이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 * *
"소개팅 어땠어?"
"......"
"야. 다니엘. 야."
"......"
대답이 없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거울로 수트 차림을 바라보며 옷에 붙은 실밥을 떼어내는 와중에도 다니엘은 멍한 눈으로 입술만 잘근잘근 씹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진짜 미치겠네. 잔을 닦으며 잠 좀 깨라며 타박하는 동료의 말에도 도무지 제정신이 돌아오질 않았다. 이건 잠에서 깨야하는 게 아니라, 박우진한테서 깨야하는 일인데.
오늘은 손님이 몇 시에 있든말든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온 신경이, 모든 우주가 오로지 박우진이라는 사람한테로 쏠린 기분이었다. 삐끼 일 하면서도 그런 느낌은 받아본 적 없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 그런 비슷한 것이 잔잔한 마음에 돌을 던진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연락이 올 생각을 안 하냐. 다니엘은 그 흔한 진동 한번 울리지 않는 휴대폰이 원망스러워졌다.
(중략)
"...저 키스 되게 잘하는데."
"네?"
"우진 씨. 저랑 키스할래요?"
텁, 도리도리.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행동이 마냥 애기처럼 보인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의건은 제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손을 뻗어 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덧니 콤플렉스예요?"
그러니까 또 고개를 끄덕끄덕. 하여간 박우진 귀여운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속에서부터 사랑스러움을 끌고나와서 하트를 몸 밖으로 뿅뿅 내뱉는 사람 같았다. 딸기, 토마토, 어쩌면 그것들보다 훨씬 더 붉어진 얼굴로 입을 두 손으로 막은 우진의 눈이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정작 그러는 본인도 자신과 키스하고 싶은 게 눈에 띄게 보이는데, 뭘. 입꼬리가 스물스물 올라가고, 결국 의건은 허리를 숙이고야 말았다.
쪽.
입을 막아버린 두 손등 위로 가볍게 맞닿다 떨어지는 의건의 말캉한 입술에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선 귀까지 새빨갛게 붉히는 꼴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이쯤에서 또 한방 날려줘야겠지? 의건은 소리내어 웃으며 우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 덧니 되게 좋아해요."
"......"
"우진 씨랑 키스할 때면 더 좋아해."
아아. 결국 바람빠진 풍선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우진을 흐뭇하게 바라본 의건은 저도 따라서 간질간질한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지긋하게 누르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처음에 생각한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참른 좋아합니다ㅠㅠ처음엔 낯가리다가 나중엔 귀여움 뿜는 우진이 최고됩니다ㅠㅠ
사투리쓰고 싶은데 제가 사투리를 몰라서 결국엔 서울말쓰는 녤참이네요! 지금 그들은 서울에 있으니까요... 응...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