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에게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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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랬더니 한 번을 안 오냐-"
그 애가 말했던 일주일보다 딱 그 만큼이 더 지난 2주 뒤의 학교에서 그 아이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예의상 한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제 딴엔 진심이었나 보다. 전에도 말했다싶이 우린 친하지 않은데.
내가 박지훈의 병원을 갔던 그 날 이후로 우리에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박지훈은 내게 자꾸만 친한 척을 해댔다. 처음엔 이걸 받아줘야하나 싶었지만 계속 엮이게 되서 그런 건지. 어느새 나도 그 아이가 없으면 허전해졌다.
우린 친구가 되기로 했다. 딱히 날짜가 있고 그런 건 아니지만. 여하튼 우린 친구가 되기로 했다. 초여름이 막 시작되려던 때의 일이었다.
혼자 먹던 밥을, 무리에서 이탈해 온 그 아이와. 혼자 하던 하교를, 함께.
언젠가부터 옅은 박하향이 코에 스친다. 여름이 벌써 훌쩍 다가왔음을 느끼게 했다. 이 박하 향 같은 여름 냄새는 박지훈에게서도 난다. 아마 미처 지우지 못한 병원의 냄새리라. 여전히 몸이 안좋은 그 아이는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 했다. 천식은 더욱 심해졌는지 나와 있을 때에도 자주 호흡기를 찾았다. 봐도봐도 그 이질적인 호흡기는 적응이 되질 않았다. 고통스러워 하는 네 모습 역시.
우린 평범하게 여름을 보냈다. 시험이 다가올 때엔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기도 했다. 시험이 끝나면 함께 놀러가기도 했고, 갈수록 뜨거워지는 여름에 방학에는 시골에 있는 그 아이의 할머니 댁에 놀러가기도 했다. 여름 밤에 함께 드러누워 별들을 보기도 했다. 조용히 졸업하자가 목표라서 이제껏 혼자 아닌 혼자이던 내게 그 아이는 다가와줬고 우린 이렇게나 가까워졌으니까- 가장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
함께 보낸 여름날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다시금 시험기간이 되면 함께 공부를 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을 보냈다. 너는 사람이 참 달았다. 참 달아서 주변 사람까지 행복하게 했다.
어느샌가 완연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의 향이 갈수록 짙어졌다. 그 향이 초록색을 띤 나무들과 퍽이나 잘 어울렸다.
박지훈은 나를 자주 걱정했다. 갑자기 내가 야간 자율 학습을 신청해버린 탓에 내가 밤엔 혼자 가게 되었으니까. 왜 제게 말해주지 않았냐며 한껏 삐져있던 때도 있었다. 괜찮다는 나를 끝내 말리며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기도 했지만 그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 아이가 오지 않았더래도 외롭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름 밤과 함께 걸었으니까. 계속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워서 끝자락엔 항상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을 찍어내곤 했지만.
죽죽 비가 오던 날의 밤이었다. 학교 현관 앞에 서서 그냥 가만히 내리는 비만 보고있었다. 우산도 없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가뜩이나 짜증나는 일이 있어 우울했는데 이때다 싶어 내리는 비가 참 원망스러웠다. 집까지 뛰어가야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넌 참 신기해.
난 네게 연락도 안했는데 넌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박지훈이 저만치서 우산을 들고 걸어왔다. 나를 발견했는지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너, 비 맞고, 올까 봐."
네가 조금 가쁜 숨을 달래며 말했다.
"뛰어왔어?"
"어.. 조금?"
"힘들었겠다. 고마워."
너는 그냥 슬쩍 웃어보이고는 내 손에 우산을 쥐여줬다. 함께 걷는 길이 적막했다. 우산에 타닥이는 빗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애는 느린 내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어느샌가부터 우린 더이상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집은 우리 집보다 10분 정도 더 가야 있는 곳이라 넌 항상 내가 들어가는 걸 지켜보다 가곤 했지. 말 한 마디 나눠보지 않았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비가 조금 더 거세졌다. 도통 모를 장마가 시작된 것 같았다.
"나 올 줄 알았어?"
"아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너는 몸이 약해서. 이 비를 맞으면 분명 감기에 걸릴 텐데. 조금 걱정스러워진 마음에 발걸음을 조금 빨리하자, 그런 내 걸음에 너는 또 나에게 속도를 맞춰왔다. 저만치에 우리 집이 보였다.
"많이 좋아해."
주어가 없는 뜬금없는 말에 당황한 쪽은 내가 되었다.
".....친구로서."
뒷 말이 이어졌다. 뒷 말이 나오고 나서야 나도 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도 좋아해."
무슨 이유에선지 너는 표정이 어두웠지만
"친구로서."
내 말이 끝나자 너는 옅게 웃어보였다.
곧 집 앞에 도착했고 너는 언제나처럼 내가 들어가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돌아갔다
박하 향이 덜 한 밤이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는 멎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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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스위티!를 써야하는데 자꾸 이 아이를 쓰네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