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입술은 언젠가 그 끝을 고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나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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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총 2번의 결혼을 했다.
첫 번째 결혼은 혼전임신으로 인해 하게 됐다고 했다. 24살, 엄마의 첫 연애, 2년의 연애 끝 하룻밤의 실수. 엄마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 남자와 결혼할 줄 몰랐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화목했고 엄마와 그 남자는 알콩달콩하고 금슬 좋은 부부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러다 5살의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인 일이 터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출장을 갔던 그 남자의 차가 사고로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때 엄마는 임신 27주차였다. 엄마는 그 충격으로 유산을 했고 꽤 오랫동안 엄마는 괴로워했다. 5살인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런 엄마를 작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조금 더 크고 알게 된 사실은 그 사고 당시 아빠라는 작자는 혼자 차에 타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조수석에는 어떤 여자가 타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같이 타던 여자와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죽어있었다. 왼손 약지에는 엄마와 맞춘 결혼반지가 아닌 다른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마, 같이 타고 있던 그 여자의 왼손 약지에도...
나는 그때서야 그 당시 엄마가 그렇게 많이 힘들어했던 게 그 남자의 죽음 뿐 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임신안정기를 벗어났음에도 왜 엄마가 유산을 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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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결혼은 내가 중학생 1학년 때였다. 아니, 결혼이랄 것도 없었다. 결혼식 날을 잡다가 파토가 났으니까. 그리고 그 원인은 나에게 있다면 나에게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언젠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왔다. 집에는 불이 꺼져있어서 아무도 없나 했는데 최근 동거를 시작한 예비아빠라는 인간이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니 딱히 반대를 안 한 거지 그 인간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심드렁하게 옷을 갈아입고는 거실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그 인간이 내 옆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티비가 보고 싶은가 보다, 했는데 뭔가, 뭔가 이상했다. 자꾸 손으로 내 허벅지를 만지는 게 느껴졌다. 뭐하는 건가 싶어 그 인간을 쳐다보니 술을 얼마나 쳐 마신건지 술 냄새가 진동했다.
“뭐 하는 거에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술을 마셔도 곱게 마시라고 한숨을 쉬며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그 남자는 엄청난 악력으로 나를 잡아채더니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핥기 시작했다. 그 와 동시에 손으로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온 몸에 벌레가 기는 더러운 기분에 반항을 했지만 성인 남자의 힘을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애 딸린 미망인이랑 결혼한다 했겠어? 미쳤게? 니 엄마 결혼시켜주고 싶으면 닥치고 가만히 있어.”
너무 놀라고 무서워 눈물도 나지 않았다. 다행히 일이 치러지기 전에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 덕에 미수로 그 칠 수 있었다. 엄마가 그 남자를 미친 듯이 패면서 쫓아내고 나서야 안심이 된 나는 엄마의 품에서 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더럽게 느껴져서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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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를 믿지 않게 됐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도 고백하는 남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내 대답은 변함없었다. 연애할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면 열에 아홉은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럼 포기 안하는 한명은 누구냐고?
박우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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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과 어울리는 걸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밥을 먹거나 수업을 다닐 때 친구인 한나랑만 어울렸다. 사람들은 종종 남자에 전혀 관심 없는 나와 남자라면 껌뻑 죽는 한나가 친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나에게 한나는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박우진을 처음 만난 날도 한나가 주선한 술자리에서였다. 나랑 한나 박우진 그리고 남자 동기 두 명과 함께였었다. 평소 술에 환장하는 나이지만, 술자리에 남자가 끼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들의 대화에 끼지 않은 채 묵묵히 술만 마셨다. 나 잠시 나갔다 올게. 한나가 일어났다. 나도! 옆에 있던 남자애가 같이 일어났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나보다 (한나는 술 먹고 나면 꼭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생각하며 안주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나는 화장실 좀. 다른 동기 남자애마저도 일어났다. 5명이 있던 테이블에 3명이나 빠지니 테이블이 휑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나와 박우진 둘이었다. 나도 박우진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말없이 안주만 깨작이고 있었다. 그러다 박우진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한다.”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너무 뜬금없어서 처음에는 옆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들은 줄 알았다.
“...우리 오늘 초면 아닌가.”
“응. 아닌데.”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헛소리냐고 말을 하려하는데 초면이 아니라고 말하는 박우진의 얼굴이 너무 확신에 차 있어서 따지고 들지 못했다. 나는 그저 대답 없이 애꿎은 안주만 괴롭혔다. 평소였다면 그런 생각 없이 따지고 들었을 건데 왜 그랬을까. 나조차도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한나에게 물어서 이름을 알아냈다. 박우진, 박우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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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가 연애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한나는 내가 아닌 남자친구와 다니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나는 혼자 다니게 됐다. 어쩌다 혼자가 아니다 싶을 때의 내 옆에는 박우진이 있었다.
그 날도 남자친구와 밥을 먹는 다며 나를 두고 홀랑 가버린 한나를 보며 집 가서 밥 먹고 다음수업 들으러가야지 하고 있던 차에 밥 먹으러 가자. 라고 말하면서 나를 끌고 가는 박우진에 어쩔 수 없이 단 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아직 연애할 생각은 없는 거가.”
밥을 반이나 먹었을까, 뭐하고 지내? 잘 지냈어? 따위의 안부를 묻는 담담한 투로 뜬금없이 폭탄 발언을 하는 박우진에 나는 사래가 들려 켁켁 거리고 있었다.
물을 떠주고는 내 등을 툭툭 두드려주는 박우진의 손길은 퍽이나 다정했다.
“그마이 놀랄 일이가. 여기 물.”
박우진이 나에게 한, 두 번째 고백이었다.
*
네 여러분...죽지도 않고 또 왔어요...
순애보 우진이가 보고싶어서 이렇게 자급자족을...ㅋㅋㅋ
제가 끈기 없는 사람이라 연재하는데에 자신이 없어서 이것도 단편으로 생각했었는데
이 내용도 넣고 싶고 저 내용도 넣고 싶고 계속 욕심을 내다 보니 네...
결국 연재하기로 했어요...
근데 저는 분명 경상도 사람인데 사투리가 왜 이렇게 힘들까요... 쓰는데 어색해요...ㅠㅠ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쁘게 봐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