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_ 잔나비
카제하야 정세운
w. 노래야 세운해
박우진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박우진은 나와 같은 중학교였다. 박우진은 중학생때부터도 인기가 많았다.
장난기 넘치는 모습에,
또 그게,
여자애들한테는 한없이 소심해서 말도 안거는.
또 박우진은 춤을 좋아했다. 학교 동아리에서 춤을 췄던 박우진은 체육대회나 축제날이 되면
물 만난 고기마냥 헤엄쳐댔다. 또 거기에 여자애들은 허우적거렸고.
나는 소위 말하는 '박우진 파'가 아닌 소수 중 한 명이었다.
전교생의 반이 좋아하는 박우진, 난 그 경쟁에 뛰어들 마음도, 생각도 전혀 없었다.
중2 때 박우진 레전드로 남았던 춤을 췄을 때도 나는 무미건조 했으니까.
사건은 중3 때 일어난다.
댄스부의 친구가 내게 공석이 된 자리를 맡아달라며 여자부원으로 날 추천했고, 나는 댄스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평소엔 관심도 없어서 맨 뒤에서 휴대폰만 만진다고 무대도 잘 못봤었는데
댄스부로써, 남자팀 다음 여자팀 순서를 기다리면서
무대 옆에서 가까이 본 박우진의 춤에 나는 반했다.
조명이 반짝였고 박우진은 춤을 췄고, 나는 빠졌다.
무대에 내려와선 그 숫기 없는 애가 땀은 뻘뻘 흘리면서도
내 손에 들린 물만 빤히 쳐다보며 위에 입은 흰 박스티를 펄럭일 때,
나는 박우진에게 물을 건네줬고 박우진은 고마워 라고 하며 물을 받았다.
나는 아마 물을 건네 줄 때 스친 손에, 그 향이 또 손에 남아서 박우진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닐까 요즈음도 생각한다.
그 후, 중3 시절 내내 내 별명은 일출여주 였다. 또는 이또출
일반 출근 여주 라는 뜻과 이여주 또 출근하네 라는 뜻이었다.
내가 박우진의 어장에 들어간 날이다.
8.
2학년 마지막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 먼저 다가오는 축제가 있다.
학교는 축제가 다가올 수록 어수선해졌다. 바로 박우진의 축제 참가여부 때문에.
수학시간에 이따금씩 마주치는 정세운은 매번 지쳐보였다.
원래 무기력해 보기이도 해서 이게 피곤한건가 하고 물으면 평소랑 같다고 대답을 해 무안을 주기도 했다.
" 야. 오늘은 진짜 피곤한거 맞지. "
" 확신해? "
" 오늘은 확신한다. "
" 맞아. 피곤해. "
정세운은 선생님이 아직 들어오기 전이라고 고개를 책상에 파묻으면서 대답했다.
요즘 왜 바빠 라는 질문에 정세운은 고개는 여전히 팔에 붙인 채 대답한다.
" 망할 축제랑 바로 다음 주 시험,
말 안듣는 반 애들 때문에. "
그 말에 나는 이제 정세운의 고운 입에서 나오는 욕설엔 덤덤해졌고 그저 웃겼다.
정세운이 내가 정말 편해지긴 했구나 싶은 웬지모를 뿌듯함과 예전에 느끼지 못한 친근함을 느껴서.
9.
하루가 지나고 집에 오니 한껏 들뜬 모습의 엄마가 치장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어디 가? 라는 질문에 새로 샀다는 립스틱을 들고는
" 엄마가 저번에 마트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 마주쳤다 했지?! 오늘 카페에서 수다 떨기로 했어. "
꺄르르 거리시며 신이난 채 나간 엄마는 그 후 3시간 뒤, 전화로 날 맞이했다.
#
" 어머 어머, 세운이 정말 잘 키웠다, 얘. "
" 에이, 아니에요. "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서 능청스럽게 웃음을 띄우고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이 왜 정세운인지는 나도 의문이다.
' 딸~ 엄마가 말한 친구 있지? 같이 저녁 먹으려는데 올래?
엄마 친구도 아들 부른다니까 여주도 와~ '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데
웬 고깃집에 들어가니 정세운이 앉아있었다.
아줌마 둘의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이제 배도 부른데.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두 분은 학창시절 얘기부터 시작해서 남편 얘기, 우리 얘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만지기도 지칠 때가 왔다. 나는 앞에 앉은 정세운의 다리를 신발 앞 코로 툭툭 차기 시작했다.
허공을 두 세번 가로지른 내 신발 앞 코는 곧 딱딱한 것을 강하게 쳤는데
안봐도 그게 가느다란 정세운의 종아리임을 알았다.
" 아, "
어머, 왜그러니 하면서 의문을 품은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정세운은 오른팔을 내려 다리를 만지는 것 같더니
아니에요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나를 째려보며 뭐라고 읊조렸는데
나는 보고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들을테니 못본 척 했다.
정세운을 다시 쳐다보자 이번에는 뜻이 통했나보다. 무기력하고 힘없게 어깨를 풀고 앉아있더니
'갈래?'라는 모션을 취해왔다. 미간에 힘을 주고 강하게 끄덕- 했더니 그 모습을 보고 또 살풋 (비웃듯이) 웃더니 고개를 내 쪽으로 끄덕해보였다.
저 턱짓의 뜻은,, 나보고 말하라고? 한창 얘기중인 엄마들 사이엔 무엇도 낄 수 없다. 너가 말해봐 라고 입모양을 보였더니 어깨를 살짝 올렸다 내린다.
공부 핑계 대면 정세운이라면 보내줄텐데.
우리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 먼저 눈치 챈 세운이네 어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얘네 가고싶은가봐, 우리가 너무 우리끼리 놀았지? 하고는 갑자기 우리에게 화제가 옮겨졌다. 이걸 원한건 아닌데..
둘이 옆 반이랬나? 이런 우연이 있니~ 부터 시작해서 세운이는 반장이라구? 공부도 잘함담서~ 를 중간으로 얘기가 쉼없이 이어졌다.
한창 공부가 주제가 되어 얘기 중이었는데 주제는 우리 여주는 다른건 괜찮은데 수학이 문제야~ 였다.
아 진짜 부끄럽게, 엄마는 아줌마와 이 동네 수학학원은 어떻니, 저 동네 수학학원은 어떻니를 시전하다가 얌전히 호응하던 정세운에게 먹잇감을 던졌다. 세운이는 수학도 잘한다며, 전교권 아니니, 훤칠하니 잘생겼니, 둘이 같은 학교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학원까지~, 세운이는 공부 어떻게 한대? 를 끝으로 엄마가 정세운에게 말했다.
" 세운아, 그러지 말고 가르쳐면서 공부할 겸 우리 여주 좀 데리고 공부 좀 해볼래? "
하고 말이다.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정세운을 쳐다봤다. 이거 다 진담 아닌거 알지? 그냥 던진거야 엄마가.. 응..? 그냥 평소처럼 하하 거리고 넘어가자.
눈이 마주치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눈을 어색히 접고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세운아 그거 아니야.. 라는 표정으로.
" 물론 아줌마가 빈말로 말하는거긴 한데 복습도 되고 안그래? 호호 "
아니야, 엄마 그거 빈말 아니야.
" 정세운이 다시 눈을 맞춰온다. 그리고 꽤나 익숙한 표정을 짓는데,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 앞에서의 표정이 아닌
내가 박우진을 좋아하는 날을 들킨 날, 딱 그날의 표정으로,
" 그럴까요, "
라고 말해온다.
" 제가 여주 도와서 해볼게요. 아주머니 말씀처럼 공부도 되구요. "
아직도 생생하다.
정세운의 표정과 말이.
어머 그래줄래? 하고 다정이 묻는 엄마와 호응하는 정세운, 거기에 대고 아니 난 필요없어라곤 하기엔 너무나도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정세운의 어머니의 표정.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져선 난 말을 잇지 못했다.. (입틀막)
10.
정세운에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이여주를 수학시간마다 괴롭히는 것.
축제를 삼 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수학 선생님이 대학교 교수가 휴강을 때리듯이 자습을 때리고 교무실로 가셨다.
정세운은 자습 때도 열심히 공부할 거란 예상을 깨곤 엎드렸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곤 안심하며 수학학원 숙제를 복습하고 있었다.
축제가 끝나면 당장 기말이 일주일정도 밖에 안남기 때문에 공부가 급했다. 아마 정세운은 축제가 끝나고부터 도와준다고 한 것 같은데.
고등학교가 같으니 다 주변에 사는게 당연했다. 엄마는 즐겁게 정세운의 엄마와 자주 만났고 나와 정세운은 축제 핑계로 살았지 뭐.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끙끙대며 붙잡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고작 마지막 예제도 못푸는건가.. 샤프를 잡고 부들부들거리며 애꿎은 x나 y만 적고 있었다.
" 함수를 이용해야지. 여기는- "
아, 깜짝이야.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고개를 돌리니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 한 쪽 팔을 책상에 기대고 머리를 받친 채, 내 수학책을 보면서 설명하는 정세운이 보인다.
" 집중 안해? "
어어.. 얼떨결에 정세운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었다. 정신차리니 이상한 함수표를 그리고 있었고 답을 내고 있었고.
이런 문제는 푸는 방식 다 비슷하니까 예제 외우면 좋아-
언제 눕히고 있던 허리를 핀 건지 몸을 살짝 틀고는 문제를 샤프로 설명하고 있다. 문제에서 시선을 떼고 보니 정세운의 얼굴이 가깝다. 볼에 점이 있구나. 눈에는 가까이 서지 않으면 안보일 듯한 속쌍커플이 얇게 한 줄 자리하고 있었다.
" 여기서부터 다시 유형이 같아지잖아. 함수값에 - ........이여주 듣고있지, ..이여주- "
너무 멍하니 봤는지 정세운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못했다. 문제에 집중하면서 설명하고 있던 정세운은 대답이 없는 내가 답답했나보다.
안돼, 고개 돌리면 안되는데.. 내가 보고 있던 걸 들킬 것이다. 빨리 시선을 회피하려 했지만 정세운이 고개를 휙 돌려선 나를 본다
" 왜. 새삼 잘생겼어? "
정세운이 갑자기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 응. 새삼 잘생겼다. "
#
내 당돌한 대답에 잠시 당황해보이던 것도 잠시, 정세운은 ' 어쭈, 이여주 많이 컸는데. ' 하곤 능청스레 질문을 마저 설명했다. 근데 확실히 잘 가르치킨 한다.. 머리에 쏙쏙 들어와. 역시 공부는 머리로 타고 나는건가,
정세운이 가르쳐준대로 하다보니 술술 풀린다. 삘 받았단 말이지. 거침없이 연습장에 공식을 적어내려가면서 새삼 정세운의 머리에 감탄했다. 진짜 특출나단게 이런거구나.
" 야, 근데 너 진짜 잘 가르친다. "
" 알아. "
" 아니 빈말아니고, 수학쌤 해도 될 듯. "
" 그래서 하잖아. "
아, 내가 또 말을 잘못 뱉었다.
" 내가 너 가르쳐주기로 했잖아. 설마 잊은건 아닐테고. "
하하. 잊었을리가 있나,
있다. 축제라서 잠시 신나서 잊었나보다.
어찌나 학교가 떠들썩한지 축제하나에 학교가 흔들흔들한다. 댄스부 축제 때 이거 춘대! 저거 춘대! 당연 그 중심에는 박우진이 중심이었지만.
관심을 안가질래야 안 가질수가 없다. 난 박우진의 춤추는 모습에 첫 눈에 반했고 이제껏 좋아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정세운에 말에 대답을 해야하는건가 싶어 고민중이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막상 배워보니 나한테 실이 될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긴 했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중이었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쳐다보니 정세운이 책상에 얼굴을 기댄채 고개는 내 쪽으로 돌려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 ..왜, 왜 보고있어. "
" 그냥. "
" ...... "
" 대답 생각하는게 웃겨서. "
" 웃긴 건 뭐야, "
" 이여주. 내가 무서워? "
" ...으음... 쪼오끔? "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조오금을 표현해내자 정세운이 눈에 주름을 만들며 웃는다. 그건 하트잖아- 라고.
어어- 하트긴 하튼데 그걸 또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라해.. 당황한 표정을 지었더니 또 얄궂게 웃어보이며 말한다.
그렇게 까지 또 당황할 일이냐며.
둘이 장난을 치다 정세운은 여전히 책상에 몸을 기대고 있었고, 난 샤프를 쥔채로 간단한 문제만 이어가는 중이었다.
잠시 조용해진 틈에 창문으로 축구하는 남자애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저 중엔 박우진도 있겠지,
문득 박우진의 활보를 볼 수 있음에도 안 본 건 처음인 것만 같아서 신기했다. 이렇게나 신경 안쓸 수가 있었나? 그렇게 안보려해도 턱을 괴고 보고 있는게 자동동기화였는데,
박우진을 찾아볼까 싶어 창가로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정세운이 말을 걸어온다.
" 이여주. "
" 응. "
" 왜 좋아해? "
" ..... 뭐가? "
" 박우진. "
남 일엔 하나도 관심 없게 생겨선 또 물어올 땐 돌직구로 들어온다.
" 그게 왜 궁금해? "
그냥, 오래 좋아했다는게 신기해서. 정세운이 나를 계속쳐다본다. 창가로 돌리려던 시선을 정세운에게 고정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어쩌다가,
저 축구하는 모습까지도 뒷꽁무늬만 쫓아다니게 된걸까,
정세운은 자초지종 물어왔다. 몰라, 라고 대답하면 그런게 어디있냐고 물어오고 그냥, 이라고 하면 눈을 가늘게 실눈으로 만들면서 나를 난처하게 했다.
근데 내가 아는 정세운은 이런 스타일 아닌데 진짜. 남 일에 과하게 관심두지 않는 성격인 것 정도는 안다. 남을 난처하게 하지 않는.
" 근데 너 원래 이런 성격이야? "
" 뭐가. "
"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원래 좀 무관심한 편이잖아. "
" 무관심한 거 맞는데, 그러게, 이상하다. "
" 그러니까, "
" 이상하게 계속 궁금해서, 나도 이유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대답 좀 해줘, 여주야. "
처음 말을 튼 이후로 다른 친구들을 부를 때처럼 다정히 이름을 부른 적이 없는데
정세운은 알고 있나보다.
저가 그렇게 나오면 거절 할 수 없다는 것을.
주말에 와야하는데(must) 기다려주시는 분들 덕분에 으쌰으쌰해서 오늘 왔습니다!
갈수록 고심이 많이 되는 스토린데 재밌게 봐주시고 재밌다는 한 문장이 있는 거라도 댓글 달아주시는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틈날때마다 댓글복습하면서 글 쓸 욕구 생성중이에요!
사실 요즘 취미는 독방 눈팅하면서 카제하야 추천글 찾는 취미에요..ㅎ
많은 분들이 제 질문에 답해주셨는데 제목은 원래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짤을 많이 넣어봤는데 (계속 딱 이거!가 많아서 주체못함;)
불편하면 말해주세요!
노래를 들으시고도 알겠지만 저는 진짜 학창시절을 추억했을 때 떠오르는 그런 분위기로 글을 쓰려고 하는중입니다
독자님들도 느끼셨으면 좋겠고 피드백 항상 고맙고 암호닉-♥ 추천해주신 분들 너무 고마워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글 밑에 정리하겠습니다! 글 먼저 어서 보여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헤헤
저는 또 혐생 살면서 으쌰으쌰해서 조금씩 써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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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글 간거 보고 오예스 굿 했음 -♥ ( 천장 뚫을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