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아침. 오늘은 꿀같은 공강.
그 동안 잘 놀아주지 못한 구름이에게 미안해서 구름이 털도 정성껏 빗겨주고, 구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실컷 놀아주는 중이었다.
Rrrrrrr -
이 평화를 방해하는 전화 한 통.
- 하찮은 구름 -
“ 또 뭐 “
“ 아 뭐야~ 다정하게 좀 받아줘 여주야~ “
“ 이보다 더 다정 할 수 없다. 용건. “
“ 까칠하기는~ 있잖아 오빠가 방에 오늘까지 제출 해야되는 과제를 두고 왔는데.. “
“ 나 바빠 “
“ 너 공강인거 오빠가 다 알지롱~ “
“ 끊는다 “
" 아아 피자 사줄게 피자~ "
“ 피자 받고 공차 “
“ 아 당연하지~ 1시 까지 정문으로 와. 오빠가 데리러 나갈게! “
맨날 와라가라야 사람 귀찮게.
전화 받으면서 이미 옆동으로 가는 중인건 안비밀.
-
12시 50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하성운의 학교.
수업이 끝나고 다들 점심 먹으러 가는지 정문 앞에는 학생들이 바글바글 하다.
정문 앞 벤치에 앉아 도착했다는 톡을 보내고 지나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딜 가든 예쁜 사람들은 많구나. 거울을 한번 쓱 보았다. 그래도 하성운이 날 창피해 하지 않기 위해 뭐라도 찍어 바르고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 하는 중,
톡 - 톡 -
누군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치길래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 저기.. 혹시 프듀대 학생이세요? "
순간 토마토가 말을 건 줄 알았다. 아니 근데 잠깐, 이 상황은 혹시..
" 아.. 초면에 죄송해요. 혹시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너무 예쁘셔서.. "
뭐야..그렇게 귀엽게 쳐다보면..제가 당황스럽잖아요..
“ 아.. 그게..저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 “
22년 짧은 인생사 이런 상황을 늘 상상했지만 실제로 일어나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 여주야~ 오래 기다… “
“ 어..?영민이네? “
익숙한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난감한 나는 하성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 어 성운이형! 아는 분이에요? “
“ 어~ 잘 아는 사이지 그치 여주야? “
자연스럽게 내 머리 위에 손을 척 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하성운.
“ 아! 형 인스타그램에 있는 그분이구나. 아 어쩐지 낯이 익어서 우리 학교 학생인 줄 알았어요. “
" 하하..아니에요.."
인스타그램..? 하성운 따위가 그런 것도 했었나?
영민이라는 사람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성운의 손을 치우려 옆구리를 툭 쳤지만 꼼짝도 안한다.
“ 우리는 밥 먹으러 갈건데 영민이도 맛점해! 안녕~ “
“ 저..! 번호 아직.. “
내 번호를 아직 못 받았다며 내 손목을 잡았다.
하성운은 영민의 손에 잡혀 있는 내 손목으로 시선이 옮겨졌고, 영민이라는 사람을 쳐다 봤다.
짧은 순간 굳어진 하성운의 표정을 난 보았다. 하지만 금새 다시 표정을 풀고 웃어보이며 말했다.
“ 우리 밥먹으러 갈거라고 영민아 “
“ 아 임영민 뭐하냐! 빨리 오라고! “
“ 이따 수업 때 보자~ “
때마침 영민을 부르는 소리에 하성운은 수업때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걸어갔다.
붙잡혔던 손목은 자유로워 졌고, 하성운은 다른 쪽 내 손목을 잡고 날 본인 쪽으로 끌었다.
낯설었다 하성운의 표정이.
“ 뭐냐 김여주~ “
“ 내말이 뭐냐 이 상황.. “
“ 뭐긴~ 피자 먹으러 가는 상황이지. “
“ 아니 나 대신 너가 철벽치냐고. 귀엽던데 나 번호 주고 싶었는데. “
“ 참나~어이없다 김여주~ 잔뜩 당황한 얼굴로 나 좀 여기서 구원해줘 하고 있던게 누군데? 그리고 쟤 별로야 “
“ 착해보이던데? “
“ 우리 여주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요~ “
-
“ 나 배불러 그만 줘. 너도 먹어. 왜 자꾸 나만 주는거야 내가 이걸 다 어떻게 먹냐! “
“ 너 말이야 여주야. “
입에 피자를 물고 하성운을 쳐다봤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요리조리 훑기 시작한다.
“ 너 요즘 “
“ 아 요즘 뭐. “
답답해진 나는 콜라를 들이켰다.
“ 너 요즘 내 팩 훔쳐 쓰고 있지! 다 알아 내가! “
이건 또 무슨 지나가는 개가 비둘기 똥 맞는 소리람.
“ 뭐..? “
“ 그거 비싼거라 효과 짱짱이거든. “
“ 내가 훔쳐 쓸게 없어서 너 팩을 훔쳐 쓰냐..? “
“ 아닌가..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 아! 뭐야! 김여주 화장했네? 어쩐지 오늘 예쁘다 했어! “
“ 켁 - “
콜라를 먹던 나는 하성운의 뜬금 없는 눈썰미에 사래가 들렸다. 하성운은 아무렇지 않게 휴지를 건네주며 여전히 내 얼굴을 살폈다.
“ 너 나 보러 올 때 한번도 안하고 왔으면서~ 오늘 누구한테 잘보이려고 화장했어? “
“ 아..아니 내가 잘 보일게 뭐가 있어! 그냥.. 예의상! 그래 예의상 하고 나온거지! “
“ 뭐야~ “
당황했다.
화장한거 귀신같이 알아보네..티도 안나게 했는데....
하성운 말이 맞다.
너무 어렸을 때 부터 천둥벌거숭이 때 부터 봐온 사이라 하성운을 만날 때는 거의 쌩얼로 나가는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간만에 하성운 학교에 온거라 해본건데..피자를 먹다 말고 목이 꽉 막히는 느낌 때문에 피자를 내려놓았다.
나는 왜 이렇게 해명을 하고 있는 것인가. 김여주 당황하지마 상대는 하찮은 하성운이라고!
" 예쁘네 오늘 "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라오는 것 같아 콜라를 벌컥 벌컥 들이켰다.
우리가 먹은 피자가 이상한게 틀림 없다. 하성운도 이상하다 자꾸 예쁘다고 하질 않나. 왜저래..
“ 오늘은 예쁜 요괴 같다! “
이런 하찮은 인간의 말에 잠시나마 놀아난 내가 바보다.
때리고 싶다.
-
하성운은 배부르게 피자를 먹고 나와 내 입에 버블티 까지 물렸다.
수업 전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학교 구경 하다 가라는 말에 끄덕이고 캠퍼스를 돌고 있었다.
이제 제법 날이 많이 더워진 탓인지 조금만 걸어도 더위에 약한 나는 땀을 삐질 삐질 흘렸다.
하성운은 그런 나를 보더니 시원한 그늘 아래 벤치로 데려갔다.
“ 여주야 그거 맛있어? “
아무말 없이 버블티 속에 있는 펄을 먹고 있던 나를 보며 하성운은 웃으며 물었다.
“ 너는 왜 버블티를 싫어해?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
“ 쫀득거려서 기분이 나빠. “
뭐 이런 신박하고 참신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무시했다.
한참을 먹고 떠드는 동안(물론 하성운 혼자) 하성운에게 수업 안들어가냐고 물었다.
핸드폰 액정을 켜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제 나 데려다주고 들어가면 된다며 가방을 챙겼다.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는데 하성운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 성운오빵! “
오빵..?
“ 어~ 수영아 안녕~ “
“ 오빵 지금 수업들어가세여~? 저도 그 수업 듣는데~ 같이 가여! “
내 또래로 보이는 수영이라는 여자애는 누구와는 달리 아주 목소리에 애교가 철철 흐른다. 얼굴도 예쁘네..
“ 내가 무슨 수업 듣는 줄 알고? “
“ 제가 오빠에 대해 모르는게 어딨어여~ 같이 들어가여 오빵 “
“ 아..수영이도 이 수업 듣는지 몰랐네. 근데 나 얘 데려다 주고 들어갈거라 먼저 들어가~ “
“ 오빵..근데 여자친구 있었어여..? “
중간에 낑겨 가만히 하성운만 등 뒤에만 있었다.
그런 나를 잠깐 뒤돌아 보더니,
“ 어...아니 동네 동생이야~ 우리 먼저 가볼게 수업 때 보자. “
동네 동생이라..
아주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했다.
“ 자리 맡아 놓을게여! “
하성운과 나는 자리를 맡아 놓는다는 인사를 뒤로 한 채 정문 쪽으로 걸어 왔다.
걸어오며 나는 묘한 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 여주야, 오늘 오느라 고생했어 날도 더운데. 정말 여주 아니였으면 오빠는 듣기 싫은 이 수업을 또 들을 뻔 했어! “
자꾸 아까 그 수영이라는 애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오빵..오빵이라…
“ 아 지금 시간이면 성우 수업 끝났을텐데, 같이 가 성우랑! “
오빵..
낯간지럽다 정말.
하성운과 지내온 15년간 오빠라고 불러본 적이 손꼽히는데.
“ 어 저기 성우다! “
“ 오빠 “
뭐라고? 김여주 방금 뭐라고 했냐?
“ 응? “
이상함을 못느낀 하성운은 내 부름에 답했다.
“ 어..아니 그게..아까 걔가 오..오빠 너..! 자리 맡아 놓는다고 했잖아! “
“ 아~ 수영이? 그게 왜? “
“ 그..그니까 빨리 들어가보라고! 나 옹성우랑 먼저 갈게! 안녕! “
또 당황했다. 오늘 진짜 이상하다 김여주
역시 아까 그 피자가 문제였나..
나는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 옹성우에게 뛰어갔다.
“ 여주야 뛰지마! “
하성운의 말을 뒤로 한채 더 빠르게 뛰어 옹성우 앞에 도착했다.
“ 뭐야 김여주 왜 여기에 있냐? “
“ 얼굴을 또 왜 그렇게 빨갛고? “
“ 아 또 이 오빠 보러 여기까지 찾아온거야? 하..우리 여주 정말 못말리는구나! “
그놈의 오빠! 오빠 소리에 안그래도 달아오른 얼굴이 더 화끈거린다.
뛰어서 그럴거야.
그래 뛰었으니까 얼굴이 빨간거지!
-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나는 옆에서 옹성우가 뭐라고 떠드는지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창 밖을 보며 오늘 하성운과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 예쁘다 오늘 '
하성운 눈에 내가 예뻐보인 적이 얼마나 있을까. 맨날 날 놀리기 바쁜 하성운이 오늘 왜 그런말을 했을까.
'오빠'
“ 그래서 이 옹성우가 또…뭐야 김여주 또 너 내 말 안듣지?! “
“ 오빠… “
“ 너 미쳤냐? “
오빠라니.. 김여주 미쳤다! 정말. 김여주 미쳤지 미쳤어.
자꾸 생각을 하다보니 입 밖으로 오빠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생각하니 얼굴이 또 달아오른다.
아니 이놈의 얼굴은 시도때도 없이 빨개지는거야 도대체!
“ 엥?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빨갛고? “
“ 아..아니거든! 더워서 그래 더워서! 오늘 진짜 덥지 않냐?하 덥다 더워! “
“ 당황까지 하고? “
“ 내가 무..무슨 당황을 했다고 그래! “
“ 너 설마.. “
꼴깍 -
마치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 가다가 걸린 아이 마냥 토끼눈을 하고 옹성우의 말에 긴장을 하고 말았다.
“ 하 진짜 김여주 너 이럴 줄 알았어…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다고! “
“ 뭐..무..무슨 상황이 와 오기는! “
“ 너 “
“ 나 뭐…? “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거야..마치 내가 들키면 안되는 비밀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 저 의미심장한 표정. 다 알고 있다는 저 여유로움.
“ 너..이 오빠가 진즉 알고는 있었다만.. 이 오빠한테 너무 빠지지마라.. 우리 여주는 나에게 든든한 불곰과 같은 존재라ㄱ…”
“ 여주야 그 주먹 내려 놓자. 여기 버스야. 우리 우정 화이팅. “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나보다.
옹성우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웃어보이며 나에게 어리석었던 자신을 뉘우치며 슬쩍 옆으로 몸을 뺐다.
-
그 시각 수업을 듣던 성운은 혼자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자리를 맡아 놓겠다던 수영은 자신의 옆자리에 가방을 놓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성운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잔뜩 얼이 나가서는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마냥 웃고 있던 성운은 수영의 손짓을 가볍게 무시한 채 아무 자리나 앉았다.
그런 성운을 따라 수영은 굴하지 않고 성운이 앉은 옆자리로 쫓아가 앉았다.
하지만 수영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성운이다.
-
“ 오빠 뭐가 그렇게 좋아서 계속 웃고 있어여? “
“ 어..? 뭐야 너 언제 여기 앉았어? “
“ 아 뭐에여! 저 수업 시작 하기 전 부터 여기에 있었거든여! “
아.
관심 없다는 듯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 오빠 근데 아까 그 동네 동생이라는 분 있잖아여~ “
“ 진짜 여자친구 아니에여? “
성운은 여주의 이야기에 바로 반응 했다.
“ 여자친구? “
“ 네. 저 오빠 맨날 저한테 까칠하시길래 원래 그런 분인줄 알았는데, 아까 그 동생이라는 분 보면서 계속 웃길래여.
지금도 계속 혼자 히죽히죽 웃고 있고. 제가 말해도 대답도 안해주시잖아여! “
“ 내가 계속 웃고 있었어? “
“ 강의 시작 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웃고 있거든여~ “
몰랐다. 내가 계속 웃고 있었구나. 하긴,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나.
여주 입으로 나를 '오빠' 라고 불렀는데.
하성운 (24세/까칠한 여주 입에서 몇년만에 들어보는 오빠 소리에 신나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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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료분~안뇽하세요~
'홍차화원' 입니당!
제가 지금은 하는거 없는 백수라 이렇게 매일매일 스토리를 들고 오는데, 이 삶도 언제까지 지속 될런지...
힘이 닿는데 까지 열심히 써볼게요!
우리 러블리 독자님들이 치환 기능을 넣어달라 요청해주셔서 이렇게 넣어 봤는데..잘 된거 맞죠..?
+ 흑흑 수정했어요 치환이 잘 안되네여......연습해서 올게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맨날 맨날 댓글 달아주시는거 다~~~~하나하나~~다~~~읽고 있어여!
보고 또 보고 ㅎㅅㅎ
고맙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