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연애, 남친새끼가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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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특정 누구의 연락을 확인하려던 건 절-대 아니다. 민망할 정도로 텅 비어있는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끄고 몸을 일으켰다. 또 시작인 거다. 나와 강다니엘의 소리없는 총성. 누가 먼저 연락하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괜한 자존심 싸움. 얼굴보고 싸우는 것보다 더 피곤한 일이랄까.
워낙 자주 싸우다보니 평소 화해에 그렇게 집착하는 편은 아닌데 어제처럼 세상이 뒤집어지도록 싸우고 난 다음에는 꼭 이런 연락 공백기가 있다. 별로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내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라고 강다니엘이 말한 적이 있다. 뭐, 그 날 이후로 싸우고 난 다음에 녀석의 연락을 좀 기다리게 되는 것도 있고.
예전에, 한 1년 전 쯤에.
"내가 싫다는데, 그렇게 거슬린다는데 좀 안 만나면 안 되는 거야?"
"그냥 친구라는데 너야 말로 또 왜 그렇게 날이 서있어?"
뭔 놈의 여사친이 주변에 널리다 못해 발에 그렇게 차이는지. 특히나 그 중에서도 남친이 입대한 뒤로 매일 다니엘을 찾던 그 여자, 그 누나라는 인간이 화근이었다. 밥 먹을 사람이 없다, 놀아줄 사람이 없다, 혼자 쇼핑하기 민망하다... 변명도 참 다양했다.
"너 말 진짜 이상하게 한다."
"요새 가만보면 너 나랑 싸우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 같아. 알아?"
"뭐?"
"뭐가 그렇게 못 미더운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그러는 거 너랑 안 맞는다며. 그런 애인 너도 별로라며."
"......"
"근데 왜 점점,"
"......"
"너한테 그런 모습이 보이냐."
진짜 피곤하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올리는 강다니엘의 모습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별로다. 내가 무슨 핸드폰 검사를 했어, 몸에 위치추적기를 달았어? 그냥 여자의 직감이라는 게 그 누나만은 만나지 말라고 말하라는데, 그냥 마음이 불편하고 거슬린다는데. 그러는 내 모습이 그렇게 별로였나.
집에 돌아와 며칠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역시 나는 착한 인간은 아니라는 거다. 싫으면 싫은 줄 알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괘씸한 자식.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기어코 그 번호를 찾아냈다. 김재환. 강다니엘이 극혐하는 '아는오빠'. 강다니엘은 나와 드라마를 같이 볼 때면 이따금씩 하던 말이 있다. 남자는 나빼고 다 늑대야. 뭐 이런 시덥잖은 개소리 말이다.
단언컨대 사람은 직접 찍어먹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를 확실히 안다.
"김여주."
"......"
녀석은 3일만에 '똥이구나'를 알고 나를 찾아왔다. 며칠만에 내 앞에 나타나선 아무말도 없이 내 자취방까지 동행한 강다니엘의 표정은 딱봐도 할 말이 많아보였다.
침대에 나란히 앉았을 때 찾아온 정적을 즐겼다. 녀석이 뭐라고 하며 미안하다고 할까, 그 생각 뿐이었달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사람 만나지 마."
"누구? 혹시 내 절친인 재환오빠?"
"...나 놀리지 말고."
"나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애인 정말 별론데."
"아, 하지 말라고오-."
나를 자기 품에 넣으며 건조한 목소리로 내 귀에 울먹이듯 속삭이던 강다니엘은 나름 귀여운 맛이 있었다.
한 번은 재환오빠를 비롯한 내 주변 모든 오빠들을 왜 그렇게 싫어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나도 너보다 2살이나 많은데 왜 걔네만 오빠 소리 들어야 돼, 대답은 가당치도 않았지만. 뭐 어쨌거나 죽어도 질투난다는 말은 안 하려던 거다.
"너가 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
"부탁이니까 만나지 마라-."
"...뭐, 생각해보고."
"나도 그 누나 이제 안 만날테니까, 응?"
"...이럴 거면서."
결론은 늘 뜨거운 밤을 보내는 걸로 끝이 난다지. 도대체 '나 빼고 남자는 다 늑대야.' 그 말에서 본인은 왜 빼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나도 주말엔 좀 쉬면 안 되냐?"
"다른 애들은 재미없단 말이야-, 조금만 마시면 픽픽 쓰러지고."
"술고래 강다니엘 있잖아-."
"걔 얘기 오늘 금지야."
"또? 이번엔 또 뭔데? 자려고 벗겼는데 팬티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싸웠던 것 보다 더 황당한 이유야? 어?"
"닥쳐."
그 때 싸웠던 건 사실 다니엘한테 조금 미안하니까. 금세 또 뚝딱 해치운 소주 한 병을 상 밑으로 내려놨다.
"과애들 다 있는 자리에서 나보고 술고래래. 막 나 술 마시는 거 한심하게 쳐다보고, 왕게임도 걸렸는데 나랑 키스하기 싫다고 벌주 원샷했어."
"......"
"남들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 여친 많이 먹이지 말라고 흑기사도 하고 그러던데 걘 괜찮다고 계속 하래. 옘병. 내가 마시는데 왜 자기가 괜찮아?"
"...못 됐네."
"그 자리에 윤주도 있었단 말이야."
"......"
"완전 잘 사귀고 있다고 자랑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개망신만 당했어."
강다니엘과 유독 잘 맞는다고 느끼던 것들 중 하나였다. 너는 왜 표현을 안 하냐고, 자기를 사랑하는 게 맞냐며 묻던 남자들의 질문이 너무나도 지겨웠으니까. 우리는 나름대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았고 늘 무리없이 서로의 애정을 확인해왔다. 때문에 흔히들 '츤데레'라고 하는 강다니엘 캐릭터 자체에 서운했던 적도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징그럽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깨가 쏟아지는 커플이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근데 어젠 정말 너무했잖아. 서운해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괜찮다고 혼자 달래봐도 소용이 없었다고. 윤주 표정이 꼭 '언니, 애정전선에 문제 없는 거 맞아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니까.
내 얘기에 집중하는 은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서운했던 것만 늘어놓고 보니 답지 않게 눈물이 날 뻔했다. 뭐야. 어제의 내 모습 생각보다 너무 불쌍한데?
"언제는 그런 쿨함이 너네만의 자랑이라며. 존나 멋지다며."
"...취소야. 둘만 있을 때 그러는 건 나도 아무말 안 해."
"강다니엘은 뭐 그 자리에 계속 붙어있고 싶었겠냐? 앞엔 너 좋다고 따라다니던 선배있지, 옆엔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던 후배있지. 또 옆엔 좋다고 술 부어마시는 여친있지."
"......"
"내가 봤을 땐 강다니엘 얘기 들어보면 너도 똑같아-."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개강파티 참석할 거라고 미리 얘기는 했었어?"
"...아니."
"그 선배가 다니엘한테 전화한 건? 네 의지가 아니었어도 미안하다는 말은 했어?"
"...아니."
"흑장미는? 너 또 술 못 마시는 후배들 챙겨준다고 흑장미 같은 건 안 했어?"
"...했어."
찾았다, 썅년.
그저 내 분에 못 이겨 미처 짚어보지 못 한 부분들이 그제서야 짚히기 시작했다. 먼저 남친 빡치게 만들어놓고 혼자 서운했던 사람? 나야 나, 나야 나.
"너넨 먼지만도 못 한 일들로 나를 너무 피곤하게 해."
"뭐야, 가는 거야?"
"강다니엘 부를 거잖아. 나도 눈치는 있거든?"
혼자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연락을... 해야 겠지? 하는 게 맞겠지? 고기를 몇 점 더 씹어먹었다. 개맛있네.
일단 조금 복잡한 머릿속부터 정리했다. 제일 첫 번째로 나년이 다니엘한테 말 한 마디도 없이 개강파티에 참석했고, 그 사실을 다니엘은 선배의 전화로 접했고... 녀석이 들어오자마자 본 건 풀잔 원샷하는 내 모습이었다. 심지어 술 못 하는 후배들을 위해 흑장미까지 자처해서 소원으로 후배들 애교를 시키기까지.
"미친년."
아마 애초에 내가 다니엘한테 개강파티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을 했다면, 녀석도 선배의 어그로짓에 속아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오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냥 술 적당히 마시고 집에 갈 때 데리러 갈테니까 전화하라는 말로 끝났을 일인데. 응, 그런 건데. 결국 내가 다 자초한 일이네.
내가 뭘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강다니엘에게 선배의 그 과장섞인 전화가 얼마나 큰일이었을까.
- 여보세요.
"...어디야?"
- 밖.
"보고싶은데."
- 거의 다 왔어, 가만히 앉아있어.
안 그래도 은지에게 연락을 받았을 녀석은 이미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예욧^-^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핫해서 깜짝 놀랐어요ㅠㅠ
30분마다 한 번씩 댓글들 정독했다고 하면 안 믿으시겠지만 진짜예용...
따흑... 바흑... 콧물 찡...
근데 죄송하게도 오늘은 분량이 소금처럼 짜네요... 늘리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한 꿀딴지를 매우 치세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물어보셨던 암호닉 신청은 곧 따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격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