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빨간 사춘기,스무살-남이 될 수 있을까
고등학교때를 회상한다면 기억에 남는건 당연 하나다. 바로 옹성우. 학교에서 꽤 떨어진 동네에서 통학을 하던 나와 매일 아침 같은버스를 타던 아이.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춰서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였는데 별명이 ‘연습이’였다. 그 애는 평범한 나와 달리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여자친구도 끊이질 않았고.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것 같던 애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옹성우와 5년을 사귀었고 헤어진 전 연인사이다. 한때 불같이 사랑했던 남자, 나에 관한거라면 모든걸 아는 남자.
내가 이 남자를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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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우 (27/공간디자이너)
ㅇㅇ의 첫사랑
연예인이 될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건 ㅇㅇ와 함께하지 못할 시간이 두려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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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동생 연후는 식물인간이였다. 그런 동생의 수발을 드느라 부모님은 내가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도 몰랐다. 등록금, 학원비, 문제집을 살 돈은 직접 뼈빠지게 알바해서 겨우 벌었다.
집에서 동생의 안락사를 결정했던 날,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린 날이였다. 학원 뒷편 주차장에서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 울었을까 구석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어정쩡하게 서있는 옹성우가 있었다. 한손에는 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들고서는. 그는 내게 제 교복마이를 덮어주었다. 왜 운거냐고 묻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도 없었지만 왜인지 매캐하게 풍기는 담배냄새마저 위로가 되었다.
그날 이후 옹성우는 우리반을 매일같이 찾아왔다. 학교 애들은 우리 둘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며 수근대기 바빴다.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내도 무시를 해도 그는 어쩔때는 어이없게 터지는 유머로, 가끔은 사람 설레게 만드는 눈으로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게 싫지만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와 나는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사랑했다. 우리는 다른 연인들과 다른 특별한 연인인것만 같았다. 그는 내 아픔을 누군가에게 꺼내보이는 법을, 진심을 전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였다.
그런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매일 하던 통화는 뜸해졌고 데이트 횟수은 드물어졌으며 우리의 예쁜 과거는 희미해졌다. 뜨거웠던 사랑은 식어버린지 오래였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그가 처음보는 여자와 카페에 있던걸 들킨 날 그날 우리는 헤어졌다. 그 여자를 바라보던 눈빛이 5년 전 나를 바라보던 눈과 닮았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특별할 것 없는 연인들이였고 오래된 연인들의 끝은 이별이였다.옹성우와 다시 만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일상을 살았고 친구들에게 전해듣는 얘기로는 그도 나름대로 잘 지내는듯 했다.
회사 리모델링건으로 잡힌 외주업체 담당과의 미팅 날, 그 담당은 다름아닌 옹성우였다. 나와 달리 당황한 기색없이 생글거리던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오랜만이네? 였다. 그 뒤로 거래처 미팅을 핑계로 불러내서는 밥을 먹자고 하질 않나, 사사건건 전화하고 부서까지 찾아온다. 이게 헤어지더니 능구렁이 한마리가 드러앉았는지 딴 사람이 된것 마냥 이상해졌다.
분명 밀어내야하는데 그럴때마다 처음보는 가여운 그 눈꼬리가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그럴때마다 생각한다. 과연 우리가 남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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