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원하시지 않는 분 꺼주세요!
"가지마!! 흐에에에에에엥---"
"가시나야, 놔라 내 가야 된디."
"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
"....?
...도대체 내가 은제?"
그러니까, 딱 10년전의 일이다. 해바라기 유치원을 다녔을 적, 물에 빠졌던 나는 그당시 유딩 인기의 끝을 달리던 박우진의 손길을 입고 그를 내 첫사랑의 주인공으로 낙점하였다. 나 김여주의 인생을 구출해준 왕자님은 오랫동안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가 떠나던 날 나는 이삿차 앞에서 박우진의 머리끄댕이를 잡으며 발악했다. 우진이는 내 손길에 악을 쓰며 울다가 바지에 축축히 오줌을 적셨다. 그것이 초딩 유딩 친구들의 술 안주거리가 될 흑역사인 것도 모른채.
하여튼 지금, 나는 수소문을 한 끝에 생사도 모르는 첫사랑을 찾으러 고등학교를 전학하겠단 뜻을 부모님께 전했다. 엄마는 당연히 밥그릇 옆의 북엇국을 엎으셨고 아버지는 2시간 걸리는 학교를 참 잘도 다니겠다면서 혀를 차셨다. 그러나 사랑의 장님이었던 나는 짐을 싸서 고등학교 전학 수속을 밟았다. 때마침 배구 유망주였던 내게 학교 체육관 시설이 좋다는 것은 담임선생님께 합당한 핑계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여름에서 시작된 첫사랑을 찾기 위하여 부산히 발짓했다. 1학년을 1학기를 마친 초록색 시기의 일이었다.
'야, 나 첫날부터 길잃슴!"
"칠칠아, 첫날은 거리 가늠 안되니까 걍 버스타고 가랬잖아."
"몰라, 나 일단 학교 가서 대충 문자 줄게 사랑해, 동상!"
"빠큐."
하필, 계획이 아귀맞게 딱 들어맞는다 했다, 일이 지나치게 잘 풀린다 했다. 나는 입술을 물며 머리카락이 휘날리게 달렸다. 스마트폰 지도를 아무리 뒤져봐도 까만건 글자요, 하얀건 그림이었다. 헉헉거리며 뜨거운 아스팔트를 내달리다, 결국 경박한 소음을 내며 나무 벽에 부딪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 몇가닥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노란 해 뒤로 부드러운 목소리도 귓가에 내려앉았다.
"괜찮으세요? 다치신 거 같으면 태워 드릴까요?"
"아야..괜찮습니다."
"...김여주?"
"...엥, 누구세요?"
"...아..."
검은 머리의 소년이 놀라 묻는다. 36도의 이 쪄죽는 더위에도 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고집스러움과 달리 눈매는 참 유연했다. 단박에 내 이름을 알아차리는 소년에 당황해 반문했더니 그가 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흔드며 추궁한 그는 이내 불편한 주름을 지으며 자전거에 탑승했다. 끼릭끼릭- 꽤 야무진 손길로 시동을 건다. 36도나 되는 온도탓에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목을 졸랐다. 나는 다급히 길을 물었다.
"저, 자전거 태워 주시는 건 됐고, 같은 학교인 거 같은데 길이 어딘지 아세요?"
"...기억이 안 나네요."
"엥?? 저기요!!"
아까의 그 자상함은 어디 가고. 지면을 마찰한 바퀴가 얄밉게도 썡쌩 돌아갔다. 길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그가 황당했다. 나는 점점 멀어지는 그를 표지판 삼아 내리막 가로수길을 미친듯이 달렸다. 채 덜 여민 교복이 펄럭댄다. 속으로 그에게 50가지 저주를 퍼부었다.
***
그러니까 이 학교는 두 명의 영웅이 있댄다. 성적 만능, 스포츠 만능, 피아노는 물론이고 춤도 잘 추고 노래 랩도 수준급으로 한다는. 공부와 운동 모두 잘하는 사기캐야 학교에 한 두 명씩 포진하고 있지만, 소문까지 나는 것은 확실히 오바스러운 일이라 나는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강당 안의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자장가처럼 지나가고, 상장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B반 1등 박우진! 2등 이대휘!"
웅성거리는 소리를 물리치고 영웅 두 명이 벌떡 일어선다. 그 왕들의 행차에 모세의 홍해까진 아니더라도 박수갈채가 휘항찬란하게 늘어졌다. 늠름한 두 왕들의 뒤로 후광이 발발했다. 영웅들은 위엄있게 행군하듯 앞으로 걸어나갔다. 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여학생들의 함성소리가 병사들처럼 뒤따른다. 단정한 교복차림의 남자와, 교복 대신 흰 티를 입은 남자가. 단상앞에 선 남자 두 명을 보는 순간 눈이 둥그래졌다. 아침의 싸가지와 백만년만의 첫사랑이 앞에 있었기 때문에
"진짜 개멋져. 역시 원탑은 대휘지."
"아니야, 우진이임."
"이대휘!"
"박우진!!"
"야야, 그래봤자, 체감인기는 박우진이 더 좋음 인정?"
옆의 학생들이 꺄르륵 거리며 인정~ 하며 등을 때리듯 두드렸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첫사랑의 귀환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을 깨닫는다.
"ㅇㅇ 경연대회 솔로부문 1등 박우진, 2등 이대휘!"
"글짓기대회 1등 박우진, 2등 이대휘!"
"전국체전 달리기 1등 박우진, 2등 이대휘!"
"..야, 이대휘는 중학교 때도 3년 내내 박우진 그림자더니, 어째 고등학교 때도 똑같냐?"
***
나답지 않게 떼를 부렸다. 그것은 대충 나는 김여주야 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후 자리 배치 때의 일이었다. 미술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의 2주간의 출장으로, 모든 담임선생님의 권한이 반장인 이대휘에게로 넘어갔고, 나는 속으로 온갖 욕을 했다. 정말로, 이 학교는 책임감 없는 방치와 방목의 연속이라고. 출장을 갔으면 대타를 구할 생각을 해야지, 반장에게 선생님 역할을 위임하는 것은 무슨 발상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때마침 비워져 있는 박우진의 옆자리는 놓칠 수 없었다. 나는 대휘의 교복 자락을 붙잡으며 할 수 있는 아양과 아부를 다 떨었고, 그것이 학우들의 비호감을 사는 것은 나중의 문제였다. 운명의 장난처럼 박우진 옆자리 대신 이대휘 옆자리도 비어져 있었고, 저 자리에 앉는것도 불쾌했기에 나는 이를 갈아가며 사정했다. 대휘는 웃으며 내 책가방을 자신의 옆 책상에 올려놓았다. 박우진은 턱을 괴고 덤덤하게 대휘와 나를 관망하였다. 나는 교실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아, 왜!!! 나 우진이랑 앉을래!!! 왜 자리배치까지 니 마음대로 하냐고!!"
"제비뽑기를 할 때까진, 반장인 내 옆이 좋지 않을까? 학교 생활도 내가 잘 가르쳐 줄거고."
웃는 얼굴 뒤에 칼이 있나니. 아무래도 이대휘는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우연찮게 만난 중학교 동창에게 들은 바로는 이대휘는 날개 없는 천사, 박우진은 말 없는 싸가지라는데 요새 천사는 다 강물에 빠져 뒤졌나보다. 나는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분명히 자상한 말투로 권유하는데 저 위압감은 뭐란 말인가.
"나 우진이 옆에 앉을거야. 어려운 일 아니잖아?"
"우진이는 말을 그렇게 하려하는 편은 아니야. 네가 불편할거야."
"상관없어. 나 우진이 곁이 편.."
"..그냥
"..내 옆에 앉으면 안돼?"
(써지는 대로 천천히 굴려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