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사랑광
구야 作
“나랑 오늘부터 1일 할래? 잘 해줄게.”
많은 여자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공개 이벤트나 공개 프로포즈나 공개 고백 같은 것들을 받으면 굉장히 좋고 떨리고 설레고 뭐, 흔히들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고들 하더라. 그 중 우리 엄마도 포함이 되어 있었고. 묵묵하다 못해 무뚝뚝하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유별났던 아빠는 파병을 다녀온 이후 사람이 북적거리는 공항 안에서 환호를 받으며 공개 프로포즈를 했다고 들었다. 그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오그라 들어 끝까지 보진 못 했다. 앞으로도 보지 못할 예정이고. 조용한 엄마는 그때의 추억을 얘기할 때면 제일 신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거나 아빠랑 싸운 날에는 내가 일부로 그 동영상을 틀어주곤 했다.
“나 이래 봬도 내 사람한테는 잘 하거든.”
그리고 그 모든 걸 질색팔색 내가 그 공개 고백을 받았다. 그것도 이름도 뭣도 모르는 놈한테. 내 옆에 서있던 주학년은 나보다 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지 큰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나와 앞에 있는 이름 모를 놈을 번갈아 보았다. 나 원 참. 살다 살다가 또 이렇게 사람 많은데서 고백을 다 받아 보네. 그것도 존나 구린 멘트로. 오늘부터 1일? 어디서 배워먹은 고백 법인지 더러워 죽겠네. 그냥 가만히 쳐다만 보다 옮겨진 시선 안에는 많은 인파 속 환호하는 이들 사이에서 혼자서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내 삐뚤사랑광이 보였다. 왜 없나 싶었네. 나와 눈이 마주치니 급하게 눈을 까는 꼴이 또 웃겼다. 내가 고백 받아주면 여기서 오열이라도 하려나? 궁금하다. 하지만 나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 남정네를 받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마 당연한 거겠지.
고백을 받고서도 대답 없이 다른 쪽을 응시하고 있으니 내게 고백한 고백남의 시선 또한 그리로 향했다. 깔았던 눈을 다시 뜬 삐뚤사랑광은 나와 고백남 둘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와있으니 당황한 모양새였다. 큰 눈을 끔뻑이며 입을 떡 벌린 게 봐줄만 했다. 지는 고백 더 많이 받으면서. 나는 고개를 숙힌 채 웃음을 터트리니 고백남의 시선이 다시 내게 머물렀다.
“미안한데 난 네 이름도 몰라. 물론 알고 싶지도 않고.”
“와. 나 며칠 전에 페북 친구도 걸었는데. 너 받아줬잖아.”
“페북? 나 그런 거 안 하는데. 엄한 사람한테 보냈나 보네.”
폰 만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페북 따위를 할리 만무했다. 카톡도 주학년이 옆에서 억지 부려서 깔아 놓기는 했는데 아직 써본 기억이 없다. 주학년에게 온 카톡 아직도 안 읽었을 텐데. 주학년도 하루 종일 폰만 만지는 걸 싫어하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요새는 몰래 조금씩 만진다. 예전에도 전 학교에서 같이 어울려 놀던 여자 애 하나가 내 휴대폰을 보더니 여자 애 폰 맞냐며 이것저것 만져 꾸며 놨던데 적응하는데 한참이나 걸렸었다. 전화만 잘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전화도 잘 받진 않는다. 내겐 필요없는 도구라는 거다. 아, 사실 다 필요 없다. 나는 지금 일단 어서 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점심 잘 먹고 와서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고.
“그래. 네 고백 잘 들었고 나는 너한테 관심이 없으니 그 고백에 대한 답은 NO라는 게 내 대답이야.”
그러니 앞길 막지 말고 비켜 줄래? 내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순순히 옆으로 비켜선 고백남에 사람 좋은 표정을 한 번 지어주곤 지나쳤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무리들은 내가 갈 길을 터주었고 그 앞에 서있는 내 삐뚤사랑광에게도 사람 좋은 표정으로 한 번 웃어주었다. 나는 저런 이름도 뭣도 모를 놈들이 아니라 내 삐뚤사랑광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데 도통 다가와 주질 않네.
*
나는 반으로 들어와 입에 칫솔을 물었다. 마치 방금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물론 내겐 정말 아무 일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고백이라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대는 탓에 그 자리에서 쓰러졌겠지만 방금 내게 고백한 그 고백남은 정말 지나가다 마주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에 전혀 내 심장에 데미지를 입히지 못 했다. 괜히 시간만 뺏긴 게 불쾌할 뿐이었다. 양치를 하는 내게 후다닥 달려온 주학년이 펄쩍펄쩍 뛰었다. 얘가 왜 이래, 정신 사납게; 짜증 난다는 듯 올려다보자 입에 물고 있던 바나나 빨대를 빼는 순간 속사포로 말을 내뱉었다.
“네가 방금 누구를 찬 건지 알어?”
“알 바야? 그냥 내가 관심이 없다는 게 팩트인 거지.”
아오, 팩트란다. 칫솔을 문 입을 꾹 닫았다. 주학년이 쓰는 말들을 나도 모르게 배워 이상한 용어들을 자주 썼다. 물론 뜻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는데 요즘 들어 매일 팩트냐, 팩폭 오졌다, 실화냐? 등등 옆에서 귀가 닳도록 들으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툭 나오기 시작했다. 몸서리를 치며 입을 헹구러 가는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주학년이 쫑알쫑알거리는 게 듣기 싫어 귀를 후벼팠다. 쟤는 어쩜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는 날이 없을까. 걸레 빠는 곳에 다다라 입에 있는 거품을 뱉어내곤 홱 돌아 노려봤다.
“네 말을 토대로 정리한 바 그 놈은 학교도 존나게 안 나오고 허구한 날 오토바이만 처타고 다니는 씹 양아치 새끼라는 말이잖아. 그러면 잘 찬 거지 뭐가 걱정이야, 썅.”
“……아니, 그렇다고 욕은 하지 말고.”
“아, 알겠으니까 화 돋구게 하지 말고 양치질 좀 마저하게 꺼져.”
내 말에 시무룩하게 다시 빨대를 물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주학년을 본 뒤에야 다시 칫솔을 입에 물었다. 난 일단 또래의 여자 애들과 조금 다르다는 건 인정한다. 사진 찍는 거에도 관심 없고 폰 만지는 거에도 관심 없고 남자에는 더 관심 없고. 또래의 여자 애들이 관심 갖을 만한 것에 나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서 굳이 이게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냥 조금 다를 뿐이다. 마저 입을 헹구고 입가를 대충 닦으며 몸을 돌렸을 때 칫솔을 물고 있는 내 삐뚤사랑광이 보였다.
“……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주 본 건 처음인지라 많이 당황한 듯 싶었다. 나는 굳이 피하지 않았다. 이참에 말 좀 터줬으면 좋겠는데. 몰래 쳐다보지 말고. 갑자기 사래가 걸린 듯 목을 부여잡고 콜록거리는 게 안쓰러웠다. 입에서 분비물 다 나오네. 그러곤 꿀꺽 그 매운 치약 거품을 삼킨듯 했다. 내가 더 괴로운 표정으로 쳐다보니 후다닥 옆으로 달려와 입을 헹구는 모습을 조심스레 살폈다. 멍청한 구석이 많은 친구였네.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아내는 내 삐뚤사랑광이는 한참이나 멍을 때렸다,
“당황했어?”
“안녕, 나는 박지훈이야!”
이번엔 내 쪽에서 당황했다. 당황했냐고 물었는데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은 안녕, 나는 박지훈이야. 라니. 질문에 맞지 않는 답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입력된 말이 튀어나오는 인형 같았다. 꼭 오래 전부터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쉴 틈 없이 연습하다 내가 누른 버튼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처럼 말이다. 이름이 박지훈인가 보네. 얼굴이랑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지훈. 나 옛날에 엄마따라 주지훈 좋아했었는데. 내가 눈을 끔뻑거리며 쳐다보자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게 안쓰럽기도, 조금은 귀엽기도 해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분명 남자에 관심 없는데 자꾸 관심이 가게 만드네.
“그래, 박지훈. 나는 나여주야.”
“아, 여주…….”
“맨날 나 보면 인사하고 싶어하는 것 같길래. 이제는 속 편하게 손 흔들고 인사 좀 하라고.”
내 말에 큰 눈을 도르륵 굴리다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는 것에 만족했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만들었네. 꼭 강아지 같은 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잘 했어요. 하고. 우리 할머니 집에 있는 순돌이 닮았네. 걔도 내 말이면 껌뻑 죽듯 잘 듣던데.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손이 그 갈색 머리카락, 강아지마냥 순한 머리 위에 얹었나 보다. 정신을 차렸을 땐 갑작스러운 내 스킨쉽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눈만 내려 나를 바라보는 내 삐뚤사랑광, 아니. 박지훈에 개의치 않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흐트러져서.”
나는 여전히 내 삐뚤사랑광 박지훈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싶었다.
(*^ㅁ^*) |
* 삐뚤사랑광 : 스토커(stalker)의 순 우리말. 천천히 굴러간다고 하여 무려 한 달만에 온 저는 아주 쓰레기입니다. 프로듀스 101이 워너원이 되고 나서야 오다니……. 저를 매우 때리셔도 저는 할 말이 없읍니다. 저번 편에 제가 생각지도 못 하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셔서 뿌듯했는데 신알신 해주신 분들이 넘넘 많아서 2차로 놀라 버리고 말았어요. 못난 제 글을 기다려 주시다니. (크흡) 저는 앞으로도 글을 빨리 가져오는 재주는 없을 테지만 열심히 꾸준히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어서 빨리 지훈이와 여주의 꽁냥거리는 모습을 쓰고 싶어서 양치 하면서 만나게 만들어 버렸는데요 ㅎ. 양치 꿀꺽 삼킨 지훈이 모습 상상이 가지 않으신가요? 전래 귀염둥이야! 둘이 사귀는 그 날까지 구야는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후후. 암호닉은 어느 정도 회차가 나간 후에 정리글을 올릴 테니 천천히 신청해주셔도 괜찮아요. 제 글을 봐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내 마음 속에 ★ 저 ☆ 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