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w. 홍차화원
"어서오세요 '블랑' 입니다."
오늘도 어김 없이 찾아오고 말았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길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다.
두번째는 그 길을 같이 지나가던 친구의 제안으로 들어가 보았고, 세번째는 두번째 그 날을 계기로 우연이 아닌 내 자의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두번째로 오게 되었던 날, 사람이 너무 많아 그것도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줄을 서는 내내 카페 특유의 향긋한 원두 냄새와 디저트의 달큰한 향을 맡으며 도대체 이 카페는 다른 카페랑 다른게 뭐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에 대해 비생산적인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앞 뒤로 똑같은 한국 쌀을 먹고 자랐을 텐데 우리보다 한뼘은 더 커보이는 여자들 사이에 낑겨 주문을 할 때마다 몸을 베-베 꼬는 저 태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나와 내 친구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의 비생산적인 토론의 끝이 났다.
"야 대박.."
"주문 도와 드릴까요?"
생긋 웃어 보이며 주문을 도와 주겠다는 토끼를 닮은 그의 말에 우리는 하라는 주문은 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우리를 향해 수줍은 듯 고른 치열이 보이게 활짝 웃는 그에 코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무슨 정신으로 주문을 하고 돌아 온 건지 우리 손에는 어느새 녹차라떼와 아이스아메리카노, 그리고 작은 레드벨벳 조각케이크가 들려져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카페에 알게 모르게 조용조용 평일 마다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 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에 걸맞는 화이트 인테리어와 작고 큰 녹색 식물들 세련된 조명과 채광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긴 남자 알바생만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평일에도 카페 안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매일매일 손님이 많았다.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책의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으면 너무 눈에 튈 것 같아 나는 매일 자리를 바꿔 앉았다. 하루는 채광이 잘 드는 야외 테라스 쪽에 앉아 어울리지 않지만 프랑스 자수를 두었고, 또 하루는 사놓고 한 동안 돈이 없어 괜히 배가 아파 꺼내 보기도 싫었던 여행 수필을 읽었다. 알바생은 내가 매일 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똑같은 얼굴을 하고선 웃어보이며 말했다.
"주문 도와 드릴까요?"
cafe de blanc
오늘로 8번째 출석이다. 매일같이 다이어리에 출석 체크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오늘 몇번째 방문인지 잊을 터가 없다. 카페는 어쩐 일인지 평소에 비해 사람이 많이 없고 한산했다. 그래서 그런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채광이 더 밝게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평소와 상반된 카페 분위기와는 달리 나는 익숙한듯 카운터 앞에 줄 서 있는 여자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내가 시킬 음료는 정해져 있으니. 내 차례를 기다리며 이 곳에 발을 들인 후 이 곳의 특이점을 몇 가지 떠올렸다. 알바생 모두가 남자라는 점, 그리고 그 알바생 모두가 잘생겼다는 점, 이름이라도 알면 sns 라도 찾아보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건지 모두가 익명의 ‘J’ 라는 닉네임을 쓴다는 점.
"오늘도 오셨네요?
"..네?"
오늘은 매일같이 내 주문을 받아주던 토끼 알바생이 아닌 포스기 뒷편에서 커피를 내리던 다른 알바생이 주문을 받았다. 당황했다. 매일 뒤에서 내가 시킨 음료를 만들기만 해서 내가 자주 오는지 안오는지 알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포스를 잘 만지는게 익숙하지 않은지 입술을 살짝 매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잘 안되던 것이 해결 된 건지 고개를 들며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매일 뒤돌아 있어 잘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서서 보니 역시 이 카페는 알바를 뽑을 때 1순위가 외모인 것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 했다.
"오늘은 좀 한가하죠?"
"어...네 그러게요.."
"녹차라떼 맞으시죠?"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내렸다. 괜히 매일 당신들 보러 이 카페 옵니다 하고 속을 훤히 들켜 버린 것 같아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은 지금 저 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토마토주스 만큼 빨갛게 달아 올랐을 것이다. 나에게 웃어보이며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서 토마토주스를 만든 또 다른 알바생 옆에서 내가 주문한 녹차라떼를 만들기 시작 했다.
토마토주스를 만들고 있던 머리가 굉장히 작은 알바생은 카운터 옆 쪽에 기대어 서서 있는 내 쪽을 보더니 인사라도 하듯 활짝 웃어 보였다. 단체로 예쁘게 웃는 훈련이라도 받는 걸까.
음료를 받아 들고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2층에 올라갔다.
이 카페에 매일같이 출석도장을 찍는 다는 것을 들켜 버린 이상 알바생이 잘보이는 1층 자리에 앉아서 노골적으로 구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층에 올라오니 루프탑 같은 형태의 바 같았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카페라 그런지 적당한 그늘에 싸여 조명을 켜놓아도 은은하게 빛이 느껴졌다.
"2층도 괜찮죠?"
갑작스러운 말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서글서글한 눈매로 웃어보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또 다른 알바생이었다.
그런데 알바생이라고 보기엔 밑에 알바생들과는 사뭇 다르게 여유로워 보였고 유니폼도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손님들이 2층엔 잘 안 오세요. 1층이 너무 꽃밭이라 그런지."
“아…”
"2층도 자주 올라오세요. 저 쪽 빈백이 있는 곳 뒷편 자리는 조용히 자수 두기에 좋아요."
내가 자주 오긴 자주 왔나 보다. 여기에 와서 어떤 음료를 시켜먹고 혼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꿰고 있을 정도면. 화단에 물을 주던 것을 멈추고 작은 손수건으로 커다란 입사귀를 닦아 주며 나에게 또 다시 서글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에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그의 명찰을 보니 매니저 J 라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저 J는 무슨 뜻이길래 다들 J를 달고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단골 손님으로 각인 되었다고 해서 이런거 까지 주제 넘게 물어보기엔 좀 그런 것 같아 속에 넣어두었다.
화창한 주말 오후, 나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셔 커튼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에 나갈 준비를 했다. 커튼을 사고 집에 군것질 거리가 떨어진 것 같아 주변 제과점에 들어가 몇가지 골라 담았다. 해가 어느새 머리 뒤로 넘어 가고 있었다. 양 손 가득 들고 매일 같이 블랑을 가기 위해 걸었던 이 길을 걸으니 왠지 오늘은 카페 앞을 그냥 지나치는게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블랑은 후미진 골목 쪽에 있었지만 그 곳을 지나 나오면 바로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어 나름 애용하는 루트 중에 하나다. 절대 이 곳을 힐끗 보기라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일 없듯 나는 카페의 문 앞에 멈춰 서 불이 꺼진 네온사인 간판을 올려다 보았다. 안 쪽으로 들어가면 마치 이상세계에 온 듯 뻥 뚫려 있는 유리창 너머로 채광이 밝게 들어와 정원 같이 꾸며진 테라스가 보인 반면, 카페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외벽 쪽은 하얀 벽돌에 걸린 네온사인과 문에 달린 인디핑크의 커튼이 달려있는 작은 창문 만이 존재했다. 가장 유동인구가 많을 주말에 영업을 안하는 카페 안에 누군가 있을 리가 없지만 왜인지 모를 호기심에 멈춰선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양손에 들려있는 봉투를 손에서 팔목으로 옮겨 카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영업을 하는 평일에도 문에 달린 작은 창문에 늘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커튼이 걷혀 있었다. 몸을 바짝 밀착 시켜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 보니 힘이 앞으로 쏠렸는지 ’PULL’ 이라고 쓰여져 있던 팻말과는 다르게 문이 스르르 밀리기 시작했다.
“어..어..!”
까치발을 들고 있던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 열리는 문을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안은 내가 아는 그 곳과는 또 다른 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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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홍차화원입니다.
예고 했던 대로 'J에게' 로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 합니다!
암호닉은 새로 신청 받도록 할게요.
암호닉 신청은 댓글에 [암호닉] 이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여러분 재밌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