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걔가 쟤야?"
"응. 쟤네 엄마가..."
다 들린다, 이것들아. 귀가 아플 정도로 왁자지껄한 급식실 안에서도 나를 주인공으로 한 말들은 기가 막히게 잘 들렸다.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한가득 퍼서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맛은 모르겠다. 사실 내가 어떻게 밥을 씹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헐. 진짜 유부남만 골라서..."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쟤네 엄마 매일 밤마다 나가서 새벽에 들어온다고."
그걸 너희 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실까.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동네 순찰이라도 도시나봐?
뱉어내지 못할 말들이 입 안에서 밥알과 함께 맴돌았다. 꾸역꾸역 삼켜내도 명치 언저리에 걸려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혀로 입 안을 한 번 훑어낸 뒤 다시 숟가락을 들었을 때였다.
존나 더러워.
귀에 박히는 한 마디에 팔의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뒤에서 다 듣고 있는거, 알지? 너네. 들으라고 한 말인 양 너무나도 아프게 찔러오는 말에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아니, 몇 입 먹지 않은 밥마저 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히 나를 향하고 있을 시선이 두려워서 뒤를 돌아볼 수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대화의 화제는 어이없을 만큼 빠르게 바뀌었다. 3반에 누가 누구에게 고백을 했는데 차였다더라, 하는. 아주 가볍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 나와 엄마를 둘러싼 소문도 그럴 터였다. 남들에게는 맛있고, 자극적이고, 입 밖으로 내도 본인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가벼운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그들이 뱉어낸 말들의 무게는 만신창이가 된 내가 다 버텨내야 했다.
눈치를 보며 일어나 남은 밥과 국을 모두 잔반통에 쏟아낸 뒤 서둘러 급식실을 빠져나왔다. 목이 까슬거리고 가슴께가 무거웠다. 또 체했구나.
소화불량과 강다니엘
w. 강단이
점심시간의 복도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그리고 평범하게 활기찼다. 연예인 얘기를 하며 까르르 웃어대는 여자아이들과, 게임기 하나를 가지고 서로 타박하며 장난치는 남자아이들. 간간히 손을 마주잡고 수줍게 서로를 바라보는 커플들도 보였다.
물론 벽에 딱 붙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죄인처럼 걷는 나는 배경에 불과하지만. 남들에게는 추억조차도 될 수 없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도 나는 어우러지지 못해서 스스로가 이물질인 마냥 숨어 다녔다.
숨죽이고 양호실까지 다다라 문을 열면서 오늘은 또 어떤 핑계를 대고 소화제를 받아낼지 고민했다.매일 점심시간마다 체했다며 소화제를 받으러 오는 날 보고 양호선생님께서는 몸 다 상한다고 타박하시면서도 어두운 내 표정을 보고 소화제를 내주시곤 했다.
소화제를 먹는 습관은 고질적인 내 병이었다. 차가운 시선들 가운데서 꾸역꾸역 밥을 삼키고 거북한 속을 달래려 소화제를 먹기 시작해서, 지금은 매 끼니마다 소화제를 먹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손가락을 넣어 억지로라도 토하곤 한다.
사실 알고 있다. 음식이 체한 게 아니라는 거. 억지로 삼켜냈던 경멸의 눈초리와 상스러운 욕설, 비웃음들이 가슴께에 뭉쳐서 소화되지 않을 뿐이었다.
호기심과 더러움, 흥미와 혐오가 뒤섞인 나를 향한 눈동자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며 양호실 문을 열었다.
"지금 양호선생님 없는데."
"내가 뭐라도 해줄까?"
말을 마친 그 아이는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나는 숨을 멈추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물음도,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놓은 그 아이의 무릎도, 코를 찌르는 양호실의 알콜 냄새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느낄 수 없었다.
나를 향한 미소가 너무나도 오랜만이라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매일밤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히는 경멸의 표정들을 다 잊게 만들만큼, 그 아이의 웃음이 반짝반짝 빛나서 그랬던 걸까.
그게 강다니엘과의 첫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