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필 무렵
第 1장 ; 낙화 (落花)
"도련님."
"......."
"도련님, 폐하께서."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창 밖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폭설이었다. 설국(雪國)에선 흔한 일이었지만, 유달리 눈이 많이 내렸다. 오늘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도련님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나의 일이었다. 방에 들어가자, 여전히 책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 도련님이 보였다. 오늘이 벌써 삼 주째다. 궁은 지금 난리가 난 상태. 도련님 때문이었다. 폐하의 외아들인 도련님은 왕위에 오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인수인계 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곤 방 문을 걸어 잠궜다. 그게 벌써 삼주 전 일이고, 도련님의 태도는 변함 없었다.
"너도 내가 어려운 모양이지."
"도련님, 이제 그만 나오셔야 합니다."
"말했잖아. 난 관심 없어."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전하께서 간곡히 원하십니다."
여전히 책에 코를 박다시피 하며 고개조차 들지 않는 도련님이었다. 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마른세수를 하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도련님의 성격답게 방 안은 놀랍도록 깔끔했다. 책 넘기는 소리만이 큰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한숨을 푹 내쉬고 뒤를 돌아보았다. 신하들이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네, 오늘도 아닌 것 같네요. 말이 통하질 않으니. 꾸벅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서려던 차, 도련님이 책을 탁 덮었다.
"나가지 마."
"......."
"둘이서 얘기하고 싶으니, 문을 닫거라."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램프 아래로 책에 각인된 은색 글자들이 빛났다. 봄이 오면, 늘 딱딱한 제목의 책들만 골라 읽던 도련님과는 다르게 제법 감성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 도련님이 의자를 끌더니 의자를 툭툭 손으로 쳤다. 와서 앉아. 주저하는 내가 답답했던 건지, 흔들 의자에서 일어나 나의 팔을 잡고 의자 앞까지 날 데리고 온 도련님이었다.
"언제까지 널 보낼 셈인지."
"......도련님께서 밖에 나오실 때까지요."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안 됩니다."
"명령이야."
갑질이란 게 이런 걸까. 제법 단단한 말투로 말해오는 도련님에 그냥 기가 눌릴 수 밖에 없었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창 밖엔 놀랍도록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도련님의 요구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될 일인가요. 아무 말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를 낸 도련님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많이 오네.
"여긴 일 년 내내 겨울 뿐이야."
"......."
"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
"그럴 리가요. 늘 여기에만 있었는데."
"존댓말도 쓰지 마."
"도련님!"
어렸을 무렵, 나는 도련님과 함께 자랐다. 부모 없는 날 거두어 주신 폐하께서, 도련님에게 벗이 돼 주라며 날 도련님과 함께 궁에서 지내게 하셨었다. 나 말고 또래의 친구가 없었던 도련님은 나와 둘도 없는 벗 사이로 지냈다. 그 땐, 뭣 모르는 어린 나이였으니 도련님에게 찍찍 반말을 했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이후로부터는 예전처럼 쉽게 도련님을 대할 수 없었다. 낯 간지럽기도 했고, 궁의 어르신들의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곳은 일 년 내내 겨울,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이 의미가 없는 곳이다. 설국(雪國), 말 그대로 겨울 나라다. 봄이라는 건, 우리에겐 와 닿을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했다. 그림책에서 본,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풍경, 그게 내가 아는 봄의 전부였다. 사방이 설원인 이 곳을 벗어나 본 경험도 없었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눈이 내리고, 강가의 물이 어는 장면은 나에게 일상이었다. 나라를 나서면, 더 다양한 곳들이 있다는 말을 주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외출의 기회는 아무에게나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에, 쉽사리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도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 자꾸 미루시는 겁니까?"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예전부터 약속된 일이었습니다."
"원하지 않아."
폐하는 도련님을 참 아끼셨다. 어릴 적부터 영특했고, 성품도 온화했기에 왕실 어른들의 예쁨을 독차지하던 도련님이었다. 말썽 한 번 부린 적 없었고, 늘 웃는 얼굴로 신하들을 대하던 도련님이었다. 백성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도련님이었다. 그런 도련님이 돌연 왕위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모두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도련님이 왕위를 잇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련님은 너무나 단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
"이미 여긴 썩을 대로 썩었어."
"......."
"너도 알잖아. 그 쪽에서 왕위를 노린다는 거."
"......그럴 수록 더 단단해 지셔야 합니다."
"피바람이 몰려올 거야."
바람 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도련님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 보였다. 도련님이 왕위 다툼에 끼고 싶어하지 않을거라는 건 모두가 알 것이었다. 눈치가 빠른 도련님은 이미 왕실 내 그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다 아는 듯 했다.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왕위를 노리는 자들이 있고, 그들을 막고 싶은 사람들이 빨리 도련님을 왕위로 올리고 싶어한다는 것.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틀어박혀서 밖에 안 나오시면 안 됩니다."
"이거 읽어본 적 있어?"
"......."
봄이 오면. 연신 책표지를 만지작거린 도련님이 피식 웃었다. 내가 요즘 미친 걸까. 이런 책을 다 읽게 되네. 도련님이 왕위에 오르지 않으면 대체 누가 오른단 말입니까. 너무나 완고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당연히 도련님이라면, 그들과의 피 튀기는 싸움을 면하고 싶어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 한 번도 이렇게 나온 적이 없었던 분이었으니, 더 파급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도련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잘못하고 있다는 거.
"......도련님."
"......."
"아니, 민현아. 너 이러면 안."
"우리 도망갈래?"
"민현아."
"아무도 못 찾는 곳으로."
겨울나라 왕자님 민현이가 보고 싶어서 쓴 글이에용
겨울나라 왕자님 사랑해
고삼화이팅 짜요 여러분 잘 부탁드려요 ^ㅡ^ ,,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