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강다니엘의 싸가지를 찾습니다.
w.한올한올
01.
" 아이고 두야.. "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게 여간 고통스러운게 아니었다. 어제 밤 진탕 들이킨 술 덕분이니 누굴 탓 할 수도 없는 노릇.
눈도 채 뜨지 못하고 관자놀이 주변 부위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상체를 일으키는데, 허전함이 감도는것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평소 처럼 실오라기 걸침 없이 잠을 청했거니 싶어 눈을 떴는데 어라? 여기가 어디냐...
우리집을 이렇게 요란스러운 샹드리에도 없고, 천장이 그닥 높지도 않은데.
머릿속이 파팟 하고 불꽃을 튀는 느낌은 난생 처음 느껴본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문제가 생긴듯하다.
나도 모르게 이불을 끌어 안았다가 낯선 감촉에 곧바로 떼어냈다. 이건 내가 평소 살부비던 이불이 아니다. 어쩐지 더럽게 폭신하더라.
" 히이익!!! "
목 속 깊이 감돌던 비명소리보다 내 손놀림이 더 빨랐다. 다행히도 억눌린 비명소리는 아주 잔잔하게 울렸다.
내 두눈을 의심했다. 아니 의심하고 싶었다. 내 옆에 누웠있는 사람은 어제 함께 술을 진탕 마셨던 민정이도, 내가 아는 그 누군가도 아니었다.
오늘 처음 본 남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제 처음만났겠지 아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씨발
아무렇게 뒤엉켜 벙찐 머리를 아무렇게나 쥐어 잡고 뜯고 흔들어도 어제의 기억의 조각을 찾아 낼 수 없었다.
식상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누군가 내 머리에 지우개를 심어둔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필름이 확 나가버릴 수가 있는거지? 으아악!!
" 아냐 괜찮아. 어제 내가 술을 먹었고..그래 먹었는데 왜 내가 여기 있는거지??? 아무일 없었을거야...아냐 아무일 없었을리가 없잖아!!! "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듯 낮게 읇조렸다. 정말 아무일이 없었길을 간절히 바라며 이불을 살짝 젖혀고. 나 뿐만 아니라 옆에 단잠에 빠져 있는 남자 또한 알몸이다.
좆됐다.
절망스럽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지금 나지도 않는 기억을 더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가야한다.
바닥에 이리저리 엉켜 있는 옷가지들을 보니 긴박했을 어제의 장면이 예상된다.
" 미쳤지. 미친거야 김여주.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지!! "
습관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거나 당황할 때면 내 생각을 입밖으로 주절주절 내뱉은 아주 마음에 안드는 습관.
조용해도 모자랄 판에 시끄럽게 말이나 흘리고 있으니. 위아래 속옷을 어떻게 입었는지도 모르게 입고 상의를 머리에 밀어 넣는 순간에
곤히 자고 있던 남자가 부스스 깨어났다.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던 계획이 완전 틀어졌다.
" 뭐야? "
" 아 저...그러니깐요. 아 그저... "
" 아 어제, 식탁 위에 지갑에 돈 있어. 원하는 만큼 가지고 꺼져 "
" ..네? "
" 안들려? 두번말하게 하지말고 빨리 꺼지라고 "
상의를 마져 입지도 못한 상황에서 난 낯선 남자와 마주해야했다.
뭐냐는 물음에 나는 나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이럴 수록 침착해야 하고 생각했으니까.
서로 아무일 없던것처럼, 쿨하지 않지만 최대한 쿨한척하면서 이 집을 빠르게 나가고싶은 마음 뿐이었으나 삐딱하게 나오는 남자 때문에 그러기 힘들어졌다.
" 저기 이봐요. 돈이라뇨? 지금 사람을 뭘로 보는거에요! 지금 말 다하ㅎ..."
" 뭘로 보다니. 돈 보고 들러붙은 여자. 아니면 얼굴 보고 덤빈 여자 정도? 원하는 대답인가?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니 적나라하게 비치는 남성에 놀라 말을 하다 고개를푹 숙인채 끝을 흐렸다.
목욕 가운을 입으면서 까지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을 내뱉으며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에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 성격 장난없다.
" 뭔가 굉장히 오해를 하고 있나본데요.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거든요? "
" 아닌데 왜 넌 여기있고 나와 잤을가? "
" 그..건..! "
" 그런여자가 아니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정도로 밖에 생각이 안드는데. "
" ...... "
" 그리고 그건 나랑은 상관 없는일이라서 말이야. 귀찮게 하지말고 좀 나가주지? "
싸가지가 없다. 없어도 한참 없다. 분명 인격이 한창 성장 할 그 때쯤 무슨 큰일을 당한게 분명해.
말빨로는 이길 수 없다는건 느낌적으로 다가왔고, 그래도 궁금한건 어느정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날 지나쳐 방을 나가는 남자의 팔목을 잡아챘다.
" 좋아요. 그런여자라 쳐요. 그럼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것만 알려줘요. "
" 글쎄...너가 날 따라왔거나, 따라왔거나 둘 중 하나겠지. "
아니, 그냥 내가 널 따라왔다 라고 하지 그러지? 육두문자가 목젖 앞으로 마중나온걸 억지로 삼켜냈다. 안그래도 좋은 이미지 더 이상해질까싶어서.
뭐 더 나빠질 이미지도 없는건가. 잡혀 있던 손을 내치고 돌아 가나는 남자의 뒤통수를 갈기고 튈까 잠깐 생각도 했다.
홀로 남겨진 방안에서 나머지 옷을 챙겨입고 빠진 물건이 없는지 두번 확인했다. 어떠한 이유로도 두번 마주하고싶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가방을 챙겨 나왔다. 남자가 원했던것처럼 조용히 꺼져줄 생각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 야 "
" ...... "
" 연락처 있으면 두고가. "
" 연락처는 개뿔 "
" 내가 누군지 모르는건 아닐테고. 나중에 혹시라도 있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거니깐 두고가는게 좋을걸. 그게 그쪽한테도 좋을테니깐. "
" 당신이 누군데. "
" 모르면 말고. 연락처 남기고 빨리 나가. "
쿨하게 돌아던 남자는 욕실로 추정되는 공간으로 몸을 움직였고, 예상했던 대로 물소리가 흘러 나왔다.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인것마냥 말하는것까지도 맘에 안든다. 허세부리기는 잘생기면 다냐! 잠깐의 고민 끝에 번호를 남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한거라고 하니...식탁 주위에서 발견 된 포스트잇위에 번호를 끄적이면서도 풀리지 않는 짜증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