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지훈을 좋아한다. 이 망할 놈을.
오늘도 나의 하루 일과는 박지훈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박지훈을 좋아하기 시작한 359일째
1. 우리 학교는 7시 50분까지 등교가 원칙이다.
2. 그리고 박지훈은 항상 7시 27분 쯤에 교실에 도착한다. 집이 멀어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늦을까봐 항상 일찍 타고 와서 그런 듯.
3. 박지훈은 교실에 오자마자 형광 주황색ㅡ전교생이 다 아는 박지훈의 특이 취향이다ㅡ가방을 놓고, 그 가방을 베고 엎드려 잔다. 그러고선 선생님 오실 때까지 안 깬다. 아침 자습 시간에도 쭉 자고, 1교시 시작 후에 슬며시 일어난다. 잠이 많음.
4. 그리고 나는 그런 박지훈을 위해 항상 박지훈이 잠잘 때, 책상 위에 먹을 거리를 두고 자리로 돌아간다.
4-1. 예를 들면 박지훈이 좋아하는 초코에몽이나 바나나 우유. 아니면 카카오프렌즈 빵 종류.
4-2. 그리고 난 그 먹을 거리 위에 포스트잇을 항상 붙인다.
4-3. 포스트잇에는 오늘의 날씨, 오늘의 점심과 석식, 박지훈 축구부 대회 일정 혹은 디데이 날짜수. 그리고 내가 많이 사랑한단 말...?
5. 박지훈은 항상 일어나자마자 내가 쓴 포스트잇을 떼어서 유심히 본다. 확인하는 듯.
6. 재밌는 건 박지훈은 내가 준 먹을 거리를 한 번도 안 먹은 적이 없다는 거다. 항상 점심 시간 전에는 먹었던 것 같음.
7. 고맙다는 말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딱히 고맙다는 말을 하진 않더라. 뭐 박지훈이 그렇지. 나쁜놈! 죽어라!
7-1. 진짜 죽진 말구.
8. 그래도 난 좋다. 항상 확인해주고, 맛있게 먹어주니까.
8-1. 일방적인 사랑이지만 사랑 받는 느낌이 든다.
8-1-1. 말이 좀 모순이지만 뭔 상관인가. 박지훈이 잘생겼으니 넘어가자.
9. 가끔 박지훈이 축구부 시합 때문에 수업을 빠지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박지훈한테 내가 한 노트 필기를 보여준다. 박지훈이 보여달라고 부탁한 건 아니지만.
9-1. 우리 지훈이 성적 떨어지면 안 되잖아.
9-2. 박지훈은 그걸 또 열심히 옮겨 적는다. 귀여워서 울고 싶다. (T ^ T)
10. 이렇게 계속 얘기하니까 박지훈이랑 나랑 되게 먼 사이, 그러니까 내가 되게 멀리서 박지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니다. 나 엄청 박지훈한테 치근덕대거든.
11. 박지훈이랑은 친하다. 내가 찝적대서.
11-1. 석식도 같이 먹고, 나 야자 끝나고도 같이 간다고!
12. 석식은 사실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다. 나도 내 친구가 있고, 박지훈도 박지훈 친구가 있다보니 서로 점심 먹을 때는 자기 친구들이랑 먹는데, 나는 석식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 친한 친구들 뿐만 아니라 그냥 아는 친구들도 다 야자를 거의 안 했거든.
13. 그래서 나는 박지훈한테 찡찡댔다. 나랑 제발 밥 같이 먹어달라고, 나 혼자 밥 먹기 싫다고.
14. 박지훈은 처음엔 싫다고 했다. 그러고선 그 다음 날 석식 시간에 야자실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더라고.
14-1. 난 진짜 그 때 박지훈이 나랑 안 먹어주는 줄 알고 체념한 상태로 야자실에서 나왔는데, 박지훈이 나 나오자마자 " 야. 가자. " 하고선 먼저 앞서가더라. 그 때 좀 많이 설렜다. 집 가서 베개 50번 쳤다. 너무 설레서!
14-2. 뒤에 종종 따라가면서 " 지훈아, 너 친구들은? " 하니까 박지훈이, " 친구 없어. " 이러더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밥 먹는다는 녀석이. 짜식.
15. 사실 박지훈은 굉장히 무뚝뚝한 편이다. 나에 비해서는?
16. 내가 맨날 먹을 거 챙겨주고 지 스케줄 챙겨주고 아프면 약 챙겨주고 분위기 맞춰주고 애교 부리는 데에 비해서 박지훈은 그냥 무반응이다.
17. 근데 내가 왜 박지훈을 좋아하냐고?
18. 짜식 관심없는 척하면서 나 잘 챙겨줌.
19.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책상에 먹을 거 갖다두면, 안 먹고 안 보고 버리는 게 아니라 박지훈은 다 읽어보고 다 먹음. 군것질 잘 안 사먹으면서 맛있게도 먹더라고.
19-1. 아, 내가 다 사줘서 군것질 살 필요가 없는 건가?
20. 아무튼, 석식 같이 먹어달라고 징징댔을 때 싫다고 했으면서 결국엔 같이 먹고
21. 집갈 때 항상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22. 전에 춥다고 징징대니까 투덜대면서 지가 입고 있던 후드 벗어서 던져 주고
23. 제일 중요한 건 생일 때 내 사물함에 선물 넣어 놓고 갔다? 연분홍빛 립밤이랑 샤워코롱. 그것도 장미향.
23-1. 심지어 내 생일은 7월 말인데! 여름방학인데! 방학 때 학교 안 나오는 놈이! 일부러! 학교에 나와서! 사물함에 넣어 놓고 갔다.
24. 지 나름에는 안 들킨다고 몰래 넣어 놓고 갔는데, 미안, 나 너가 넣고 가는 거 봤어...
25. 그 날 진짜 심장 기능 오류난 줄 알았다.
26. 언제는 내가 걔 앞에서 걔가 준 립밤 바르면서 " 지훈아, 누가 내 생일 때 내 사물함에 이거 넣어 두고 갔다? 완전 부럽지! " 이랬음 그러니까 박지훈이 하는 말이
27. " 그 애 착하네. 너한테 선물을 다 주고. "
2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순간 너무 귀여워서 미친 듯이 웃으니까 박지훈 동공이 1초에 20번 흔들렸다.
29. 그래서 내가 " 맞아. 그런 애는 잘생기고 멋지고 귀엽고 상큼하고 그럴 거야? 그치? "
30. 하니까 박지훈이 " 그러겠지. " ㅋㅋㅋㅋ
30-1. 아 박지훈 너무 귀엽다 진짜. 귀여워서 깨물어 버리고 싶다. 옴뇸뇸뇸.
31. 맞다, 저번에 진짜 대박적인 일이 있었다.
32. 내가 학원 가면서 박지훈 생각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일이 있었다. 그래서 등교할 때 발목 깁스를 하고 온 적이 있다.
33. 아, 아무리 박지훈 생각하면서 계단 올라가려고 해도 힘든 거다.
33-1. 정말 한 칸에 10초 이상 소비하면서 올라 갔다.
34. 늦을까봐 일부러 일찍 오긴 했는데 신발 갈아 신고 계단까지 가는데만 12분이 걸렸다.
35. 빨리 박지훈 봐야 하는데! 마음이 더 다급해져서 급하게 올라가려던 순간 뒤에서 누가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35-1. 누구겠어, 당연 박지훈!
35-2. 진짜 약간 꽃보다남자에서 이런 장면 나오지 않나?
36. F4 200트럭보다 더 잘생긴 지훈이가 나를 부축해줬다.
36-1. 왜 다쳤냐고, 조심 좀 하라고 툴툴대면서.
37. 진짜 너무 사랑스러워서 순간 볼에 뽀뽀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37-1. 우린 아직 그런 사이가 못 됐기 때문에….
37-1-1. 갑자기 슬퍼진다.
38. 아무튼 그렇게 지훈이가 부축해줘서 겨우 교실 자리에 앉았다.
38-1. 그때의 시간이 48분이었다. 지각할 뻔 했다.
38-2. 우리 반은 지각하면 2000원을 내야 하거든. 2000원이면, 지훈이한테 카카오빵 하나랑 초코 마시멜로 4개랑….
39. 박지훈은 나를 자리에 앉히고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39-1. 돌아가서 또 가방 베고 잤다.
40. 야, 미친. 뭐야? 박지훈이랑 드디어 사귀는 거? 자리에 앉자마자 내 뒷자리 유미가 물었다.
40-1. 나도 사귀고 싶다 (´・_・`) 박지훈이 내 남자친구였음 좋겠다…
41. 그런 거 아니거든. 괜히 슬퍼져서 신경질적으로 대답해버렸다.
41-1. 쟤는 언제쯤 나랑 사귀어 줄 거지?
41-2.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42. 박지훈이랑 못 사귀고 있는 내가 싫고 다리도 뻐근하고 해서 그 날 하루는 기분이 정말 지구 맨틀 외핵 내핵 뚫고 내려가 있었다.
42-1. 깁스한 것도 서러운데 깁스 때문에 지훈이한테 먹을 것을 못 사다주었다.
42-2. 오늘은 사랑한단 말을 못 했다.
42-3. 근데 박지훈이 날 부축해준 건 정말 좋았다.
42-4. 좋으면 뭐 해? 내 남자친구도 아닌데.
42-4-1. 조울증인가.
43. 하여튼 너무 우울해서 오전 수업은 거의 통째로 날려 먹고 점심 시간에는 교실에 홀로 남아 내 가방에 달려 있는 애꿎은 라이언 인형을 괴롭히고 있었다.
43-1. 오늘 급식으로 불닭이랑 새우튀김이 나온다고 했지만 왠지 먹고 싶지 않았다. 새우에 환장하는 나이긴 하지만.
43-1-1. 난 박지훈 여자친구가 아니니까 먹을 자격이 없다.
43-2. 지훈이는 날 싫어하나? 지훈이는 내가 그렇게 별론가?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별 생각들로 머리 속이 꽉 차있었다.
43-3. 야, 김여주. 울상 지으면서 라이언 머리를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내 책상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43-4. 고개를 드니 날 내려다 보고 있는 박지훈.
43-4-1. 쟨 어떻게 밑에서 봐도 잘생겼지…. 역시 내꺼.
43-4-1-1. 아, 아직 내꺼 아니지.
43-5. 아- 해. 그런 박지훈 입에서 나온 말. 난 아무 생각도 없이 박지훈이 하란대로, 입을 벌렸다.
43-6. 입을 벌리자마자 박지훈은 내게 뭔갈 물려줬다.
43-7. 새우튀김.
44. 너 새우튀김 좋아하잖아. 박지훈이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44-1. 아, 미친. 미친. 미친! 엄마! 나 심장이 코로 나올 것 같아!
45. 너무 떨려서 입에 물린 새우튀김을 씹지도 못 하고 내 옆에 앉은 박지훈만 멍하니 쳐다 봤다.
45-1. 빨리 드세요오-. 박지훈이 말 끝을 늘이며 말했다.
45-2. 그래, 우주에서 제일 잘생긴 애가 준 건데 맛있게 먹어야지. 거의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라 책상을 보면서 새우튀김을 우물우물 씹었다.
45-2-1. 이건 박지훈이 준 거다. 혀의 모든 근육을 이용해서 새우튀김의 맛을 느끼려고 애썼다.
45-3.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봤는데,
45-4. 박지훈이 턱을 괴고 날 보면서 웃고 있다.
45-5. 얼굴에서 불날 것 같다. 마그마보다 더 뜨겁다.
46. 진짜. 진-짜, 고마워. 개미 목소리로 말했다. 떨려서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46-1. 그러자 턱, 하고 또 내 앞에 놓여지는 사과 주스.
46-2. 그리고 참치마요 삼각김밥.
46-3. …이랑 마이쮸 복숭아맛.
46-3-1. 엄마, 나 오늘 동사무소 가서 생일 좀 바꾸고 올게.
46-4. 아무 말도 안 나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지훈을 쳐다 봤다.
46-4-1. 내 앞에 놓인 이것들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내 나름의 신호를 보냈다.
46-5. 야, 나 담 넘고 편의점 갔다온 거니까 빨랑 먹어. 박지훈이 삼각김밥 비닐을 뜯으면서 말했다.
46-5-1. 오, 주여. 박지훈이 드디어 나랑 사귀어주려나봐요.
46-6. 안 먹을 거야? 내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못 하고 가만히 박지훈을 쳐다보니 박지훈은 내게 비닐을 뜯은ㅡ먹기 편하라고 일부러 한 쪽만 안 뜯은 모양이었다ㅡ삼각김밥을 건넸다.
46-7. 떨려서 방금 먹은 새우튀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기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 하고 삼각김밥을 받아 들었다.
46-8.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동의 눈물.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46-9. 하지만 이내 삼각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지훈이가 준 거니까!
47. 나 니꺼 사느라 급식도 안 먹었다? 박지훈이 사과 주스에 빨대를 꽂아 주며 말했다.
47-1. 켁켁. 박지훈의 말을 듣자마자 사레가 들렸다.
47-2. 헐, 야 괜찮아? 박지훈이 내 등을 톡톡 두드려줬다. 걱정스러운 표정은 덤으로.
47-3. 영원히 사레 들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47-4. 이거 마셔, 이거. 박지훈이 사과 주스에 꽂은 빨대를 내 입에 급히 물려 줬다.
47-5. 액체가 들어가니 기침이 멈췄다. 아니, 근데 지금 그럼 박지훈이 나한테 주스 먹여주고 있는 거임?
47-6. 오늘 나 집 가다가 차에 치여 죽는 거 아니겠지?
48. 기침이 멈춘 걸 본 박지훈은 주스를 내려 놓고 다시 내가 먹는 걸 쳐다 보고 있었다.
48-1. 야, 나 한 입만.
48-2. 또 사레 들릴 뻔 했다.
48-3. 나 니 꺼 사느라 급식도 안 먹었어.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박지훈의 표정이 귀여워서 땅을 부시고 싶었다.
48-4. 근데 내 침 다 묻었는데 괜찮아? 우물우물 씹으면서 말했다.
48-5. 뭔 상관이야. 빨리 줘.
48-6. 빨리 달라는 듯 아 하고 입을 내 쪽으로 벌리고 있는 박지훈을 보면서 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48-7. 오늘부터 내 배경화면 문구는 '뭔 상관이야' 다.
49. 내가 먹던 삼각김밥을 건네 주니 그대로 받아 먹는 박지훈이다. 나, 지금, 얘한테, 먹여줬다.
49-1. 오늘 잠은 다 잤다. 내일 잠도.
49-2. 근데, 그럼 새우튀김은 어떻게 가져온 거야? 분명 편의점을 갔다 왔다고 했는데 새우튀김을 물려준 게 이상해서 박지훈에게 물어봤다.
49-3. 아, 올 때 급식실 가서 새우튀김만 받아 왔지. 내가 준 삼각김밥을 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박지훈이다.
49-4. 호흡곤란. 호흡곤란이 올 것 같다.
50. 나 챙기는 것만큼 너도 좀 챙겨라, 응?
50-1. 박지훈이 내가 때리고 있었던 라이언 인형을 만지작 거리면서 말했다.
50-2. 알겠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50-3. 아님, 내가 챙겨줄까? 고개를 홱하고 돌린 박지훈이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글의 끝은 100이 될 지 200이 될 지... 결말은 또 어떻게 될 지... 저도 모릅니다 ㅋㅋㅋㅋㅋ
막 썼기 때문에...
아무튼 설레셨으면! 좋겠네요!
지훈이는! 잘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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