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
살랑이던 바람에 흩날리던 네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 은은하게 나던 달콤한 아카시아 꽃 향기, 뽀얀 구름이 유난히 반짝거리던 그 날의 푸르던 하늘, 꿈결처럼 아득하게 들려오는 내 이름,
그리고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범벅이 된 표정으로 우물쭈물거리다 나를 와락 끌어안던 그 날의 너.
재환아, 좋아해
A
사실 처음부터 널 좋아한 건 아니었어. 이제는 정말 수능이 다가왔음을 느낀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고등학교 2학년, 그 때의 나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 없이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 나의 관심사는 오직 '내신', '모의고사', '대학' 뿐 이었어.
그래, 그 날 널 만나기 전까지는 말야.
생각 해 보면 너 정말 못된 애야. 나 그 때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단 말야. 야자도 꼬박꼬박 했고, 야자 끝나면 바로 독서실에 가서 몇 시간 더 공부하다가 집에 갔어. 주말에는 아침 일찍 독서실에 갔다가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독서실로 돌아와 공부를 했어. 나 정말 너 만나기 전에는 공부 열심히 했었는데.
…어휴. 이제와서 이게 무슨 소용이야. 내 마음대로 널 좋아한건데, 누굴 탓하겠어.
네가 살짝 밉기도 한데, 사실 고마운 마음이 더 커. 그 날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더 좋은 대학에 합격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두근거리고 설레이던 학창시절은 못 보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사실 너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이 너무 고마워.
재환아, 좋아해
재환아, 기억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너에게는 기억하지도 못 할, 그저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어.
그러니까 너희 반과 우리 반이 운동장을 같이 쓰던 그 날 말이야.
*
처음 운동장에서 너희 반을 만났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 아무리 운동장을 쓰는 시간이 겹치는 반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 반의 체육시간은 그 어떤 반과도 겹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처음에 너희를 봤을 땐 '쟤네들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나'하고 애들이랑 투덜거렸었어. 그리고 머지않아 너희 반이 축구를 할거라는 사실을 듣고는 대놓고 노려보며 험담을 했었지. 남의 반 체육시간에 끼어드는 것도 모자라, 운동장을 가득 써야하는 축구를 한다니. 체육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던 건 우리 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특히 그 때 우리 반은 피구 우승 후보로 꼽히던 반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매우 불만스러웠었어. 또 다른 우승후보인 1반은 자꾸 우리를 도발하지, 체육시간은 일주일에 딱 한 시간 뿐이지. 그런데 그 소중한 한 시간을 다른 반이 방해를 한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아핰핰핰핰핰핰핰핰!"
"아, 이 새끼 웃음소리 진짜 적응 안된다."
"누가 쟤 웃는 것 좀 막아봐라."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묘하게 기분 나빴거든.
결국 우리는 우르르 체육선생님께 달려가 항의했어. 쟤네는 왜 여기에 있어요, 우리 체육시간인데 쟤들이 운동장 다 써요, 하는 우리들의 칭얼거림에 체육 선생님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 해 주셨어.
그러니까 원래 7반은 지금 미술시간인데 미술 선생님이 갑자기 아침에 사고가 나셔서 학교에 오지 못하셨다는 거였어. 갑자기 수업 한 시간이 비게 되었는데, 마침 체육대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금요일에 있을 체육 수업과 미술 수업을 바꿨다는 거였어.
이해는 가지만 속상하더라. 체육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체육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상황 설명을 들은 우리들의 표정이 좋지 않으니까 체육선생님이 그럼 운동장을 나눠쓰는건 어떻냐고 우리에게 물어보셨어. 우리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이 너희 반 반장을 부르시더라.
어디서 그런 작은 몸집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운동장이 떠나가라 부르는 '7반 반장!' 소리가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던 너희에게까지 들렸나 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우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애 하나가 총총 뛰어오더라. 솔직히 멀리서 봤을때는 좀 무서웠어. 얼굴은 잘 안보이는데, 웬 덩치 좋은 애 하나가 뛰어오더라구. 체육 선생님께 일러서 운동장 나눠 쓰게 됬다고, 막 우리 노려보고 그러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그랬었지.
근데 막상 그 애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도착하니까,
웬 강아지같이 생긴 애가 서 있더라.
뭔가 방긋방긋 웃고 싶은 걸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그 표정의 이유가 궁금해서 빤히 쳐다보는데, 이쪽을 힐끗 쳐다보던 그 애랑 눈이 마주쳤어. 너무 당황해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그 애가 방긋 웃더라. 근데 뭔가 그 웃음이 내가 꼬마 애들 앞에서 '나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하는 마음으로 짓는 웃음처럼 보이는 거야. 진짜 속으로 엄청 당황해서 이 애는 뭐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체육선생님이 그 애한테 말을 걸더라.
"왜 애를 겁주고 그러냐."
"예? 제가요?"
따지고 보면 그 애가 나에게 겁을 준 건 아니었지만 그 애가 겁이 났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억울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 아이의 눈을 애써 피했었어. 뭔가 나를 보는 것 같기는 한데, 한참동안 말이 없길래 그 애를 힐끗 쳐다봤는데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좀 심했나 싶기도 하다. 솔직히 다니엘이 잘못한 건 없었잖아. 그냥 좀 덩치 크고, 놀라울 만큼 살가운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겠네.
하지만 뭐 어쩌겠어. 그 때 나는 다니엘을 처음 봤었는 걸. 어떤 애인지 알기는 커녕 이름도 몰랐었으니까.
그래도 애가 잔뜩 충격받은 얼굴이라 내가 엄청 큰 잘못을 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사과를 해야 하는걸까, 잔뜩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체육선생님이 다니엘의 머리를 출석부 끝부분으로 가볍게 내리치시더라. 근데 소리 좀 컸었다.
"그게 겁주는 거야, 임마. 아무튼 너희 반이 지금 3반 체육시간에 끼어든거니까 운동장은 반만 써라."
"…예."
"그럼 얼른 가 봐."
"네에…."
"아아, 그 운동장은 세로로 절반이다. 골대 반만 써도 되잖아?"
"어… 맞죠. 네, 알겠습니다."
"오야. 얼른 가라."
귀찮다는 듯이 대충 손을 휙휙 내젓는 선생님의 손짓에 다니엘이 엉거주춤 몸을 숙이며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가는데 좀 미안하더라. 계속 맞은 부분을 문지르면서 가더라구.
아아, 그 때까지는 정말 몰랐었어. 그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의 시작이 될 줄.
*
피구 연습은 순조로웠었어. 분명 우리 반 아이들을 짝수와 홀수로 팀을 나눈건데, 누가 보면 1반이랑 피구하는 줄 알겠더라. 처음엔 옆에서 7반 남자애들이 우르르 움직이는게 혹시라도 우리쪽으로 올까봐 신경쓰였었는데, 생각보다 우리 쪽에 가까워지겠다 싶으면 알아서 피하길래 괜찮겠다 싶어서 마음 놓고 피구를 하고 있었지.
그래, 네가 공을 차기 전까지 말야.
그건 피구의 세 번째 판이었어. 나는 평소처럼 수비를 하고 있었고, 그 때는 마침 내 근처에서 공이 움직이고 있을 때여서 내 신경은 온통 공에만 집중되어있었어.
그래서였어. 멀리서 남자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앞에서 맞은 편 아이들이 '어어'하는 소리를 내는 걸 몰랐던 것도.
뻑-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느낀 건 강렬한 소리였어. 내 머리와 단단한 무언가가 세게 부딪히는 소리. 그 다음으로 느낀 건 뭔가가 뒷통수를 강렬하게 밀어서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내 고개가 숙여졌다는 거. 그 다음으로 느꼈던 건 뒷통수에 느껴지는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과 주위의 비명소리.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머리는 웅웅 울렸고, 주변에서는 내 이름과 비명소리가 들려서 귀가 아팠어.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고, 그냥 어지러웠어.
방금 뭐지?
이건 뭐야?
하는 멍청한 생각만 느릿하게 스쳐지나갈 때였어.
아직도 기억나.
살랑이던 바람에 흩날리던 네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 은은하게 나던 달콤한 아카시아 꽃 향기, 뽀얀 구름이 유난히 반짝거리던 그 날의 푸르던 하늘, 꿈결처럼 아득하게 들려오는 내 이름,
그리고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범벅이 된 표정으로 우물쭈물거리다 나를 와락 끌어안던 그 날의 너.
그래, 재환아.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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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누네띠네입니다!
사실 가입해서부터 글을 보기만 하고, 글잡에 글을 올리는 건 처음인데
인티 글잡 글 올리는거 생각보다 어렵네여 8ㅅ8
그래도 알바하는 시간동안 짬짬히 써서 A편은 완성했습니당ㅎㅎㅎ
주인공은 재환이지만 다른 워너원 멤버들도 등장할 예정이에요!
개인적으로 청춘청춘한거 넘 좋아해서ㅠㅠ
고등학교 졸업한지 몇 년 지났지만 이렇게 학원물을 씁니다ㅠㅠ
워너원이 교복 많이 입어줬으면 좋겠어요ㅎㅎ..
교복 최고... 청춘 최고...bb
모쪼록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당ㅎㅎ
가시기전에 댓글 하나만 남겨주시면 너무 감사드릴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글숨김 못해서 그냥 썼는데 혹시 누르면 글 보이게 쓰는 방법 알려주실
천사 있으실까요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