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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우리의 몫을 가끔 잊어버리고 


 


 


 

"...새벽엔 춥네." 

 낡은 아파트 발코니, 잠옷 차림의 우진이 몸을 떤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후드집업 하나를 더 껴입고 나온다. 습관적으로 후드 안 주머니를 뒤적거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심심해진 우진은 발코니 아래를 구경한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한 동네.  어떻게 된게 이 곳은 새벽운동을 나가는 어르신들마저 보이지 않는다. 할 것도 없는 김에, 그냥, 우진은 일찍 집을 나서기로 한다.  평범한 동복차림에 겉옷은 흔한 패딩, 검은 백팩. 누가 봐도 딱 고등학생이구나, 할만한 차림. 우진은 현관문을 잠그기 전 혼잣말로 되뇌어본다. 안녕? 나는 박우진이야. 부산에서 왔어. 아직 낯선 표준어에 뒷목을 잠시 긁적이다 그는 천천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역시 너무 일찍 나온 것일까. 버스에는 학생은 커녕 사람들이 없다. 서울 사람들은 다 동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나.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이던 그때, 드디어 승객이 늘었다. 이번 정류장은 쉘터시티, 쉘터시티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쉘터시티라면 우진도 들어본 적이 있다. 이곳 강남에서 가장 비싸다는 아파트. 대놓고 외관까지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그 곳에서 탑승한 두 명의 승객은 우진과 같은 교복을 입은 남녀학생이었다.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단정한 코트들에 가려 처음엔 같은 학교인지 모를 뻔 했다. 와... 저런데 사는 애들도 버스를 타고 다니네. 우진은 계속 휴대폰을 바라봤으나 신경은 그들에게로 집중해 있었다. 그들은 우진의 앞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덕분에 서로 나누는 행동이나 옆얼굴 등이 우진의 위치에서도 슬쩍 슬쩍 엿보였다. 둘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옆모습임에도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여자애는 줄곧 남자애의 어깨에 기대어 조는 듯 하더니 세 정거장쯤 가자 남자애에게 뭐라뭐라 말했다. 낮게 웅얼거리는 것이 그들만의 대화방식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여자애는 다시 어깨에 기댔다. 남자애는 그런 여자애를 바라보더니 관자놀이쯤에 입맞췄다. 우진은 그런 그들을 보다 어느새 제 귀에 열이 찬 것을 느꼈다. 커플 한두번 보는 것도 아닌데 와 이러노. 남자애는 여자애의 머리에 다시 제 머리를 기댔다. 같이 염색이라도 한 건지 둘이 부슬부슬한 연갈색 머리가 똑같았다. 그래서 우진은 그들이 서로 기대 조는 뒷모습이 꼭 한사람의 것 같다고, 느닷없는 생각을 했다. 


 

우진이 너는 낯 가리는 줄 알았는데 성격 되게 좋다. 어, 내 강남 학교라고 쫄았다이가. 둘러싼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강남 학교 첫날 소감은? 별거 없든데. 오오~ 하는 함성이 이어지고, 우진은 씩 웃었다. 사실 정말이다. 새로운 학교라고 해서 별 것 없었다. 아이들은 특별하기도, 모자라기도 했으나 대다수가 평범했고 그렇기에 대다수가 평범한 우진에게 호감을 보였다. 야, 이따 밥먹고 축구나 한판 뛰자. 축구? 우진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와, 축구 싫어하나. 쟤 이름이 뭐랬더라... 아, 강다니엘. 자기도 3년 전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근데 아직도 이따금 튀어나오는 사투리를 못 고쳤다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축구를 하면... 우진은 자신이 습관적인 계산을 하고 있었음을 느끼고 여유롭게 말했다. 내가 부산에서 올라온 호날두다. 


 

축구로 땀에 젖은 교복은 금세 마르면서 한기를 가져왔다. 지금이 딱 그런 날씨였다. 점심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는데,  우진은 운동장에 두고 온 제 마이를 떠올렸다. 다니엘이 우진이 불편한 기색을 띄고 있음을 알아채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함께 가준다고 말했다. 둘은 허겁지겁 뛰어 운동장으로 향했다. 학교가 제법 넓은데도 뛰니까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 골대 앞 관중석에서 두 사람을 보았다. 아침에 본 아이들. 이 학교는 교내연애 금지 같은게 없는 건지 남자애 무릎 위에 여자애가 대놓고 머리를 뉘고 있었다. 그 때 다니엘이 그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야, 박지훈, 박여주!" 

지훈이라 불린 남자애가 서서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허락도 없이 우진의 손목을 덥썩 잡고 그들 앞으로 달려갔다. 

"뭐하냐, 수업 얼마 안 남았어." 

"여주가 머리 아프대서..." 

"아 맞나,  박여주 진짜 잘 자네, 날도 추운데." 

가까이서 본 지훈의 얼굴은 아침에 흘깃거리던것 보다 더욱 예뻤다. 길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는 데, 눈매가 묘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지훈에게 우진을 소개했다. 

"야는 박우진,  오늘 부산에서 왔다. 내 동향 친구니까 잘해주래이." 

지훈은 다니엘의 넉살에 살짝 웃는게 다였다. 우진은 오늘 처음 본 다른 친구들에게 그러듯 기계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원래 낯가리는데, 친해지면 안그런다. 친하게 지내자." 

지훈은 잠시 우진의 손을 빤히 바라보더니 그 손을 맞잡았다. 차갑고 군더더기없는 손가락이이 뜨겁고 딱딱한  손바닥을 얽어맸다. 

"친하게 지내자, 우진아. 인사할게." 

그 때 여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중얼거리며 힘겹게 눈을 떴다. 다니엘이 물었다. 

"박여주, 니 오늘도 설마 수업 째나." 

"머리 아파..." "와, 니 진짜 학교 안짤리는게 용하다.  개학하고 수업 몇번 들었냐." 

다니엘이 떠드는 사이 예비종이 울렸다. 다니엘은 다시 황급히 우진의 손목을 잡았다. 축구할 때도 느꼈지만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도 궃게 자라 힘이라면 어디서 지지 않는데... 다니엘에게 끌려가다시피 교실로 뛰어가면서도 우진은 생각했다. 느리게 눈을 뜨던 처음보는 여주의 얼굴을. 


 

"우진이 니 어느 방향으로 가는데." 

"나 00빌라." 

"오, 그러면 피씨 가기 전에 혹시 니네 집 들려서 가방 맡기도 되나." 

"어, 차피 내 혼자 산다." 

 심드렁하게 뱉은 우진의 말에 다니엘은 살짝 놀란듯했다. 

"와 혼자 사는데." 

"그냥 부모님 바쁘셔서." 

"개부럽노." 

다니엘은 진심으로 탄식하더니 말했다. 

"나도 혼자 살고 싶다. 박지훈네도 부모님이랑 따로 살던데." 

다니엘의 입에서 나온 지훈의 이름에 우진은 움찔거리던 호기심을 못 이기고 이야길 꺼냈다. 

 "박지훈이면 아까 잘생긴 애?" 

"어, 새끼 존잘에 돈도 많다, 공부도 잘하고." 

"좋겠네, 여자친구도 있고." 

"뭐?" 

"근데 여자친구랑 둘이 좀 닮았더라. 아니 사실 개틀이라서 아까 쫌 놀랬다." 

그러자 다니엘이 갑자기 숨이 넘어갈듯 웃어제끼는 것이다. 

"마,  걔네 사귀는 거 아니다." 

사귀는 게 아니라고? 우진은 더욱 당황했다. 여기는 교내 연애가 아무래도 무척 자유롭나보구나. 다니엘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게 다 보이는 우진을 보며 한참 더 웃더니 말했다. 

"쌍둥이니까 닮지." 

"뭐라고?" 

헐. 정직하게 나온 반응에 다니엘은 또 빵 터져서 이제는 사물함을 붙잡고 끅끅거렸다. 우진은 홀로 딴 생각을 했다. 그럼 아침에 본 건 뭐였지, 원래 쌍둥이끼리는 그렇게 각별한가. 우진은 꼭 닮은 네개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처연함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잘 정돈되어 인형같은 모습, 그런데도 새하얗게 질린 백지같은 얼굴들. 우진은 다니엘과 함께 내려가다 계단을 내려가는 두 남매를 보았다. 떨어지면 안 될것처럼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우진은 굳이 그럴 필요 없음에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박지훈!" 

그러자 동시에 우진을 올려다보는 순진한 얼굴 두 개. 지훈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진도 손을 흔들었다. 다니엘이 말했다. 

"니 지훈이랑 친해질 것 같다." 

우진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혼자 뒷머리를 만졌다. 


 

전학 첫 날부터, 싫어하는 애들이 생긴것 같다. 


 


 


 


 


 

몽상가들 모티브 (설정만 일부 참조. 내용은 많이 다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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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작가님 냄새가 나요 제 인생작이 될 냄새!!! 신알신 하고 갑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6년 전
비회원206.152
엄머놔 세상에.... 글에서 새벽녘에 느껴질 법한 쌀쌀한 향기가 풍겨요.
다음 편 기대할게요

6년 전
비회원153.64
헐..........
쌍둥이남매라니 상상도 몬해써여 ㅋㅋㅋㅋㅋㅋ
뒷이야기 너무 궁금한데 저기서 끊겼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궁금궁금........
히히
저는 얌전히 잘 기다리고 있을테니 어여오셔요
스릉해여 ㅠㅠㅠㅠ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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