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까는 위험하다 02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 본 남자와 그의 친구로 추정되는 남자와 또 다시 마주쳤다.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그 남자를 바라보자, 시선이 느껴졌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는 아무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 어색한 공기에 소름이 돋은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좀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너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은 아닌데, 아까 내가 넘어졌을 때 도움 주신 분이야."
내 말에 백수2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내 주인 아주머니께 안주와 소주 두 병을 주문했고,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몸에서도 잘 받아주는 것 같아 쉬지않고 마셔댔다.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아가씨,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그만 집에 가. 취해서 어떡하려구."
"저 아직 하나도 안 취했는데요? 괜찮아요, 괜찮아!"
술까지 마시니 기분이 더욱 좋아져 아주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주 한 병을 더 시켜 마구 마셔댔다.
조금 열이 올라오고 머리가 어지러운 게, 취해가는 것 같긴 하다.
둘 다 취하면 정말 길바닥에서 잘지도 모르는 노릇이기에, 내 앞에 있는 백수2의 상태를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는데,
맙소사. 이미 쓰러져있다.
그러고보니 우리 백수파 중에서 제일 주량이 약한 놈이었다.
소주 3잔이 주량인 놈을 가지고 3병을 먹이니, 당연히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집이 조금 먼 관계로, 일단 얘를 챙길 백수1을 불러내었다.
"백수2 처리하라고 부른 거면 뒤진다."
"아, 깜짝이야. 진짜 오늘 너네 둘 다 무당이냐?"
"혀 꼬인 거 보면 맞네. 그러게 내가 걔 데리고는 술 마시러 가지 말라고 했잖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뭐 어떠냐? 여기 우리가 자주 오던 포장마차니까 빨랑 와서 얘 좀 데리고 가."
"다음에 치킨 쏘면."
"콜."
"간다. 끊어."
뚝.
전화가 끊어지고, 한시름 놓은 난 연거푸 두 잔을 더 들이켰다.
백수1은 백수2와 집이 가까워 매일 얘가 쓰러지면 백수1을 부르곤 했었다.
치킨 값은 날아갔지만, 지금 당장에 저 짐덩이를 처리하는 것이 먼저라 난 망설이지 않고 콜을 외쳤다.
"왔냐?"
"너 치킨 쏘기로 한 거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 아, 망할. 얜 또 왜 이렇게 무거워."
"조심히 가. 무겁다고 애 길바닥에 버리지 말고."
"나 지금 그런 충동이 드는 것 같은데?"
"그래도 얘 이럴 때 챙겨주는 건 너밖에 없잖냐. 고마워."
"오글거리게 무슨 고마워래. 치킨이나 한턱 쏴."
"어, 그래. 잘 가."
그렇게 두 명을 보내고, 포장마차에는 나 혼자 남았다.
이제 나도 슬슬 집에 가야할 것 같아 남은 술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어머, 아가씨!"
온 세상이 핑핑 도는 것 같아 눈을 꼭 감았다.
흐릿하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애써 팔로 바닥을 지탱해 일어나려고 시도했다.
시도했는데, 난 하늘을 난 것처럼 붕 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따듯한 느낌도 들었다.
술에 취한 정신으로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힘겹게 실눈을 떠 앞을 바라보니 웬 남자의 뒷통수가 보였다.
그리고 이제서야 느껴지는 내 다리를 받치고 있는 그의 손.
"......누구세요?"
"아까 카페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술에 너무 취하신 것 같아서."
카페에서 만난 사람...?
헐. 말도 안 돼. 그럼 내가 오늘 겨우 두 번째 본 남자의 등에 업혀있단 말인가.
그것도 술에 취한 채로. 아아, 이번 생도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해야겠다. 이게 무슨 망신인지.
"아, 저 걸을 수 있어요. 이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아까 걸으려다가 쓰러진 거 아닙니까. 집 근처로 데려다드릴테니 어느 방향인지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정말 이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신경쓰여서 그럽니다."
그의 한 마디에 난 아무말도 못한 채 얼어버렸고, 술도 확 깬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쉽게 내려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난 조심스럽게 내 집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가씨, 우리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의 등에 어색하게 업혀 한창 가고 있던 중, 그의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콕 찌르며 장난기 있게 말하며 웃었다.
이 남자는 항상 무뚝뚝했던 것 같은데, 이 사람은 되게 잘 웃네. 미소가 예뻤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마시면 조금 무모해진다던데,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말투가 좀 특이해요."
내 말에 날 안은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고 옆에서 따라오던 남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마구 웃어대었다.
아니, 이 말이 그렇게 웃긴 말이었나...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 입을 꾹 다물었더니, 크게 웃던 남자가 아직 목소리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말했다.
"군인입니다. 말투가 좀 많이 이상합니까."
아, 역시나. 군인이었구나.
그 말을 하고도 큭큭 웃는 남자에 난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저었다.
난 평생 군인하고는 말도 못 섞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업히게까지 되다니.
내 간절한 소망을 신께서 들어주신 것 같아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여기에서 내려주셔도 돼요."
집까지 얼마 안 남은 편의점에 가까이 오자, 난 더 이상은 신세를 질 수 없어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고, 그는 곧 나를 내려주었다.
아까보다 술이 깬 느낌이라 다행히 바닥 위에 가만히 서있을 수 있었다.
"오늘 정말 여러가지로 감사했어요."
"아닙니다. 늦었는데 빨리 들어가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다음에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고 싶은데..."
"괜ㅊ......"
"좋습니다. 제 연락처이니, 문자 주시면 약속 날짜 잡는 걸로 하겠습니다.
일 때문에 며칠 답이 늦어질 수도 있는데, 제가 일부러 연락을 씹는 사람은 아니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오늘 정말 여러가지로 신세를 많이 지었던 것 같아 다음에 혹시 만나게 되면 밥 한 끼라도 사려고 가려는 사람을 붙잡았더니,
그 옆에 있는 남자가 오히려 더 좋아하며 갑자기 종이와 펜을 꺼내 전화번호를 적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난 그 전화번호를 받아들었고, 전화번호 위에는 그 사람의 이름이 적혀져있는 것 같았다.
"아, 옹성우씨?"
"네, 그거 제 이름입니다. 얘는 강다니엘."
아, 저 사람 이름이 강다니엘이었구나. 왠지 모르게 살짝 교포 느낌이 났다.
내가 아, 하고 입을 살짝 벌리며 쳐다보자 남자는 어색하게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목을 까딱, 하고 숙였다.
그 덕에 난 허리를 완전히 접어 인사를 하게 되었지만.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계속 그쪽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한데."
"아, 제 이름은 김여주(이)라고 해요."
"김여주......?"
내 이름을 말하자,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날 빤히 쳐다보았다.
아, 왜 그렇게 보지.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아까 카페에서도 그러더니, 이 사람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백수1이 잘 들어갔다는 전화인가 싶어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우진이'
역시나.
늦게 들어간 날에는 이 아이 전화가 없으면 섭섭했다.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내 옆집에 사는 고등학생인데, 인상은 무섭게 생겨도 날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주전부터 내가 좀 늦게 들어가는 날엔 나에게 항상 전화를 하더랬다.
이유는 누나가 밤 늦게 들어오면 위험하니까 걱정이 되어서, 라나 뭐래나.
"아, 그럼 저 먼저 들어가봐도 될까요?"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다니엘이라는 남자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핸드폰을 꼭 쥐며 말했더니 옹성우씨는 어서 들어가보라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살짝 미소를 띈 채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집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지금 어디에요?"
"지금 거의 다왔어. 또 나 기다리고 있는 거야?"
"당연하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누나 금방 올라갈게. 기다려!"
***
"누나!"
"너 이 자식,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날 기다려."
"그거야 당연히 누나가 걱정돼서 그렇죠."
"이제 누나 멀쩡한 거 확인했지? 빨리 집에 들어가."
"어. 누나 술 마셨어요?"
"그냥 조금 마셨는데. 냄새 많이 나?"
"조금이 아닌데, 이건..."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역시나 날 기다리고 있는 우진이가 보여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더니 금세 술냄새를 맡았는지 날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였다.
하여튼 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후각만 발달해서 날 뜨끔하게 만드는지.
난 서둘러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집쪽으로 밀었다.
"자, 내일 또 학교 가야지? 빨리 자."
그래도 내 말이면 잘 듣는 이 아이는, 입을 쭉 내밀면서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집에 들어갔다.
휴.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긴 것 같은지.
난 긴 한숨을 내쉬며 내 집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 참. 아까 받은 연락처.
난 주머니 안에서 아까 받은 연락처 종이를 꺼내 휴대폰에 입력하고 다시 발라당 누워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술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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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댕댕입니다! 저번 화보다는 조금 더 분량을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괜찮나요? ^_ㅠ 이제 본격적으로 나올 사람들이 대충 다 나온 것 같아요 말투의 정체도 밝혀졌고요 ㅋㅋ 암호닉은 항상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계속 받다가 한 번에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니 저번에 신청해주신 분들은 이번 화에서는 신청 안 해주셔도 됩니다 ^ㅁ^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주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