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단단히 일을 낼 작정입니다. "주인님." 그간 했던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잘 잤어요?" "..." 이제 더이상의 거짓은 없어요.
"전 한숨도 못잤는데." * 쾅- 아침, 성우를 깨우러 들어간 방에 꿈에서 본 성우가 서 있어요. 긴장한 듯 연신 입술을 축이는 모습. 저는 재빨리 문을 닫고 벽에 기대 주저앉았어요.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해. 빨리 일어나자, 성이름.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저는 머리를 쥐어 뜯었어요. 어제 헛것을 본 것도 모자라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니. '아무리 그래도, 꿈 치고는 너무 리얼하잖아.' 잘 잤냐고 묻는 목소리의 울림, 무른 듯 단단하게 나를 보는 눈빛. 모두 믿을 수 없이 생생한데. * 사실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에요. 이래봬도 바보는 아니라,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한 구석에는 성우가 반인반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성우야, 나와도 돼." "..주인?" "얘기할래, 너랑." 조심조심 문을 열고 성우가 나오네요. 불안에 가득 찬 저 얼굴에,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미안해요 주인." 대뜸 사과를 하는 성우예요.
"반인반수라서, 강아지가 아니라서, 미안해요." 저의 마음은 와르르 무너져내렸어요. "이제껏 주인이 저한테 털어놓은 비밀들, 모두 기억해서 미안해요. 1년동안 주인 속여서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괜찮으니까.. 정말 아무한테도 말 안 할 자신 있으니까.. 내쫓아도 돼요. 주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아요." 그렇게 아픈 눈으로 말하면, "..아니야." 내가 어떻게 널 받아주지 않을 수 있을까. * "..아니야." 이리와, 성우야.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저를 받아주는 것 같았어요. "억지로 받아줄 필요 없어요. 같이 있어도, 주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소용없ㅇ" "아니라고 성우야." 주인의 눈시울이 붉어져요. "네가 없는 게, 더 힘들거라고." 툭, 소리내어 울던 평소와는 다르게 침묵속에 눈물이 떨어졌어요. 울음소리를 꾹 누른 채 작게 어깨만 들썩이는 주인. 저는 습관처럼 주인을 안아주려다, 인간인 제 모습이 떠올라 손을 내렸어요. 사람이 되면 우는 주인을 더 잘 달래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되려 울리기나 하고 참 바보같네요. "너는 달라. 사람.. 아직 무섭지만.. 네가 없는 게 더 무서워. 그냥 계속 우리 강아지 성우 해줘. 내가 노력할게." "..." "..안아줘, 성우야." 그제서야 저는 양팔 가득 주인을 끌어안고, 가느다란 등을 토닥여줄 수 있었어요. '주인은 노력 안 해도 돼요. 그런 건 그냥 저한테 맡기고, 주인은 행복하기만 하면 돼요. 웃어요, 주인님.' * 아직 사람의 품이 익숙치 않은 주인은 이내 저의 품에서 떨어졌어요. 저야 인간인 주인의 모습을 줄곧 봐왔지만, 주인은 아니니까요. "..좀 잘래. 잠시만.. 잠시만 나가있어줘." 저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왔어요. 분명 주인은 자지 않을 거예요. 그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겠죠. 저는 아랫집으로 내려갔어요.
"..."
"..뭐야, 이 이상한 분위기." "..." "너 일냈지."
"..."
"..? 진짜야??
이야, 장하다. 이리와 허스키!" 남자는 저를 격하게 끌어안았어요.
(대니둥절) "그래서, 네 주인이 뭐래?"
"그냥.. 뭐.."
"울었겠지." "..."
"당연한 거야. 네 잘못 아니니까 괜히 죄책감 갖지 말고, 앞으로 더 잘하기나 해 임마." 수고했다 수고했어. 남자는 제 등 툭툭 두드렸어요.
"뭐 좀 마실래? 하룻밤 사이에 애가 왜 이렇게 수척해졌냐. 일단 앉아."
(대니 앉아) "아니, 너 말고.." "..훈련이 아주 잘 됐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성우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저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어요. '성우는 성우일 뿐이야. 사람도 강아지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인 걸. 너무 연연하지 말자' 그래, 맞아. * '사람들은 서로에게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데미안 中
나도 사람들이 두려워. 어떻게 보면 너도 사람이지. 하지만 난, 그런 너에게 도피하고 싶어. 잠시만 나를 잡아줘. 내 강아지, 내 성우. 내 유일한 도피처. * 그리고 몇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을까요, 날이 어둑해져서야 저는 눈을 떴어요. "멍!" 제 곁에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성우가 있었구요. 성우는 옷자락을 물고 저를 식탁으로 이끌었어요. "헐, 이게 다 뭐야?""주인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밥 거르게 해서 미안해요." 앉아요. 어느새 사람으로 변한 성우가 의자를 빼면서 말했어요. "너 정말.." "아아, 주인 울지 마요!! 알겠죠? 주인 울리면 마음이 안 좋아요. 빨리! 먹어봐요. 아, 긴장된다!" "알겠어 알겠어." 저는 숟가락을 들어 국을 한 번 떠먹었어요. "맛있는데? 요리 잘하네. 근데 성우야, 왜 미역국이야? 집에 미역도 없었을텐데."
"주인 오늘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사왔어요." "생일?" ..아 맞다. 생각해보니 저 오늘 생일이네요. 축하받아본 적이 없어서 달력에 표시만 해두고 매해 그냥 지나갔는데. "응, 생일! 선물은 이게 다지만..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주인아. 그리고 이제 잊지마요. 제일 중요한 기념일을 잊으면 어떡해요. 다음 생일, 다다음 생일도 내가 다 기억할 거예요. 그때는 주인 진짜 초 불게 해줄 겁니다!" 성우는 막대과자를 꺼내 흰 밥 한가운데 꽂았어요.
"후 불어요 주인!!" 저는 막대과자에 진짜 불이라도 붙은 양 서둘러 불었어요.
"생일 축하해요." 아마 가장 큰 생일선물은, 성우 네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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