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옆에 앉아 티비를 보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흥수가 갑자기 내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잘생긴 옆모습 보고있었는데…. 흥수는 생글생글 웃으며 꽃받침을한 남순을 귀여워 죽겠다는듯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뽀뽀해버린다?"내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흥수의 입술이 닿았다. 난 대답도 안했는데!"이건 니가 너무 이뻐서."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그의 입술이 닿았다. "이건 우리 다시 만나서."흥수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났다. 내 얼굴을 감싸고있는 그의 손이 따뜻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랑해서."어디서 배워온 로맨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으니까 패스. 뜨거운 그의 혀가 내 입안에 닿았다. 그의 혀가 내 입안에서 맴돌고 말캉거리는 그의 입술이 내 입술과 마주했다. 점점 더 진해지는 키스, 숨을 못쉬겠어…. 내가 그의 목을 팔로감싸며 우리는 쇼파 위로 쓰러졌다. 뜨거운 혀가 내입술을 지나고 그 긴 키스도 지나갔다."숨도 안쉬고 하냐."흥수는 아무말도없이 웃었다. "존나 맨날 웃기만해….""좋아서 그래. 니가 좋아서."어버버버. 낯뜨거운 말을 해놓고도 태연한 흥수는 물을 마셨지만 난 괜히 혼자 민망해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밖에 나갈래? 흥수는 물컵을 들고와 옆에 앉으며 물었다."당연하지!"사실 미국 들어와서 짐정리하느라 구경도 한번 못해봤다. 흥수랑 가니까 더 좋다! 남순은 신나서 옷을챙겨입느라 바빴다. 애같아. 흥수는 중얼거리며 겉옷을 입었다. 이미 남순은 현관 밖까지 나가서는 빨리 좀 와! 하며 재촉했다. "완전 다른세상이야."춥지도않냐. 나는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흥수는 춥다면서 하고있던 목도리를 해주었다. 라벤더향, 좋다…. 흥수는 손가락 사이사이 깍지를 껴 자기 자켓 주머니속에 넣었다. 시린 내 코를 툭 건드리더니 춥지? 코가 빨갛다. 루돌프같아, 하며 웃었다."놀리지마!""알았어, 임마."내 머리를 헝클여놓으며 웃는 흥수가 하나도 밉지않다. 그리고 가로수 아래를 함께 걷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꽃다발. 그 남자였다. 나는 먼저 아는 체했다. 라벤더 화분을 들고 걸어오는 그는 날 보고 손인사를 하며 웃었다. 브라운색 머리가 가로등 빛에 비춰져 묘하다."또 봅니다. 근처 사시나 봐요?""네, 저 쪽이 집이에요.""저도 그 쪽인데, 우연이 깊네."급한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지나간 그를 보며 참 꽃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이야?"고개를 들어 흥수를 보았을때 그는 표정이 안좋았다."비행기에서 마주쳤던 사람." 흥수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넘겼다. '왜그래?' 하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야. 가자,' 라고 말하며 먼저 걸어갔다. 난 앞서 걸어가는 흥수를 향해 '같이 가!' 하고 소리치며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는 이쪽을 보고 서있었고, 또 다시 웃으며 손인사를 했다. 뭐지?
"여기 근처에 바다 있다는데, 갈래?"
"나야 좋지~"
이른 새벽인데도 반짝반짝 빛나는 길거리를 흥수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다정히 걸었다. 꿈같아,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슬쩍 봤다. 속눈썹도 길고 턱선도 멋있고 코도 잘생겼다. 네가 내 사람이라 좋아…. 내 사랑이라서, 내 행복이라서. 저벅저벅 얼마나 길을 걸었을까? 아직 떠오르지 않은 해를 부르듯이 차가운 겨울파도가 울렸다. 이런곳이 있구나.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이 나를 더 평온하게 하는듯했다. 나는 밀려오는 파도에 촉촉히 젖은 모래를 손으로 쓸자 내 손을 반기듯 잔잔한 물살이 다가와 손가락 끝에 닿았다. 좋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둘은 겨울바다를 보며 말이 없었다. 물에 닿아 차가운 내손을 잡으며 흥수는 말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너만 볼거라고 약속할게. 그러니까 너도 우리사이에 있는 믿음, 진실. 버리지말고 영원히 간직해줘,"
대답대신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슬퍼. 왜그렇게 슬퍼?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잔뜩 내려앉아있었다. 그의 불안한 눈동자가 눈물에 젖어 촉촉해보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마…. 그렇게 아픔이 가득한 눈, 불안에 잠식된 너의 그 표정….
"당연한 소리를 해, 자꾸…."
"난 너 하나만 보고 살잖아."
말을 건내는 그가 웃어보였다. 눈물이나 좀 닦고 웃어, 내 앞에서 맨날 우는게 쪽팔리지도않아?
"바보같이…. 나도 너 하나만 보고 살고있는데, 내가 널 어떻게 버려. 널 버리면 난 나를 버리는건데. 그러니까 좀 약하게 말하지마. 자꾸 슬프잖아."
'알았어.' 그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슬펐다. 그리고 그는 따뜻한 그의 품속으로 날 안았다. 진한 라벤더향이 진심과 진실을 가득담고 나, 그리고 너. 이 차가운 바다에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나는 괜히 서러워서 그의 품안에서 또 엉엉 울었다. 너는 왜 맨날 나를 울보로 만들어? 내가 울자 그는 더 꽉 안으며 속삭였다.
'사랑해,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