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공기가 이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아이들의 함성이 잔뜩 어지러진 이 곳이 이렇게 정적일리가 이 공간에 너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이 고요하고 멈춰있었다 좋지않은 시력이지만 너만은 뚜렷이 보였다 오직 너만은 *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내년이면 고3이라지만 인생이 이렇게까지 심심해도 되나 싶었다 가끔은 성적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도 하고 슬슬 대입을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지만 여전히 친구들과 얘기하기 좋아하고 잘생긴 남자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하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의 대한민국 여고생에 지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뭔가 흥미로운 일이 생길까 싶었지만 글쎄, 매일이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작년처럼 우리 학교는 반 아이들과 얼굴도 익히기 전 봄초입에 수학여행을 갔다 모처럼의 외박이니 조금은 설레일 수 밖에 없었다 수학여행이니 수련회니 항상 똑같은 방식에 똑같은 일정이지만서도 나는 평범한 여고생처럼 들떠있었다 3학년은 수능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므로 이번 여행이 학창시절 나의 마지막 수학여행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들떴던 건지도 모르겠다 * 평소와 다름없는 일정이 끝나고 여느 수학여행과 다름없이 마지막 밤 장기자랑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 나이 때 애들이 생각하기가 다 똑같은지 벌써 세번째 똑같은 곡으로 3반 여자애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찌나 지루한지 잘 추면 모를까 어설픈 몸짓과 반복되는 곡들에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보았다 슬슬 눈 감고 있는 것도 힘들어질 무렵 친구의 비명으로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야씨 박우진 나왔어!!!!!!] 10대의 마지막 수학여행 아직은 쌀쌀한 어느 봄날 난 누구보다 반짝이는 너를 만났다 * 너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부산에서 잘생긴 애가 전학을 왔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었고 너의 이름과 성격, 동아리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너를 제대로 마주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너는 언제나 여자애들과 너의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기에 잘생긴 전학생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층이 다른 너의 반까지 찾아갔었지만 너의 뒤통수만 보고 반으로 돌아왔었다 시간이 지나도 너의 주변 사람들은 줄어 들지 않았다 매력적인 부산 사투리와 잘생긴 얼굴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했으며 심지어 춤까지 잘 춘다는 소문에 너는 만인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지역에서 꽤 유명한 댄스동아리의 부장이 된 너는 어쩐 일인지 여자들에게는 꽤 냉정한 편이었다 냉정하다기보다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번도 제대로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없지만 남자애들 말로는 네가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웃긴 친구라는 말을 들었다 농담을 하는 너는 무슨 표정일까 친구들과 떠드는 너는 어떻게 웃을까 * 학교로 돌아온 후 너의 인기는 더욱 더 폭발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너의 반 앞은 여자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문과 첫반인 나는 문과 끝반인 너를 보기 위해 복도 끝으로 달려갔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는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너를 찾기에는 힘들었다 나는 무언가 조급한 마음이 들어 매점에서 사과맛 피크닉을 사들고 다시 너의 반을 찾아갔다 곧 종 칠 시간이 되니 확실히 학생들이 줄어 이번에는 꽤 쉽게 너를 찾을 수 있었다 약간은 당황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너 많이 지친 표정의 너 난 그런 너에게 한발짝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피크닉을 건넸다 [저기, 우진아 이거..] 넌 나를 슬쩍 보더니 그냥 반을 나가버렸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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