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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그늘 전체글ll조회 980l 5










최초의 기억에서는 엄마가 연신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가야, 아프지 마, 아프지 마. 몸 여기저기에 열꽃이 오른 작은 몸뚱아리가 내 눈에는 징그러웠다. 엄마, 나도 좀 봐주면 안 돼? 아직 말이 어눌해서 웅얼거리는 것에 그쳤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작은 손을 엄마의 팔에 살포시 가져다 대자 아기의 열이 팔로 전도된 탓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겨울밤 차가운 공기로 식은 몸에 따뜻한 것이 닿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나도 안아주세요. 그런 말을 삼키며 본능적으로 품을 파고 드려 하는 순간, 엄마의 입에서 가느다란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엄마의 허리를 감다 말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왜 울어요? 울지 마. 내가 있잖아.

그 말을 뱉자 엄마의 눈에서 나온 눈물이 툭, 아기 위로 떨어졌다. 물 위로 떨어진 한 방울 물감처럼, 한 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엄마의 온몸으로 퍼졌다. 으윽, 억눌린 소리를 내며 후두둑 눈물을 쏟아내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마, 울지 말아요. 울지 마요. 그때까지도 아기는 목이 터져라 빽빽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아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엄마와 아기의 몸이 울음소리로 뒤엉켜 하나로 보이는 것 같았다. 작은 단칸방이 우울로 어지럽다. 결국 나 또한 서러움이 밀려와 어린 마음에 펑,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때 내가 왜 울었었지. 엄마가 우는 게 슬퍼서 울었나? 아니면 2살 터울인 동생이 아픈 것이 서러워서?

아니, 나는 그때까지도 엄마가 내 쪽으로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것이 무서워서였다.

나는 동생이 미웠다.







동생이 중학교에 입학한다. 설레는 얼굴로 교복을 꿰어 입는 동생은 해맑다. 부드러운 머릿결과 고운 피부가 예뻤다. 이제 나도 언니랑 같이 학교 갈 수 있겠다! 동생이 다니던 초등학교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완전 반대 방향에 있어서 같이 등교를 할 수 없는 것이 동생은 내심 아쉬웠던 모양이다. 집에서 종일 보는 게 서로의 얼굴이고 학교는 고작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데. 동생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연신 흐흐, 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방방 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엄마는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 약하던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퍽 감격스러운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계셨다. 엄마가 저렇게 웃을 수도 있었나, 상념에 빠지려는 찰나에 동생이 내 팔뚝을 휘어잡는다. 언니, 오늘 같이 자자. 응? 동생은 내 팔을 흔들며 나를 제 방으로 이끈다. 아 알았어. 나 세수 좀 하고. 동생을 먼저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도 세수를 하려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재야, 우리 재희 니가 잘 좀 챙겨라.

머리가 크고 나서, 나는 우리 가족, 그러니까 엄마와 동생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묘한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를 가로막는 투명한 벽을. 방금 또한 그렇다. 우리 재희. 엄마의 재희. 너인 윤재. 나는 엄마의 윤재가 아닌 걸까?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언어에 담긴 표정을 유추할 나이가 되자 엄마와 동생 사이를 파고든 이방인이 된 기분이 점점 더 자주 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우리 윤재가 아닌 건데? 나는 그리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유치한 치기가 언어로 발산될 때의 엄마와 나 사이에 닥쳐올 파장이 나는 두려웠다. 나는 여전히 동생이 밉고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 말 대신 조용히 응. 이라고 대답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나서 침대를 구르고 있는 동생이 보인다.

어차피 병원 가느라 학교는 며칠 나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을 뻔했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언니?


처음으로 내가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몸이 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지 툭하면 쓰러지기 일쑤였고, 나는 수업을 내팽개치고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동생을 따라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고3이었다. 친구들은 학원을 전전하고 과외를 받으며 수능을 앞두고 각자 최종 점검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동생 뒤치다꺼리나 해야 했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엄마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마저 흐릿해지는 기분에 나는 조급해졌다. 아 학원 가기 싫어.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옆에서 그렇게 속 좋은 소리를 할 때면 나는 내 몸에서 목적 없는 화기가 치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생은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입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엄마는 오로지 동생의 병원비를 대는 데 매진했다. 나 또한 그에 보탬이 되고자 야자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느 날, 엄마는 처음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엄마의 손길에 굳어있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는 내 등을 토닥였다.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했을 때도,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온기였다. 이런 드문 따뜻함 조차 동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펐지만, 그래도 좋았다.

동생은 점점 말라갔다. 아르바이트와 공부로 바쁜 와중에 없는 시간을 쪼개 병문안을 갈 때마다 그것이 눈에 보였다. 사실 동생을 보러 간다기보단 그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엄마를 보러 간다고 하는 게 더 옳았는데, 그래도 골골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은 들었다. 링거 바늘이 꽂힌 팔을 쓰다듬다가 얼굴에 엉겨붙은 머리를 뒤로 넘겨주자 동생이 말했다.

언니, 미안해. 라고.

나는 그 말을 듣자 동생을 만지던 손을 어색하게 떼어냈다. 속에서 곪아있던 열등감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올 것 같아서다. 사실, 그 순간 나는 아픈 동생을 바라보면서 일찍 죽어 기억 속에 조차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폐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폐병을 동생이 물려받은 거고. 엄마는 그래서 동생에게 더욱 집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왜 얘한테만 물려주셨어요. 저한테도 주시지, 그 잘난 폐병. 그럼 나도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못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죽어도 들키기 싫어서, 나는 내 팔목을 붙잡는 동생의 손을 엄마가 보지 못하게 살짝 뿌리치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하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둥근 달이 예쁘게 떠있다. 









잠이 부족하다.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탓에 학교 수업은 절대적으로 중요했고, 아르바이트 후 부족한 공부시간을 그나마 채우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했으니 도대체 쉴 틈이 없었다. 부족한 수면시간은 나를 계속해서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이게 했다. 나는 계속해서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윤재야, 힘든 건 알겠는데, 너만 고3인 거 아니잖아.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서 멀어져 갔다. 윤재야, 성적이 자꾸 떨어지네. 너 이러다가 원하는 대학 못 갈 수도 있어. 선생님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 진학을 걱정했다. 윤재야, 윤재야, 윤재야…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가시가 되어 내 귓가에 박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사라지게 되었다.

살이 점점 빠져간다. 중학교 2학년, 한창 사춘기가 진행될 때 잠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질 나쁜 친구들을 따라 일탈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피기 시작한 담배를 아직도 끊지 못한 게 문제인 듯싶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급격한 몸 상태 변화는 좋지 않다. 하지만 이미 골초가 되어버린 터라 담배를 끊을 수는 없고, 살이 더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폐기되는 도시락들을 마구 집어먹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은 먹어도 된다는 점장의 배려였다. 오늘은 입맛이 없어서 삼각김밥을 먹는데 밥알에 비릿한 무언가가 씹혔다. 상했나 싶어서 먹던 삼각김밥을 들여다보는데 밥알이 피로 흥건히 젖어있다. 아, 코피. 얼빠진 소리를 내며 휴지를 찾는 와중에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시끄럽게 진동했다. 투덜대며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으로는 전화를 받았다.

"여기 OO 대학 병원입니다. 환자분이 쓰러지셨는데 보호자분 전화기가 꺼져있어서…"

아, 엄마가 잠시 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생이 쓰러진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내 뒷파트 담당인 대학생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저 윤잰데요. 지금 동생이 쓰러져서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혹시 지금 교대할 수 있을까요? 제가 나중에 갚을게요. 덜덜 떨리는 손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했다. 알았다는 대답이 들렸다. 나는 초조해졌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슬퍼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엄마가 알기 전에 병원에서 동생이 그냥 잠시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이제는 괜찮아졌다는 의사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멀리서 대학생 언니가 보이자마자 나는 알바복을 간이 의자 위에 내팽개치고 편의점을 뛰쳐나왔다. 어? 너 코피… 그렇게 웅얼대는 소리가 뒤쪽으로 달려간다.


정말 다행히도 동생은 일시적인 빈혈 증세였다. 동생 옆에서 링거를 갈던 간호사는 황급히 병실 문을 열어젖힌 나를 발견했다. 아, 오셨구나. 동생분은 괜찮아요. 지금 막 잠드셨어요. 나긋한 목소리로 동생의 증상을 설명하던 그녀는 어두운 병실 안에서 나오자마자 경악했다. 그녀의 표정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 말고 피범벅이 된 겉옷을 발견했다. 아직까지도 코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저기… 그것보다 언니분께서 진찰을 한 번 받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진료실로 끌고 간다. 호의는 감사했지만 진이 다 빠져버려서 집에 가서 잠이나 좀 자고 싶었다. 하지만 괜찮다며 뿌리쳐도 간호사는 한사코 이대로 가면 안 된다며 나를 붙잡았다. 정말 안 좋아 보이셔서 그래요. 지금 제가 아는 의사선생님이 남아 계신데 그분께 부탁드려볼게요. 정말 순수하게 걱정으로 물든 얼굴에 계속되는 호의를 뿌리치긴 힘들었다. 결국 나는 간호사의 말처럼 진찰을 받고 약이나 좀 타먹을 심산으로 진료실에 발을 들이밀었다. 그것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 채.





폐암이라는 단어. 학교에서 금연 교육 때나 간간이 들어보던 말이었는데. 자세한 건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그 뒤로는 의사와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참을 의사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비척비척 대며 진료실을 나왔다. 맞은편에서 엄마가 황급히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도 그토록 바라던 폐병에 걸렸는데. 이젠 엄마도 나를 조금은 봐주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실로 들어가는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 엄마는 걱정스럽게 동생을 쓰다듬다가 별안간 내 쪽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엄마, 이제 나도 아파. 폐암이래. 나도 걱정해주면 안 돼? 그런 말이 입에서 채 나오기도 전에, 엄마는 내 뺨을 세게 내려쳤다.

"너 미쳤어? 내가 학교 끝나면 바로 병실에서 재희 돌보라고 했잖아!!"

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동생 병원비를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를 토닥여줬던 사람이다. 엄마의 모순적인 모습에 나는 픽, 웃음이 터졌다. 웃어? 너 지금 뭘 잘했다고 웃는 거야? 엄마는 마치 잘못을 한 벌로 사탕을 빼앗긴 아이 같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분간하질 못하고 마구 날뛰는 성난 아이. 엄마는 분명 동생이 쓰러진 시간에 내가 학교에 있었음을 알고, 설사 병원에 있었더라도 동생이 쓰러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는 것조차 알면서도 동생이 아픈 건 모두 내 탓이라는 듯 모든 화를 내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 가시 돋친 화를 받아내면서, 나는 19년 남짓한 내 생애를 바쳐 사랑했던 엄마를, 그리고 사랑받기 원했던 내 작은 불쌍한 소망을 그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동생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벗어나야겠다.

엄마는 화를 내다 말고 제풀에 지쳤는지 동생이 잠들어있는 침대 옆 의자에 등을 돌려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 안녕."

나는 주먹을 쥐고 울음을 참으며, 엄마의 뒷모습에 대고 힘겹게 그 네 글자를 뱉어냈다.


엄마의 마른 등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해가 뜨지 않는 곳

그림자가 지지 않는 나라


w. 그늘







수능이 끝났다.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감독관이 내 자리 위로 놓인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어가자, 나 또한 후우. 하고 무거운 숨을 뱉어냈다. 무슨 정신으로 시험을 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긴장한 것 같진 않았는데, 나는 문득 방금까지 샤프를 쥐고 있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인지했다. 웃음이 나왔다. 나 또한 평범한 한국의 수험생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어렸을 땐 내가 일류 대학에 갈 줄 알았고, 조금 머리가 커서는 그래도 괜찮은 삶을 영위할 줄 알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10년이 조금 넘는 세월을 이 시험 하나를 향해 달려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상은 어제와 똑같았다. 도시의 공기는 항상 탁하고 사람들은 어딜 그리 가는지 바쁘게 움직인다. 세상은 늘 고요한 듯 시끄럽고 시끄러운 듯 고요하다. 옆에선 나와 같은 시험장에 있던 학생이 부모님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저 애는 아마 달리는 차 안에서 온갖 칭찬과 수고의 언사를 들으며 어느 그럴듯한 식당에 도착해 따뜻한 식사를 하겠지. 절로 상상되는 모습에 배알이 꼴려서 나는 괜히 툭, 하고 발에 채는 돌맹이를 신발코로 건드렸다. 나는 계속 혼자인 것도, 변하지 않는다.






집을 나온 지는 3주가 조금 넘었다. 그러니까, 수능 3주 전에 폐암 선고를 받고 집을 나왔다는 소리가 된다. 수능을 치른 건 내가 독한 년이어서가 절대로 아니었다. 아직 내가 죽을 병에 걸려 오늘 내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처럼 시험 치고 놀고, 평범하게 생활하면서 이 엿 같은 기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하릴없이 도시를 배회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생활하는 건 어떤 거지? 건물의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막 수능이 끝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나운서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사를 읽는다. 이윽고, 부모님에게 둘러싸여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어느 수험생이 보인다. 방금 전에 내가 본 광경과 똑같이. 내가 부러워했던 그 모습과 같이. 저런 게 평범한 삶이구나.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구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따뜻함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랑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나는 이제서야 조금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쉽다. 나는 남은 인생도 평범하게 살기는 그른 것 같은데.

여태까지 폰에 남겨진 연락은 고작 3개였다. 집을 나온 지 이틀이 지났을 때 한 번. 나흘이 지났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2주 전이 마지막 전화였다. 모두 엄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걱정은 절대 아니고, 늘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궁금증 같은 걸까? 어쨌든 형식적으로 건 티가 팍팍 나 나는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출을 한 와중에도 연락이 올 곳이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서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인간관계 더럽게 좁다. 나는 부러 괜찮은 척 그렇게 읊조렸다.






겨울이라 그런가, 노을이 일찍 진다. 포근한 주황색 노을이 도시를 수놓는다. 창문은 빛을 받아 반짝이고 건물은 그림자를 자아낸다. 수능 한파라는 말이 무색하게 딱 포근한 겨울 날씨다. 차라리 살을 에는 바람이 여기저기서 휙휙 불어왔으면 좋겠다. 다 같이 춥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곳을 찾는다던데,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등굣길로 지겹게 애용하던 한강대교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 다리를 지나 15분 남짓 버스를 타면 집 근처에 도착하게 된다. 갑자기 다리가 쭉, 제 몸통을 꿈틀꿈틀 늘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이 거리가 나와 엄마의 거리라는 것처럼. 흥, 누가 돌아갈 줄 알고. 나는 내 다리가 제멋대로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팍 자리에 주저앉았다. 난간 밖으로 두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으니까 까닭 모를 흥이 났다. 옛날 아이돌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더 세게 다리를 흔들자 헐겁게 신고 있던 닳은 운동화가 발에서 튕겨져 나와 포물선을 그리면서 퐁당,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넘실거리는 물은 내 운동화를 쥐도 새도 모르게 삼켜버렸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그래. 너 다 가져라. 나는 나머지 오른쪽에 신겨진 운동화도 손으로 빼서 멀리 던져버렸다. 매고 있던 가방에는 필기도구 몇 자루와 지우개, 수정테이프, 그리고 여태껏 글자 하나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진단서 한 장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것도, 필요 없어. 이제는. 나는 그리 읊조리며 가방을 벗어서 미련 없이 난간 사이로 가방을 밀어 넣었다. 좁은 창살에도 든 것이 없는 가방은 마치 그 사이를 통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듯 아무런 저항 없이 난간을 빠져나가, 물 아래로 추락했다. 잠시간 물 위를 부유하던 가방은 곧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이젠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가야겠다. 보도를 짚고 있던 손바닥을 대충 털어내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악, 나는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아프게 잡아 쥐고 우악스럽게 난간 뒤로 끌어당겼다. 낯선 손길에 겁을 먹고 한창 발버둥을 치는 와중에 도로변에서 차를 타고 있던 인신 매매범이나 포주가 여자들을 납치한다는 뉴스 기사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나이에 고작 담배 몇 년 피웠다고 폐암 걸린 것도 억울해 뒤지겠는데, 장기까지 적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악 미친놈아, 놔! 다른 여자 알아보라고! 니가 굳이 안 보태도 내 인생 충분히 불쌍해! 그렇게 소리를 치자 갑자기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대체 뭐 하는 놈팽인지 얼굴이라도 보자는 심산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떤 남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저기…"

"후우..후우.."

"자살 하시려던 거…아니셨어요?"


남자는 그러니까, 범죄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밝은 청바지에 흰 긴팔 무지 티셔츠, 그리고 그 위엔 환경미화원이나 입을 법한 같은 연두색 조끼까지. 무슨 헛소리, 라고 톡 쏘아붙이려던 나는 방금 전의 내 모습을 상기해냈다. 한강에 신발과 소지품을 벗어던지고 미친년처럼 웃는 여자.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거나 뛰어내리기 직전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 몰꼴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절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쪽팔리는 건 쪽팔리는 거고 웃긴 건 웃긴 것이다. 세상에, 내가 자살하는 사람처럼 보였나 봐.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비명을 지르느라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깔깔 소리까지 내어가며 웃었다.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청한 표정을 짓는 남자는 내 몸짓 하나하나에 움찔 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별안간 대형견처럼 축 처진 눈을 하고 손으로 내 눈 밑을 쓰다듬는다. 나는 얼어버린 볼에 닿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손에 몸을 잘게 떨었다.


"웃지 말아요. 못생겼으니까."


그리고,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나는 웃는 것을 멈췄다. 이윽고 내 입에서는 가느다란 울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은 무서웠다고, 노을 빛을 받아서 불처럼 넘실거리는 물이 너무 무서웠다고.

나는 이대로 죽기 싫다고, 내가 그토록 바랬던 것들은 왜 내게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거냐고.

고래고래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남자는 그런 내 등을 감싸 안고 커다란 손으로 느리게 토닥인다.

잘 했어요. 잘 했어요.

대견하다.




우리 딸.



어쩌면 제일 듣고 싶었던 말. 평생을 노력해도 손에 쥘 수 없었던 말이, 이토록 쉽게 귓가를 울린다. 나는 혹여나 그것이 환상일까 손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그러쥐었다.


「늘푸름 자원봉사센터」

「황 민 현」


황민현. 이제는 져가는 노을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가슴팍 명찰의 세 글자가, 그 경이로운 순간이, 뇌리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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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58.70
그냥 제목이 신기해서 들어와봤는데,,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한자 곱씹으면서 읽었네요. A라고 써있는 것을 보면 뒷편이 더 있다는 이야긴데 단편소설 하나 읽은 기분,, 브금 선정까지 대박,, 오랜만에 글다운 글을 읽은 것 같아서 좋네요 작가님 앞으로 연재길만 걸으세요,,
6년 전
독자1
와 대박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읽었어요... 넘나 대작 스멜 나는 것... 하늘도 무심하시지 ㅠ 저렇게 열심히 사는 윤재한테 폐암이라니,,, 우리 윤재가 아니고 너의 윤재라는 글자 보자마자 뭔가 엄청 멍해졌어요 ㅠㅠㅠ 민현이한테 위로 받는 거 넘 찡해........ 담 글도 기대할게요 신알신 하고 가요!!!
6년 전
비회원92.60
정말 별생각 없이 누른 글인데 글이 너무 좋아서 숨도 안 쉬고 읽어내려갔네요 윤재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윤재가 그런 처량함에 익숙한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마음 아팠어요ㅠㅠㅠ 글 분위기도 너무 좋고 작가님 문체도 정말 제 취향입니다 민현이가 윤재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요 다음 편 넘나 기대됩니다 작가님 좋은 글 감사해요❤
6년 전
독자2
찡해지는 글이네요ㅠㅠㅠㅠㅠ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같네요ㅠㅠㅠ 신알신하고 갑니다ㅠㅠㅠ 오랜만에 몰입하면서 글을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3
헐..... 울컥했어요... 진짜 소설같았고 읽는 내내 상황설명을 잘 해주셔서 푹 빠져서 봤네요!! 다음편 기대돼요!
6년 전
비회원70.64
와시 눈물새ㅁ 폭발직전이네요ㅠㅜㅜㅠㅜㅜㅠㅠㅠㅠ
6년 전
비회원209.126
대작 하나 나온 거 같아요ㅠㅠㅠ 완전 집중하면서 쭉 읽었어요 다음 편 기다릴게요!
6년 전
비회원219.252
진짜 글 분위기 최고된다,,,
6년 전
독자5
신알신 하고 갈게요! 내용이나 분위기가 정말 대박 ㅠㅠㅠㅠ 이런 내용의 글은 또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6
읽는내내 작가님 문체랑 표현력에 정말 몰입했네요 와 대박적...작가님 신알신하고 갈게요!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잘 표현하시는지...중간에 겨울 날씨 말하는 장면에서 윤재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표현해내신게 감명 깊었습니다 주관적인 제 생각이지만 이미 책 내신 소설가가 쓴 글처럼 느껴졌어요! 담편 또 읽으러 올게요~
6년 전
비회원152.196
혹시 브금 제목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글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따로 듣고 싶네요ㅜㅜ 왜 이런 좋은 글을 이제서야 발견했는지..! 분위기하며 필력도 너무 좋으세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
6년 전
독자7
아 진짜 세상에 아... 아... 눈물 날 것 같아요 윤재... 엄마는 진짜 재희한테만 사랑을 주시는 걸까요... 차라리 윤재가 너무 둔해서 자기가 받는 걸 모르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전화 세 통이 너무...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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