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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 근묵자흑
[近墨者黑 ] 

//


*영화 불한당을 각색한 글입니다.*








02








"와, 진짜 아저씨 이건 뭐 로맨스 영화 찍자는 것도 아니고."






길고 긴 시간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죄수가 되어 깜방에 갇혀 지낸지 그 세월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눈썹을 덮을 정도의 앞머리가 어느새 길어 넘기고 다닐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과 나보다 먼저 교도소를 나간 아저씨가 없는 그 공백의 시간에 나름 우두머리가 된듯한 착각을 하며 그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 외에는. 그가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내가 나오는 그 날 마중나오겠다고. 그런 우스갯소리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만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쥐새끼도 돌아다니지 않을 황무지 같은 곳에는 영화라도 찍자는 심산인건지 수십개의 차와 사람들이 일렬로 서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다름아닌 강다니엘의 차였다. 가뜩이나 제 본연의 색을 뚜렷하게 자랑하고 있는 아저씨의 차는 햇빛을 받아서 더 선명하게도 빨간색을 띄고 있었다.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

"만나자마자 또 개소리를 하는 것보면 아저씨도 여전하네요."

"아닌데, 나는 우리 자기 보고싶어서 죽는 줄 알았는데."






무슨 어린애를 흉내내고 싶은건지 갑작스레 내게 안기며 서너번을 붙었다 떨어지는 그의 입술을 가만히 받고있자니 그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멋있어졌다. 항상 누런 죄수복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길쭉하게 뻗은 몸선을 따라서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을 입은 그는 실로 낯설어서 아주, 조금 설렜던 것도 같다. 친절하게도 제 옆자리에 태우면서 안전벨트까지 손수 채워주던 그는 흔하디 흔한 레파토리처럼 두부를 내게 넘겨주었다. 나 진짜 두부는 아닐 줄 알았는데. 역시 아저씨는 아저씨인가봐요. 비싼 값을 하듯 시원하게 나가는 액셀의 속도를 느끼며 손에 쥐어진 두부를 손으로 조금씩 뜯어먹자 별안간 나를 보며 웃는 아저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 이거 먹고 싶어서 먹는 줄 아나. 나는 자고로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입맛을 유지하겠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단백한 것보다는 짠 것, 짠 것보다는 단 것. 혀가 마비될 정도의 단맛을 즐겨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은 콩이였고 콩으로 이루어진 두부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우스운지 크게 웃는 것도 아닌 아마 나를 꼭 비웃는 듯한 그의 입모양새는 정말이지 꼴보기 싫었단다.






"맛있어? 잘 먹네."

"퍽이나 맛있겠어요."






그냥 주니까 먹는거지. 보란듯이 크게 한 조각을 베어물면서 있는대로 툴툴거리는 내 말투는 얼마 가질 못했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자마자 급하게 내게 입을 맞춰오는 그의 행동은 이루 말할데 없이 충동적이었다. 그와 나의 사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의 곁에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의 애인인지, 아니면 단순한 그의 동료인지는 당사자인 우리들조차 그 선을 정해두지를 않았었다. 다만 언제, 어디서나 그는 제 감정과 애정표현에 대해서는 직설적이었고 미처 넘기지 못한 음식물들이 입 안에 맴돌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안을 샅샅이 훑어오는 그의 혀는 제 주인을 고지곧대로 잘도 닮은 듯했다. 갑작스럽게 제 몸을 묶고있던 안전벨트까지 풀면서 다가오는 그의 몸을 받아내기에는 나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내리누르듯 나를 안고 있는 그의 어깨를 간신히 밀어내자 고개까지 비틀며 또 한 번 다가오는 아저씨는 이미 신호등이 정차를 나타내는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뀐지 한참이 지나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발 끝으로 툭, 떨어지는 두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뭉개져 애꿎은 차의 내부만 더럽히고 있었다.






'나랑 같이 일 안해볼래?'

'지금 아저씨가 있는 회사로 들어가라는, 뭐 그런 회유를 하는거예요?'

'아니, 우리 조직 말고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루프까지 다 열려져 의도치 않게도 꽤나 진한 애정행각이 동네방네로 생중계가 되고 있는 이 와중에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 어울리지 않게도 그가 자신과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퍽이나 다정하게 물어오던 그 때가 떠올랐다. 본래의 내 목적으로 따지자면 그가 내뱉은 말들은 가장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이었다. 내가 왜 경찰 신분까지 속여가면서 더군다나 깜방에서 썩어가면서까지 이 짓을 했는데. 본격적으로 그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보다 더 깊은 내막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황민현의 말처럼 큰 대어 한마리를 낚을 수도 있는 기회였다. 






'아저씨, 나 사실 경찰이에요.'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단 한 번도 감정에 휘둘려본적이 없던 나는, 감정적으로 그의 권유에 숱한 고민들을 했었다. 안일함에 취했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했던 무수한 고생들을 생각했으면 절대 뱉지 못할 말을 그에게 건넸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경고였다. 왜 그랬을까. 제 밑으로 들어오라는 그의 말에 알게 모르게 내가 동조되고 있어서? 우리 사이에 생겨난 '과거'라는 동질감 때문에?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그의 손에 곱게 죽기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에 문득 내 손을 잡아오던 그는 예상과 다르게 참으로도 환하게 웃어보였었다. 멍한 감정에 취해있던 내 목에 그의 흔적이 가득 남겨지고 나서야 내게서 떨어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지금의 강다니엘처럼.






"많이, 보고싶었다."













-The Merciless-















'사람은 말야, 뭐든 일을 할 때든 열과 성의를 다 해야하는 법이야.'






하여간에 어디서 뭣같은 소리만 배워서는. 강다니엘과 그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경찰의 전략은, 아니 황민현의 전략은 3년 전부터 준비되어있었다. 윗선들도 다들 웬만해서 건드리기 싫어하는 일을 손수 하겠다고 악착같이 밀어붙인 그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였고 들끓는 가래를 뱉으면서 왠지 모르게 일은 내가 다하고 칭찬은 팀장이란 직책으로 앉아있는 그가 다 받아먹을 걸 생각하면 끊었던 담배도 다시금 그리워지게 만들었다. 속으로는 창창한 이십대의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라고 실의에 빠져있었어도 나는 내 할 일을 열심히 해나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강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의 곁에서 머무를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했다. 말이야 제 사람이라고 했던 그였지만 옆자리를 꿰차고 들어가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또 먹잇감을 노리는 개새끼가 된 것마냥 얌전히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잘 기억해, ㅇㅇㅇ. 조만간 강다니엘을 없애려고 그 회장이라는 새끼가 보낸 똘마니가 한 명 교도소로 들어갈거야.'

'지네 식구를 죽이라고 회장이 보낸다고요?'

'뭐 일종의 분탕질이지. 그러니까 그 때를 노려.'






똘마니가 나름 이 일대에서 유명한 새끼거든. 얼마 안돼서 강다니엘 세력이 많이 무너질거야. 그리고 그 때 네가 들어가면 되는거지. 혹시라도 누가 들을새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황민현의 말에 조용히 대답만 하고 있었지만 나는 식구들이라고 표현하는 새끼들끼리 왜 치고 박고 싸우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사람 감정을 가지고 놀라는 말을 퍽이나 다정하게 말을 하는 황민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되게 팀장님 알고보면 사이코패스 같은 거 알아요? 아무 감정 없이 내뱉는 내 말에 도대체 뭐가 그리도 웃긴지 큰 목소리로 웃던 그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제 할 말만 하더니 뚝,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참나, 성격하고는. 






'먹잇감은 자고로 공을 들여서 먹는게 당연한거고, 너는 그 때나 놓치지 않으면 되는거야.'






이쯤되면 이런 팀장새끼한테 걸려버린 강다니엘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어디서 얻은 소식통들인지 정말 내가 체감하는 것, 그 이상으로 빠른 시일내에 한때 경찰 일을 하면서 한번씩은 들어봅직한 '한상식'이 들어왔다. 같은 죄수복을 입었는데 왜 또 저 새끼는 저렇게 편의를 다 봐주는 거야. 죄목도 만들어서 온 나보다도 더 알뜰살뜰 챙겨주는 녀석을 보자 짜증이 났다. 근데 또 이상하게 피차 똑같은 입장이었을 강다니엘이 더이상 내 방으로 찾아오지 않을 때나, 가끔 스치듯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한 풀 꺾여진 온순한 그의 모습은 내 주제나 목적도 간과할 정도로 강다니엘을 동정하게끔 만들었다. 꼴에 여자라고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뭐라고 표현할지 모를 감정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도 안되는 감정 때문에 나는 또다시 의도치 않게 그를 칼로 찌를 심산이었던 한상식의 패거리를 온 힘을 다해 막았더랬다. 놈이 들고 있던 칼날이 깊숙하게 손가락을 찌르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나를 마치 또라이로 보는 듯한 그의 시선에 나는 어이없을 웃음으로 보답했다.













"살다살다 칼빵도 당해보고 참, 운수도 좋다. 진짜." 






손 위로 칭칭 감겨진 붕대를 보자니 깊은 한숨만이 나왔다.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도 전혀 움직이질 않을만큼 꽉꽉 매여진 붕대 덕분에 이제는 몰래 숨겨둔 만화책을 보는 것도 불편하게 되었으며 밥 먹는 것도 온전치 않을 듯했다. 의무실을 나서자마자 그 짧은 시간에 유명인사가 되었는지 나를 흘기듯 보는 죄수들의 시선이 괜히 부담스러워 가만히 땅만 보며 걷고 있자 문득 툭,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얼굴 위로 느껴지는 남정네의 가슴팍이 보였다. 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강다니엘 있었다. 이성간의 출입이 극도로 제한된 곳을 이렇게 거리낌없이 드나드는 그는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손을 바라보는 것이 아까 나를 향한 죄수들의 시선보다 한층 더 깊이 부담스러웠다.






"왜 그렇게 봐요."

"너, 왜 그랬어."

"그냥, 서로서로 돕고 사는 세상인데 너무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서."






정말 그 때, 그 순간의 내 의도는 순수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갑자기 칼자루를 쥐고 있던 그 놈의 눈길이 싫었을 뿐이였으니까. 후에 칭찬과 더불어 더한 일까지 시킬 것만 같은 황민현의 목적은 순수하지 못한다는 흠이 있기는 했지마는.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네가 한 일보다 좀 더 후하게 쳐줄테니. 어떻게 보면 제 목숨을 구한 일인데 누가 마약 거래하는 회사의 이사님 아니랄까봐 정확하게 기브 앤 테이크를 하자는 놈은 실로 내 인생에서 처음보는 인간상이었다. 나는 이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 알 수 없는 저 남자의 관심을 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작은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세력은 확실하게 나뉘어졌고 나는 그의 편이라는 것까지만 새겨놓으면 되는, 그게 내가 받은 임무였다. 그런데 자꾸 잘생긴 저 얼굴로 나를 내리보는 듯한 그의 눈짓과 그렇게나 날뛰던 놈이 자신 때문에 다쳤다고 친히 나를 보러 와주는 강다니엘의 행동은 꽤나 야하고 또 맘에 들어서, 상황에 맞지도 않게 더 큰 도박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한상식한테 뺏긴 담배유통권 내가 다시 그 쪽한테 되찾아주면."

"…."

"나랑 의형제 한 번 해줄래요?"






내 말에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웃던 그는 마치 좋은 장난감이라도 구한 것처럼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물론, 기꺼이.
















근묵자흑(近墨者黑)
: 먹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검어진다






//









*

아직 미숙하기만한 글인데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행복했어요. 저번화에서 주신 관심과 댓글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이번화까지는 포인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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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암호닉 [타리]로 신청해요
제목부터 첫화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번편도 워후 장난 아니신데요 작가님ㅎㅎ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작가님 필력이 으뜸이라 머릿속에 장면들이 생각나서 몰입도도 완전 대박 잘 되고 있어요b

6년 전
독자2
[다녤쿠]
으허 작가님 !!!!!!!!!!!!!
이번편도 역시나 대박이에요 ㅠㅠㅠㅠㅠ진짜 ㅠㅠ
브금이랑 글 대박이구요 !!!!!
몰입도 완전 잘되고 저 진짜 집중해서 봤어요 \(^^)/

6년 전
독자3
ㅠㅠㅠㅠㅠㅠ너무 좋습니다ㅠㅠㅠ ㅠㅠㅠ작가님 진짜 다녤로 불한당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제가 녤이랑 불한당 둘다 너무 좋아하는데 역쉬나 조합 쩌네용☆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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