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그 날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현관문에 걸터앉아 구두를 벗는 동안 곱순이는 천천히 걸으며
처음 와보는 우리 집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들어가자~ "
손으로 조심히 감싸고 집으로 들어간 뒤 우선 거실불을 켰다.
내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집, 유달리 빛이 센 형광등이 비추는 터라 혼자 살던 집이 더욱 부각되보였다.
"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곤, 깨끗하지? "
곱순이를 어디다 내려놓으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난 내내 곱순이를 들고 있었다.
나의 엄지에서 손등으로 가려는데.. 혹시 떨어질라 연신 나는 조심스레 손의 각도를 바꿔주며
곱순이가 최대한 내 손에서 편히 머물수 있도록 배려했다.
" 니가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
곱순이에게 건 말이었지만 혼자 하는 넋두리처럼 들렸다.
" 곱등곱등. "
우는건지, 웃는건지, 아니면 화를 내는건지 알 수 없는 곱순이의 작은 소리가 답으로 들려왔다.
이것만으로도 고마워.
생전 키지 않던 집의 보일러를 돌렸다.
나 혼자선 보일러세가 아까워 이불을 두 겹, 세 겹 겹치는 걸로 참고 살지만..
이 작은 녀석에겐 행여나 춥지나 않을까,
곱순이의 앙상한 종아리가 내심 신경쓰였다.
내가 작은 배려라도 놓치면 이 아이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곱등이는 방의 온도가 따뜻해지자 더듬이를 신나게 흔들거리며 집을 돌아다녔다.
내가 일어서서 화장실을 가려니 곱등이가 내 뒤를 따라붙었다.
별로 마려운 것도 아닌데.. 일어선 김에 난 화장실은 뒤로 미룬 채
날 따라다니는 곱등이를 데리고 집안을 구경시켜주기로 결심했다.
- 여기가 내 방이야.
너도 여기에 작은 침대를 마련해줄거야..
이젠, 누가 널 무섭다고 피하거나.. 혹은 그 이유로 밟아버리거나 그러지 않아.
죽은 곤충을 씹어먹으며 흉한 곤충이라는 야유를 받을 필요도 없어.
넌 존재 자체로 소중해. 너에게도 권리가 있어.
갓 빨아서 말린 포근한 침대보 위로 뛰어들어
향긋한 향내가 나는 베개에 얼굴을 부빌 권리,
겨울에 이불 아래 귤을 먹으며 만화책을 볼 권리,
크리스마스가 오면 산타아저씨가 선물을 줬을까 궁금해하며
머리 맡에 놓고 잔 양말을 조심스레 들춰볼 권리,
행복하게 해줄게, 곱순아!
곱순이는 조금 흥분이 된 모양인지 앞다리를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휘휘 저어댔다.
ㅡ . . .
집 전체를 보여주고서 나는 저녁 먹을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너무 신나서 밥 먹어야 되는 것도 까먹었네. 곱순아, 너도 배고프지? "
" 곱등곱등. "
" 잠깐만 기다려, 오빠가 맛있게 해줄게. "
" 곱등곱등. "
쿠쿠 밥솥의 버튼을 누르자 노랗게 변색한 밥이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가득 담겨있었다.
" 아차.. 요즘 밥을 잘 안 먹었더니만.. 기다려, 라면이라도 끓여야겠다. "
난 허둥지둥 서랍장을 열어 안성탕면 두 봉지를 꺼내곤
가스레인지 위에 물냄비를 올렸다.
" 첫 날인데 밥을 먹어야 하는데.. 라면은 좀.. 엇, 곱순아...!! "
방금 전 식탁에 놔둔 곱순이가 밥통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밥솥은 열어둔 채로 시간이 오래 지나자 저절로 삑 소리를 내며 닫겨버렸다.
" 안 돼, 안 돼.. "
내가 정신없이 소리를 치며 밥통 버튼을 누르자,
다행히 밥알을 깨작거리며 먹고 있는 곱순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곱순아.. 놀랬잖아.. 괜찮아? 안 다쳤어? "
곱순이를 들어올리려하자 곱순이는 나를 만난 뒤 처음으로 갈퀴를 쓰며 밥통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려 애썼다.
그 순간 눈물이 울컥 터져나왔다.
도시 속에, 야생 속에 버려져 먹을 거라곤 음식물 쓰레기와 죽은 동물의 살점 뿐이었을 곱순이의 삶이.
겨우 구멍을 찾아 눈을 붙이려다가도 쥐나 바퀴벌레에게 쫓길 수 밖에 없고,
하다못해 불빛과 따스한 온도를 따라 들어간 곳에선 인간의 살충제와 발길질 밖엔 받아본 기억이 없을 곱순이의 삶이.
몇 날을 도망치고, 몇 날을 굶어야 먹을 수 있었던 썩은 고기..
그에 반해 밥통 가득 담긴 변색된 밥이라도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곱순이의 억척스러운 모습에서,
난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 오빠가 지켜줄 거니까, 앞으로 이런 거 먹지마.. "
라면 물이 끓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 날 밤 나는 곱순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