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10분 전. 물론, 오후 말고 새벽. 오랜만에 앉아보는 집 앞 편의점 테라스 의자에, 새삼 반가움까지 느껴진다. 어느덧 짧은 바지를 입으면 살짝 쌀쌀한 계절인걸 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얘랑 못 본지는... 한 2개월 됐나. 갑자기 나오라는 말에 당황하면서도 안도감이 들고, 또 두렵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테이블에 툭 하고 놓이는 캔커피 두 개를 보니 진짜 박지훈 맞구나, 싶기도 하고. "뭐야, 이 시간에 불러내놓고선. 맥주도 아니고 커피?" "못 본 사이에 술꾼 다 됐네, 성이름." "안 본 거겠지." 전과 다름없이 장난스런 미소를 머금고 있던 박지훈의 얼굴이 슬며시 굳었다. "너 나 왜 피했는데." "피한 건 아니야." 헛웃음이 나왔다.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던 건 언제고, 연락하면 답장은 며칠 뒤에나, 그것도 단답으로. 친구들이랑 있을 때 가끔 마주쳐도 눈 인사만 살짝, 쫓기듯 지나가던게 눈에 선한데. 그러는 너 신경 쓰여서 죽는줄 알았는데, 안피했다고? 점점 싸늘해져가는 분위기에, 귀뚜라미 소리만 잔잔히 들릴 뿐 한동안 정적이 계속되었다. 아마 처음이지. 우리 싸우는 거.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화내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직 따지도 않은 커피캔만 내려다 보던 박지훈은 한참이나 뜸을 들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보통." "..." "친하게 지내던 이성친구가 연락도 없고, 전이랑 다르게 대하면." "..." "다들 눈치채지 않냐." 친구로서의 서운함에 가려져 알게모르게 커져가고 있던 박지훈에 대한 나의 감정이, 박지훈의 말 한마디에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애써 담담한척 해보지만, 이내 온몸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진다. 낮에 만났으면 큰일 날뻔했다. "뭐, 갑자기 맘에 안들거나. 잘못을 했거나." "그리고." "...그리고 뭐." 늦여름, 새벽. 날씨도 선선한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박지훈의 얼굴이 어둠과 겹쳐 흐릿흐릿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야 박지훈." "어." "너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얼굴보니까, 좀?" "알면서 모르는척 하는게 제일 나쁜 거라는 것도, 알지." "그거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마디를 안 진다. 능숙하게 자기 커피를 따고 내 것까지 따준 다음에 그대로 들이키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런 박지훈을 바라보는 날 곁눈질로 보면서, 웃음기 없이 치고 들어오는 그 말투도 여전하네.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맞아." "그게 뭔데." 커피도 다 마셨겠다, 이젠 피할 수 없다. 서로를 끌어당길 준비만을 하고 있는, 줄다리기 시합을 앞둔 두 사람처럼, 위태로운 말들이 오간다. 그리고, 마지막 총성이 울려퍼진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너랑 친구로 지낸 3년 중에 1년 반은 너 친구로 안본거." "..." "너랑 사귀는 새끼들 한명 한명 몰래 찾아가서 지랄하고 싶었던 거." "..." "내 앞에 앉아있는 너 보면," "..." "키스하고 싶은 거. 다 맞는데." 어김없이 박지훈한테 졌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곤두서는 찌릿함이, 박지훈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미친듯이 내 쪽으로 달려오는 그 눈을 마주보기 전까진.
--- 갑자기 소재가 생각나서, 처음으로 써 보는 지훈이 글이네요. 소재라고 할 것도 없긴 하지만ㅎㅎㅎㅠ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해요!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