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세훈이 몸을 움찔하더니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내사랑♥」 이라고 뒤에 애정이 가득담긴 하트까지 붙어있는 낯간지러운 이름이 밝게 빛났다. 그것을 확인한 종인의 표정이 알게모르게 굳어졌다. 세훈은 전화가 끊길때까지 꼼짝도 하질 않고 화면을 쳐다만 보고있을 뿐이었다. 종인이 세훈의 핸드폰을 낚아채 전화번호부에 들어갔다. 대다수의 딱딱한 이름들 사이에 숨겨진 사랑이 느껴지는 닉네임은 종인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리가 만무했다. 종인이 인상을 쓰고 세훈을 쳐다보았다. 잠시 당황하던 세훈이 이내 억지로 표정을 굳히고는 눈을 돌렸다.
" 야. "
" ㅇ, 왜요. "
" 이거 누구야. "
아저씨가 무슨상관인데요. 내 남자친군데 왜요. 세훈이 종인의 손에서 핸드폰을 다시 빼앗았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코트주머니에 넣더니 종인의 눈을 피했다. 종인이 짧게 숨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친구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세훈이 종인의 눈치를 보다 핸드폰을 슬쩍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정체불명의 ' 내사랑♥ ' 에게 짧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도 눈치를 보던 세훈이 아무렇지않게 헛기침을 하며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속에 집어넣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억지로 끌고온 세훈은 거들떠도 보지않는 종인이 미웠지만 ' 내사랑♥ ' 의 문자를 기다리는데에 있어 웃음이 났다.
곧 있어 이야기가 끝이났는지 다들 의자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훈도 주위의 눈치를 슥 살피다 종인이 일어나는데에 맞춰 함께 일어섰다. 남자들이 수다를 떠는게 뭐가 그리 재밌다고 몇시간정도를 가만히 앉아 이야기만 하는지. 종인을 기다리던 세훈은 지루할 수 밖에 없었다. 종인이 세훈의 손을 잡고 먼저 카페를 나섰다. 종인이 세훈의 손을 잡자 세훈이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힘도 얼마나 쎈지 한번 손목을 잡고나면 그 자리에 손자국이 벌겋게 날 정도였다. 세훈이 두어번 고개를 가로저으며 종인의 뒤를 따랐다. 역시 돈많은 사람들은 다르구나. 친구를 만나면 3차는 기본으로 달리며 항상 개가 되던 자신을 생각하던 세훈이 헛웃음을 치며 웃었다. 사람들이 모두 가려는듯 하나둘 차를 타고 가버렸고, 마지막으로 남은건 종인과 세훈이었다. 조용한 정적이 그들을 마주할 때에, 세훈의 핸드폰에 맑은 소리음이 울렸다.
" 내사랑? "
" 에? "
" 내사랑이냐고. "
그런데요. 세훈이 새침하게 종인을 째려보고는 발걸음을 뗐다. 아마도 종인의 차를 타지않을 심산이었다. 유난히도 추운걸 싫어하던 세훈이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캔이 차가운 손을 살살 녹이는 듯 했다. 아, 아까 그 아저씨 차 되게 따뜻했는데. 종인의 차를 타지않으리라 다짐을 한지 얼마 되지않아 후회를 하던 세훈이 뒤를 돌아보자 가지않고 가만히 서있는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물론 저는 지금 집으로 가는것이 당연하다만 아마 종인도 집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세훈이 백팩 끈을 고쳐매고는 다시 종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수석의 문을 열어 아무렇지 않게 차에 올랐다. 창밖을 내다보자 종인이 헛웃음을 치고있는게 보여 세훈이 소리쳤다. 아저씨 빨리 안가요?
세훈이 따뜻한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달콤한 커피향이 종인의 코를 찔렀다. 차가 신호에 걸려 가만 멈추어 섰다. 종인이 창문을 내리고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한개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추운 바람이 차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훅 끼치는 찬바람에 세훈이 불만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종인을 노려보았다. 뭐야, 짜증나게. 추워죽겠구만…세훈이 캔을 좀더 세게 쥐어잡았다. 으으, 저아저씨 하여튼 비호감이야. 벌써 한개피를 다 펴버린 종인이 다시 엑셀을 밟았다. 깜깜한 밤거리에 인조적으로 가득 채워진 네온사인 불빛들이 보기싫었다.
종인과 제 사이를 가만히 생각하던 세훈이 의문을 가졌다. 저 아저씨랑 나랑 단 둘이있는건 오늘이 처음인데, 되게 안어색하다. 예전부터 알던사람같아. 그리고 신기한건, 저는 종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있는것인가. 종인의 앞에서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었고, 친구를 만난적 또한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종인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얼굴 몇번 스쳐지나간, 인사 몇 번한 어색한 이웃을 끌고가더니 여자친구라 하질않나, 남자친구 관리를 하지않나. 꽤나 오지랖이 넓다, 고 세훈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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