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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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래 질질 끌어낼 만큼의 가치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단 한 가지의 절차라고 한다면, 단박에 수긍했을지도 모른다는 허점이 발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내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
그에게도 존재했던 것이라,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은 수포로 돌아갔고, 나 역시 마찬가지로 제자리에 돌아갔다.
시간은 말이지, 너와 나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어줬거든.
01::calen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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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생각한다.
고남순의 애처롭던 시선과, 그 비굴한 면모까지. 모든 것을 나는 되뇐다.
그렇게 또 흘러간 하루를, 아니 하루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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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의 배경화면은 아직도 고남순이라는 사실과,
고남순이 끓여준 라면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더불어,
내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고남순은 아니라는 사실,
내 시야에서 벗어난 사람이 고남순이라는 사실,
지갑 한 켠 자리 잡았던 고남순의 증명사진을 태웠던 사실은,
내게는 현실이고, 진실이다. 마음에 들어?
03::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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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어울려, 븅신아.”
딱밤 두 대, 카페라테, 고남순과 따사로운 창가.
싫은 말을 고 작은 입에서 툭툭 내뱉는데, 난 전혀 싫은 기색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좀 귀엽다고, 그렇게만 느꼈으니까.
커피는 식어가는데, 고남순을 향한 내 시선은 식을 줄 몰랐다. 더 타오르고, 열망했다.
고남순은, 내겐 독과도 같은 존재인가.
“라면 먹고 싶다. 남순아.”
그 말에 너는 그냥 웃어 줬던 것 같다.
0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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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 F, F, F F F, FFFFFFF, FFFFFFFFFFFFFFFFF
끼익, 턱.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라!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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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말이지. 내 캘린더엔 적혀 있지 않거든.
적기 싫었던가.
고남순 그 녀석 기일이 언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