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우리공연은 왠만큼 큰 수입을 벌기가 어려웠다. 길거리공연이기도 하고, 요즘 세상이란게 바쁘게 돌아가는거라 공원을 지나가는 사람들중에는 천천히 음악감상을 할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적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게 정말 어렵다는걸 잘 알고있는 나는 투정부리지 않았다. 그냥 음악을 할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음악이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기타를 칠때마다 김형태의 베이스가 없다는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생각이상으로 거슬리고 짜증나는 일이였다. 여전히 김형태는 집에 들어오지않았고 그때쯤인가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야야, 애니과 김형태알어? 걔 원조한다더라. 그것도 아저씨랑.
키득거리며 김형태의 소문을 전달하는 선배에게 내가 할수있는건 없었다. 김형태와 나는 아무사이도아니였다. 연인관계도 아니였고 친구조차 못 되는데, 그리고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건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나는 내가 비겁하다고 느꼈다. 김형태는 나를 잊은듯 행동했고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젠 정문에서 남자의 외제차를 타고 가는일이 빈번했다.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김형태는 정말 나를 잊었으니까 나도 잊겠다고 생각한것은. 내가 방관하는동안 대학에서 김형태의 소문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퍼져갔다.
김형태와 함께 어울리던 무리들은 오히려 김형태를 모른척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김형태는 어느 순간부터 비싼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녔고 지갑에는 현금과 카드가 가득했으며 낯선 향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건 그 소문에 힘을 실었고, 사람들은 김형태의 강의가 끝날즈음에 보이는 외제차에 적응이 되어갔다.
나는 그때쯤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김예림이라고 박광선의 소개였는데,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착해보이는 얼굴도 좋았고 착한 마음씨도 좋았다.
한 세번인가 만났을까? 나는 김형태를 잊었다고 자만했다. 3년의 기억이 그리 쉽게 잊혀질리가 없는데. 나는 정말 바보같이 자만했다.
영화관에 들어서자마자 김형태가 좋아하는 카라멜팝콘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시작되자 그 다음은 쉬웠다. 김형태가 좋아하는 여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고 김형태와 내가 찍었던 스티커사진기계가 보였으며 김형태가 보였다. 김형태는 대기의자에 앉아 시계를 흘끔대고 있었다. 나는 내 차례가 온것도 모르고 김형태를 멍하니 바라봤다.
고객님, 예매 완료되셨습니다.
…아,아! 네.
얼른 표 두장을 챙긴 나는 김예림에게 한장을 건넸다. 김예림은 그런 나를 보고 피식웃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 스티커사진기계로 향했다.
오빠, 스티커사진 찍어보셨어요? 저 남자친구생기면 스사찍는게 꿈이였는데.
어...어, 찍자. 그래.
수줍게 웃는 김예림은 예뻤다. 그러나 그런 김예림도 김형태에게로 향하는 내 눈길을 바로잡아줄수는 없었다. 빨간물들인 머리를 검정색으로 단정히 염색한 김형태는 큰 상자에 담긴 카라멜팝콘을 오물대고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간 김예림이 인상을 찌푸렸다.
오빠 저 선배 알아요? 저 선배 소문 진짜 안좋던데. 원조교제랬나? 호텔에서 남자랑 있는것도 본 사람 있대요.
…야, 쟤 그런애 아냐.
내가 표정을 굳히자 김예림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제가 그런게 아니라 애들이 그랬다구요… 끝말은 거의 들릴랑말랑하게 말한 김예림이 슬쩍 내 눈치를 봤다. 풀이 죽은 눈동자는 꽤 귀엽게 보였다. 나는 내가 과민반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김예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형태가 삐졌을때 내가 하던 행동이였다. 김예림은 금방 방긋거리더니 내 손을 잡고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스티커사진보다 밖에 있는 김형태가 신경쓰여 죽을 지경이였다. 여자애답게 여러가지 표정을 짓던 김예림은 굳어있는 나의 팔을 흔들며 웃었다. 오빠, 왜 이렇게 뚱해요. 쫌 웃어봐요. 눈꼬리를 접으며 웃는 김예림은 예뻤지만 사실 나는 그런 김예림이 눈에 들어오지않았다. 그런 나를 알아챘는지 어쨌는지 김예림은 이제 사진을 꾸미자며 밖으로 나갔다. 김예림이 펜을 부여잡고 허둥대는 동안 나는 김형태를 찾아 시선을 옮겼다. 아까 그 자리엔 김형태대신 예매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꼬맹이만이 방글방글 웃고있었다. 나는 포기하며 주머니안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내가 왜 김형태에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정리는 옛날옛적에 끝마쳤는데. 미지근한 미련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어딘가를 쿡쿡 찔러왔다. 이게 미련이라고 정의할수 있는 감정이던가? 나는 복잡한 머릿속에 한숨을 내쉬었다.
헐…오빠, 저기봐요!
사진을 꾸미다가 호들갑을 떠는 김예림을 쳐다보자 김예림이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르켰다. 연예인이라도 왔나, 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순간 나는 굳어버렸다.소문이사실이였나봐요... 헐 진짜 대박이다. 게이 첨 봐요. 둘다 멀쩡하게 생겨선... 김예림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허탈함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고민했던 모든것들은 이미 김형태에겐 과거형이였던 것이다. 나는 이 미련이 내 혼자만의 감정이라는것에 부끄러워졌다. 김예림의 손끝이 가르키는곳엔 김형태와 남자가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꽉 쥐었다. 이제, 김형태와 나는 진짜 남인것이다. 오래전에 했어야 했을 다짐을 하며 나는 김형태의 동그란뒤통수를 쳐다봤다.
와 진짜 역겹다..어떻게 남자가 남자를만나.... 오빠 울어요? 신나게 떠들어대던 김예림이 당황해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지도,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3년짜리 연인을 떠나보내는 중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김형태와 나는 영원히 한 지붕아래서 살 일은 없을테고 김형태의 체온을 느낄일은 없을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알고있었다. 나는 눈으로 김형태를 찾게 될것이며 술주정속에 김형태의 이름을 녹여낼것이란걸.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당황한 김예림이 허둥댔지만 나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슬퍼서 우는것이 아니였다. 김형태를 놓지못하는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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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추꾸팬픽쓰고싶다........... 혹시 여기에 레알마드리드좋아하시는분 계셔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