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는 찌질이와 공부 잘하는 일진
02
'사귈때나 안사귈때나 똑같은거 알죠? 집에 말없이 함부로 찾아오는거, 진짜 싫어해요. "
웅 알겠쪙. 지호의 일방적인 고백으로 이제 막 풋풋하게 사귀기 시작 했을 때였다.
지훈의 단호박 넘치는 일종에 경고에도 속없이 사탕만 오물오물 빨아당기며 의외로 쉽게 수긍했던 지호였었다. 그게 또 너무 사랑스러워서 붕떠있는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어 줬건만. 그래, 그랬었건만. 지금 지훈은 눈앞에 펼쳐진 어지러운 광경에 양쪽 눈꺼풀을 꾹꾹 눌렀다. 그와 함께 갖가지 짜증과 화도 꽉꽉 가슴속에 눌러 담았다.
학원을 다녀오니, 무슨 핵폭탄이라도 맞은것 마냥 거실에 어지러히 놓인 여러종류의 과자봉지들, 뜯다 만것도있고 부스러기도 널려있고, 아이스크림 봉지와 .. 그것보다 더중요한거. 납작한 배를 훌렁 까고서 쇼파 위에 누워 코를 드르렁 드르렁 시끄럽게도 골아대는 지호.
정말 가관이고, 엽기적이기도 했지만 지금 기분으로서는 달려가서 죽빵을 날려줘도 모자랄 판이었다. 애초에 저 똘빡새끼를 믿고서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것이 잘못이었다.
안그래도 피곤한데 우지호는 나에게 똥을 배로주는구나. 지훈의 눈가가 더 어두워졌다.
" 야, 일어나. "
" 우응...아 응가.. 오줌 매려...으.."
" 좋은말 할때 눈떠요, 일어난거 다아니까. "
차마 몸뚱아리를 건들 수는 없어서 쇼파의 밑부분만 발로 툭툭 치던 지훈이 살짝 실눈을 뜬 지호를 눈치채고 한마디했다. 일어나면 뽀뽀해줘야지 우리지호.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서는 눈을 감고 오리주둥이같은 통통한 입술을 쭉 내민다.
누가? 누구긴 누구야. 여우같은 우지호지. 생각할수록 아주 괘씸해서 팔짱을 끼고 하는 모양을 말없이 지켜보고있었더니 한쪽눈을 스리슬쩍 떴다가 다시 감는다. 일어났잖아, 빨리 뽀뽀해. 그러더니 쭈쭈쭈 소리나게 입술을 움직인다. 명령조에 가까운 지호의 말투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픽하고 바람섞인 웃음소릴 냈다.
" 뭘 잘했다고 내가 뽀뽀를 해줘요 "
" 아까 해준다고 했잖아 이 거짓말쟁이 똥방구새끼야. 지옥이나가라. "
" 조용히하고 거실이나 치워요. 여기가 무슨 지네집 안방인줄 알아. "
충전이 안되서 지금 무기력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힘이 없단말이야. 지호는 자신을 조종해줄 투명한 실을 잃은 마리오네트처럼 풀석하고 소파 등받이에 기대었다.
힘이 없다더니 옆에 뒹굴고 있던 초콜릿봉지를 까서 잘도 입에 집어 넣는다. 지훈은 단단히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어 달큰한 향내를 풍기는 지호의 양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음가는데로 찰흑 만지듯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런 말랑말랑 모찌같이 생긴게 굴러들어 왔을까. 응? 존나 민폐를 부리는데도 이상하게 싫지가 않지.
그런 지훈의 심정도 모르는 지호는 초콜릿에만 정신을 쏟았다. 소름돋을 정도로 끔찍히 단 갈생덩어리를 왼쪽볼에 옮겼다가, 오른쪽볼에 옮겼다가 폭신한 감촉을 느끼며 우물우물 이로 짓뭉겠다. 그러자 사르르 녹아 버리는 초콜릿.
너무 아까운 마음에 혀를 낼름 밖으로 내밀었다.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가버린 혀. 너무 달아서 머리가 지끈지끈한데도 또 하나를 더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일종에 버릇이나 습관 같은거.에이비씨 초콜릿을 하나 사면 그자리에서 한봉지를 모조리 먹어치워야 안심이 되는 뭐, 그런 이상한. 뭐지 병인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다른 생각에 잠긴 지호를 뚫어져라 내려보던 지훈이 둥근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그리 아프지 않은 느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호의 눈에선 눈물이 찔금 삐져나왔다. 그럼으로서 쓸모없는 공상과 현실의 경계면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끔 그랬다, 앞으로 도움되는 게 전혀 아닌, 시간만 아까운 생각에 잠길때가 아주 많았다. 병신같은 멘탈을 통제해주는 유일한 사람. 표지훈.
" 니가 너무 좋아. "
"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이. "
" 쓸데없이 소모적인 생각은 아예 못하게 해주니까, 넌 나한테 꼭필요해. 죽을때까지 옆에 끼고 살아야지. "
누구마음대로, 싫어요 난. 생각만해도 끔찍해. 지훈은 미간을 좁히며 몸을 잘게 떨었다.
니가 싫어도 어쩔수 없지. 세상은 내위주로 돌아가니까. 마지막 말을 끝으로 지호는 지훈의 뒷목을 끌어당겨 코인지 입술인지 어딘지도 모를곳에 자신의 입술을 비볐다.
닿자마자 뭉글뭉글 거리는 느낌이 드니, 제대로 잘 찾아온 것 같다. 지호는 자신의 찍기 실력에 감탄하며 입술이 맞닿은체 푸스스 웃었다. 당황한 지훈이 진하게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지호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쩝쩝 다셨다. 얼굴을 마주 할 수 있는 최대한 근접한 거리.
초상이라도 난것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는 지훈을 본 지호가 말라서 쏙 들어간 지훈의 볼에 입도장을 꾹 찍었다. 오늘 로션 발랐냐? 너무 쓰다. 그거 앞으로 바르지마. 입술주위를 혀로 쓸더니 하는말이 고작 그런거라니. 제법 무거운 분위기를 잡고 진도를 나가려던 지훈에게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항상 기대했던것 이상을 보여주는 지호라면 앞으로 죽을때까지 질릴 일은 없을것 같았다.
암호닉 감사합니다 ㅎ |
반찬님 뀨님 감사합니다 ㅎㅎ |
다음화 짧은 예고 |
" 미쳤나. "
" 남녀가 섹스하는 영상을 보고싶어. "
" 돌았나. "
" 뭐, 남자 남자끼리도 괜찮아. "
" 허.. 참. 진짜, 오늘 따라 왜이래? 나놀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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