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e bye my blue
-
발 끝에 걸친 검은 바다가
금방이라도 날 잡아 먹을 듯 했다.
-
( 1 )
이 감정이 뭘까.
머릿속이, 몸이. 늘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밤늦은 시간에도 산을 올랐고 낮 밝은 시간에도 산을 올랐다. 아직 그 애를 다시 마주친 적은 없었다. 먼발치가 아닌 한발치 앞에서 바라볼 수 있으면. 빗줄기를 뚫었던 그 파도에 빠져봤으면 좋으련만.
며칠째 해가 맑았다. 온다던 장마는 오지도 않고 더위만 기승을 부렸다. 그 때문인지 동네 아줌마들, 근처 학교 학생들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카페로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한창 손님 없이 널널한 시간대면 나는 금방이라도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산으로 뛰어 올라가는 상상을 했다. 그 앨 보더라도 말 붙이지 못한 게 서러워 울며 내려올 모습이 뻔하지만 혹시라도 네가 잔기침이라도 한다면 거품이라도 보일까 해서.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카페 앞을 지나가거나 들어왔을 때 유독 반응이 날카로웠다. 남색 빛 재킷만 봐도 가슴이 뛰었지만 그 애와 같은 목소리는 없고 죄다 밍밍한 회색빛 뿐이었다.
*
이른 새벽 잠든 얼굴 위로 물방울들이 날렸다. 이제 비가 오는구나. 창문을 닫으려 천장에 손을 뻗었다가 이내 멈췄다. 눈앞에 파도가 아른거렸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 장우산 두 개를 찾았다. 한 우산에 큰 구멍이 뚫려있는 것도 잊고 급한 마음에 두 우산을 들고뛰었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산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저렸다.
중턱에 올랐을 때 반쯤 보이는 정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긴장감에 뛰어온 다리가 후들거렸다. 늘어진 걸음으로 정자 기둥에 기대앉았다. 대체 언제 다시 그날이 올까. 미련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혼자 어둠을 헤맸다. 5분 후에, 10분 후에, 날이 밝기 전에. 파도가 쳤으면 좋겠다라며 이미 늦은 시간을 미루다 결국 고개를 처박고 잠에 빠졌다.
분명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눈앞으로 빛이 마구 흔들렸다. 빗소리는 멈추지 않았는데 해가 떴나?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든 순간 눈앞에 얼굴을 다 가리고도 남는 손이 앞, 옆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 깨워서 미안해요. 우산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 "
두 손에 꽉 쥔 우산을 눈으로 가리킨 건 그토록 바라던 너였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바라봤을 때 넌 그대로였다. 아니 어쩜 내 환상일 수도 있잖아 라고 생각을 했 을땐 발 밑으로 거품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적을 뚫고 들어온 네 헤드폰 속 노래에선 파도가 금방이라도 몰아칠 듯이 작게 소리쳤다.
황급히 건넨 우산은 너와 같은 색이었다. 검은 남빛.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여기요 라 답하자 입꼬리를 당겨 웃은 네가 주변에 널브러진 후드티를 잡아들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 고마워요. "
*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핸드폰만 바라보는 널 훔쳐보며 깊이 기억하려 애를 썼다. 마지막일지 모를까 봐. 헤드폰을 쓰고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너는 큰 파도는 아니어도 작게 흔들리는 파도를 몰고 내게로 조금씩 천천히 달려왔다. 목기침에 한참을 뒤로 물러섰다가도 다시 이따금씩.
" 혹시 남일고 앞 카페에서 일해요? "
이제 내려갈 건지 덜 마른 후드티를 챙겨 입던 네가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네? 놀라 되묻자 거기서 본 것 같다며 목을 빼내어 다시 날 빤하게 내려다봤다.
" 맞아요. "
" 그럼 우산 돌려주러 갈게요. 언제까지 해요? "
" 아홉시까지요. "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우산을 얼굴 옆으로 바짝 들어 전에 뵐게요.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네가 떠난 자리에 남은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네 파도에 발목이 잠겼다.
*
여주는 색청(음을 들으면, 음에 수반해서 색채적 직관(直觀)이 나타나는 반응)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