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고 하루도 눈물이 마른적이 없었다.
***
언제 바뀌었는지 모를 종소리를 알아차린건 일과의 절반이 흘러버린 뒤였다. 종소리 뭐냐.. 완전 별로. 잘 알지 못하는 반 아이의 말에 그제서야 하나 둘 아.. 하고 알아차리는 변화였다.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작은 변화가 우리에겐 하루를 웃게 하는 이유였다. 집에가고 싶으면 똑바로 앉으라는 담임의 협박이 무섭지도 않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복도를 뛰어 놀았고 그런 아이들을 진정시키는건 언제나 또래 아이의 몫이였다. 야, 조용히 좀 해. 짜증섞인 말에 잠시 잠잠해졌던 복도는 이내 다시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해졌다 일순간 시간이 멈춘듯 조용해진다. 마지막 아이까지 학교를 나서면 그제서야 학교는 미성숙의 본모습을 보인다.
고등학교 내내 저를 따라다니며 괴롭힐거라 생각했던 야간자율학습이 사라지면서 붕 뜨게 된 시간을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유라고 해방이라고 느꼈다. 해가 다 지고 어두컴컴한 밤을 거니는게 습관이던 아이들은 아직 해가 기울지도 않은 시간에 학교를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피방 콜? 제 옆을 지나던 무리는 누군가 던진 제안에 좋다고 웃으며 끝을 알리려 깜빡이는 신호를 무시하듯 단순에 회단보도를 건너버린다. 무리가 마지막으로 건너고 곧 반대편에 도착한 남자 아이는 웃지만 울고있었다. 곧 그 아이에게 아는척을 해오며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는 아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웃지만 울고있는 아이 둘. 둘의 눈에만 보이는 저들과 다른이들의 차이였다.
***
덜컹거리며 휘청거리는 버스 안에는 하교 시간이 조금 지나 붐비지 않았다. 조금은 느리게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들과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버스에 오른 승객들은 자신만의 조그만 세계에 들어갔고 버스 안은 주기적으로 울리는 안내 멘트만 울려퍼졌다. 야, 내리면 뛰어야겠다.. 오늘 원장 왔데. 한 아이의 말에 다른 아이가 작게 숨을 내뱉는다. 원장에 존재는 그 아이들에게 그랬다. 숨을 뱉는 행위조차 들킬가 두려워 최대한 작게 또 작게 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였다. 붉은 빛. 정차 버튼이 눌렸고 삐빅, 버스카드가 찍혔다. 잠시뒤 정차한 버스 문이 열리자 쏟아져 내리듯 버스에서 뛰어나와 달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명찰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박지훈, 박우진"
",,,"
"..."
"늦었으니까 벌칙은 알겠지?"
"..."
"..."
"대답"
"네"
"..네"
원장의 방문 안에서 꽤나 낮아진 두 목소리가 들리자 고요하던 방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빨리 가. 사람의 인영들이 도망가듯 사라졌고 곧 문이 열린 뒤 지훈과 우진이 원장의 방에서 나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동시에 터진 웃음이였다. 아이 둘은 언제 저들이 혼났냐는듯 웃었고 아까의 인영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한 달음에 뛰어서 사라졌다.
저 놈의 원장은 인정머리가 없어. 야.. 그러다 원장님이 들어. 형들 줄거 빨리 챙겨.
사라졌던 인영들이 들어선 곳은 너무 더러워 이 곳에 사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아 버려진 골방이였다. 너무 더러워서 버려졌다는 곳이라기엔 사람 손길이 많이 탄 아늑한 공간이였지만 이미 소문이 나버린 골방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마지막 아이의 말에 셋은 골방 곳곳에서 담요, 핫팩, 젤리 같은 것들을 찾아냈다. '벌칙'을 받기에 밤 바람이 차 걱정되지만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건 이런것 밖에 없으니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한 것이였다. 우리왔어. 우리왔다. 비슷한듯 다른 말을 꺼내며 들어온 지훈과 우진을 반긴 셋은 둘의 품에 저들이 챙긴 담요, 핫팩, 젤리를 건넸다. 지훈과 우진은 그것들을 받아들며 장난스레 인상을 쓰다 걱정을 눈에 담고 웃고있는 셋을 보곤 웃어버렸다.
"내일 해 뜨자마자 이불 속으로 쳐들어 갈거니까 데워나"
"내일 샤워 1등 나"
"아, 안돼! 나 내일 주번이라 빨리 가야 돼"
"그럼 같이 씻음 되겠네"
"오.. 극혐인데?"
즐겁지 않은 상황은 없다.
함께하고 만들어진 공식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 오늘 어디서 모이기로 했더라? 20살은 변화였다. 미성년였던 이들이 성년이 되는 나이였고 이제는 정말 자신을 책임져야 할 나이였으니 변화라는 단어 자체였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던 것 하나는 '가족'인 형제였다. 성년을 맞이한 시간이 적지 않게 지났지만 새내기라는 타이틀을 가진 남자들은 '새내기'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기대에 찬 눈을 가지고 대학 곳곳을 누비는 둘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의심없이 새니기라고 칭할만큼 그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이였다. 20살에 대학생에 대한 로망도 없는지 대뜸 군대부터 다녀온 남자와 남자의 친구는 동기부터 선배인 친구들까지 잘 어울렸다. 그도 그럴게 전혀 다른데 같은 남자 둘은 사람들 속에 있는게 어울렸고 웃음을 나누는 법을 아는 사람이였다. 굳이 멀리할 이유가 없는 좋은 사람이였다.
톡 보면 되잖아. 강의가 끝나갈 때쯤 물어오는 제 친구 물음에 귀찮다는 듯 쳐다도 보지 않고 웅얼거린 남자였다. 그리고 이내 귀엽게도 제 폰을 꺼내 톡방을 확인하고는 답을 해주었다. 6시까지 우리 맨날 가던 포차. 아 오키. 짧게 주고받은 대화를 끝으로 둘은 강의에 집중했다. 교수님 말이 끝남과 바쁘게 움직이던 둘의 손도 멈추었다. 수업이 평소보다 일찍 끝났고 이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였던 탓에 기분이 좋아진 둘은 동기들 틈에 섞여 투닥거리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일찍 끝났는데 먼저 갈까 아님 형들 기다렸다 갈래"
"맨날 꼴등으로 오는 사람 잡으러 가자"
"가는길 알아?"
"난 모르고 아는 사람을 알지. 가자"
형, 성운이 형! 동방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남자를 신나게 한건지 문을 부슬듯이 열고 들어섰다. 신이난 남자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남자는 끌려온건지 숨을 고르기에 바빴다. 뛸거면 지만 뛰던가 엄한 사람을 끌고 달려! 숨이 안정적으로 돌아온 작은 체구의 남자가 덩치가 큰 남자에게 큰 소리를 내곤 동방 소파에 누워있던 성운이 형에 옆에 가 앉았다. 아, 바로 갈건데 왜 앉아 형도 일어나요 가자. 그런 둘 앞에 선 남자가 앉아있는 두 남자의 손을 잡아 끌었다.
"야, 다니엘 그러다 형 팔 빠진다."
"아.. 맞네"
"너네 죽는다. 고작 동방 뛰어오는데 헐떡 거리는 김재환이 할 말은 아니지"
"아 형!"
"맞네"
"아직 약속 시간까지 남았는데 왜 벌써 가. 시간 바뀐거야?"
"다니엘이 지성이 형 데릴러 가자던데?"
"맞아"
"..알겠는데 다니엘 맞고 싶어서 맞네,맞네 거리는거지?"
근데 우리만 가? 나머지 애들은? 오늘 2학년 정각요정 교수님 수업. 아.. 우리끼리 가야겠네 가자.
강의실을 나오며 투닥거리던 재환과 다니엘은 동방을 나오면서도 성운까지 껴서 투닥거리는라 조용하지 않았다.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서 모임이 있을때마다 늦는 지성이 형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다니엘의 제안으로 갑자기 뭉치게 된 조합이지만 지성이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학교에 도착할때까지 셋이 가는 길목 마다 웃음이 떨어졌다.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꺼내는 대화였지만 셋은 어떤 점이 즐거운지 쉴세 없이 웃었다. 지훈과 우진이 가졌던 울고있는 웃음이 흐려진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