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굴 w.휴일
종인은 어젯 밤 내내 아픈 머리를 짓누르며 일어났다.
아직 새벽인지라 군청색에 회색이 섞인 어두운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밝은 햇살이 들이비치면 기분좋게 일어날 수 있을텐데.
잠든 엄마를 깨우지 않고 밥통에서 밥을 퍼 담고 반찬을 꺼냈다.
까슬한 입맛인데도 배가 고픈 게 느껴져서 허겁지겁 아침을 해결하고 이빨을 닦았다.
방학이 가까워져 책이 없는 가벼운 가방을 메고 학교로 나섰다.
학교 근처에 있는 산에 다다르자 종인은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친구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저기에 여우귀신이 산대, 정말이야. 산오르는 길도 따로 없잖아, 저기 진짜 귀신때문에 아무도 안 간다니까.'
다 큰 고등학생이 그런 말이나 믿고.
사내자식이 그 정도에 쫄려면 물건 떼라고 시시덕거리던 대화가 오갔었다.
종인이 픽 웃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낮은 구릉같은 산이라 금방 올라갔다 내려오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해가 저무는 것 같았다.
큰일이다. 학교도 빼먹었는데.
종인은 서둘러 오던 길을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은 더 빨랐고, 출발점으로 돌아온 종인의 입에는 어이없다는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허- 밑에서 보니 자신은 아무래도 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정말 귀신이 살아서 홀린건가, 아무리 봐도 그다지 높지는 않은 산인데 고개가 갸웃했다.
"너 이놈자식 오늘 학교 빼먹었다며!!"
"아.... 엄마 미안...아 엄마! 아파! 진짜!"
"아프라고 때리지!!!! 기말 올랐다고 내년에는 학교 안 다닐 셈이야?! 어디 학교를 빼먹어?"
"알았어요 알았어. 진짜 오늘은 나도 모르게..."
"조용히 해!!! 한번만 더 학교 안가면 뼈도 못 추려!!"
원색적인 엄마의 꾸지람에 종인은 더욱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다 그 여우산 때문이야. 여우? 귀신? 웃기는 소리이고, 자신은 길치였던 것 뿐이라고 종인은 위안했다.
-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자기는 서울에 있는 학원을 끊었네, 시골에서 실컷 놀것이다, 대학탐방이나 다닐 것이다 이래 저래 말 많은 친구들을 보며 종인이 웃었다.
그러다 종인이 갑자기 한마디 뱉었다.
"야, 여우산 말이야."
"응? 뭐?"
시끄럽게 떠들던 친구들에 종인의 말이 묻히고 종인도 더는 묻고 싶지 않은지 입을 다물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또 그 산과 마주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조금 쌓여 부분 부분 얼은 산은 왠지 더 오르기 힘들어보였다.
종인은 이상하게 도전의식이 생겨 산을 올랐다.
방학과제안내문과 학교에서 나눠준 겨울방학 학습계획표가 크로스 백 안에서 조용히 바스락댔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종인은 눈을 부릅떴다.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을거야.
한참을 헤메던 것이 우스웠을만큼 빠른 속도로 올라가며 종인은 웃었다.
뭐야, 이렇게 쉬운걸. 확실히 올라가는 느낌이 나네.
잠시 멈춰 조금 시려워진 손을 부비고 있는데 저 멀리 작은 암자같은 것이 보였다.
뭐야, 귀신의 집이라도 되나?
다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암자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암자라는 것은 실상 다 무너져가는 초가집이었다.
종인이 사는 곳은 시골이라면 시골이었다. 대중교통이 자주 다니지도 않고, 학원가도 없고. 대형마트나 아파트는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 해도 양옥집이 대부분이지 이런 초가집은 더더욱 없었다.
요즘 시대에도 이런 것이 존재하는가, 종인이 신기해하며 집 주위를 빙빙 둘러봤다.
콜록콜록-
초가집 안에서 작은 기침소리가 났다.
종인이 쌍커풀 진 눈을 크게 뜨며 문가로 천천히 다가갔다.
"누,누구 있어요?"
잔 기침을 연속적으로 뱉던 숨이 멈추고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종인이 손을 들어 문을 작게 두드렸다.
"저기,.. 누구 있어요?"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자 종인은 문득 귀신 사는 산이라는 친구들 말이 떠올랐다.
소름이 돋아 오싹해지고 종인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뒷걸음 쳤다.
그 때, 또 다시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숨을 못 쉬는 듯 헉헉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는 꽤 오랜 시간 들려왔다.
한참을 굳어있던 종인은 기침소리가 멈추자 덜컥 겁이 났다.
죽었나? 아니, 귀신이니까 죽은 게 아닌가? 아니, 사람인가?
귀신을 볼 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들어 종인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종인은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새하얀 꼬리에 쳐진 눈망울, 작은 아이가 구석에서 떨고 있었다.
종인은 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존재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당장에라도 안고 품안에 가두고 싶을 만큼 너무도 예뻤다.
종인은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입은 반쯤 벌어져 그 존재의 아름다움에 놀란 모습이었다.
"이름........이름이 뭐야?"
쳐진 눈이 종인을 올려다보고 입을 벙싯벙싯 움직였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질문만 던져놓고 사실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종인은 넋을 잃고 아이의 턱을 들어올렸다.
코너에 작은 존재를 몰아넣은 시꺼먼 사내놈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무섭게 보이는 줄도 모르는 채,
종인이 입을 맞췄다.
눈은 감을 수가 없었다. 한 시라도 이 아름다움을 더 보고 싶었다.
쳐진 눈이 놀라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까지 전부 너무나 예뻐서 종인은 숨이 거칠어졌다.
입술을 떼고 종인이 물었다.
"이름이... 뭐야?"
아이가 종인을 의아하고 두렵게 쳐다보며 다시 입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소리는 작은 여우나 고양이의 울음처럼 가냘프고 끙끙대는 소리였을 뿐,
종인의 반복되는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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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죽겠어요!
쓰려던 거 쓰다가 너무 어려워서 접어두고
이거 쉬울 거 같다 싶어서 쓰는데...아 내가 쓰려던 건 불마그득한 글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아무튼, 말도 안되는 글 지금까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