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개학한 지 한 달정도 지난 4월 초반.
아직 꽃샘추위가 채가시지 않았지만 그 날따라 이상하게도 날씨는 좋았다.
햇빛도 따스하니 좋았고, 구름 한 점 바람조차 조금도 불지 않았다.
꽤 명문이라 불리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경은 꽤 많은 친구가 있을 만큼 활발하고 좋은 성격을 가졌지만 그 날은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무력감에 늘어져있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시계를 보았다.
아직 25분.
오늘은 다른 학교에서 전학생이 오기로 한 날이다.
어차피 남고여서 남학생이 올테지만 1년 넘게 보던 친구가 아닌 새로운 또래가 온다는 건 그 나이 학생들에게 있어선 분명 설레는 일이다.
물론 우리 학교 첫 생활을 마냥 좋게만 만들어줄 순 없지, 박경을 포함한 꽤 여러 명의 장난기 가득한 눈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제 야자시간에 세웠던 '전학생 놀리기' 작전을 되새겼다.
8시 30분, 마침 학교 종소리가 들리고 느긋하게 반에 들어가던 학생들은 서둘러 반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날은 달랐다.
"와 존나 무섭게 생겼네."
담임 뒤에 따라 들어온 학생의 얼굴을 본 박경은 읊조리듯 작은 소리로 말하였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함께 계획을 짰던 친구들의 표정을 본 박경은 처음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다.
"ㅁㅁ고등학교에서 전학왔고 이름은 우지호입니다."
꽤나 중저음의 목소리가 박경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망연자실 고개를 떨구었던 박경은 전학생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얼굴을 대체적으로 하얀게 입술은 꽤 두껍고 코는 무지 크다, 그렇지만 그 모양이 모나지 않고 꽤 멋있는 거 같았다.
눈은... 눈은 확 찢어진 게 무섭다. 그냥 무섭다. 눈을 빤히 쳐다보던 박경은 눈동자가 마치 저를 관통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기가 죽었다.
박경이 강아지였담 아마 그의 꼬리와 귀가 축 처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ㅁㅁ고면 그 무서운 애들이 다닌다는 학교가 아닌가, 그 학교에서 제일 싸움 잘하는 애 흔히 짱이라고 불리는 애가 선생님도 때려버리고 한 애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려 우리 동네 학교로 강제 전학 온다는 소문은 이미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아니 그 학교가 우리 학교였어?
박경을 포함한 반의 학생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리자. 사려야 산다 얘는 좀 위험해.'
박경 머릿속에서 빨간 경고음이 삐용삐용 울렸다.
제발 내 옆자리는 아니었음 좋겠다.
하지만 박경 옆자리는 공석, 이를 알아챈 박경이 황급히 본인의 책과 가방을 옆 자리로 밀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지호는 자리가... 박경 옆에 비네, 어 저기 맨 뒷자리 남은 자리에 앉아라."
박경은 손은 물론 온 몸의 땀구멍이 터져버릴 거 같단 느낌이 들었다.
S.O.S 친구들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으나 반 친구들은 박경의 눈초리를 싸그리 무시했다.
"안녕."
"..."
"야. 너 아프냐? 무슨 땀이 이렇게..."
"미... 미안해! 그... 그 아..."
박경은 중학교 때 아버지께 맞고 엉엉 울었던 이후로 처음으로 소리내어 엉엉 울고 싶어졌다.
"?"
한 편 우지호는 이러한 반응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
가만 보니 이 반 애들이 전부 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책상만 보고 있었다. 제 앞자리는 툭도 아닌 톡 건들면 바로 쓰러질 거 같이 벌벌 떨고있다.
사실 평범한 가정에서 본인 할 일 열심히 하고 말썽 한 번 부려본 적 없는 우지호는 그냥 집에서 가까운 ㅁㅁ고등학교를 진학했고 학교 분위기가 자신과는 영 맞지 않아 사립고인 이 학교로 전학온 것이었다.
성적도 꽤 좋은 편이고 남을 괴롭혀 본 적도 없는 우지호는 이런 반응이 생소하다. 이러다 왕따라도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
울고 싶다.
우지호 또한 울고 싶어졌다.
아침 자습 시간에 전학생이 무섭게 자꾸 자기를 쳐다봐서(사실 그냥 멍한 표정이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던 박경은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뛰쳐나가 옆 반으로 들어가 작년부터 친했던 김유권의 팔을 잡고 징징댔다.
"아 유권아... 나 너무 무섭다고... 나 진짜 죽고싶어 그냥 죽을까?"
"아 전학생 너네 반이었어? 근데 왜 무서워."
"걔 ㅁㅁ고에서 전학왔대."
"... 선생도 때리고 막 같은 반 애를 죽기 직전까지 때리고 칼빵도 놨다는 그 애야?"
"? 소문이 그 정돈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 하여튼 진짜 핵무섭게 생겼어 아 짜증나... 심지어 짝꿍이야...아까 나를 진짜 죽일듯이 계속 쳐다봤다니까(그런 적 없다.)"
"박경 힘내라... 그리고 걔 앞에서 나한테 아는 척 하지 마."
유권은 팔을 털어 박경을 털어버리곤 화장실로 도피했다.
"야 김유권, 김유권!!!!!! 이 배신자!!!!!!"
마침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박경의 얼굴은 검은 색 그 자체였다.
반에 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