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천사
박찬열 너 진짜 그딴식으로 행동할거야 자식아? 한 대형 소속사 사장실 안. 둔탁한 둔기 소리와 함께 건물을 울릴만한 큰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한번만 봐주세요. 문사이로 보이는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중년의 남자와 중년의 남자가 휘두르는 두꺼운 야구 방망이를 요리 조리 재빠르게도 피하며 짖궂게 웃는 한 키큰 사내이다. 너 일로 안와. 무식하리 만큼 무거운 몸을 뒤뚱리며 다가오는 뽐새에 키 큰 사내의 입에서 풉, 하는 작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 에이, 사장님 그렇게 화내시면 어떡해요 ”
“ 자,자식이.. 너 지금 비웃은거야? 어? 박찬열 내가 우습냐. ”
“ 비웃은게 아니라 사장님 건강 생각해드린 거에요. 이제 나이 생각 하셔야죠 사장님. ”
나이 생각 하지 못하게 만든게 누구던가. 중년의 남자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거만하게 내려다 보는 한 사내에게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역시나, 10년을 동거동락 하며 한솥밥 먹어온 사이지만 어렸을때 그 꾀 어디 안가듯, 여전히 속만 썩이고 하루하루 주름살만 늘어가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저 사내는.
“ 그럼 사장님, 저 스케줄 가요. 안녕. ”
얄궂게 웃으며 손을 세차게 젓는 사내의 모습에 결국 중년의 남자는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집어 던졌다. 쾅. 꽤나 귀 아플만한 굉음이 사장실에 들어찬다. 그렇다. 만화 캐릭터 중 '단비'가 21세기 고집 여왕이라 정의된다면 이 21세기 사회의 고집 왕은 동방예의지국 한국에 어울리는 척. 하는 이미지 메이킹 청년 '찬열' 이 존재한다.
# 박찬열의 '초콜릿'
w. 천사
“ 촬영 스탠바이 해주세요!”
“ 아니, 지금 촬영이 2분 남았는데 박찬열은 언제 오는거야? 어? ”
감독님. 아직도 찬열씨 안왔어요? 저 바쁜 몸이에요. 큐시트를 스태프들에게 급하게 나눠주던 피디가 보기만 해도 억 소리가 날만한 비싼 모피 코트를 두른 여자에게 비굴하리 만큼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해요 유진씨. 피디가 고개를 숙이자 따라 곤란한 표정으로 시계를 보랴, 촬영장 문을 바라보랴 바쁜 연출진들의 모습에 왜소한 체격의 사내가 입술을 꽉 깨문다.
“ 1번 카메라 준비 됬어? ”
“ 감독님 제 이름은 1번 카메라가 아니라 ㅂ.. ”
“ 지금 그게 중요해? 얼른 준비나 해! 으이구, 박찬열 오고나서 되는일이 없어 씨발”
예. 중요 합니다. 이름이 존재하는데도 1번 카메라라뇨. 요즘 같은 시대에 인권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사내는 차마 뱉지 못한 말을 꿀꺽 삼키고 쩝, 입맛을 다셨다. 항상 시장을 방불케하는 이 꼬라지에 남아나지 않는건 상사 밑 대가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드라마건 현실이건 어디에서나 세상은 불공평했다. 꼭 일을 치는 것들은 백화점 사장 회장 아님 '사' 자 직종을 가진 돈 많은 자들. 똥개마냥 뒷처리를 해주는건 불쌍한 말단 직원들. 아무리 이런 거지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쳐봤자 다치는건 후자이다. 피디라는 작자 입에서 온갓 욕설과 함께 끊임없이 거론되는 '박찬열'이란 사람은 전자였다. 1번 카메라 준비해주세요. 한참 주먹을 불끈 쥐고 박찬열, 이란 세글자를 곱씹던 사내는 사인을 주는 연출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 한 카메라 앞으로 달려갔다.
“ 아.예예, 찬열씨. 차가 막히신다구요? 하하, 괜찮습니다. 시간 그깟거 조금 미루죠. 예예 안전운전 하십쇼. ”
정녕 아까 그 피디가 맞는걸까. 자세까지 낮추고 굽신거리는 피디의 모습에 사내가 픽 웃었다. 어쩌겠는가. 피디라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저보다 윗사람에겐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당연한 논리인 것을. 적어도 현재 세상은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아닌척, 방관하지만 똑같은 삶이였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구해줄 백마탄 왕자가 단 한명이라도 짠.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넓은 범위를 다 거스를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집 왕' 을 똑부러지게 잡아줄 정의의 사도 한명쯤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난 저렇게는 못살지. 박찬열 다 죽었어. 큐시트를 구깃구깃 한 손으로 구기는 한 사내, 즉 백현의 눈동자가 무섭게 불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