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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트리플망고 전체글ll조회 816l 3


애정의 끝자락 上

 

엄마. 지은이 기억 나?

 

종인의 말에 깨작거리며 밥알을 세고 있었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종인이를 바라보자 아무렇지 않은 듯 김치찌개를 떠먹고 있었다. 막 싱크대 청소를 끝낸 이모가 손을 탈탈 털고 아직 젖어있는 손을 수건에 닦아내며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그럼, 기억나지. 저번에 김치 들고왔던 그 참한 아가씨 아니야? 응. 맞아. 그 아가씨는 왜? 이모가 옆 의자에 수건을 걸어놓으며 종인이를 쳐다보았다.

 

‥내일 지은이네 부모님이랑 같이 밥이라도 먹는 건 어때?

 

그러자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짝소리 나도록 쳤다. 엄마야 좋지! 아빠한테도 전화해야겠네. 이모가 의자에서 일어나 부산을 떨며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여전히 종인이를 향해 있고, 종인이도 여전히 김치찌개를 떠먹고 있다. 나도 시선을 돌려 아무렇지 않은 척,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종인이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종인이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태연한 모습에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어깨 너머로 하이톤인 이모의 목소리가 신경을 긁어댔다. 여보! 있죠, 오늘 종인이가‥. 억지로 붙잡은 숟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끝내 입 안에 숟가락을 끝까지 다 밀어넣지 못했다. 종인아, 아빠가 몇시냐고 묻는데? 아, 저녁 7시래요.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모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통화를 하다 내가 일어나자 내게 말했다. 다 먹었니? 경수, 너도 내일 약속 없으면 같이 갈래?

 

죄송해요. 저녁 약속이 있어서요‥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이모를 향해 부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행히 이모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 이모를 뒤로 한 채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뒷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박히는 것 같더니, 뒤이어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고 종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잘 먹었습니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는 아직까지 물기가 촉촉히 남아있었다. 실내화를 신을 생각도 못하고 발걸음을 내딛자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바지 끝자락이 물을 머금어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점차 진해져가는 바짓자락을 내려다보는데, 그 뒤로 또 한번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뒤를 돌아보지않아도 알 수 있기에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그러자 굵직한 손가락이 발목을 감싸더니 이미 젖어버린 바지를 접어 올려준다. 그 손마저 보기가 싫어 고개를 들었지만, 곧 이어 일어나는 종인이의 얼굴이 거울 너머로 비친다.

말없이 종인과 시선을 마주한 채 있으니 종인이 허리를 감싸안으며 내 어깨에 고개를 괴었다. 내가 처음 종인이네 집에 들어온 그 날과 똑같은 자세였다. 같이 살게 된 나를 심하게 반겨주는 이모를 피해 화장실로 들어와있었더니 종인이 들어와 허리를 감싸더니 웃으며 볼에 입을 맞추고‥

벌써 7년 전이네. 잠시 생각에 빠져 허리에 둘러진 종인의 손을 뿌리치지도 못했다. 넌 어떻게 그렇게 태연해. 뻔뻔해. 여태 꾹꾹 눌러왔던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라도 빽 지르려 입을 열자 종인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형. ‥알잖아.

 

짧은 한 마디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알잖아. 그 한 마디에 입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슬프게도 우리는,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진부한 사랑놀음에 빠져 웃음을 멈출 줄 모르던 고등학생 시절의 도경수가 아니였다. 둘이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웠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였다. 알기싫은 일을 알고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애통한 일이였다.

 

종인은 내 허리에 두른 손을 떼어내더니 내 손을 한번 꾹 잡아쥐고는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몸의 거리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도 멀어져야만 했다.

 

종인아, 김종인‥.

 

종인이는 이미 내 방을 나가고 없었다.

거울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손을 뻗어 닦아내어도 선명해지기는 커녕, 더욱 흐려지기만 해서 너무 답답한 나머지 가슴을 치며 주저앉아버렸다.


애정의 끝자락 下

 

형, 나 결혼 날짜 잡혔어.

 

경수 형은 책상 위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였다. 내가 말을 건네자 형은 나를 올려다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자연스럽게 웃어보였다. 축하해. 그 한 마디만 남기고 형은 다시 시선을 노트북으로 돌렸다. 무어라 말을 하고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등 뒤에 숨겨두었던 청첩장을 꺼내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다두었다. 형은 힐끔 청첩잡을 쳐다보는가싶더니 다시 시선을 돌리고 손으로 건들지도 않았다.

 

꼭, 왔으면 좋겠어.

 

형의 눈이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내게 소리칠 것만 같은 형의 모습에 급히 도망치듯 형의 방을 나와버렸다. 무슨 말을 하려했을까. 내가 거길 왜 가냐고 화를 냈을까, 아니면 울어버렸을까‥. 형의 말에 나는 뭐라고 답했을까. 우리 고등학교 때, 돈 모아서 카페하기로 했잖아. 커피 좋아하는 나는 커피 만들고, 형은 요리 잘 하니까 샌드위치랑 파니니 만들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도망쳐서 우리 같이 살자. 여태 모은 돈 싹싹 긁어서 카페 운영하자고 했을까? 단연컨대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겁쟁아, 겁쟁아! 고등학교 여름 방학때 놀러간 바닷가, 한 밤중에 모래사장에서 폭죽을 터트리자는 형의 말에 요즘 그런 거 하면 잡혀간대. 안돼. 다쳐. 떽하고 단호하게 말하던 날 보고 놀려대던 경수 형이 떠오른다.

 

형, 그 때는 내가 그저 조심성이 많은 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정말 겁쟁이가 되버렸어.

 

 

축하해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어요?

 

입에 발린 말들을 내뱉느라 입안이 비쩍 말라갔다. 그 와중에서도 자꾸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굴 그렇게 찾느냐고 축의금 안 도망간다고 친척분들이 웃으시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억지로 웃는 웃음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결혼을 축하해주러 온 많은 인파 속에서 경수 형은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는 경수형의 가족분들도 안보였다. 정말 안오는 걸까. 초조하게 로비에 걸려져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어떻게보면 안 보이는 게 당연했다. 경수형은 내 앞에 나타나 결혼 축하한다며 웃을 만한 사람이 못됐다. 오히려 비련의 주인공인 것 마냥 결혼식이 진행될 때 맨 뒤에 서서 나를 보며 눈물을 훔치지만 않으면 다행이였다. 왠지모를 불안에 떨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뜯다가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분이 반갑게 다가오면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러기도 잠시, 자네는 이제 슬슬 들어가봐야지. 하는 말에 또 다시 허리를 숙이고 신랑 대기실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넥타이 다시 매드릴까요? 들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들러리가 넥타이를 똑바로 매주고는 의자에 앉혀 간단한 메이크업을 해주려했다. 그 와중에도 손아귀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날 들러리가 거울 너머로 바라보며 말했다. 긴장 푸시고, 휴대폰은 잠시 내려두세요. 아, 네. 가볍게 웃으며 대답한 내가 거울 앞 협탁에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오겠지. 남들의 눈이 신경쓰여서라도 오겠지. 같이 사는 친척 동생의 결혼식인데. 자신을 스스로 안심시키려하며 거울 너머로 보이는 잔뜩 굳어있는 표정을 살짝 풀었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식 5분 전. 대기실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혼자만의 시간을 준다며 떠났다. 밖이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문을 닫아도 밖의 소음이 다 들려왔다. 살며시 대기실의 문을 잠그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경수 형이 가장 좋아한, 경수 형에게만 보여주었던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경수 형의 것이 아닌‥ 입장 후, 신부와 눈을 마주한 채 모두에게 보여 줄 미소였다.

 

속에서 깊게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고는 아까 엎어두었던 휴대폰을 들었다. 부재중이 5통이나 와있었다. 폰의 잠금을 해제하자 뜨는 건 ‘경수형네 이모’. 20분 전부터 약 4분 간격으로 부재중이 남아있었다. 어디선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다시 전화를 걸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중에 또 다시 폰이 울렸다. 이모였다. 나는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갔다.

 

종인씨! 이제 나가셔야해요!

 

 

신부가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의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장인어른께서 지은이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걸어오셨다. 지은이의 눈에도, 장인어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지은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고, 장인어른께서 내게 지은이의 손을 건냈다. 나는 차마 지은이의 눈을 쳐다보지못하고 하얀 손만 바라보았다. 덕분에 연습해두었던 그 미소도 짓지못했다.

 

신부 박지은양은 신랑 김종인군을 항상 생각하고 돌보며 평생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지은이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어 주례사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김종인군은? 하고 나의 대답을 유도했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형, 우리 언젠가 이런 맹세한 적 있는 것 같은데‥ 한참이나 망설였던 탓에 객석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사회자도 당황했는지, 신랑이 많이 긴장을 했나봅니다! 박수 한 번 주세요! 하고 시간을 끌었다. 함께 놀러갔던 시골집의 작은 성당 안에서 그랬잖아. 도경수는 평생 김종인과, 김종인은 평생 도경수와‥

긴 박수 갈채가 끝나고, 나는 결국.

 

‥네.

이것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나와 지은이는 몸을 돌려 서로를 마주봤다. 신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하얗고 자그마한 손에 반지를 끼우면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자꾸만 흘러서, 지은이가 손을 뻗어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재빨리 눈물을 훔쳐내고 내 손에 남은 반지 하나를 끼우려고 하자, 오른 손에 끼워진 은색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손에 묻은 눈물 탓에 반지가 미끄러져 떨어져버렸다.

반지를 줍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손을 뻗었다. 가슴이 너무나도 아픈데, 내칠 수가 없어서 반지가 떨어져있는 카페트가 구겨지도록 반지를 잡아쥐고는 참지못하고 그대로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종인아. 경수가, 경수가 자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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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ㅠㅠㅠㅠ 마지막 너무슬퍼요 ㅠㅠㅠㅠ
11년 전
트리플망고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많이 고민했는데 아련하게 끝내고 싶어서 결국 이렇게 되버렸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년 전
독자2
헐대박.....아경수가결국은....ㅠㅠㅠㅠㅠㅠ가슴이먹먹해지는글이예요
11년 전
독자3
헐......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누구를 탓할수도 없어서 더 슬퍼요 경수 진짜 불쌍하고 안타깝고.. 종인이도 불쌍하고ㅠㅠㅠㅠㅠㅠㅠ 카디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여!!!!!!!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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