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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시는 분들만 재생시켜주세요

 

 

 

아빠는 나를 데리고 급하게 어디론가 걸어갔다. 안안 골목, 어두운 어딘가로 들어간 곳은 안이 다비치는 유리들로 이루어진 거리였지만 아무것도 없이 침침하고 어두운 골목이였다. 아빠는 그중 한 가게의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는 후줄그레한 옷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아빠는 나의 손을 그 여자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고 아빠를 올려보았다. 이제는 보지 못할 얼굴이였으니까, 라고 그 어릴적에 나는 이미 알고있었던것 같다.

 

"아빠, 벌써가?"

 

"...태희야, 아빠가. 아빠가.."

 

"... 잘가, 아빠."

 

"..."

 

"안녕."

 

어렸을적 나는 아빠에게 이별의 의미로 손을 흔들었고, 아빠는 조그만 내 키에 맞춰 몸을 수그려 나의 얼굴을 부여잡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어둑한 골목을 벗어났다. 그 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여자가 이끄는 손에 안으로 들어갔다. 내 나이, 열셋의 일이다.

 

그 이후에도 내 조그만 체구는 별로 자라지 않았다. 조그만 키가 몇센티 자라고, 머리가 허리를 간지럽힐 무렵 나는 열 다섯살이 되었고, 그와함께 그 여자, 마담은 나를 손님들에게 내보냈다. 별 생각없이 남자들의 몸에 깔려 몇시간을 죽은듯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됬었다. 마담도 내게 많은걸 바라지 않았고, 손님들이라 하는 남자들또한 내게 별다른걸 바라지 않았다. 그냥 난 가만히 누워서 다른 생각만 하고있으면 됬었다. 이따끔식 이상한 소리를 내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난 별생각 없이 입에서 나가는대로 소리를 냈고, 남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는 만족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못했고, 흔히 말하기를 사람들은 나를 순수하다고 했다. 가게안의 언니들은 나를 멍청하고 뒤떨어진다고 했지만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었다. 뭐라고 말하는지도 몰랐으니까.

 

열다섯에서 열여섯으로 넘어갈 무렵, 초경을 했다. 여자가 된것이라고 했다. 이불에 피를 잔뜩 흘린 나를 마담은 '여자가 된걸 축하한다' 라고 하며 생리대를 주었고 나는 '그럼 난 지금까지 여자가 아니였나요?' 라고 되물었다. 마담은 이불을 들고 화장실을 가느라 대답하지 않았다. 아랫배에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이따끔 새벽에 밖으로 나가서 노래를 부른다. 물론 가게밖 길거리는 수많은 남자들과 언니들로 인해 시끄럽고 활기차지만 가게 뒷문으로 빠져나가 나오는 좁고 한산한 길거리는 그 소리들이 반으로 걸러 들려와 꽤 조용한 편이였다. 그러면 미리 준비해논 담요위에 털썩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다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노래를 불렀다. 누구의 노래인지도, 노래제목도 모르지만 손님중에 한명이 내게 노래를 불러줬었다. 예쁜 노래라고 생각했다. 가사가 생각이 안나기도 했지만 참 예쁜 가사여서 쉽게 잊어버리진 않았다. 가끔 손님들의 발길질에 몸이 욱씬거리거나, 생리때문에 아랫배가 아픈날에는 중간 가사를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곧 기억해냈다. 좋은 노래였다. 아니, 노래가 좋았다.

 

 

가게 뒷문으로 나와 멀리, 더 멀리 도망쳤다. 평소보다 더 멀리 도망나온 주위는 좁은 골목을 지나 한산한 숲같았다. 듬성듬성하게 난 나무나 숲풀들이 비교적 사람이 없는것이라는것을 표현하는것 같았다. 왼쪽뺨이 따가워 손을 들고 살짝 매만지니 부풀어있었다. 찐덕한 촉감은 입가에서 새어나온 피였고, 머리는 한참을 뛰어오느라 바람에 엉킬대로 엉켜있었다. 급하게 머리를 매만지고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나무아래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멍이 든 허벅지가 아려와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무엇보다 헤진 발바닥이 더 아팠다. 숨을 천천히 고르고 하늘을 쳐다봤다. 별것없이 여전히 똑같은 하늘이였고, 평소와는 조금 다르지만 별것없는 내 모습이였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가사를 읊조렸다. 이따끔씩 벌어지는 상처때문에 쓰라렸지만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노래를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멀끔한 차림의 남자가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눈으로 내려보는 남자를, 나또한 별 생각없이 올려보았다.

 

 

남자는 돈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와 하루동안 나를 빌려서 제일 가게 깊숙이 있는 방에서 나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내게 노래를 해달라고 했었다. 이따끔, 자기도 했었다. 서비스를 잘해주라는 마담의 말에 내가 먼저 다가가면 남자는 흠칫 놀라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것은 몇번, 남자는 매번 와서 하루는 내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고, 피아노를 내 앞에 들이대기도 했다. 처음보는 흰색과 검은색의 상자같은 것에 몇번 치고 그만뒀지만 남자는 꾸준히 내게 그것을 들이밀고 가르쳤다.

 

"나와. 나가자."

 

"...어딜 나가요?"

 

내 물음에 남자는 별말없이 내 손을 잡아 일으켰고 나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보면서 남자의 이끔에 끌려갔다. 남자는 내게 두터운 외투를 입혀주었고, 양손에 장갑을 끼워주었다. 가만히 그 손길을 받고있는데 마담이 우리를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만이예요.' '걱정말아요.' 미덥잖게 말하는 마담에 남자는 짧게 대답했고, 마담은 헛기침을 하며 방에서 멀어졌다.

 

"자, 가자."

 

남자는 나를 이끌고 뒷문으로 나갔고, 나는 새카만 자동차에 탔다. 이 화려한 골목길에 들어온 뒤로, 처음 바깥으로 나가는것이였다.


["하루만 태희좀 밖으로 데려갑시다." "...예?" "태희, 밖으로 데려가겠습니다. 돈은 두배로 쳐드리죠." "..안되요. 당신이 그 애를 데리고 튈지, 어떻게 할지 어떻게 알아요? 여기 들어온뒤로 한번도 나가본적이 없는 애예요. 안되요." "뭐가 무서워서 막습니까?" "...?" "이제 실질적으로 그 애를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텐데요. 열여덟살이면 어리긴 하지만 그 애는 이제 닳고 닳았죠. 저 아니면 더이상 그애를 데리고 있을 이유도 없을것 같은데. 제가 데려가는걸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 "오늘안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남자는 나를 어딘가 큰 공간으로 데려갔다. 짙은 붉은색 천이 씌여진 의자가 큰 공간을 꽉매꾸고 있었고, 그 맨앞에는 조명으로 환한 무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검은색 그랜드피아노가 올려져있었다. 오로지 무대만을 비춘 조명에 이 공간에는 나와 피아노, 남자밖에 없는것 같았다. 홀을 구경하는 나를 남자는 피아노 앞에 데려가 앉혔다.

 

"쳐봐."

 

"...?"

 

"뭐든, 니가 치고 싶은거. 아니면 그냥 만져보기라도 해봐."

 

남자의 말에 남자를 올려보다가 천천히 건반위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건반의 매끄러운 감촉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건반 하나를 누르자 딩- 하고 소리가 울렸다. 두손으로 천천히 건반을 쳤다.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나는 건반위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큰홀에는 오직 내 피아노 소리만이 가득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건반의 매끄러운 감촉이, 단단한 손가락을 울렸다. 마치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게 아니라, 피아노가 내 손가락을 두드리듯 그렇게 조심스럽게. 음들은 하나하나 연결이 되 선율이 되었고, 그 선율은 내 귀에 들어차 노래가 되었다. 천천히 노래가 멈추고, 건반에서 손을 뗐다. 조용한 무대. 옆에 가만히 서있던 남자를 올려보자 남자는 마치 처음 나를 보았을때처럼, 그런 눈빛으로 나를 내려보았고, 나 또한 별생각없이 남자를 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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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최고다.
작가님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11년 전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년 전
독자2
글 정주행해요.
11년 전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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